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이전의 자유에 바치는 소설
주인공 : 임소진(林素眞) — 1979년생, 충남 서천 출신 도시재생 전문가·사회적기업가
배경 : 1979년 서천 ~ 2024년 서울·부산·제주·세종
주제 : 떠날 수 있어야 돌아올 수 있다. 머물 수 있어야 떠날 수 있다. 자유는 움직임 속에서 완성된다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
1988년 여름, 충남 서천군 한산면.
임소진은 아홉 살이었다. 여름이 되면 마을이 조용해졌다. 사람들이 떠났다. 서울로, 대전으로, 인천으로. 논밭을 두고, 빈집을 두고. 소진의 동네는 해마다 조금씩 줄어들었다.
아버지 임창수는 남는 사람이었다. 서천 한산면에서 모시 농사를 지었다. 한산모시. 수백 년 된 직물. 아버지는 그것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했다. 어머니 윤정희도 남았다. 아이들 셋을 키우며 남았다.
그런데 이웃이 떠났다. 옆집 박씨 아저씨가 떠났다. 그 다음 해에 건너편 이씨 할머니 아들이 부모를 데리고 서울로 갔다. 그 다음 해에 소진과 친하던 미연이 가족이 대전으로 이사했다.
"엄마, 미연이 왜 가요?"
"거기 가면 더 잘 살 수 있거든."
"그럼 우리도 가면 안 돼요?"
어머니는 잠시 생각했다.
"가고 싶으면 가는 거야. 안 가고 싶으면 안 가는 거고. 강요받지 않는 게 중요해."
소진은 그 말이 이상했다. 가고 싶으면 간다. 안 가고 싶으면 안 간다. 그것이 당연한 것인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왜 안 가요?"
아버지가 모시밭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가 좋으니까. 그리고 여기 있어야 할 것 같으니까."
"억지로 있는 거 아니에요?"
아버지가 웃었다.
"아니야. 억지로 있으면 여기 있는 게 의미가 없지. 내가 선택해서 있는 거야."
소진은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선택해서 있는 것. 그러면 선택해서 떠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미연이 가족도, 박씨 아저씨도 선택해서 떠난 것이었다.
중학교 사회 시간에 헌법을 배웠다. 제14조.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
딱 한 문장이었다. 짧았다. 그러나 소진에게는 그 짧은 문장이 길었다. 거주의 자유. 어디에 살지를 스스로 정할 수 있다. 이전의 자유. 어디로 이동할지를 스스로 정할 수 있다.
소진은 공책에 썼다.
떠날 자유. 머물 자유. 둘 다 있어야 진짜 자유다.
그리고 덧붙였다.
우리 마을 사람들이 떠나는 건 자유다. 아버지가 남는 것도 자유다. 그런데 왜 마을은 자꾸 비어가는가.
그것이 질문이었다. 떠날 자유는 보장되었다. 그런데 머물 자유는? 머물고 싶어도 머물 수 없는 조건이 된다면, 그것도 자유인가.
고3 때 소진은 서울대 도시공학과에 지원했다. 담임 선생님이 물었다.
"왜 도시공학이야?"
"비어가는 마을을 공부하고 싶어서요."
"그거 연구해서 뭐 할 건데?"
"사람들이 머물고 싶어서 머무는 마을을 만들고 싶어요."
선생님이 잠시 소진을 바라보았다.
"어려운 꿈이네. 하지만 좋은 꿈이다."
이동의 지도
2007년 봄, 서울 도시재생 연구소.
임소진은 스물여덟 살에 서울대 대학원을 마치고 도시재생 연구소에 들어갔다. 연구 주제는 지방 소멸과 인구 이동. 사람들이 왜 떠나는지, 어떻게 하면 머물게 할 수 있는지를 연구했다.
연구를 시작하면서 소진은 데이터를 들여다보았다. 1990년대부터 2007년까지의 인구 이동 통계. 지방에서 수도권으로의 이동이 압도적이었다. 일자리, 교육, 의료, 문화. 모든 것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소진이 더 관심 있는 것은 숫자가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왜 떠나는지. 왜 머무는지. 또는 왜 돌아오는지.
연구소에서 현장 조사를 나갔다. 전남 고흥. 경북 의성. 강원 삼척. 충남 서천. 고향이 포함된 것이 우연은 아니었다.
서천에서 소진은 어릴 때 알던 어른들을 다시 만났다. 많이 줄어 있었다. 남아 있는 분들은 대부분 노인이었다. 소진이 마을 회관에서 면담을 할 때, 한 할머니가 말했다.
"우리 아들이 서울 갔는데, 잘 살아요. 근데 여기 있으면 더 잘 살 수 있었을 텐데."
"왜요?"
"여기가 더 좋으니까. 공기도 좋고, 밥도 맛있고. 근데 돈을 못 버니까 갔지."
