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평화와 인류공영, 그리고 미래
우리들의 자손에게
【 주제 : 세계 속의 대한민국과 후세에 대한 책임 】
세계라는 교실
한서연은 외교부 다자외교국 소속 3등 서기관이었다. 서른두 살. 부산 출신, 전 장학생. 그녀의 외할머니는 제1부의 박순례처럼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였고, 어머니는 제4부의 오주현처럼 야학에서 공부한 세대였다.
서연은 그 두 여자의 이야기를 먹고 자랐다. 공부해라, 세상으로 나가라, 이 나라의 빛이 되어라.
서연은 지금 뉴욕 UN본부에 있었다.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교체 협상.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기후 협약 협상. 개발도상국 교육 지원 협력. 그녀의 책상 위에는 항상 파일이 산더미였다.
밤을 새우는 것은 일상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지치지 않았다. 이 일이 왜 해야 하는 일인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동료 외교관 제임스 박(재미 교포 2세)이 물었다. "서연 씨는 왜 이 일을 해요? 민간 기업 가면 세 배는 더 받을 텐데." 서연은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우리 외할머니가 해방 직후 폐허 위에서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쳤어요. 우리 엄마는 야학에서 검정고시 보고 지금 교사예요. 저는 그 다음 차례인 것 같아서요."
연설의 밤
북한 핵 문제로 유엔 안보리가 긴급 소집된 날 밤, 한국 대표부 대사가 급성 맹장염으로 수술실에 들어갔다. 서연이 그 자리를 대신해야 했다. 삼십 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서연은 떨렸다. 회의장은 세계였다. 미국 대표, 중국 대표, 러시아 대표, 영국 대표, 프랑스 대표, 그리고 수십 개국의 눈이 자신에게 향했다. 서연은 잠시 눈을 감았다. 외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건 우리 이야기야. 너희 할아버지의 이야기, 너희 아버지의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 너희들이 써내려갈 이야기.'
서연이 입을 열었다.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에서 일어난 나라입니다. 우리는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 헌법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하겠다고. 이것은 수사(修辭)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온 방식이며, 앞으로도 살아갈 방식입니다."
회의장이 조용해졌다. 한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류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느꼈다.
협상 테이블의 균열
연설 이후, 몇몇 이사국이 서연에게 접근했다. 찬사와 함께, 요구가 왔다. "귀국의 입장을 조금 수정해 준다면…" "이번 안건에서 기권해 준다면…" 외교는 때로 그런 것이었다. 원칙과 실리 사이의 외줄타기.
서연은 밤새 고민했다. 원칙을 꺾으면 단기적으로 얻는 것이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외할머니의 이야기가, 어머니의 이야기가, 수백만 명의 이야기가 쌓아온 이 나라의 신뢰를 파는 것이었다.
아침이 되었을 때, 서연은 결론을 내렸다. 원칙을 지키겠다고.
한국전쟁 때 이 나라를 도운 16개국은 원칙 때문에 왔다. 이 나라가 원조를 받을 때 원칙이 있었다. 지금 도움을 줄 때도 원칙이 있어야 한다.
창밖으로 뉴욕의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허드슨 강이 은빛으로 빛났다. 서연은 그 강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 강도 결국 바다로 간다. 임진강도, 한강도, 낙동강도. 모든 강은 결국 하나의 바다로 간다.
원칙이란 그런 것이다. 구불구불 돌아가더라도, 결국 가야 할 곳으로 간다.
우리들의 자손에게
협상은 어렵게 마무리되었다. 완전한 승리도 아니었고 완전한 패배도 아니었다. 그러나 한국은 신뢰를 잃지 않았다. 여러 개발도상국 대표들이 서연에게 조용히 악수를 청했다. "당신 나라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희망입니다."
서연은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노트를 꺼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신의 아이에게 쓰는 편지였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오래 전부터 이 편지를 마음속에 써왔다.
"얘야, 네가 태어날 나라는 오래된 나라야. 수천 년의 역사가 있고,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땀이 있어. 그 사람들이 너에게 물려준 것이 있어. 아름다운 땅도, 훌륭한 문화도. 하지만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 이 문장이야."
서연은 펜을 들어 또렷하게 썼다.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이건 약속이야. 과거 사람들이 너에게 한 약속. 그리고 지금 내가 너에게 하는 약속. 그리고 언젠가 네가 너의 자녀에게 할 약속. 이 약속의 사슬이 끊어지지 않는 한, 이 나라는 살아있을 거야."
비행기가 구름을 뚫고 내려왔다.
창밖으로 반도의 윤곽이 보였다. 산줄기와 강줄기, 들녘과 도시. 저 아래 어딘가에 외할머니의 무덤이 있고, 어머니의 교실이 있고,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있었다.
서연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러나 울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중얼거렸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이 문장은 끝나지 않았다. 매일 새로 쓰이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교실에서, 누군가의 광장에서, 누군가의 협상 테이블에서, 누군가의 손에 들린 태극기에서.
대한의 빛은, 꺼지지 않았다.
에필로그 — 헌법은 살아있다
다섯 개의 이야기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
1948년 7월 12일, 제헌헌법이 공포되던 날 누군가는 환호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 눈물의 의미는 세대를 거쳐 다른 형태로 계속 흘렀다.
박순례는 그 문장을 교실에서 읽었다. 김재호는 광장에서 몸으로 새겼다. 정수아는 강가에서 눈물로 외웠다. 오주현은 야학 칠판에서 손으로 썼다. 한서연은 세계 앞에서 목소리로 선언했다.
헌법은 법전 안에만 있지 않다. 헌법은 이 나라 사람들의 삶 속에, 그 선택 속에, 그 눈물 속에, 그 용기 속에 있다.
우리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더 평등한 나라, 더 자유로운 나라, 더 평화로운 나라를 향해 여전히 걸어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역사가 함께 걷고 있다. 수많은 이름이, 수많은 희생이, 수많은 사랑이 우리의 등을 밀고 있다.
자손들이여, 이 길을 이어가라.
이 약속을 잊지 마라.
대한민국은 너희들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