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주인공 : 이강호(李江湖) — 1955년생, 경북 울릉도 출신 해양지질학자
배경 : 1955년 울릉도 ~ 2024년 독도·서울·평양 접경
주제 : 땅은 지도 위의 선이 아니다. 그 땅에서 태어나고 살고 죽은 사람들의 이름이다
돌과 파도와 이름
1955년 봄, 경북 울릉도 도동항.
이강호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태어났다. 어머니 박명순의 말에 따르면, 그가 태어나던 날 밤 울릉도 바다에 유난히 거센 파도가 쳤다고 했다.8
산파가 아이를 받아 들고 말했다. "이 아이는 바다 사람이겠네." 어머니는 웃었다. 울릉도에서 태어난 사람은 다 바다 사람이었다.
강호의 아버지 이봉출은 울릉도에서 오징어잡이를 했다. 매일 새벽 배를 몰고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왔다. 가끔은 독도 쪽으로 더 멀리 나가기도 했다.
독도. 강호는 그 이름을 아버지한테서 처음 들었다. 섬 이름이라기보다 방향의 이름처럼 들렸다. "독도 쪽 물살이 좋아."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독도는 그에게 어떤 이념도 아니었다.
물살이 좋고, 오징어가 잘 잡히고, 파도가 높은, 그냥 바다 위의 돌이었다.
강호가 일곱 살 되던 해, 아버지가 그를 배에 태웠다. 처음으로 독도에 가는 길이었다.
새벽 네 시에 도동항을 떠나 동쪽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강호는 뱃전에 매달려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 파도 소리만 있는 바다. 그러다가 수평선 끝에 작고 검은 점이 나타났다.
"아버지, 저게 뭐예요?"
"독도다."
검은 점이 가까워지면서 형태가 잡혔다. 가파른 절벽. 파도가 부서지는 하얀 거품. 새들이 울었다. 강호는 숨을 죽였다. 그 섬은 아름답지 않았다.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그것은 완강했다.
수천만 년 동안 파도를 맞으며 깎이고 깎여도 사라지지 않은 것의 완강함. 강호는 그 섬 앞에서 처음으로 '땅'이라는 것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버지가 말했다.
"강호야. 이 섬이 우리 섬이야. 네 할아버지도, 그 할아버지도 이 섬 앞에서 고기 잡았어. 이 섬에 이름 붙인 사람이 우리야. 독도. 외로운 섬. 그래도 우리 섬이야."
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섬의 완강함이 아버지의 목소리에도 있다는 것은 알았다. 이 섬을 지키는 것은 군인이 아니었다. 이 섬 앞에서 오징어를 잡는 사람들이었다. 이 섬의 이름을 부르며 자란 사람들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배 위에서 강호는 이봉출의 등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파도 소리가 자장가였다. 꿈속에서도 독도의 검은 절벽이 보였다.
지도 위의 선과 사람의 목숨
1983년 봄, 서울대학교 지질학과 대학원.
이강호는 스물여덟 살이었다. 울릉도의 오징어잡이 집 아들이 서울대 대학원까지 온 것은 순전히 독도 때문이었다.
그 섬의 지질이 궁금했다. 수천만 년 동안 저 바다 한가운데서 무엇이 저 섬을 만들었는지. 화산이었다. 해저 화산이 폭발하면서 바다 위로 솟아오른 용암이 굳어서 된 섬. 강호는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독도가 더 좋아졌다. 불 속에서 태어난 섬. 처음부터 완강할 수밖에 없었다.
그 해, 지도학 수업에서 교수가 세계 지도를 펼쳤다.
"여기 보시오. 일본 문부성 교과서에 실린 지도입니다."
지도에 독도 자리에 '다케시마(竹島)'라고 씌어 있었다. 강호는 그 글자를 보는 순간 손이 떨렸다.
그것은 분노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어린 시절 독도 앞에서 느꼈던 완강함의 반대편 감정이었다. 누군가 그 완강한 것에 다른 이름을 붙이려 한다는,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
교수가 물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가 무엇입니까?"
학생 하나가 답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입니다."
"그렇습니다. 독도는 한반도의 부속도서입니다.
이것은 법적 선언입니다. 그런데 법적 선언만으로 영토가 지켜집니까?"
침묵.
교수가 다시 말했다.