"지금도 돌아오고 싶어하시나요?"
할머니가 잠시 생각했다.
"오고 싶다고 하더라고. 근데 뭘 할지 모르겠다고. 일이 없다고."
떠날 자유는 있었다. 돌아올 자유도 법적으로는 있었다. 그런데 돌아올 수 없는 조건이 있었다. 일자리. 소득. 기반.
소진은 그 면담을 마치고 서천 모시밭으로 갔다. 아버지가 아직 거기 있었다. 나이가 들어 허리가 굽었지만, 모시밭 앞에 서면 눈빛이 살아났다.
"아버지, 저 연구 하면서 알았어요."
"뭘?"
"여기 있는 게 자유라는 거요. 억지로 있는 게 아니라, 선택해서 있는 거요. 그런데 그 선택이 가능하려면 조건이 있어야 해요. 여기서 살 수 있는 조건이요."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내가 여기 있을 수 있는 건 모시가 있어서야. 모시로 먹고살 수 있으니까. 그게 없으면 나도 갔을지 몰라."
소진은 그 말을 수첩에 받아 적었다.
자유는 조건이 있어야 완성된다. 거주·이전의 자유는 선택지가 있어야 한다. 어디서든 살 수 있는 조건이 있어야,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자유가 의미 있다.
2010년, 소진은 연구소를 나와 사회적 기업을 창업했다. 이름은 '뿌리와 날개'. 지방 청년들의 정착을 돕는 기업. 귀농·귀촌 컨설팅. 지역 일자리 연결. 빈집 리모델링 지원.
사람들이 물었다.
"그거 돈 돼요?"
"천천히 돼요."
"왜 하세요?"
"머물 자유를 만들고 싶어서요."
자유가 불평등할 때
2017년 겨울, 부산과 서울.
임소진은 서른여덟 살이었다. 뿌리와 날개가 7년째였다. 그 사이에 소진은 결혼했고, 아이가 둘 있었다. 남편은 부산 출신이었다. 두 사람은 서울에 살았다. 서울에 살기로 선택했다. 그러나 그 선택이 항상 자유롭지는 않았다.
그 해 겨울, 소진의 회사 직원 이지현이 퇴사했다. 스물다섯 살. 부산 출신. 서울에서 3년을 일했는데 집값을 감당할 수 없어서 부산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정말 가고 싶어서 가는 거야, 아니면 못 있어서 가는 거야?"
지현이 잠시 생각했다.
"둘 다요. 부산이 그립기도 하고, 여기서 더 있고 싶어도 못 있겠기도 하고."
"어느 쪽이 더 커?"
"솔직히 말하면… 못 있어서가 더 커요."
소진은 그 말을 듣고 오래 생각했다.
헌법 제14조.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 그러나 지현은 서울에 거주할 자유를 경제적 이유로 잃었다. 법적으로는 자유가 있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자유가 없었다.
소진은 세미나에서 발표했다. 제목은 '거주·이전의 자유와 주거권의 상관관계'. 헌법 제14조가 보장하는 자유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경제적 조건, 사회 인프라, 지역 균형 발전.
발표가 끝나고 한 연구자가 물었다.
"결국 거주의 자유가 경제력에 의해 제한된다는 말이죠?"
"그렇습니다. 법적으로는 어디든 살 수 있어요. 그런데 현실에서는 돈이 있어야 원하는 곳에 살 수 있어요. 그것이 형식적 자유와 실질적 자유의 차이입니다."
"해결책은요?"
"지역 균형 발전이에요. 서울만 좋은 것이 아니라, 어디에 살아도 좋은 조건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 거주의 자유가 진짜 자유가 돼요."
그 해 겨울, 소진은 제주도를 방문했다. 제주에 이주해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들도 있었고, 제주 토박이도 있었다. 그리고 집값이 오르면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제주 원주민들도 있었다.
한 할머니가 말했다.
"우리는 여기서 태어났는데, 이제 여기 못 살 것 같아요. 땅값이 너무 올라서."
소진은 그 말을 듣고 느꼈다. 누군가의 이전의 자유가 다른 누군가의 거주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었다. 자유와 자유가 충돌하는 지점.
해결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 충돌을 인식하는 것이 첫 번째였다.
소진은 제주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한반도가 내려다보였다. 산과 강과 들판과 도시. 그 모든 곳에 사람들이 있었다. 어떤 이는 떠나고, 어떤 이는 머물고, 어떤 이는 돌아오고 있었다.
그 모든 움직임이 헌법 제14조가 보장하는 자유였다. 그리고 그 자유가 모든 사람에게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날이 올 때까지, 소진의 일은 끝나지 않을 것이었다.
돌아오는 자유
2024년 봄, 충남 서천.
