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는 혼자 진다

소급입법 금지와 연좌제 금지에 바치는 소설

by 이 범


주인공 : 최서율(崔瑞律) — 1983년생, 경북 포항 출신 헌법학자·법학과 교수
배경 : 1983년 포항 ~ 2024년 서울·부산·제네바
주제 : 죄는 지은 사람만 진다. 과거의 법으로 현재를 재단할 수 없다. 그것이 자유로운 사람이 사는 나라의 약속이다


아버지의 죄, 딸의 짐
1993년 봄, 경북 포항시 북구 장성동.
최서율은 열 살이었다. 그 해 봄, 아버지 최병훈이 구속되었다. 회사 공금 횡령 혐의였다. 사실이었다. 아버지는 죄를 지었고, 그 죄에 대한 벌을 받아야 했다. 서율은 그것을 이해했다. 열 살이었지만, 나쁜 일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것은 알았다.



그러나 서율이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학교에서 달라졌다. 친구들이 멀어졌다. 담임 선생님이 서율을 대하는 눈빛이 달라졌다. 무언가를 미안해하는 눈빛. 또는 무언가를 경계하는 눈빛. 교장 선생님이 어머니를 불러서 이런 말을 했다고 나중에 어머니에게 들었다.


"어머니, 서율이가 걱정이 됩니다. 가정환경이 이러니 학교생활도 영향을 받지 않겠습니까."
동네에서도 달라졌다. 반찬 가게 아주머니가 어머니를 보면 고개를 돌렸다. 이웃 아저씨가 서율을 보며 혀를 찼다. "쯧쯧, 저 아이가 무슨 죄야."
그 말이 이상했다.


서율은 자신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왜 죄가 있는 사람처럼 대우받는 것인가. 아버지가 한 일을 서율이 한 것이 아닌데.
어머니 강혜선은 강했다.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반찬 가게에서 고개를 돌리는 아주머니에게 먼저 인사했다. 서율에게 말했다.


"서율아, 아버지가 잘못한 거야.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 고개 숙이지 마라."
"그런데 왜 사람들이 저를 이상하게 봐요?"
"모르는 거야. 죄는 지은 사람만 지는 거거든. 그런데 사람들이 그걸 잊을 때가 있어."
"헌법에도 그렇게 씌어 있어요?"
어머니가 잠시 멈추었다.


"모르겠어. 근데 그래야 맞는 거 아니겠냐."
중학교 사회 시간에 서율은 드디어 그 문장을 찾았다.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서율은 그 문장을 읽으며 손이 떨렸다. 헌법이 알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었다. 죄는 지은 사람만 진다고. 친족의 죄 때문에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그러면 담임 선생님의 달라진 눈빛은 잘못된 것이었다.


반찬 가게 아주머니의 외면도. 교장 선생님의 말도.
서율은 공책에 또렷하게 썼다.
죄는 지은 사람만 진다. 헌법 제13조 제3항.
그리고 그 옆에 어머니의 말을 덧붙였다.
아버지가 잘못한 거야.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 고개 숙이지 마라.


그것이 서율의 헌법 공부 첫 번째 페이지였다.
아버지는 2년 후 출소했다. 달라진 눈빛으로, 움츠러든 어깨로. 서율은 아버지를 용서했다. 그러나 잊지 않았다. 자신이 열 살부터 열두 살까지 겪은 것을. 자신이 짊어진 적 없는 짐을 사람들이 자신 위에 올려놓으려 했던 그 시간을.
고3 때 담임 선생님이 물었다.


"서율아, 뭐 할 거야?"
"헌법학자요."
"왜?"
"헌법에 씌어 있는 것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해서요. 제13조 같은 것들을요."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이유네."


소급입법의 칼날
2009년 여름,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최서율은 스물여섯 살에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전공은 헌법학. 지도교수 이명준이 물었다.


"서율 씨, 연구 주제를 헌법 제13조로 잡겠다고요?"
"네. 소급입법 금지와 연좌제 금지요."
"왜 하필 이 조항입니까? 요즘 핫한 주제도 많은데."
서율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교수님, 이 조항이 없으면 법이 무기가 돼요. 사람을 보호하는 방패가 아니라, 사람을 공격하는 무기. 소급입법 금지가 없으면 과거에 합법적으로 한 일을 나중에 범죄로 만들 수 있어요. 연좌제 금지가 없으면 내가 하지 않은 일로 벌을 받을 수 있고요. 이 두 가지가 무너지면 자유는 없어요."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이유네요. 그럼 그걸로 가봅시다."
박사 논문을 쓰면서 서율은 역사를 파고들었다.

