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탈출기 (逃脫記)1(픽션)

호르무즈의 빛 (光)The Light of Hormuz

by 이 범

작가의 말 (Author's Note): 이 소설은 허구(虛構)이나,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 파라바하르(Faravahar), 호르무즈 왕국(Kingdom of Hormuz), 페르세폴리스(Persepolis) 등의 역사적 사실에 기반합니다. 등장인물 강준혁과 윤서아는 완전한 창작 인물이며, 실존 인물 및 기관과는 무관합니다


테헤란의 균열 (Tehran Fracture)"진실(眞實)은 언제나 불꽃 속에서 태어난다."
— 자라투스트라 (Zarathustra)


2026년 2월, 테헤란(Tehran).도시는 여전히 숨을 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숨결은 가늘었다.


마치 오랜 병자가 내쉬는 마지막 한 모금의 공기처럼, 도시의 심장 박동은 불규칙하고 위태로웠다.


바자르(Bazaar — 시장)의 천막 아래로 흘러드는 황혼의 빛은 오렌지와 핏빛이 뒤섞인 기묘한 색조였고, 향신료와 매연과 공포가 한데 엉겨 붙은 공기는 폐 속 깊이 파고들었다.


강준혁(姜俊赫). 서른다섯 살. 한국 《한결신문》 테헤란 특파원(特派員).

그는 카메라 가방을 왼쪽 어깨에 걸치고 인파 속으로 녹아들었다. 동양인(東洋人)의 얼굴로 테헤란 바자르를 누비는 것은 의외로 유리했다.



서양인처럼 즉각적인 경계를 받지 않았고, 그렇다고 이란인으로 완전히 동화되지도 않아 기묘한 중간지대(中間地帶)를 점유할 수 있었다.

그는 그 틈새를 사 년째 능수능란하게 활용해 왔다.그의 이어폰 안으로 서울 편집국장 박성민(朴成敏)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준혁아, 지금 상황 알지? 미 해군 제5함대(U.S. Navy Fifth Fleet)가 호르무즈 해협(Strait of Hormuz) 진입을 강행했어.


이란 혁명수비대(IRGC — Islamic Revolutionary Guard Corps)가 미사일 경고를 날렸고, 대한민국 외교부(外交部)도 이란 전역에 특별여행주의보(特別旅行注意報) 1단계를 긴급 발령했어.


준혁아, 넌 지금 당장 나와야 해."강준혁은 골목 모퉁이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의 눈이 바자르 한편에 위치한 낡은 건물을 향했다. 간판도 없는 3층짜리 건물. 테헤란 고고학 연구소(Tehran Archaeological Institute) 비공개 분소(分所). 그가 사흘 전부터 접촉을 시도하던 인물이 그 안에 있었다.


"국장님, 삼십 분만 주세요.""강 기자, 지금 농담하는 거야? 전쟁이 터진다고 —"그는 이어폰을 귀에서 뽑았다.건물 안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낡은 나무 계단이 그의 무게를 받아 낮게 신음했다. 3층, 가장 안쪽 방. 문틈으로 노란 불빛이 새어 나왔다.


그가 조심스럽게 문을 밀었다.방 안에는 벽을 따라 고서(古書)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고, 중앙 탁자 위에는 아베스타(Avesta — 조로아스터교 경전) 사본들과 페르시아 고대 비문(碑文) 탁본들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석유 램프의 빛을 받으며 돋보기를 들고 문서를 들여다보는 한 여성이 있었다.


윤서아(尹瑞雅). 서른두 살. 한국외국어대학교(韓國外國語大學校) 중동고고학과(中東考古學科) 박사 후 연구원(Post-doctoral Researcher).


이란 정부 초청 문화재 공동 연구 프로그램으로 테헤란에 파견된 지 일 년 반. 그녀의 연구 주제는 단 하나였다 —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의 파라바하르(Faravahar) 상징이 호르무즈 고대 왕국(Kingdom of Hormuz) 유적에 남긴 비밀 지도(地圖).그녀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말했다.


"삼 분 늦었네요, 강 기자님."강준혁은 피식 웃었다."테헤란 바자르에서 혁명수비대 검문(檢問)을 두 개나 피해 왔는데도요?"그제야 윤서아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은 흑요석(黑曜石)처럼 짙고 날카로웠다. 광대뼈가 도드라진 얼굴에 먼지가 묻어 있었고, 단정하게 묶은 검은 머리카락 몇 가닥이 이마 위로 흘러내려 있었다.


