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인의 기회가 균등한 나라
【 주제 : 기회의 균등과 능력의 최고 발휘 】
공장과 야학
오주현은 열여섯에 구로 공단의 봉제 공장에 들어갔다. 경북 안동에서 올라온 막내딸. 오빠 둘의 대학 등록금을 위해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다. 재봉틀 소리가 귀를 먹먹하게 하는 공장에서, 주현은 하루 열두 시간씩 일했다. 손끝은 늘 실밥에 긁혀 붉었다.
공장 언니 중 한 명이 야학을 알려주었다. "거기 가면 공짜로 가르쳐 준대. 중학교 과정도 있고 고등학교 과정도 있어." 주현은 퇴근 후 버스 두 번을 갈아타고 야학에 다니기 시작했다.
피곤해서 교실에서 졸다가 선생님에게 깨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배움은 달콤했다. 나라는 사람 안에 이런 것도 있었구나, 하는 발견의 기쁨.
야학 선생님 이상훈은 연세대 사학과 3학년이었다. 주현보다 세 살 많았다. 그는 노동자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이 자신이 이 나라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믿었다. 수업이 끝나면 라면을 끓여 학생들과 나누어 먹었다. 주현은 그 라면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다.
검정고시
주현은 3년 만에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고등학교 졸업 자격. 공장에서는 아무도 몰랐다. 혼자 화장실에서 합격증을 꺼내보며 울었다. 이건 내 것이다. 누가 가져갈 수 없는 내 것.
그 해 야학에서 새벽반 국어 강사 자리가 났다. 새벽 5시부터 7시, 출근 전의 노동자들을 위한 수업. 상훈 선생이 주현에게 부탁했다. "선배가 가르쳐줄 수 있잖아요." 주현은 처음에 거절했다.
"저 같은 게 어떻게요." 상훈은 웃었다. "그래서 더 잘 가르칠 수 있어요. 그 자리에 있어봤으니까."
주현은 가르치기 시작했다. 배우는 것보다 더 많이 배웠다. 가르치는 행위가 자신을 만들어간다는 것을. 학생들의 눈빛이 자신을 성장시킨다는 것을.
더 큰 불평등 앞에서
1980년대 초반, 노동운동이 거세졌다. 최저임금, 노동시간, 여성 노동자 차별. 주현은 어느새 현장의 목소리를 모으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공장주는 야학을 '불순분자 소굴'이라며 강제로 문을 닫았다. 상훈 선생은 구속되었다.
주현은 그 날 밤, 상훈이 야학에서 썼던 칠판 글씨를 떠올렸다.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그것은 헌법의 문장이었다. 이 나라가 스스로 약속한 말.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그 약속은 어디에 있는가.
주현은 야학 문 앞에서 혼자 아침이 올 때까지 앉아 있었다. 문은 잠겨 있었다. 하지만 배움은 잠글 수 없었다. 사람의 머릿속까지 잠글 수는 없었다.
나는 이 나라를 믿는다
세월이 흘렀다. 주현은 지역 사회교육원의 원장이 되었다. 상훈은 출소 후 대학원을 마치고 대학 교수가 되었다. 두 사람은 그 사이 결혼했고, 두 아이를 키웠다. 아이들에게 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을 주었다. 배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원장실 벽에는 낡은 검정고시 합격증이 액자에 걸려 있었다. 오주현, 1979년. 학생들이 물으면 주현은 이렇게 대답했다.
"저 때 배운 헌법 한 구절이 있어요.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그 말이 현실이 안 될 때, 우리가 싸워야 해요. 그 말이 현실이 되도록. 왜냐하면 그건 이 나라가 우리한테 한 약속이거든요."
기회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기회는 쟁취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쟁취한 기회는, 반드시 다음 사람에게 흘려보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