소급입법의 역사. 연좌제의 역사. 그것이 어떻게 쓰였는지를.
소급입법. 어떤 행위를 한 뒤에 새로 법을 만들어, 그 행위를 소급하여 범죄로 만드는 것. 역사 속에서 권력은 이 방법을 즐겨 썼다. 반대자를 처벌하고 싶은데 그 시점에 법이 없으면, 나중에 법을 만들어 과거로 소급시켰다. 이미 한 일이 갑자기 범죄가 되었다.


연좌제. 한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 가족, 친척, 심지어 이웃까지 처벌하는 제도. 집단에 대한 처벌.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혈연·지연·인연에 의한 처벌. 그것이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짓밟았는지를 서율은 기록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서율은 알았다. 그 역사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여전히 다른 형태로 살아있었다.
2015년, 서율은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헌법학 조교수. 강의 첫날, 학생들에게 질문했다.


"연좌제가 뭔지 아는 사람?"
절반 정도가 손을 들었다.
"지금도 연좌제가 있을까요?"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없다는 쪽이 많았다.
"있어요." 서율이 말했다. "다만 법으로는 금지되어 있어요. 그런데 사회적으로는 살아있어요. 취업할 때 가족 관계를 묻는 것, 특정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것, 부모의 직업이나 재산이 자녀 평가에 영향을 미치는 것. 이것들이 헌법 제13조 제3항이 금지하는 것의 변형이에요."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헌법은 법으로 금지했어요. 그런데 우리 마음속에서도 금지해야 해요. 그게 더 어려운 일이에요."
그날 강의가 끝나고 학생 하나가 남았다. 스물두 살 여학생이었다.
"교수님, 저 아버지가 전과자예요. 취업할 때 불이익받는 거 어떻게 하면 돼요?"
서율은 그 학생을 바라보았다. 열 살 자신이 거기 있었다.


"그 불이익은 잘못된 거예요. 헌법이 금지하고 있어요. 그리고 기업이 그런 차별을 한다면 법적으로 다툴 수 있어요."
"근데 현실에서는요?"
"현실이 법보다 느려요. 항상. 그래서 우리가 계속 말해야 해요."
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서율은 그날 연구실에서 혼자 앉아 생각했다. 헌법이 선언했다. 죄는 지은 사람만 진다고. 과거의 법으로 현재를 재단하지 않는다고. 그런데 현실에서 그 선언이 완전히 이루어지기까지는 아직 멀었다. 그 거리를 좁히는 것이 자신의 일이었다.


과거와 현재 사이
2019년 겨울, 서울과 부산.
최서율은 서른여섯 살이었다. 헌법학 부교수. 그 해 겨울, 서율의 연구실에 낯선 의뢰인이 찾아왔다. 학자에게 의뢰인이 오는 것은 이례적이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변호사가 아니라 학자의 의견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름은 박동진. 예순두 살. 부산 출신 사업가.
1980년대 초반, 박동진은 당시 합법이었던 사채 사업을 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당시 금융 규제가 지금과 달랐다. 그 사업으로 번 돈으로 나중에 제조업을 시작했다. 지금은 중견 기업주였다.
그런데 최근 검찰이 그 1980년대 사채 사업을 문제 삼았다. 당시 합법이었던 행위를 지금의 금융 관련 법률 기준으로 소급 적용하여 기소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교수님,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서율은 서류를 검토했다. 검찰의 논리를 읽었다. 그리고 말했다.
"법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왜요?"
"헌법 제13조 제1항. 모든 국민은 행위 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한다. 1980년대에 당신이 한 행위가 당시 법률로 합법이었다면, 지금 법으로 소급하여 범죄로 만들 수 없어요. 그것이 헌법이 명시한 소급입법 금지 원칙이에요."
박동진이 한참 침묵했다가 말했다.


"그런데 검찰이 밀어붙이고 있어요."
"알아요. 그래서 학자의 의견서가 필요한 거겠죠."
서율은 의견서를 썼다. 헌법 학자로서의 의견서. 소급입법 금지 원칙의 헌법적 의미. 행위시법 원칙. 죄형법정주의와의 관계.



그러나 서율은 의견서를 쓰면서 불편했다. 박동진이 1980년대에 한 일이 당시 법적으로는 합법이었지만, 도덕적으로 완전히 깨끗했는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고리대금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착취했을 수도 있었다.
서율은 밤에 혼자 생각했다.