그녀는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다시 문서로 시선을 돌렸다."들으셨겠지만, 해협이 봉쇄(封鎖) 직전이에요. 저한테 두 시간이에요. 두 시간 안에 이 문서를 촬영하고 번역 초본을 완성해야 해요. 그 이후의 일은 그 이후에 생각하죠."


"두 시간 후엔 이 건물이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이 문서가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하면, 안전 같은 건 아무 의미도 없어요."


강준혁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기자였다. 전쟁터를 누빈 기자였다. 시리아(Syria), 예멘(Yemen), 우크라이나(Ukraine). 그는 언제나 이야기를 쫓았다.


그런데 지금, 이 조용하고 단호한 여성 앞에서 그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다시 묻고 있었다.그는 가방을 내려놓고 카메라를 꺼냈다."좋아요. 같이 합시다."


그 순간, 멀리서 폭발음이 들렸다.낮고 묵직한 진동이 건물 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탁자 위의 유리컵이 흔들렸다. 윤서아의 손이 멈췄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테헤란의 균열(龜裂)이 시작되고 있었다.


파라바하르의 암호 (Code of the Faravahar)"선한 생각(善思), 선한 말(善言), 선한 행동(善行) — 이것이 아후라 마즈다의 길이다."


— 아베스타 (Avesta)폭발은 테헤란 북서쪽 군사 기지(軍事基地)에서 발생한 미사일 요격(迎擊) 충돌이었다. 뉴스는 즉각 확산되었다.




미 해군 F/A-18 전투기 편대가 페르시아만(Persian Gulf) 상공 이란 방공망(防空網)을 돌파했으며,


이란 혁명수비대는 호르무즈 해협 양측에 지대함(地對艦) 미사일 배터리를 전개(展開)했다고 했다. 전쟁은 더 이상 가능성이 아니었다. 전쟁은 시작되고 있었다.


강준혁과 윤서아는 건물 지하(地下) 창고로 문서를 옮겼다. 비상발전기(非常發電機)의 희미한 형광등 아래, 윤서아는 자신이 지난 삼 년간 연구해 온 내용을 빠르게 설명했다."이 문서는 13세기 호르무즈 왕국(Kingdom of Hormuz) 시대의 항해 비문이에요.


아랍어와 고(古)페르시아어가 섞여 있고, 여기 — 이 파라바하르(Faravahar) 문양 안에 숨겨진 좌표(座標)가 있어요."강준혁은 카메라로 문서를 촬영하면서 물었다."좌표? 어디로 가는 좌표요?"


"호르무즈 섬(Hormuz Island) 동쪽 해안, 오래된 동굴 은신처(隱身處)요. 포르투갈이 이 왕국을 점령하기 전, 조로아스터교 사제(司祭)들이 성물(聖物)을 숨긴 장소예요.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에요."그녀는 문서의 한 귀퉁이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거기에는 파라바하르 날개 끝부분에 극도로 작게 새겨진 기호들이 있었다.


"이게 현대 암호학(暗號學)으로 풀면 — GPS 좌표예요. 13세기 문서에 GPS 좌표 형식의 숫자 체계가 새겨져 있어요."


강준혁은 카메라를 내려놓았다."그게 무슨 말이에요? 13세기에 GPS가 —""물론 GPS는 없었죠.


하지만 이 숫자 체계는 60진법(六十進法)과 12진법(十二進法)을 조합한 것으로, 현대 좌표계로 환산이 가능해요. 제 연구 결과로는 이 좌표가 가리키는 지점이 —" 그녀는 잠시 멈췄다.


"현재 이란 핵시설(核施設) 비밀 터널 중 하나와 일치해요."침묵.강준혁은 천천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윤 박사님, 지금 그 말은 —"


"이 문서가 공개되면 이란 정부가 왜 저를 쫓고 있는지 이해하실 거예요. 지난달 연구소 동료 두 명이 갑자기 '자진 귀국(自進歸國)'했어요. 제 연구실도 세 번이나 '도난(盜難)'을 당했고요. 저 혼자 이 허름한 분소에서 버텨온 이유예요.


"강준혁의 머릿속에서 기자로서의 본능과 인간으로서의 감각이 동시에 깨어났다."이 문서 원본과 번역본, 내가 가지고 나가면 —""세상이 알게 되죠. 그리고 저는 —" 윤서아는 창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목소리가 아주 조금 흔들렸다. "저는 더 이상 이 나라에 남아 있을 수 없게 되죠."


두 번째 폭발음. 이번에는 더 가까웠다.건물 전체가 흔들렸다. 천장에서 먼지가 쏟아졌다.


