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國籍)이라는 이름의 집

— 헌법 제2조, 국민의 요건과 재외국민 보호 의무에 바치는 소설 —

by 이 범


주인공 : 박도연(朴道然) — 1971년생, 재일교포 3세. 오사카 이카이노(猪飼野) 출신
배경 : 1971년 오사카 ~ 2024년 서울·로스앤젤레스
주제 : 국적은 종이가 아니다. 누군가 지켜주기로 약속한 이름이다


이름 없는 사람들의 골목


오사카 이카이노. 일본 사람들이 '조선인 부락'이라 부르는 그 골목에, 박도연은 1971년 봄에 태어났다.
골목은 냄새로 이루어져 있었다.


김치 익는 냄새, 된장 끓는 냄새, 비 온 뒤 좁은 흙길에서 피어오르는 쇳내. 도연의 할머니 박점순은 1945년 해방 이후에도 일본에 남은 사람이었다.


돌아갈 고향이 함경도였는데, 38선이 그어지면서 그 고향이 가갈 수 없는 땅이 되어버렸다. 할머니는 이카이노의 작은 방에 눌러앉아, 가끔씩 북쪽 하늘을 바라보며 혼자 울었다.


도연의 아버지 박성진은 재일교포 2세였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일본 학교를 다니고, 일본어로 꿈을 꾸었지만, 외국인등록증을 평생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하는 사람이었다.


직장을 구할 때마다 면접관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름이 '박성진'이기 때문에. 이름을 '하라다 세이지'로 바꾸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성진은 끝까지 바꾸지 않았다. 그것이 그가 가진 마지막 조선이었다.


도연은 그 사이에서 자랐다. 할머니의 함경도 사투리와 아버지의 오사카 사투리 사이에서. 김치와 라면 사이에서. '조선진'과 '가이코쿠진(외국인)' 사이에서. 학교에서는 '박도연'이 아니라 '하라다 미치코'라는 일본 이름으로 불렸다.


선생님이 편하게 부르기 위해지어 준 이름이었다. 도연은 그 이름이 싫었다. 그러나 싫다고 말할 수 없었다.
어느 날 할머니가 낡은 나무 상자를 꺼냈다. 안에는 작고 낡은 서류 뭉치가 들어 있었다.


"이게 뭐예요, 할머니?"
할머니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대한민국 국적이야. 니 아버지 것, 니 것. 이게 있어야 우리가 대한민국 사람이야."
도연은 그 종이를 처음으로 보았다. 대한민국. 자신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


그런데 그 나라의 국적이 자신에게 있다고 했다. 도연은 종이를 손에 쥐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나라가 종이처럼 얇았다. 그러나 할머니의 눈빛은, 이 종이를 세상 어떤 것보다 무겁게 여기고 있었다.
"할머니, 대한민국이 우리나라예요?"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우린 거기 사람이야. 거기 못 살아도, 거기 사람이야."
도연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살지도 않는 나라가 어떻게 자기 나라가 될 수 있는 것인지.


그러나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흔들리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도연은 그날 밤, 이불속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말을 소리 없이 여러 번 중얼거렸다. 낯선 이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따뜻했다.


이름을 되찾는 일
1992년 봄, 도연은 스물하나였다.
오사카 외국어대학 한국어과를 다니고 있었다. 아버지는 '왜 하필 한국어냐'라고 했고, 어머니(일본인이었다)는 '네 자유야'라고 했다.

도연은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할머니의 상자 안에 있던 종이, 그리고 '거기 못 살아도 거기 사람이야'라는 목소리가 계속 귀 안에 맴돌았다.
한국어 수업 첫날, 교수가 물었다.


"한국어를 배우려는 이유가 있는 학생은 말해보세요."
도연은 손을 들었다. 일본인 학생들 사이에서 홀로.
"저는 재일교포 3세입니다. 제 이름은 박도연입니다. 제 나라 말을 배우고 싶습니다."
교실이 잠시 조용해졌다. 교수가 미소를 지었다.


"가장 정직한 이유네요."
도연은 그 말에 눈물이 날 뻔했다. 이유가 정직하다는 말을 처음 들어보았다. 평생 자신의 이유가 어색하거나 부끄럽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었는데.


