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의 봄
한 표(票)의 무게, 한 사람의 나라
주인공 : 윤서진(尹瑞鎭) — 1948년생, 제헌국회 서기 출신의 노(老)교사
배경 : 1948년 제헌의회 ~ 현재, 서울과 지방 소읍(小邑)
한 장의 종이
1948년 7월 17일, 서울 중구 태평로.
윤서진은 열다섯 살이었다. 아버지 윤병호가 제헌국회 서기로 일하는 덕에, 그는 그 날 오전 회의장 복도 끝에 서서 역사가 만들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수십 명의 의원들이 한목소리로 낭독하는 헌법 전문이 복도를 타고 흘러들었다.
소년은 그 소리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다는 것만은 알았다.
"아버지, 왜 우세요?"
병호는 아들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서진아. 오늘 이 나라의 이름이 완전해졌단다. 대한민국. 민주공화국. 모든 사람이 주인인 나라. 네 할아버지는 이 말 한 마디 듣지 못하고 돌아가셨어."
소년은 그 말의 뜻을 반쯤만 이해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떨리는 목소리와, 복도 끝에서 흘러오는 낭독 소리가 뒤섞여 가슴 어딘가에 새겨졌다. 그것은 글자가 아니었다. 온도였다. 살아있는 것의 온도.
그 날 저녁, 병호는 집에 돌아와 식탁 위에 신문지 한 장을 펼쳤다. 국한문 혼용체로 인쇄된 헌법 제1조였다.
'大韓民國은 民主共和國이다.'
"읽어봐라."
서진이 또박또박 읽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다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이 말이 뭔 뜻인지 알겠냐?"
서진은 고개를 저었다. 병호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나라의 주인이 왕이 아니라, 너라는 뜻이야. 너 같은 사람이 주인인 나라. 그러니까 너도 이 나라를 함부로 대하면 안 되고, 이 나라도 너를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는 뜻이야. 그게 공화국이야."
소년 윤서진은 그 문장을 평생 가지고 살았다.
공화국이 흔들리다
세월은 흘렀고, 공화국은 여러 번 흔들렸다.
1960년, 3·15 부정선거. 서진은 열두 해 전 아버지가 눈물 흘리며 새겨주었던 그 문장을 떠올리며 거리로 나갔다. 서울 종로의 인도 위에서 그는 보았다.
대학생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외쳤다. "민주주의를 돌려달라!" 그 목소리 속에 아버지의 목소리가 겹쳐 들렸다. 나라의 주인이 너라는 뜻이야.
그 봄, 이승만이 하야했다. 서진은 그 소식을 라디오로 들으며 울었다. 슬픔이 아니었다. 이 나라가 아직 살아있다는 안도였다. 민주공화국은 종이 위의 글자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내야 하는 무엇이었다.
1972년, 유신헌법. 서진은 이제 서른이 넘은 교사였다. 전남 영광의 작은 중학교 사회 교사. 교실에서 헌법을 가르치다 멈추는 날이 생겼다.
제1조를 읽다가 목이 막혔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는 정말 그러한가. 한 사람의 뜻이 수천만의 뜻을 덮고 있는 나라가 공화국인가.
그는 칠판에 그 문장을 썼다. 지우지 않았다. 학생들이 물었다.
"선생님, 이게 지금도 맞아요?"
서진은 잠시 창밖을 바라보다 말했다.
"맞지 않을 때가 있어. 그럴 때 우리가 맞게 만드는 거야. 그게 공화국에 사는 사람의 책임이야."
그 한 마디가 교실 밖으로 나가 어디까지 갔는지, 그는 알지 못했다. 다만 그 해 졸업한 아이들 중 몇몇이 훗날 광주에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가장 긴 밤
1980년 5월, 광주.
서진은 그 달 초 마지막 휴가를 내고 광주에 있는 처남을 만나러 갔다가 도시 전체가 봉쇄되는 것을 목격했다. 계엄군의 진압봉 소리, 총성, 그리고 침묵. 그 침묵이 모든 소음보다 더 무서웠다.
이 나라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폭력이 아니었다. 폭력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침묵이었다.
