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새벽, 개루
흐르는 것들에 대하여
기원후 115년 봄, 한수(漢水)의 물안개는 새벽마다 위례성 아랫마을을 삼켰다.
강은 말이 없었다. 그러나 늘 흘렀다.
소년 개루(蓋婁)는 열두 살이 되던 해부터 이 강가에 혼자 나오는 버릇이 생겼다. 궁에서 내려오는 돌계단은 새벽 이슬에 젖어 미끄러웠고, 호위 무사들은 왕자의 새벽 산책을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개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강이 그를 불렀다. 정확히는, 강이 흐르는 방식이 그를 불렀다.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고, 어디로 가는지도 불분명한 물.
그러나 한 번도 멈추지 않는 것.
"강은 늘 흐르는데… 사람은 왜 머무르는가."
개루는 손 안에 쥐었던 납작한 돌을 수면을 향해 던졌다. 돌은 두 번 튀고 물속으로 빨려들었다. 물결이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갔다. 강의 흐름은 그 잔물결조차 조용히 받아들이며 하류로 데려갔다.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단단하되 서두르지 않는 걸음. 개루는 돌아보지 않아도 알았다. 왕의 오른팔, 노신(老臣) 해충(解忠)이었다. 그는 3대 기루왕 시절부터 왕실을 섬겨온 인물로, 등이 굽었으나 눈빛만은 여전히 매처럼 날카로웠다.
"전하, 이 새벽에 또."
"충, 강을 보면 생각이 정리된다."
해충은 소년 왕자 곁에 서서 잠시 강을 바라보았다.
안개가 수면 위를 긁으며 흘러가고 있었다.
"전하, 백성은 강과 같습니다."
"무슨 뜻인가."
"흐르게 해야 합니다. 막으면 썩고, 억지로 돌리면 범람합니다. 그러나 길을 내어주면… 스스로 흘러 옥토를 만듭니다."
개루는 오래 침묵했다. 강 위로 안개새 한 마리가 낮게 날았다.
"그 길을 내는 것이 왕의 일이란 말인가."
"그것이 전부입니다, 전하."
개루는 다시 돌을 주워들었다. 이번에는 던지지 않았다.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오래 바라보았다. 돌은 둥글었다. 원래부터 둥근 것이 아니었으리라. 강물에 쓸리고, 모래에 갈리고, 수없이 많은 세월을 견뎌 이 형태가 된 것이었다.
왕도 이렇게 갈리는 것일까.
그 무렵 부왕 기루왕(己婁王)은 늙어가고 있었다. 4대 왕으로 즉위한 지 40년이 넘었고, 몸은 이미 소진되어 있었다. 왕위는 개루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개루에게 왕위란 영광이 아니었다. 강가에서 해충의 말을 들은 그날부터, 왕위는 그에게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높은 자리가 아니라, 무거운 짐.
위례성 안팎의 사정은 복잡했다. 마한(馬韓)의 54개 소국들은 백제를 명목상의 맹주로 인정하면서도, 실질적인 복속을 거부하고 있었다. 낙랑군(樂浪郡)은 북쪽에서 끊임없이 남하의 기회를 노렸고, 한강 상류의 부족들은 해마다 조공을 미루었다. 백제는 강한 나라의 이름을 가졌지만, 그 이름을 채울 내용이 아직 부족했다.
개루는 밤마다 죽책(竹冊)을 읽었다. 주(周)나라의 통치, 진(秦)나라의 법제, 낙랑을 통해 들어온 한(漢)나라의 행정 기록. 그는 한자(漢字)를 익혔고, 수(數)를 배웠으며, 전쟁의 원리보다 평화를 유지하는 원리를 더 오래 공부했다.
그리고 116년 늦가을, 기루왕이 세상을 떠났다.
왕궁에 곡성이 울렸다.
개루는 울지 않았다. 부왕의 손을 잡고 오래 앉아 있었다. 식어가는 손. 무거운 정적.
이제 내 차례다.
그날 밤, 개루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왕이 되는 것은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짐은, 한 번 짊어지면 내려놓을 수 없다.
나라를 만드는 일
기원후 128년, 개루는 백제의 5대 왕위에 올랐다.
즉위식은 한강 변 제단에서 거행되었다. 하늘은 맑았고, 강물은 은빛으로 빛났으며, 주변 소국의 수장들이 줄지어 예를 표했다. 그러나 개루의 눈은 그들 중 몇몇의 표정을 읽고 있었다.
무릎을 꿇으면서도 눈빛이 비어 있는 자들. 입으로는 충성을 말하면서 마음속으로는 계산을 굴리는 자들.
이들을 하나로 묶는 것. 그것이 첫 번째 일이다.
즉위 사흘째 되는 날, 개루는 신하들을 불러모았다.
"나는 우리가 아직 나라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전 안이 술렁였다. 장로 신하 해루(解婁)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전하, 이미 왕이 계시고 백성이 있으며 성이 있사옵니다. 어찌 나라가 아니라 하시옵니까."