"지켜지지 않습니다. 영토는 그 땅에 대해 아는 사람, 그 땅을 연구하는 사람, 그 땅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있어야 지켜집니다. 지도는 힘 있는 자가 그립니다. 우리가 더 정확하게, 더 많이 알아야 우리 지도를 지킬 수 있습니다."
강호는 그 날 강의실을 나오며 결심했다.
해양지질학자가 되겠다고. 독도의 지질을 연구하겠다고. 지도 위의 선이 아니라, 그 땅의 뼈대를 연구하겠다고. 뼈대가 분명해야 이름이 분명해진다.
1987년, 강호는 처음으로 독도 지질 조사단의 일원으로 독도에 상륙했다.
서른두 살. 어린 시절 아버지 배에서 바라보던 섬을 이제 두 발로 밟았다. 절벽에 손을 댔을 때, 돌의 차갑고 단단한 감촉이 손바닥을 타고 팔을 타고 가슴 안으로 들어왔다.
이 돌이 얼마나 오래되었는가.
현무암. 약 460만 년 전에 형성된 암석. 인류의 역사보다 수백 배 더 오래된 돌. 강호는 그 돌 앞에서 잠시 무릎을 꿇었다. 조사 장비를 들고 있던 동료가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강호는 일어서며 말했다.
"이 돌이 우리 증거야."
선이 사람을 자르다
1997년 겨울, 강원도 고성 동해안.
북방한계선(NLL). 서해에만 있는 줄 알았던 그 이름이 동해에도 있었다. 강호는 그 해 해양부 자문위원 자격으로 동해 해저 지형 조사에 참여했다.
조사선이 NLL 남쪽 해역을 따라 이동하는 동안, 강호는 갑판에 서서 북쪽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저 너머에 한반도의 나머지 절반이 있었다.
헌법 제3조는 이렇게 말한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한반도 전체. 그런데 강호는 한반도의 절반에만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지도 위에 선 하나가 땅을 잘랐다. 사람을 잘랐다. 가족을 잘랐다.
조사선에서 강호는 같은 팀의 연구원 박민준을 만났다. 함흥 출신 탈북자 2세였다. 아버지가 1998년 탈북해서 대한민국 국민이 된 사람. 민준은 함흥에서 태어난 자신이 대한민국 헌법상 대한민국 영토에서 태어난 것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었냐고 강호가 물었다.
민준은 한참 생각하다 말했다.
"이상하게 울컥했어요. 내 고향이 헌법에 있다는 게. 저는 거기서 왔는데, 이 나라 헌법은 거기도 이 나라라고 하니까. 버려진 게 아니라는 느낌이랄까요."
강호는 그 말을 듣고 오래 침묵했다.
헌법 제3조는 단순한 영토 선언이 아니었다. 그것은 저 선 너머의 사람들을 이 나라가 기억하겠다는 선언이었다. 네가 거기 있어도 너는 이 나라의 영토 안에 있다는 선언. 강호는 그제야 아버지의 말을 다시 이해했다.
외로운 섬. 그래도 우리 섬이야. 독도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선 너머의 땅도, 선 너머의 사람들도, 이 나라는 잊지 않겠다는 이야기였다.
2005년,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제정했다. 강호는 그 소식을 연구실에서 들었다.
책상을 치고 싶었다. 그러나 치지 않았다. 대신 서랍에서 독도 암석 샘플 하나를 꺼냈다. 1987년 첫 조사 때 채취한 현무암 조각. 손바닥 안에 쥐었다. 차갑고 단단했다. 460만 년의 무게가 손 안에 있었다.
강호는 그 해 국제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했다.
독도의 해저 지질 구조 분석. 영문 제목 아래 한 줄을 덧붙였다. Dokdo, Republic of Korea. 그것은 학술 표기였다. 그러나 강호에게는 선언이었다.
논문은 국제 지질학계에 인용되었다. 일본 학자 몇 명이 반박 논문을 썼다. 강호는 재반박 논문을 썼다. 데이터로. 암석으로. 수천만 년의 지질로. 이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은 더 많이 아는 것뿐이었다.
영토는 기억이다
2024년 여름, 독도.
이강호는 예순아홉 살이었다. 정년퇴직을 한 해 앞두고 마지막 독도 현지 조사를 신청했다. 후배들이 말렸다. "교수님, 이제 저희가 합니다." 강호는 웃으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조사선이 독도에 접안하고 강호가 선착장에 발을 디뎠다. 예순아홉 살의 발이, 일곱 살 때 처음 이 섬 앞에 왔던 날의 기억을 밟았다. 아버지의 배. 파도 소리. 검은 절벽. 새들의 울음.
