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애와 민족의 단결
【 주제 : 동포애와 통일의 사명 】
절반의 가족
정희숙은 여든두 살이었다. 손녀 정수아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두 사람은 매주 화요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이산가족 지원센터에서 만났다.
희숙 할머니가 이름을 신청한 지 31년이었다. 이산가족 상봉. 그 이름 아래 줄을 선 사람이 수만 명이었고, 그 수만 명 중 대부분은 상봉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희숙 할머니에게는 오빠가 있었다. 정희철. 1950년 12월, 흥남 철수 때 인파에 떠밀려 배에 타지 못한 오빠. 열여섯 살이었다. "나 곧 따라갈게. 먼저 가."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그 후 일흔두 해가 흘렀다.
수아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수십 번 들었지만, 들을 때마다 처음처럼 아팠다. 수아는 통일부에서 일하는 공무원이었다. 서류 위에서 '남북 교류'와 '이산가족'을 다루는 사람. 그러나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그 서류들은 더 이상 서류가 아니었다.
오빠의 편지
어느 날 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비공식 경로로 북측에서 건너온 편지 한 통. 수신인은 '정희숙'. 발신인은 '정희철'. 수아가 할머니에게 전화했을 때 할머니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편지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희숙아. 오빠 살아 있다. 평양 근교에서 가족 이루고 살고 있다. 건강하다. 너는 건강하냐. 우리 엄마 아버지 산소는 있느냐. 나는 매일 남쪽 하늘을 보며 네 얼굴을 생각한다.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오빠가."
여든두 살의 여인이 스물다섯 살의 손녀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수아는 할머니를 안으며 느꼈다. 이 눈물 속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담겨 있는지를. 이 한 통의 편지가 얼마나 긴 강을 건너온 것인지를.
강을 건너지 못하는 봄
수아는 이산가족 상봉 추진을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그러나 남북 관계는 냉랭했다. 남쪽의 정치인들은 '원칙'을 말하고, 북쪽은 '조건'을 말했다. 그 원칙과 조건 사이에서, 여든두 살의 할머니의 시간은 계속 줄어들었다.
어느 날 밤, 수아는 희숙 할머니의 집에서 잠을 자다가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었다. 잠결인지 깨어있는 것인지 모를 목소리로, 할머니는 오빠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희철아, 희철아."
수아는 그 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조용히 울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이 일을 서류로 다루지 않겠다고. 이 일은 사람의 일이라고.
희숙 할머니는 그로부터 두 달 뒤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수아의 손을 잡고 말했다.
"수아야, 오빠한테 잘 있다고 전해줘. 나 행복하게 살았다고. 그리고… 우리 언젠가 다시 만나는 날이 꼭 오도록, 네가 힘써다오."
강은 하나다
희숙 할머니는 오빠를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수아는 할머니의 49재 날, 임진강 가에 서서 강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안개 낀 강물은 소리 없이 흘렀다. 철조망 위로 새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수아는 가방에서 편지를 꺼냈다. 자신이 쓴 편지였다.
"정희철 할아버지께. 저는 희숙 할머니의 손녀 정수아입니다.
할머니는 지난달 평화롭게 돌아가셨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할아버지를 그리워하셨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이 강을 건너는 날이 오기를 소망하셨습니다. 저는 그 소망을 이어가겠습니다."
편지를 강물에 접어 흘려보내며, 수아는 헌법 전문의 한 구절을 나직이 읊었다.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강은 하나였다. 언제나 하나였다.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두 강가의 사람들이 다시 만날 것이었다.
강은 하나다. 그 강을 건너는 날은, 반드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