개루는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단했다.
"왕이 있다고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니다. 성이 있다고 나라가 되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하나의 운명을 공유한다고 느낄 때, 그때 비로소 나라가 된다. 지금 이 땅의 사람들은 — 부족마다 다른 신을 섬기고, 다른 말을 쓰며, 다른 왕을 그리워한다. 이것은 모래다. 모래는 뭉쳐있어도 흩어진다."
침묵이 흘렀다.
"어떻게 하시렵니까."
"먼저 사람을 모은다."
개루가 내린 첫 번째 명령은 군사를 늘리는 것이 아니었다. 위례성 사방 사흘 거리 안의 모든 마을에서 젊은 인재를 추천받아 왕궁으로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강한 자가 아니라, 믿을 수 있는 자. 말 잘하는 자가 아니라, 듣는 자. 개루는 그들을 직접 만났다. 한 명 한 명 이름을 묻고, 고향을 묻고, 무엇을 잘하는지 물었다.
신하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왕이 직접 평민을 만나시옵니까."
"나라를 만드는 것은 왕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두 번째 명령은 도로였다. 위례성에서 마한 소국들의 중심지로 이어지는 길을 정비하라는 것이었다. 비가 오면 끊기고, 봄이면 진창이 되는 흙길을 돌과 모래로 다지고, 나루터마다 나룻배를 배치했다. 길이 이어지면 사람이 오고, 사람이 오면 말이 섞이고, 말이 섞이면 마음이 가까워진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세 번째 명령이 가장 중요했다.
"성벽을 높이는 것보다, 사람의 마음을 이어라."
개루는 마한 소국의 수장들에게 사절을 보냈다. 압박이 아니라 초대였다. 위례성으로 와서 함께 먹고 마시자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의심하던 수장들도 하나둘 위례성을 찾아왔다. 개루는 그들을 왕처럼 대우했다. 왕좌 아래 엎드리게 하지 않고, 같은 자리에 앉혀 음식을 나눴다.
"우리는 같은 강을 마신다."
개루가 술잔을 들며 한 말이었다.
그 말이 소국의 수장들에게 오래 남았다.
5년이 지났다. 위례성의 창고는 차오르기 시작했다. 조공이 정기적으로 들어왔고, 한때 독립을 고집하던 소국들이 하나둘 백제의 질서 안으로 들어왔다. 개루는 그들에게 군대를 주둔시키지 않았다. 대신 그들의 자식을 위례성에서 교육시켰다. 10년 후, 그 자식들은 백제의 언어로 말하고, 백제의 신을 섬기며, 백제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전쟁보다 깊은 정복이었다.
해충은 그 광경을 보며 말했다.
"전하, 강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개루는 조용히 웃었다.
"아직 멀었다, 충. 길은 길다."
칼과 이상 사이
기원후 140년대 중반, 위례성에 급보가 들어왔다.
고구려(高句麗)의 군사가 한강 상류 방면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척후병의 보고에 따르면 그 수가 적지 않았다. 단순한 국경 순찰이 아니었다. 방향이 남쪽을 향하고 있었다.
대전에 신하들이 모였다. 분위기는 무거웠다.
무장 출신 좌평(佐平) 진무(眞武)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전하,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습니다. 군사를 늘리고 병기를 갖춰야 합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고구려에 압박을 받아 마한 소국들이 다시 흩어질 것입니다."
우평(右平) 해루가 맞받았다.
"그러나 지금 군사를 일으키면 겨우 안정된 소국들이 놀랄 것입니다.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때를 기다리다 나라를 잃으면 어쩌겠습니까!"
대전이 술렁였다.
개루는 눈을 감고 있었다.
두 사람의 말이 모두 옳았다. 그것이 문제였다. 이상과 현실이 동시에 옳을 때, 왕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그날 밤, 개루는 홀로 위례성 성벽 위에 섰다.
늦가을 바람이 불어왔다. 한강은 멀리 어둠 속에서 흐르고 있었다. 강은 이 혼란을 알지 못하는 듯 조용했다. 아니, 알면서도 흘렀다.
"칼로 나라를 세우면… 결국 칼에 무너진다."
그것은 그의 오랜 믿음이었다. 진(秦)나라가 그랬다. 법과 칼로 천하를 통일했으나, 불과 2대 만에 무너졌다. 폭력은 복종을 만들지만 충성을 만들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 그의 앞에는 현실이 있었다.
고구려는 강했다. 1세기에 이미 한사군(漢四郡)을 압박하고 있었고, 태조왕 시절부터 팽창 정책을 써왔다. 고구려의 기마병이 한강을 건너오면, 개루가 20년에 걸쳐 쌓은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었다.
개루는 성벽의 돌을 손으로 짚었다. 차가운 감촉.
그는 밤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새벽이 밝아올 무렵, 그는 결단을 내렸다.
"싸우되, 지키기 위해 싸운다."
