마지막 부탁

선우 패밀리 타운

by 이 범


2155년 가을, 판교 선우 패밀리 타운.
7년이 흘렀다.
2148년 정착 이후.
30만 평 땅에 아름다운 마을이 세워졌다.



주택 단지, 연구소, 학교, 병원, 예배당.
70명의 가족이 함께 살았다.
4대가 한 울타리 안에서.
태준(98세)은 이제 침대에 누워 지냈다.
건강이 많이 약해졌다.
하지만 정신은 또렷했다.


그의 침실.
큰 창문으로 판교 타운이 보였다.
손자들이 일하는 모습.
증손자들이 뛰어노는 모습.
"아름답구나..."
태준이 중얼거렸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야."
그날 오후.
태준은 박민준(80세)을 불렀다.
"민준아, 잠깐 올 수 있니?"
"예, 할아버지. 곧 가겠습니다."
30분 후.
박민준이 도착했다.


지팡이를 짚고.
80세.
흰 머리.
하지만 여전히 정정했다.


"할아버지, 부르셨습니까?"
"그래, 민준아. 앉아라."
박민준이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태준은 손자를 한참 바라봤다.
"민준아."
"예, 할아버지."
"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박민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할아버지,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아니다. 나는 안다. 98세야. 충분히 살았어."

태준이 박민준의 손을 잡았다.
"민준아, 너에게 부탁이 있다."
"무엇이든 말씀하세요, 할아버지."
"네가 나에게 호의를 보여준다면..."
태준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효성과 신의를 지켜..."
"나를 판교에 묻지 말아다오."
박민준이 놀랐다.
"예? 할아버지, 왜요?"
"우리 가족 묘역이 어디 있니?"
"평창 새벽터입니다만..."
"그래. 거기에 묻어다오."
"할아버지..."
태준이 설명했다.


"증조할아버지 민준이 거기 계신다."
"아버지 태민도 거기 계신다."
"지안이도 거기 있다."
"나도 거기 가야 해."
박민준이 울먹였다.
"하지만 할아버지, 여기 판교가 우리 새 터전인데..."
"알아. 하지만 판교는 산 자들의 땅이야."
"새벽터는 우리 뿌리야."
"하느님을 처음 만난 곳."
"우리 가문이 시작된 곳."
태준의 목소리가 강해졌다.




"민준아, 약속해다오."
"내가 죽으면 나를 평창으로 옮겨다오."
"조상들 곁에 묻어다오."
박민준은 울면서 대답했다.
"할아버지... 제가 꼭 할아버지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태준이 박민준을 더 가까이 오게 했다.
"민준아, 맹세해다오."
"예?"
"네 손을 내 무릎에 올리고."
"정식으로 맹세해다오."
박민준은 떨리는 손으로 할아버지 무릎에 손을 얹었다.



옛 성경의 방식.
가장 엄숙한 맹세.
"할아버지, 맹세합니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
박민준의 목소리가 떨렸다.
"평창 새벽터로 모시겠습니다."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고조할아버지 곁에."
"그리고 지안 형 곁에."
"제가 직접 모시겠습니다."
태준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고맙다, 민준아."
"그리고..."
태준이 또 다른 부탁을 했다.
"나뿐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를 위해서."
"평창 새벽터를 영원히 지켜다오."
"선우 가문의 성지로."
"우리가 하느님을 만난 곳으로."
"후손들이 계속 그곳을 찾게 해다오."
박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맹세합니다, 할아버지."
"평창 새벽터를 영원히 지키겠습니다."
"우리 가문의 성지로."
"5대, 6대, 7대... 영원히."
태준은 박민준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침대 머리맡으로 몸을 돌렸다.


거기에 작은 제단이 있었다.
성경책.
초.
십자가.
태준은 힘들게 일어나 앉았다.
박민준이 부축했다.
태준은 제단을 향해 절했다.


98세 노인이.
마지막 힘을 다해.
"하느님, 감사합니다."
"100년 넘는 우리 가족의 여정을..."
"인도해주셔서."
"이제 저를 조상들 곁으로 데려가 주십시오."
"평창 새벽터로."
"아멘."
박민준도 함께 절했다.




둘이 제단 앞에서.
할아버지와 손자.
마지막 예배.

그날 밤.
박민준은 형들을 불렀다.
준영(84세), 준석(82세), 준호(80세), 준민(78세).
모두 노인이 되었다.



