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흐르는 골목길
시인의 마을을 찾아서
“공주 또 가볼까?”
2월의 어느 주말, 서연이가 물었다. 작년에 제민천을 다녀온 후였다.
“공주? 또?”
민수가 의아해했다.
“응. 그때 제민천만 보고 왔잖아. 근데 반죽동 골목이 있대. 나태주 시인 시화 골목.”
“나태주? ‘풀꽃’ 쓴 시인?”
“맞아.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지혜가 반가워했다.
“그 시 좋아해. 짧지만 울림이 있어.”
“그 시인이 공주 출신이래. 반죽동에 시화 골목이 있고.”
준우가 검색을 시작했다.
“나태주 골목길. 반죽동 160-2 일대. 시인의 시들이 벽화로 그려진 골목.”
“제민천 근처네?”
“응. 걸어서 5분 거리.”
“그럼 제민천도 다시 보고, 시화 골목도 보고.”
“좋아. 가자.”
다음 주 토요일, 네 식구는 차를 타고 공주로 향했다. 서울에서 두 시간.
“작년에 왔을 때보다 길이 익숙하네.”
공주 시내로 들어갔다. 조용한 지방 도시였다.
“역시 한적해.”
제민천 근처에 주차하고 걸었다.
“반죽동이 어디지?”
“저쪽.”
제민천을 따라 북쪽으로 조금 걸으니 좁은 골목이 나타났다.
“여기부터가 반죽동이네.”
벽에 새겨진 시의 향기
골목 입구에 안내판이 있었다.
“나태주 시화 골목. 시인 나태주의 시들이 벽화로 그려진 문학 거리.”
골목으로 들어섰다. 첫 번째 벽화가 눈에 들어왔다.
“풀꽃.”
벽에 크게 쓰여 있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아래에는 작은 꽃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예쁘다.”
천천히 걸으며 벽화들을 하나씩 봤다. 골목 양쪽 담벼락에 시들이 가득했다.
“여기는 ‘봄’이네.”
“저기는 ‘바람’.”
각 벽화마다 시와 그림이 함께 있었다. 그림은 시의 내용을 담아내고 있었다.
“누가 그렸을까?”
“지역 예술가들이 그렸대.”
골목은 미로처럼 이어졌다. 구불구불, 오르락내리락.
“길이 좁고 복잡하네.”
하지만 그 덕분에 골목마다 다른 느낌이었다. 한 골목을 돌아서니 특히 아름다운 벽화가 나타났다.
“우와!”
큰 나무 그림이었다. 나무 위에 시가 쓰여 있었다.
“나무.”
나무는
가만히 서 있어도
아름답다
사람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준우가 조용히 말했다.
“깊은 뜻이네.”
“그러게. 가만히 있어도 아름다운 사람...”
벽화 앞에서 한참을 섰다.
“사진 찍자.”
가족 사진을 찍었다. 벽화를 배경으로.
골목을 계속 걸으며 시들을 읽었다. “사랑”, “기다림”, “추억”, “그리움”... 각 시마다 울림이 있었다.
“짧은데 깊어.”
“그게 나태주 시의 특징이래. 짧고 쉬운데 깊은.”
골목 중간쯤에 작은 카페를 발견했다.
“루치아의 뜰?”
한옥을 개조한 카페였다.
“들어가 보자.”
시와 역사가 공존하는 공간
카페 안으로 들어가니 아담한 한옥이었다. 마루에 앉아 차를 마시는 방식이었다.
“인삼차 두 잔, 유자차 두 잔이요.”
주인은 50대 여성이었다.
“여기 언제 오픈하셨어요?”
“10년 됐어요.”
“한옥이 예쁘네요.”
“고마워요. 제가 직접 고쳤어요. 옛날 한옥을 살려서.”
“나태주 시화 골목 때문에 오는 손님들이 많으세요?”
“많죠. 특히 주말엔요. 골목 보고 여기서 차 마시고 가시는 분들이.”
“시화 골목은 언제 만들어졌어요?”
“2010년대 초반이요. 공주시에서 원도심 활성화 사업으로.”
“효과가 있었어요?”
“있었죠.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조용했던 동네가 살아났어요.”
차를 마시며 마당을 봤다. 작은 정원이 아름다웠다.
“여유롭다.”
“공주가 다 그래요. 느리고 여유로워요.”
카페를 나와 골목을 더 걸었다. 한 골목 끝에 돌기둥이 보였다.
“저게 뭐야?”
가까이 가 보니 안내판이 있었다.
“보물 제150호 반죽동 당간지주. 통일신라 시대, 대통사 터로 추정.”
“천 년 넘었네.”
두 개의 돌기둥이 나란히 서 있었다. 높이 3미터쯤.