그것은 전쟁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더 정확히는, 평화를 지키기 위한 군사력을 구축하겠다는 결정이었다. 개루는 진무를 불렀다.
"군을 정비하라. 그러나 공격이 아니라 방어를 위한 군이다. 성벽을 강화하고, 한강의 나루터마다 수비 거점을 만들어라. 그리고 — 단 한 가지를 명심해라. 칼을 들었다고 해서 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진무는 잠시 망설였다.
"전하의 말씀은… 싸우면서도 싸우지 않는다는 것입니까."
"싸울 수 있는 힘을 보여줌으로써 싸우지 않는 것이다. 강한 방어는 공격을 막는 것이 아니라, 공격을 생각조차 못하게 하는 것이다."
3년에 걸쳐 위례성의 방어 체계가 새로 짜였다. 한강을 따라 봉화대가 세워지고, 성벽이 높아지고, 정비된 병사 5천이 배치되었다. 개루는 그 과정에서 소국 수장들을 다시 불러 설명했다.
"이 군은 여러분을 지키는 군입니다. 여러분을 억압하는 군이 아닙니다."
수장들은 병사를 보내왔다. 자발적으로.
그것이 결정적 차이였다.
고구려의 척후는 결국 한강을 넘지 않았다. 단단히 정비된 방어선과, 그 뒤에 하나로 뭉친 연합의 기운을 읽은 것이었다. 위기는 소리 없이 지나갔다.
그러나 대가는 있었다.
20년간 이상을 추구하던 개루는 처음으로 현실 앞에 무릎을 꿇은 기분이었다. 그는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을 했다. 그러나 그 선택을 하는 순간, 그는 자신이 조금 달라졌음을 알았다.
나는 강처럼 흐르려 했다. 그러나 강도 때로는 돌에 부딪힌다.
해충은 그 무렵 몸이 많이 약해져 있었다. 어느 날 개루는 병상의 해충을 찾아갔다.
"충, 나는 타협한 것인가. 칼을 들었으니."
해충은 힘없이 웃었다.
"전하, 강도 굽어 흐릅니다. 곧장만 흐르는 강은 없습니다. 굽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 다음 흐름을 위한 준비입니다."
그것이 해충의 마지막 말다운 말이었다. 그는 그해 겨울을 넘기지 못했다.
개루는 성 밖 언덕에 그를 묻었다. 한강이 보이는 자리였다.
"강이 잘 보이는 곳에서 쉬어라, 충."
흐르는 나라
세월이 흘렀다.
개루왕은 38년을 왕위에 있었다.
기원후 166년, 그는 병석에 누웠다. 신하들이 몰려왔다. 의원들이 약을 달였다. 그러나 개루는 눈을 뜨고 물었다.
"한강은 오늘도 흐르는가."
"그러하옵니다, 전하."
"그럼 되었다."
태자 초고(肖古)가 곁에 앉아 있었다. 개루의 눈은 그를 오래 바라보았다. 이 아들에게 무엇을 남겨줄 수 있는가. 그것이 그의 마지막 고민이었다.
"초고야."
"예, 아바마마."
"나라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태자는 눈을 들었다.
"이어지는 것이다. 내가 한 일이 끝이 아니다. 네가 이어받아 또 다른 물결을 만들어야 한다. 그 물결이 또 다음 사람에게 이어지고… 그렇게 흐르는 것이 나라다. 멈추는 순간 썩는다."
개루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강가에 나가 돌을 던져보아라. 물결이 퍼지는 것을 보아라. 그리고 기억해라 — 그 물결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강물 끝까지 간다."
그날 저녁 늦게, 신하 한 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하, 이제 백제는 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전하의 치세에 소국들이 하나로 묶이고, 낙랑과 고구려가 쉽게 넘보지 못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전하의 업적이옵니다."
개루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전하…"
"나는 흐르게 했을 뿐이다. 강이 흐른 것이다. 내가 한 것이 아니야."
그의 손에서 작은 돌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언젠가 한강가에서 주워 평생 품에 지녀온 돌이었다. 둥글고, 매끄럽고, 아무 장식도 없는 돌.
신하들은 그 돌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알았다.
왕이 갔다.
위례성 아래, 한강은 그날도 흘렀다.
해충이 말했던 것처럼 — 흐르게 하면 옥토가 된다. 개루가 만들어놓은 길을 따라 사람들이 오고 갔다. 그가 데려와 교육시킨 이들의 자손이 백제의 관리가 되었다. 그가 쌓은 방어 체계 위에 후대의 성이 세워졌다. 그가 맺어놓은 관계가 씨앗이 되어, 훗날 백제가 반도의 강국으로 자라는 토양이 되었다.
개루는 전쟁에서 이긴 왕이 아니었다.
그는 흐르게 한 왕이었다.
그의 손에서 떨어진 돌이 일으킨 물결처럼 — 보이지 않게, 멈추지 않게, 수백 년을 흘러갔다.
백제는 그렇게 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