도청 앞에서 그는 스물둘의 청년을 만났다. 이름을 묻지 못했다. 그 청년은 서진의 손을 잡고 말했다.
"선생님, 우리가 틀렸습니까?"
서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눈물만 흘렸다. 그것이 대답이었다.
봉쇄가 풀리고 서진이 영광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밥을 먹다 멈추고, 수업을 하다 멈추고, 헌법 교과서를 펼치다 덮었다.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 문장이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날들이 있었다.
아내 최정임이 밤에 그의 손을 잡았다.
"여보, 포기하면 안 돼요. 당신이 아이들한테 가르치는 그 문장이 거짓이 되지 않으려면, 당신 같은 사람이 계속 살아있어야 해요."
서진은 오래 울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다시 교실로 갔다. 칠판에 다시 썼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손이 떨렸다. 그러나 지우지 않았다.
1987년, 6월 항쟁. 서진은 학생들과 함께 거리에 섰다. 그가 스물둘에 가르쳤던 아이들이 이제 서른이 되어 아이들을 낳고 살고 있었다.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옆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있었다. 민주공화국이라는 말이, 세대를 건너 이렇게 전해지고 있었다.
그 해 여름, 대통령 직선제가 선언되었다. 서진은 이십칠 년 전 아버지의 눈물을 처음으로 완전히 이해했다.
한 표의 무게
2024년 봄, 전남 영광군의 한 투표소.
윤서진은 일흔여섯 살이었다. 허리가 굽고 걸음이 느렸지만, 그는 지팡이를 짚고 혼자 투표소까지 걸어왔다. 복지관 차를 타면 편했지만, 이 길만큼은 걸어서 오고 싶었다. 예순 해 넘게 그래왔듯이.
투표 용지를 받아 든 순간, 손이 떨렸다. 노환 때문만은 아니었다.
기표소 안에 혼자 섰다. 작은 공간. 파란 커튼. 그리고 용지 한 장. 서진은 잠시 눈을 감았다. 1948년의 복도가 보였다. 아버지의 눈물이 보였다. 1960년의 거리가 보였다. 1980년의 청년이 보였다. 1987년의 여름이 보였다.
그 모든 것이 이 한 장의 종이로 흘러와 있었다.
그는 도장을 찍었다. 또렷하게, 힘을 주어.
투표소를 나오며 서진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영광의 봄 하늘. 담담하고 맑았다.
누가 당선되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두 번째 문제였다. 첫 번째는, 이 나라의 주인이 오늘도 자신의 자리에 섰다는 것.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는 중학교 앞을 지났다. 삼십 년 전 자신이 가르치던 학교. 담장에 낡은 현판이 붙어 있었다. '민주시민의 요람.'
서진은 멈추어 그 현판을 바라보다, 나직이 중얼거렸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처음 아버지에게 배운 그 문장을. 평생 칠판에 썼던 그 문장을. 손이 떨리고 목소리가 가늘어진 지금도, 그 문장만큼은 또렷했다.
그것은 그의 신앙이었다. 그의 역사였다. 그리고 그가 다음 세대에 남기는, 가장 소중한 유산이었다.
공화국은 오늘도 살아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것을 살아있게 하는 한.
에필로그
민주공화국이란 완성된 것이 아니다.
매일 아침 깨어나는 사람들이 선택하고, 목소리를 내고, 투표하고, 거리에 서고, 교실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그 모든 행위 속에서 날마다 새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윤서진이 죽던 날, 그의 책상 서랍에서 낡은 신문지 한 조각이 나왔다. 1948년 7월 17일자. 거기에는 색이 바랜 인쇄 활자가 남아 있었다.
'大韓民國은 民主共和國이다.'
그 옆에, 연필로 작게 쓴 글씨가 있었다. 아버지 윤병호의 필체였다.
'서진아, 이 말이 언제나 참이 되도록. 네가 살아라.'
그는 그 말대로 살았다.
공화국은 그렇게 사람에서 사람으로, 아버지에서 아들로, 교사에서 학생으로, 한 표에서 다음 한 표로 이어진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