강호는 혼자 동도(東島)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후배들이 따라오려 했지만 손을 저어 말렸다. 올라가는 동안 숨이 찼다. 무릎이 아팠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꼭대기에 섰다. 바람이 거셌다. 사방이 바다였다. 동쪽으로 일본 본토는 보이지 않았다. 서쪽으로 울릉도가 희미하게 보였다. 그리고 더 멀리, 안개 속에 한반도 본토가 있었다.
강호는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땅을 손바닥으로 짚었다. 현무암. 차갑고 거칠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외로운 섬. 그래도 우리 섬이야. 교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도는 힘 있는 자가 그린다. 민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버려진 게 아니라는 느낌이랄까요.
헌법 제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이 문장은 선언이다. 그러나 선언은 사람이 채워야 한다. 이 돌을 연구하는 사람, 이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 이 땅을 밟는 사람이 있어야 선언은 살아있다. 지도 위의 선은 사람이 그린다. 사람이 지운다. 그러나 460만 년의 돌은 지워지지 않는다.
강호는 품에서 작은 것을 꺼냈다. 낡고 작은 사진 한 장. 흑백 사진. 어린 강호가 아버지 이봉출의 등에 기대어 배 위에서 잠든 사진. 배경에 독도의 검은 절벽이 보이는 사진. 어머니가 어디서 찍었는지 물을 때마다 웃으며 말했다. "누가 찍어줬겠어, 바다가 찍어줬지."
강호는 그 사진을 독도의 돌 위에 잠시 올려놓았다.
바람에 날아갈까 손으로 덮었다. 아버지는 1992년에 세상을 떠났다. 독도를 다시 밟지 못하고. 강호는 그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오늘 이 자리에 아버지를 데리고 온 셈이었다.
"아버지, 왔어요. 우리 섬에."
바람이 세게 불었다. 파도 소리가 절벽 아래에서 울려 올라왔다. 강호는 잠시 그 소리를 들었다. 파도와 바람과 돌이 내는 소리. 이 섬이 수천만 년 동안 혼자 내어온 소리.
그는 일어섰다. 무릎이 쑤셨지만 등은 폈다. 후배들이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려가야 했다.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이 섬의 지질 데이터를 다음 세대에 넘겨야 했다. 연구를 이어갈 학생들을 가르쳐야 했다.
이 이름을 계속 부를 사람들을 길러야 했다.
강호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손으로 돌을 짚었다.
차갑고, 단단하고, 완강했다.
영토는 지도 위의 선이 아니었다. 이 돌을 알고, 이 돌의 이름을 부르고, 이 돌 앞에서 살다 간 사람들의 총합이었다.
에필로그
이강호는 2025년 봄 정년퇴직했다.
퇴직 기념으로 제자들이 책 한 권을 엮어 선물했다. 제목은 『독도, 460만 년의 증언』. 강호의 논문과 현장 일지를 묶은 책이었다.
책의 첫 장에 강호가 직접 쓴 헌사가 있었다.
이 책을 이봉출(1928~1992)에게 바칩니다.
울릉도 도동항의 오징어잡이.
이 섬의 이름을 처음 나에게 가르쳐준 사람.
그리고 그 아래, 헌법 조문 하나.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 대한민국 헌법 제3조 —
그 아래, 강호가 덧붙인 한 줄.
부속도서란 섬이 아니다. 그 섬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다.
책은 국회도서관에 비치되었다. 독도 연구소에 비치되었다. 그리고 울릉도 도동 초등학교 도서관에도 비치되었다. 어느 날 오후, 열 살짜리 아이가 그 책을 꺼내 첫 장을 펼쳤다. 사진이 있었다. 흑백 사진. 어린 남자아이가 아버지 등에 기대어 잠들어 있고, 배경에 검은 절벽이 있었다.
아이가 물었다.
"선생님, 저 섬이 독도예요?"
"그래."
"왜 저렇게 까매요?"
"오래됐거든. 아주 오래됐어."
"우리 섬이에요?"
"그래. 우리 섬이야."
아이는 다시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검은 절벽. 하얀 파도. 잠든 아이.
그 섬은 그 날도 거기 있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