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에 항거하는 자들의 노래
광장의 봄
【 주제 : 민주이념과 정의 】
봄은 오지 않았다
1960년 3월, 서울대학교 법학과 2학년 김재호는 도서관 창가에서 신문을 읽다 손이 떨렸다. 3·15 정·부통령 선거. 투표함 바꿔치기, 유권자 협박, 야당 참관인 강제 퇴장. 신문은 '대통령 이승만·부통령 이기붕 당선 확정'이라는 활자로 가득했다.
재호의 룸메이트 최동현이 신문을 빼앗아 구겨버렸다. "이게 나라야? 짐승의 세계지." 동현은 전남 목포 출신으로, 어릴 적 한국전쟁 때 아버지를 잃은 사람이었다. 그는 늘 말했다. "내 아버지는 이 나라가 사람 사는 곳이 되길 바라며 죽었어. 근데 보라고, 이게 뭐야."
마산에서 시위 도중 실종된 고등학생 김주열의 시신이 4월 11일,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로 마산 앞바다에 떠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재호는 그 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열일곱 살 아이가, 이 나라의 봄을 요구하다 죽었다.
광장으로
4월 19일 새벽, 재호와 동현은 교정에 모인 학생들 앞에 섰다. 수백 명이 모였다가 천 명이 되고, 거리로 나서자 만 명이 되었다. 경무대(지금의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는 발걸음들. 재호는 두려웠다.
하지만 옆에서 함께 걷는 사람들의 어깨가 자신의 떨림을 잡아주었다.
"쏴라!" 경찰의 총성이 울렸다. 사람들이 쓰러졌다. 동현이 재호의 팔을 잡아끌었다. 도망치는 사람들, 울부짖는 사람들 사이로, 한 여학생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재호는 멈췄다.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여학생의 손을 잡았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 날 하루, 서울에서만 186명이 죽었다. 전국에서 수천 명이 부상당했다. 그러나 그 피가 광장을 적시던 날, 역사가 바뀌기 시작했다.
이기붕의 몰락, 그리고 남은 것
4월 26일, 이승만이 하야를 선언했다. 라디오에서 그 소식이 흘러나오자 거리의 사람들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재호도 울었다. 기쁨이 아니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다. 너무 많은 피가 광장에 스며들었다. 이 눈물은 승리의 눈물이 아니었다. 부채의 눈물이었다. 죽은 자들에게 진 빚.
동현은 이후 민주당 정부 시절 내내 활동가로 살았다. 재호는 법학 공부를 마치고 판사가 되었다. 두 사람은 길이 달라졌지만, 4월 19일의 기억은 각자의 삶에서 나침반이 되었다.
재호가 판사복을 입은 첫날, 그는 법전 첫 장을 폈다. 헌법 전문.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그는 그 문장 앞에 잠시 멈추었다. 이 글자들의 무게를. 이것이 피로 쓰인 문장임을.
광장은 살아 있다
수십 년이 흐른 뒤, 노(老) 판사 김재호는 퇴직 기념식에서 짧은 연설을 했다.
"저는 평생 헌법을 가슴에 품고 살았습니다. 헌법은 종이 위의 글자가 아닙니다. 그것은 광장에서 쓰러진 사람들의 이름입니다. 그들이 외쳤던 한 마디 한 마디입니다. 우리가 불의 앞에 눈 감을 때마다, 광장은 비어갑니다. 우리가 용기를 낼 때마다, 광장은 다시 차오릅니다."
청중 속에 그의 손녀가 앉아 있었다. 스무 살, 대학교 1학년. 그녀는 그 날 집에 돌아가서 헌법 전문을 처음으로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광장은, 그렇게 시간을 건너 살아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