법과 도덕은 다르다. 헌법 제13조는 법의 문제다.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행위도 당시 법률로 합법이었다면 소급하여 처벌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법이 예측 가능성을 잃는다. 오늘 합법인 것이 내일 소급되어 범죄가 될 수 있다면, 누가 안심하고 살 수 있겠는가.


반면, 그것이 불의한 과거 행위에 대한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소급입법 금지는 불의를 보호하는 방패가 아니었다. 법의 예측 가능성을 보호하는 원칙이었다.
서율은 의견서를 완성했다. 그러나 마지막에 한 단락을 덧붙였다.


본 의견서는 헌법 제13조 제1항의 소급입법 금지 원칙에 따라 해당 기소가 위헌임을 밝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과거 행위의 도덕적 평가와는 별개이다. 법의 원칙은 도덕의 면죄부가 아니다. 법이 처벌할 수 없는 행위에 대해서도 사회적·도덕적 책임은 남는다.
그 단락을 박동진에게 보냈다.
박동진이 전화했다.


"교수님, 마지막 단락은 왜 넣으셨어요?"
"제 학자적 양심입니다. 당신의 법적 권리는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면제하는 것은 아니에요."
전화 너머 박동진이 한참 침묵했다.
"…알겠습니다."
기소는 결국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아 무효가 되었다. 소급입법 금지 원칙이 지켜졌다.


그러나 서율에게 그것은 반쪽짜리 승리였다. 법이 지켜진 것은 맞았다. 그러나 법이 지켜졌다는 것이 모든 것의 답이 아니었다. 법이 보호하는 것과 법이 말하지 않는 것 사이의 빈 공간. 그 공간을 채우는 것은 법 이전의 무언가였다.
그 무언가를 서율은 학자로서, 교사로서 계속 말해야 했다.


죄는 혼자 진다
2024년 봄, 서울 서강대학교 법학과 강의실.
최서율은 마흔한 살이었다. 정교수. 그 해 봄 학기, 헌법 강의에서 서율은 제13조를 가르쳤다.
"제13조 제3항.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칠판에 쓰고 돌아서서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이 조항이 왜 있는지 아는 사람?"
학생들이 침묵했다. 서율은 기다렸다.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연좌제를 금지하기 위해서요."
"맞아요. 연좌제. 우리 역사에서 연좌제는 언제까지 있었을까요?"
학생들이 술렁였다. 누군가 말했다.


"조선시대요?"
"더 가까워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있었어요. 6·25 전쟁 이후, 특히 1980년대까지. 가족 중 빨치산이나 월북자가 있으면 그 후손들이 취업, 입학, 군 복무에서 불이익을 받았어요. 공식적으로는 1980년대에 폐지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더 늦게까지 영향이 있었어요."
교실이 조용해졌다.


"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열 살 때 아버지가 구속되었어요. 잘못을 했고, 그 벌을 받았어요. 그런데 저도 불이익을 받았어요. 직접적인 법적 불이익이 아니라, 사회적 불이익이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고, 관계가 달라졌고, 대우가 달라졌어요."
교실이 완전히 조용해졌다. 교수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 학생들이 집중했다.


"그때 어머니가 말씀하셨어요. 아버지가 잘못한 거야.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 고개 숙이지 마라. 그 말이 저를 지탱했어요. 나중에 헌법 제13조 제3항을 읽으면서 알았어요. 어머니 말씀이 헌법이었다는 걸."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눈이 빨개져 있었다.
"교수님, 저도 비슷한 상황이에요. 아버지가 교도소에 있어요. 취업 준비하면서 너무 힘들어요."
서율은 그 학생을 바라보았다. 31년 전 자신이 거기 있었다.


"당신은 잘못한 것이 없어요. 헌법이 그렇게 말해요. 그리고 그 헌법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과제예요. 오늘 이 강의실에서부터."
강의가 끝났다. 학생들이 나갔다. 그 학생도 나갔다. 마지막에 서율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서율도 고개를 끄덕였다.


강의실에 혼자 남아 서율은 칠판의 문장을 바라보았다.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이 문장이 얼마나 오래 걸려서 만들어진 것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문장이 필요한 상황에 처했는지. 그리고 이 문장이 아직 완전히 현실이 되지 않았다는 것.