한국어를 배우면서 도연은 이상한 경험을 했다. 단어를 외울 때마다 할머니의 말투가 겹쳐 들렸다. 할머니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함경도 사투리가, 교과서의 표준어와 다르면서도 뿌리가 같았다.


언어는 기억이었다. 할머니의 몸에 새겨진 기억이, 도연의 혀에 조금씩 깃들었다.


그 해 여름, 도연은 처음으로 서울에 갔다. 할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도연은 혼자 인천공항(그때는 김포공항이었다)에서 입국 심사대 앞에 섰다. 일본 여권을 내밀었다. 심사관이 보았다. 도연의 이름. 한국 이름.


"재외국민이시네요."
"네."
"처음 오세요?"
"네."
심사관이 도장을 찍으며 말했다. 별것 아닌 말투로, 그러나 도연은 그 말을 평생 기억했다.


"어서 오세요."
어서 오세요. 도연은 게이트를 통과하며 눈물을 삼켰다.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나라인데, 이 나라 사람이 '어서 오세요'라고 말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마치 당신이 여기 속한다는 것처럼.



그것이 무엇인지 도연은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국적이라는 것.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국민이 되는 요건. 그것은 단순한 서류가 아니었다. 어디에 있든, 어느 나라 땅을 밟고 살든, 이 나라가 당신을 자기 사람으로 여긴다는 선언이었다.


할머니가 그 얇은 종이를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처럼 지켜온 이유가, 서울 하늘 아래에서 비로소 이해되었다.


도연은 서울 거리를 걸으며 간판을 읽었다. 한글로 된 간판. 교과서에서 배웠지만 살아있는 거리에서 보는 한글은 달랐다. 도연의 눈이 빠르게 읽혀나갔다. 내 언어다. 서툴지만, 내 언어다. 할머니의 언어다.


아버지가 끝까지 버리지 않은 이름의 언어다.


국가가 외면할 때
2007년 겨울, 로스앤젤레스.
도연은 서른여섯 살이 되어 미국에 있었다. 한국계 국제 NGO에서 일하고 있었다.


재외동포 법률 지원 업무. 전 세계에 흩어진 한국 국적자, 또는 한국계 이민자들이 현지에서 법적 곤란에 처했을 때 연결고리가 되어주는 일이었다.


그 해 겨울, 도연의 사무실에 한 여자가 찾아왔다. 이름은 김수진. 1969년 파독 광부 아내로 독일에 건너갔다가, 남편이 죽고 홀로 독일에 남아 살다가, 독일 시민권을 취득하면서 한국 국적을 상실한 경우였다.


그런데 독일에서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고, 의지할 곳 없이 LA에 사는 딸을 찾아왔다가,

딸마저 교통사고로 먼저 떠나버린 상황이었다.


무국적자에 가까운 상태. 독일 시민권은 있지만 독일로 돌아갈 형편이 안 되고, 한국 국적은 없고, 미국에서는 체류 자격이 불안정했다.


수진은 울지도 않았다. 울 힘도 없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저 어떻게 해야 해요?"
도연은 파일을 뒤적이며 경우의 수를 따졌다.


재외국민보호. 헌법 제2조 제2항.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

그러나 수진은 이미 국적을 상실한 상태였다.


법이 정한 요건에서 한 발 비켜서 있었다. 영사관에서는 국적이 없으면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도연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속에서 무언가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잠깐요. 그 말 그대로 받아들이시면 안 돼요."
도연은 밤새 법 조항을 뒤졌다. 재외동포법. 국적법. 헌법 해석례. 법이 정한 요건이 때로 사람의 삶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을 도연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할머니가 그랬다. 아버지가 그랬다. 자신이 그랬다. 법이 사람을 포함하지 못할 때, 그 법의 정신으로 다시 싸워야 했다.


도연은 서울 본부에 공문을 보냈다. 외교부에 민원을 넣었다. 인도주의적 보호 조치를 요청했다. 거절당했다. 다시 넣었다. 또 거절당했다. 세 번째 민원서에 도연은 헌법 조문을 직접 인용했다.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 이 조항의 정신은 법률의 형식적 요건 충족 여부와 무관하게, 이 나라와 연결된 사람들을 국가가 방치하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김수진 씨는 이 나라 사람의 아내였고, 이 나라의 산업화를 위해 독일 탄광으로 갔습니다. 국가가 그분을 부른 것입니다.