형광등이 깜빡이다 꺼졌다. 강준혁이 즉각 폰의 손전등을 켰다. 윤서아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문서들을 방수(防水) 비닐 파우치에 차곡차곡 집어넣고, 그것을 겉옷 안쪽 깊숙이 넣었다.


손끝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강 기자님, 테헤란을 빠져나갈 방법이 있어요?""있어요. 하지만 쉽지 않아요.""쉬운 길을 찾으러 테헤란에 온 거 아니에요."


강준혁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았다. 파라바하르(Faravahar). 날개를 펼친 지혜(智慧)의 상징. 앞으로 나아가는 자를 인도하는 빛. 어쩌면, 눈앞에 있는 이 여성이 그 상징을 몸소 살아내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따라오세요."그들이 건물을 빠져나왔을 때, 테헤란의 하늘은 이미 연기로 얼룩져 있었다. 북쪽 하늘에 붉은 화염이 일렁였고,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겹겹이 울렸다.


도시 사람들은 두 종류로 나뉘어 있었다 — 무언가를 향해 뛰어가는 사람들과,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는 사람들.강준혁과 윤서아는 후자였다.



페르세폴리스의 밤 (Night of Persepolis)"어둠은 빛을 소멸시키지 못한다. 단지 빛이 필요한 이유를 증명할 뿐이다."
— 조로아스터교 격언 (Zoroastrian


Proverb)테헤란에서 남쪽으로 빠져나가는 길은 세 개였다. 고속도로(高速道路), 철로(鐵路), 그리고 사막 우회로(迂廻路). 고속도로는 이미 혁명수비대 검문소(檢問所)가 배치되었고,


기차역은 군중이 몰려 아수라장이었다. 강준혁이 선택한 것은 세 번째 길이었다.


사 년간 테헤란을 누비며 쌓아 온 인맥(人脈). 그중 하나가 아흐마드 카리미(Ahmad Karimi), 예순두 살의 베테랑 택시 기사였다.

이란-이라크 전쟁(Iran-Iraq War, 1980-1988) 때 살아남은 사람. 전쟁이 무엇인지, 그리고 전쟁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온몸으로 아는 사람이었다.


강준혁이 한국 특파원으로 처음 테헤란에 부임했을 때, 공항에서 그를 태운 기사가 바로 아흐마드였다.아흐마드의 낡은 페이칸(Paykan — 이란제 구형 자동차)이 어둠 속에서 도시 외곽의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뒤좌석에 강준혁과 윤서아가 탔다. 아흐마드는 백미러로 그들을 한번 훑어보더니 아무 말 없이 차를 몰았다. 이란의 오래된 지혜 중 하나 — 묻지 않는 것이 모두를 지키는 법.


차가 테헤란 남부 외곽을 벗어나 사막 지대로 접어들자, 강준혁은 처음으로 긴 숨을 내쉬었다.윤서아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이란의 밤하늘은 전쟁의 불꽃에도 불구하고 별이 가득했다. 수천 년 전, 자라투스트라(Zarathustra)가 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후라 마즈다의 빛을 느꼈을 것이다. 그 빛은 지금도 저기에 있었다.


인간의 전쟁 따위에는 무관심하게.강준혁이 낮게 물었다."페르세폴리스(Persepolis)를 경유하는 거, 알고 있죠?""알아요." 짧은 침묵. "사실 가고 싶었어요. 한 번은."


"연구 때문에요?""아니요." 그녀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차창에 스쳐 지나가는 별빛이 그녀의 눈 안에서 반짝였다.


"그냥 — 내가 왜 이 길을 걷고 있는지를 눈으로 보고 싶어서."강준혁은 그 말의 뜻을 금방 알아차렸다. 학자로서, 연구자로서, 진실을 찾는 사람으로서 — 그 모든 여정의 시작점에 페르세폴리스가 있다는 것을."그럼 잘됐네요."


"그럼 잘됐네요."새벽 두 시. 페르세폴리스 외곽.아흐마드가 차를 세웠다. 그는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했다. 반다르 아바스(Bandar Abbas) 방향으로 가는 내부 도로 두 곳에 혁명수비대 임시 검문소(臨時 檢問所)가 설치되었다는 정보를 방금 라디오로 들었다.


그는 강준혁의 손에 종이 한 장을 쥐어 주었다. 손으로 그린 지도. 페르세폴리스 유적 동쪽 언덕을 넘으면 나오는 소로(小路). 거기서 다섯 킬로미터를 걸으면 마르브다슈트(Marvdasht) 소도시 외곽이 나온다. 거기서 다시 다른 차를 구할 수 있다고 했다.