"형님들, 할아버지께서 부탁하셨습니다."
"무슨 부탁?"
"평창에 묻어달라고."
형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거기가 우리 가문 묘역이잖아."
"그런데..."
박민준이 말을 이었다.


"할아버지께서 맹세하라고 하셨습니다."
"판교가 아니라 평창에."
"확실히 하라고."
준영이 말했다.
"민준, 우리도 같은 생각이야."
"예?"
"우리도 평창에 묻히고 싶어."
다른 형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판교는 산 자들의 땅이야."
"우리 후손들이 살 곳."
"하지만 우리는 평창으로 가야 해."
"하느님을 처음 만난 곳으로."
박민준이 형들을 바라봤다.


"형님들..."
"민준, 약속해줘."
"우리가 죽으면 평창으로 데려가 줘."
"조상들 곁에 묻어줘."
박민준은 눈물을 흘렸다.


"약속합니다, 형님들."
"평창에 모시겠습니다."
"모두."
그날 밤, 5명의 형제는 함께 기도했다.


70대, 80대 노인들이.
"하느님, 우리를 평창으로 인도해주소서."
"때가 되면."
"조상들 곁으로."
"아멘."
에필로그
3개월 후.
2156년 1월 15일.
태준이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


98세.
박민준이 곁에 있었다.
"할아버지..."
태준은 마지막으로 미소 지었다.
"민준아... 평창에서... 만나자..."
그리고 눈을 감았다.
박민준은 약속을 지켰다.


장례식 후.
태준의 유해를 평창 새벽터로 옮겼다.
가족 전원이 따라갔다.
70명이.
판교에서 평창까지.
추운 겨울날.
하지만 마음은 따뜻했다.
평창 새벽터.
선우민준의 묘 옆에.
태준이 묻혔다.


묘비에는:
"선우태준
1986-2156
170세의 삶
하느님의 꿈을 따른 자.
4대를 하나로 모은 자.
평창에서 영원히.
'내가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되거든
나를 이집트에서 옮겨
그분들의 무덤에 묻어 다오.'"
박민준은 할아버지 묘 앞에서 맹세했다.


"할아버지, 약속 지켰습니다."
"평창으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약속합니다."
"이곳을 영원히 지키겠습니다."
"우리 가문의 성지로."
"5대, 6대, 7대... 영원히."
바람이 불었다.
할아버지의 응답처럼.
박민준의 일기, 2156년 1월 20일:
"할아버지를 평창에 모셨다.
98세.
긴 여정이었다.


할아버지는 4대를 보셨다.
증조할아버지 민준의 이야기를 들으시며 자라셨고,
아버지 태민의 꿈을 이어받으셨고,
저를 지켜보셨고,
증손자들을 품으셨다.



그리고 이제 평창에서 쉬신다.
조상들 곁에서.
판교는 산 자들의 땅.
평창은 영원의 땅.
우리는 판교에서 살지만,
평창을 잊지 않을 것이다.
거기서 우리가 시작되었으니.
거기서 우리가 하느님을 만났으니.


할아버지, 편히 쉬소서.
언젠가 저도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약속대로.
아멘."
평창 새벽터 - 새로운 비석
박민준은 할아버지 장례 후.
새로운 비석을 세웠다.


"영원한 약속"
거기에는:
"평창과 판교
2156
판교는 산 자들의 땅.
평창은 영원의 땅.
우리는 판교에서 산다.
일하고, 사랑하고, 섬긴다.


하지만 우리는 평창에서 쉰다.
조상들 곁에서.
하느님 앞에서.
태준의 마지막 부탁:
'나를 평창에 묻어다오.
조상들 곁에.'
우리는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 계속 지킬 것이다.
5대도, 6대도, 7대도.
모두 평창으로 돌아올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가
우리의 시작이니까.
여기서 민준 할아버지가
하느님을 만났으니까.
판교에서 살되,
평창을 잊지 마라.


너의 뿌리를.
너의 근원을.
그리고 언젠가
너도 여기로 돌아오라.


조상들 곁으로.
하느님 앞으로.
박민준
2156년
할아버지 태준을 추모하며"
박민준은 비석 앞에 무릎을 꿇었다.



80세 노인이.
"할아버지들, 저도 언젠가 오겠습니다."
"약속대로."
"평창으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하얀 눈이 묘역을 덮었다.



평화로웠다.
거룩했다.
영원했다.

월, 화, 수,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