이제 국가가 외면하는 것은 헌법 정신의 위반입니다.'
반응이 왔다. 느리고, 관료적이고, 불완전했지만, 왔다. 임시 체류 연장, 영사 면담, 귀국 지원 프로그램 연결. 수진은 이듬해 봄 인천공항에 내렸다. 서른여덟 해 만에.
공항에서 수진이 도연에게 전화했다.


"저 왔어요. 한국 왔어요."
수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도연은 LA 사무실에서 수화기를 잡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흘러 귀밑으로 번졌다.


"어서 오세요."
도연은 그 말을 썼다. 십오 년 전 김포공항 심사관이 자신에게 했던 그 말을.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수진은 그 뒤였다. 그리고 수진 뒤에는 또 다른 수진이 있었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중국의 조선족, 러시아의 사할린 동포. 법의 울타리 안에 겨우 걸쳐 있는 사람들, 또는 그 울타리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 도연은 파일을 쌓으며 느꼈다.


헌법이 약속한 것과 법률이 작동하는 것 사이에, 사람들이 추락하고 있었다.


어느 밤, 도연은 혼자 사무실에 앉아 오사카 이카이노의 골목을 떠올렸다. 할머니의 낡은 상자. 그 안의 종이.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국민이 되는 요건은 법률로 정한다.


그 법률은 누가 만드는가. 국민이다. 그러면 국민은 어떤 법률을 만들어야 하는가. 수진 같은 사람을 방치하지 않는 법률. 세계 어디에 있든, 이 나라와 연결된 사람을 이 나라가 기억하는 법률.


도연은 공책을 꺼내 쓰기 시작했다. 그것은 보고서가 아니었다. 법안 초안이었다. 재외동포기본법. 그녀가 십 년 뒤 한국 국회에 제출하게 될 법안의 첫 줄이었다.


집이라는 것
2024년 서울 여의도.
박도연은 쉰세 살이었다. 재외동포청 정책자문위원. 머리에 흰 것이 섞였고 눈가에 주름이 깊었다. 그러나 목소리는 오십 년 전 오사카 골목의 소녀처럼 또렷했다.


국회 청문회장. 재외동포기본법 개정안 심의. 도연은 증인석에 앉아 의원들의 질문을 들었다. 어떤 의원은 찬성했고, 어떤 의원은 반대했다. 예산 문제. 형평성 문제. 행정력 문제. 도연은 그 모든 질문에 차근차근 답했다.


마지막으로 한 의원이 물었다.
"박 위원님은 재일교포 3세로 태어나셨는데, 개인적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느끼십니까? 객관적으로 볼 수 있습니까?"
도연은 잠시 마이크 앞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말했다.


"의원님, 저는 오사카에서 태어났습니다. 일본 이름으로 학교를 다녔습니다. 한국에는 스물한 살에 처음 왔고, 지금도 일본 여권과 한국 여권을 함께 갖고 있습니다. 그런 저에게 이 나라는 국적증에 적힌 이름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서울 입국심사대에서 심사관이 '어서 오세요'라고 했습니다. 그 한 마디가 저를 이 자리까지 데려왔습니다. 객관적이냐고 물으셨는데, 저는 주관적입니다. 그리고 그 주관이 가장 정확한 데이터라고 생각합니다."



청문회장이 잠시 조용해졌다. 누군가가 박수를 쳤다. 처음에는 한 명, 그다음에는 여러 명.
청문회가 끝나고 도연은 여의도 강변을 걸었다. 한강이 보였다. 서울의 봄 강물. 오사카의 도톤보리가 생각났다.


할머니가 우시던 이카이노의 좁은 골목. 아버지가 끝내 바꾸지 않았던 이름. 서울 심사관의 '어서 오세요'. 수진의 떨리는 목소리. 자신이 밤새 쓴 법안 초안의 첫 줄.
도연은 강물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집이란 무엇인가.
태어난 곳이 집이라면, 자신의 집은 오사카다. 살고 있는 곳이 집이라면, 지금은 서울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함경도를 집이라 했다.