"살람(Salaam — 안녕히)." 아흐마드가 말했다.강준혁이 이란 리알화(Iranian Rial)를 건네자 그는 손을 저었다.


그리고 말했다."이란에는 나쁜 사람도 있지만, 좋은 사람도 많아요. 기사에 그거 꼭 써요."아흐마드의 페이칸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강준혁은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윤서아가 그의 옆에 섰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페르세폴리스의 실루엣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페르세폴리스의 폐허(廢墟)는 달빛 아래 은빛으로 빛났다. 기원전 518년 다리우스 대왕(Darius the Great)이 건설을 시작한 페르시아 제국의 심장. 아케메네스 왕조(Achaemenid Dynasty)의 위엄을 담은 거대한 기둥들이 하늘을 향해 서 있었다.


250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돌은 남아 있었다. 인간의 야망은 스러지고 전쟁도 지나가지만, 돌은 남았다.윤서아는 손전등 불빛으로 계단 난간의 부조(浮彫)를 비추었다. 파라바하르 — 날개를 펼친 원반(圓盤), 앞으로 뻗은 손, 그리고 두 갈래의 리본 꼬리. 선(善)과 악(惡)의 영원한 전쟁 속에서 인간이 선택해야 할 방향을 가리키는 상징. 그녀가 수년간 논문과 연구 노트 속에서만 만나왔던 것이 지금 눈앞에 있었다.


그녀가 부조 앞에 멈춰 섰다.강준혁이 그 옆에 섰다.오랜 침묵이 흘렀다. 테헤란에서 폭발음이, 탈출이, 쫓기는 발걸음이 이어지던 그 모든 긴박함이 이 순간만큼은 고요 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윤서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가 말했어요. 빛과 어둠은 영원히 싸우지만, 지혜로운 자는 빛을 향해 걷는다고.""지금 우리가 그러고 있잖아요."그녀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말했다.


"무서워요. 사실.""저도요.""강 기자님은 —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나요? 시리아도 다녀오셨다고 하던데.""익숙해지면 기자가 아니라 바보가 되는 거예요."윤서아가 웃었다.


처음이었다. 작고 조용한 웃음이었지만, 그 웃음은 2500년 된 돌기둥들 사이에서 무언가 살아 있는 것처럼 울렸다. 강준혁은 그 웃음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어떤 것들은 기록되는 순간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언덕을 넘기 시작했을 때, 뒤에서 헬기(Helicopter) 소리가 들렸다.군용 헬리콥터. 탐조등(探照燈)이 폐허 위를 훑고 있었다.


혁명수비대 야간 수색대(夜間搜索隊)."뛰어요." 강준혁이 말했다.두 사람은 달렸다. 돌 틈 사이로, 가시덤불을 헤치고, 경사진 모래 언덕을 구르듯이 내려가며. 탐조등이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윤서아가 돌에 걸려 넘어졌다. 강준혁이 즉각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 손을 그는 놓지 않았다.두 사람은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나중에 강준혁은 그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자신이 먼저 손을 잡은 것인지 그녀가 먼저 손을 뻗은 것인지 분간하지 못했다. 아마도 그것은 — 둘 다였을 것이다.마르브다슈트 외곽에서 그들은 작은 화물 트럭을 구했다. 운전사는 과일을 싣고 반다르 아바스(Bandar Abbas)로 가는 길이었다.


강준혁이 달러($)를 꺼내자 운전사는 두말없이 짐칸 뒤를 열었다. 복숭아와 석류(石榴) 상자들 사이에 끼어 앉아, 두 사람은 남쪽을 향해 이란을 가로질렀다.별빛도 없는 깊은 어둠 속에서, 트럭의 진동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윤서아가 먼저 침묵을 깼다."왜 이 일을 하는 거예요? 기자로서가 아니라 — 인간으로서요."강준혁은 어둠 속에서 잠시 생각했다."제가 스물세 살 때 예멘(Yemen)에서 찍은 사진이 있어요. 폭격 맞은 시장에서 아이 하나가 혼자 서 있는 사진이요.


그 사진이 한국 기자상(記者賞)을 받았어요. 근데 나는 그 아이의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어요.""그래서요?""그 이후로, 나는 이름을 물어보는 기자가 되려고 했어요."


윤서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그녀의 손이 아주 조금 강준혁의 손 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멈추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새벽 다섯 시. 트럭이 멈추었다.반다르 아바스(Bandar Abbas). 호르무즈 해협(Strait of Hormuz)이 코앞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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