서율은 칠판을 지우지 않았다. 내일 다음 강의를 위해 지워야 했지만, 오늘 하루는 그냥 두기로 했다.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서율은 핸드폰을 꺼냈다. 아버지에게 전화했다. 아버지 최병훈은 포항에서 작은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출소 후 30년. 조용히, 성실하게 살고 있었다.


"아버지."
"응, 서율아."
"잘 지내세요?"
"그럼. 너는?"
"저도요. 아버지, 오늘 강의에서 아버지 이야기 했어요."
"무슨 이야기?"
"제가 열 살 때 이야기요. 헌법 제13조 가르치면서요."
아버지가 오래 침묵했다.


"…미안하다."
"아니에요. 그 덕에 제가 헌법학자가 됐어요."
"그게 덕이냐."
"덕이예요. 진짜로요."
전화를 끊고 서율은 서강대 캠퍼스를 걸었다. 봄 캠퍼스. 벚꽃이 흐드러졌다. 학생들이 웃으며 걸어 다녔다.


저 학생들 중 누군가는 자신처럼 가족의 잘못으로 짐을 지고 있을 것이었다. 누군가는 소급입법의 피해자일 것이었다. 헌법이 보호하려는 사람들이 저 캠퍼스 안에 걸어 다니고 있었다.
서율은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봄 하늘. 벚꽃 잎이 날렸다.


헌법 제13조. 세 개의 항. 첫 번째는 행위시법 원칙과 이중처벌 금지. 두 번째는 소급입법에 의한 참정권 제한과 재산권 박탈 금지. 세 번째는 연좌제 금지.
세 가지 모두 같은 정신에서 나왔다. 법은 사람을 예측 가능하게 보호해야 한다. 오늘의 행위가 내일 소급되어 범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내가 하지 않은 일로 벌을 받아서는 안 된다. 같은 죄로 두 번 처벌받아서는 안 된다.


그것이 자유로운 사람이 사는 나라의 조건이었다.
서율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연구실 방향으로. 아직 논문이 있었다. 내일 강의가 있었다. 그리고 열 살 아이처럼 짐을 지고 있는 누군가를 위해 계속 말해야 할 것이 있었다.


죄는 지은 사람만 진다. 과거의 법으로 현재를 재단할 수 없다. 그것이 자유로운 사람이 사는 나라의 약속이다. 그 약속이 지켜지는 날까지, 서율은 가르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었다.


에필로그
2024년 가을, 포항.
서율은 아버지의 편의점을 찾아갔다. 포항 북구 장성동. 어릴 때 살던 동네. 많이 달라져 있었지만 기억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아버지의 편의점은 작았다. 깨끗했다. 아버지 최병훈은 일흔이 다 된 나이에도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서율을 보더니 웃었다.


"왔냐."
"왔어요."
편의점 안에서 두 사람이 컵라면을 먹었다. 아버지와 딸. 말이 많지 않았다. 그냥 같이 있었다.
컵라면을 다 먹고 서율이 말했다.
"아버지, 저 헌법 제13조 3항 때문에 학자가 됐잖아요."
"알아."
"근데 이제는 제1항도 중요하다는 걸 알아요. 소급입법 금지."
"그게 뭔데."
"과거에 한 일을 나중에 새 법으로 범죄 만들면 안 된다는 거예요. 사람이 예측하고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죄를 짓고 벌을 받았잖아. 그게 맞는 거야."
"맞아요. 그런데 아버지가 한 일 때문에 제가 벌을 받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것도 맞는 거예요."
아버지가 서율을 바라보았다. 오래.
"서율아."
"응?"
"헌법이 그런 걸 다 생각했구나."
"그런 걸 당한 사람들이 많아서 만든 거예요. 그 사람들 덕에 저도 헌법학자가 됐고."
아버지가 웃었다. 눈가에 주름이 많은 웃음이었다.


창밖으로 포항의 가을 하늘이 보였다. 높고 맑았다. 서율이 어릴 때 고개를 숙이고 걷던 그 거리 위의 하늘.
지금은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되는 하늘.
죄는 지은 사람만 진다. 그것이 헌법의 약속이었다. 그리고 그 약속이 지켜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서율의 일이었다. 강의실에서, 논문에서, 그리고 아버지의 작은 편의점에서.


뿌리로부터 시작된 것이 여기까지 왔다.
모든 국민은 행위 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하며,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거듭 처벌받지 아니한다.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참정권의 제한을 받거나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 대한민국 헌법 제13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