아버지는 조선이라는 이름을 집이라 했다. 그리고 헌법은 이렇게 썼다. 국민이 되는 요건은 법률로 정한다. 국가는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


그 문장들이 말하는 것은 하나였다. 이 나라는 당신이 어디에 있든 당신을 기억하겠다는 것. 법률이 정한 요건 안에 당신이 있는 한,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 그것이 집이었다. 벽과 지붕으로 만든 집이 아니라, 이름으로 만든 집. 약속으로 만든 집.


도연은 핸드백에서 작은 수첩을 꺼냈다. 오래된 것이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날 때 물려받은 것. 할머니 박점순의 수첩이었다. 첫 장에 이렇게 씌어 있었다. 함경도 사투리로, 삐뚤게.
내래 대한민국 사람이오. 거기 못 살아도, 거기 사람이오.


도연은 그 글자를 손으로 덮었다. 손바닥 아래에서 할머니의 글씨가 따뜻했다. 살아있는 것처럼.
그녀는 수첩을 덮고 강을 바라보았다. 한강은 넓고 조용하게 흘렀다.


저 물이 서해로 가고, 서해가 동중국해로 이어지고, 태평양이 되고, 오사카만에 닿는다. 물은 하나였다. 국적이라는 것도, 결국 그런 것인지 몰랐다. 나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이어져 있는.
도연은 돌아섰다.


국회 쪽으로.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법안은 아직 통과되지 않았다. 수진 같은 사람들이 아직 법의 울타리 밖에 있었다. 할머니의 상자 안에 담긴 것 같은 종이를 아직 갖지 못한 사람들이 세계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도연은 걸음을 빠르게 했다. 오십 세 살의 몸으로, 스물한 살의 속도로.
국가가 약속한 것이 있다. 그 약속이 지켜지는 날까지, 이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에필로그
재외동포기본법 개정안은 그 해 가을 국회를 통과했다.
법안의 제1조에는 이렇게 명시되었다.
'대한민국은 재외동포가 어느 나라에 거주하든, 대한민국과의 연결을 이유로 차별받거나 방치되지 않도록 보호할 책임을 진다. 이는 헌법 제2조 제2항의 정신에 따른다.'


도연은 법안이 통과된 날 밤, 오사카에 전화했다. 이카이노에서 여전히 살고 있는 사촌 언니 박미자에게.
"언니, 법 통과됐어."
미자는 잠시 침묵했다가 물었다.


"그래서 이제 우리 뭐가 달라져?"
도연은 생각했다. 달라지는 것과 달라지지 않는 것. 아직 이카이노의 골목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아직 세계 어딘가에 수진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당장 뭔가 확 달라지진 않아. 근데 언니, 이제 이 나라가 공식적으로 언니를 기억하기로 한 거야. 어디에 있든. 그게 달라진 거야."
미자가 웃었다. 울음이 섞인 웃음이었다.


"할매가 들으면 좋아하겠다."
"그러게."
전화를 끊고 도연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서울의 밤하늘. 별이 보이지 않을 만큼 환한 도시의 불빛. 그러나 도연은 알았다. 저 불빛 너머에도 별이 있다는 것을. 오사카에서도, 로스앤젤레스에서도, 카자흐스탄에서도, 브라질에서도, 같은 하늘 아래 한국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국가는 그 별들을 기억하기로 했다.


그것이 헌법이 말하는 것이었다. 법률로 정한 요건 안에서, 국가는 당신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 그 의무는 의무를 이행하는 사람들의 손으로 완성된다. 박도연 같은 사람들의 손으로.


할머니 박점순의 낡은 수첩은 지금 서울 도연의 책상 서랍 안에 있다. 삐뚤게 쓰인 글자들이 아직 선명하다.
내래 대한민국 사람이오. 거기 못 살아도, 거기 사람이오.


그 글자들 아래, 도연이 또렷하게 덧붙였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당신을 기억합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는 요건은 법률로 정한다.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
— 헌법 제2조 —




이 소설은 세계 곳곳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모든 재외동포들에게 바칩니다. 한 번도 고국 땅을 밟지 못했지만 끝까지 그 이름을 놓지 않은 분들께, 그리고 그분들을 지키기 위해 싸운 모든 이름 없는 사람들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