“이게 당간지주구나.”
“당간지주가 뭐야?”
“절에서 깃발 달던 기둥을 세우는 받침대야.”
“그럼 여기 옛날에 절이 있었다는 거네?”
“응. 대통사라고.”
당간지주 옆에 작은 쉼터가 조성되어 있었다.
“대통사지 쉼터.”
벤치에 앉아 쉬었다.
“천 년 전 절터에서 쉬는 거네.”
“신기하다.”
한참을 앉아 있다가 다시 걸었다. 골목을 빠져나와 제민천으로 갔다.
“작년에 왔던 곳이네.”
제민천은 여전히 고요하게 흘렀다.
“물소리 좋다.”
제민천을 따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공주는 참 좋은 곳이야.”
“응. 느리고, 조용하고.”
“시화 골목도 의미 있고.”
작은 도시의 큰 울림
저녁이 되어 공주 시내로 돌아왔다.
“저녁 먹고 가자.”
“밤밥 먹자. 공주 밤 유명하잖아.”
작은 식당에서 밤 요리를 먹었다.
“밤이 정말 달다.”
“공주 특산물이래.”
식사를 하며 하루를 정리했다.
“공주 반죽동 어땠어?”
“좋았어. 시화 골목도 예쁘고, 한옥 카페도 좋고.”
서연이가 말했다.
“나는 특히 시들이 좋았어. 짧은데 마음에 남아.”
“어떤 시가 제일 좋았어?”
“‘너도 그렇다.’ 풀꽃.”
“왜?”
“단순한데 깊어. 자세히 보고 오래 보면 누구나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거. 그게 위로가 돼.”
“좋은 해석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은 조용했다.
“피곤해?”
“아니. 그냥... 생각 중.”
“무슨 생각?”
“시에 대해. 그리고 작은 도시에 대해.”
집에 도착해서 민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제목은 ‘공주 반죽동, 시가 흐르는 골목길’.
“공주 반죽동은 시의 골목이다. 나태주 시인의 시들이 벽화로 그려진 문학 거리.”
“‘풀꽃’, ‘나무’, ‘바람’, ‘사랑’. 짧은 시들이 골목 담벼락에 가득하다. 지역 예술가들이 그린 그림과 함께.”
“골목은 좁고 구불구불하다. 천천히 걸으며 시를 읽는다. 하나하나.”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이 시처럼, 골목도 천천히 보아야 아름답다.”
“골목 중간에 천 년의 역사가 있다. 보물 제150호 당간지주. 통일신라 시대 대통사 터.”
“시와 역사가 공존한다. 현대의 벽화와 천 년의 돌기둥이.”
“10년 된 한옥 카페 주인이 말했다. ‘조용했던 동네가 살아났어요.’ 시화 골목 덕분에.”
“이것이 작은 도시의 힘이다. 큰 개발이 아니라, 시로, 문학으로, 문화로 살아나는 것.”
“공주는 느리다. 하지만 그 느림 속에 깊이가 있다. 시처럼.”
글을 다 쓰고 블로그에 올렸다. 댓글들이 달렸다.
“공주 반죽동 꼭 가보고 싶어요.”
“나태주 시를 좋아하는데 시화 골목이 있다니!”
“작은 도시의 문화적 재생, 의미 있네요.”
일주일 후, 나태주 시인께서 직접 댓글을 다셨다.
“고맙습니다. 제 고향 골목을 이렇게 아름답게 기록해 주셔서.”
민수는 깜짝 놀라며 답글을 달았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풀꽃’은 제 인생 시입니다.”
“기회가 되면 한번 만나 뵙고 싶네요.”
한 달 후, 공주에서 나태주 시인과 만났다. 풀꽃문학관에서.
“선생님, 반갑습니다.”
“나도 반갑습니다. 블로그 잘 봤어요.”
“감사합니다.”
시인은 반죽동 골목을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골목에서 자랐어요. 어렸을 때부터.”
“그래서 시에 이 골목이 많이 나오나요?”
“그렇죠. 내 기억이, 추억이 다 여기 있어요.”
한 벽화 앞에서 멈췄다.
“이 시는 여기서 썼어요. 이 골목을 걸으며.”
“감동입니다.”
시인과 헤어지며 민수는 생각했다.
‘장소는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장소에 의미를 준다.’
공주 반죽동은 나태주를 만들었고, 나태주는 반죽동에 시를 남겼다. 그리고 그 시는 이제 많은 사람들의 위로가 된다.
민수 가족의 아카이빙은 계속된다. 골목을 걷고,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기록한다.
반죽동처럼. 시가 흐르는 골목처럼.
자세히 보고, 오래 보며.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