임소진은 마흔다섯 살이었다. 그 해 봄, 소진은 서울에서 서천으로 이사했다. 15년 만의 귀향이었다.
많은 사람이 물었다.
"왜 내려가요? 커리어는요?"
"여기서도 일할 수 있어요. 그리고 가고 싶어서요."
"갑자기 왜요?"
소진은 생각했다. 갑자기가 아니었다. 오래 생각한 것이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랐고, 회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무엇보다 서천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아버지가 늙어가고 있었다. 모시밭이 줄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소진이 15년 동안 연구하고 일해온 것들이 사실은 서천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걸, 이제는 알고 있었다.
서천에 내려와 소진은 뿌리와 날개의 서천 지점을 열었다. 작은 사무실. 빈집 리모델링 프로젝트. 청년 농업인 연결 사업. 한산모시를 활용한 문화 콘텐츠 개발.
처음에는 조용했다. 그러나 하나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내려온 청년 부부가 빈집에 입주했다. 귀농을 원하던 30대 남성이 아버지의 모시밭 옆에 새 농지를 얻었다. 서천 출신으로 서울에 살던 중년 여성이 고향으로 돌아와 카페를 열었다.
어느 날 오후, 소진은 아버지의 모시밭 앞에 서 있었다. 아버지는 허리가 더 굽었지만 여전히 모시밭을 돌보고 있었다.
"아버지."
"응."
"저 왔어요."
"알아."
"어때요? 제가 온 거."
아버지가 모시밭을 바라보다 말했다.
"좋지. 근데 억지로 온 거 아니지?"
"아니요. 오고 싶어서 왔어요."
"그럼 됐다."
소진은 그 말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참았다. 아버지가 어릴 때 했던 말. 선택해서 있는 거야. 그 말이 지금도 유효했다. 억지로가 아니라 선택해서. 그것이 자유였다.
저녁에 소진은 아이들과 함께 서천 해변을 걸었다.
서해 바다. 노을이 붉게 물들었다. 아이들이 모래사장을 뛰어다녔다.
열두 살 큰딸 은서가 물었다.
"엄마, 여기 좋아요?"
"좋아."
"서울보다요?"
소진은 잠시 생각했다.
"비교할 수 없어. 서울도 좋았고, 여기도 좋아."
"나중에 나도 여기 살아도 돼요?"
"살고 싶으면 살아. 가고 싶으면 가고."
"둘 다 해도 돼요?"
"그럼. 그게 자유야."
은서가 다시 모래사장으로 뛰어갔다. 소진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서해 바다가 붉게 물들었다. 노을이 넓게 펼쳐졌다.
헌법 제14조.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 이 짧은 한 문장이 얼마나 많은 것을 담고 있는지. 떠날 자유. 머물 자유. 돌아올 자유. 그 모든 자유가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소진의 일이었다.
그리고 오늘, 소진은 그 자유를 직접 행사했다. 서천으로 돌아왔다. 선택해서. 자유롭게.
떠날 수 있어야 돌아올 수 있다. 머물 수 있어야 떠날 수 있다. 자유는 움직임 속에서 완성된다.
에필로그
2024년 가을, 서천.
뿌리와 날개 서천 지점이 문을 연 지 반 년이 지났다. 열두 가구가 서천으로 이주했다. 빈집 열다섯 채가 새 사람을 맞았다. 한산모시 체험 프로그램에 서울과 부산에서 사람들이 왔다.
작은 변화였다. 그러나 소진에게는 큰 변화였다. 마을이 조금 시끄러워졌다. 아이 소리가 났다. 카페에 사람이 앉았다.
어느 저녁, 소진은 새로 이주해 온 청년 부부와 마주쳤다. 서울에서 내려온 30대 부부였다.
"어때요, 내려오니까?"
남편이 말했다.
"처음엔 불안했어요. 여기서 살 수 있을까 싶어서요. 근데 지금은 안 내려왔으면 어쩔 뻔 했나 싶어요."
아내가 말했다.
"저는요, 선택할 수 있었다는 게 제일 좋아요. 서울에 있을 수도 있었고, 여기 올 수도 있었고. 억지로 온 게 아니니까요."
소진은 그 말을 듣고 웃었다. 선택할 수 있었다는 게 제일 좋다. 그것이 자유였다.
밤에 소진은 어머니에게 전화했다. 어머니는 대전에 살고 있었다. 몇 년 전에 오빠 따라 대전으로 이사한 어머니.
"엄마, 거기 좋아요?"
"그럼. 근데 서천이 그립긴 하더라."
"그럼 오면 되잖아요."
"그래? 지금도 오면 돼?"
"그럼요. 언제든지요."
전화를 끊고 소진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서천의 밤하늘. 별이 많았다. 서울에서는 보이지 않던 별들이.
어머니가 어릴 때 했던 말. 가고 싶으면 가는 거야. 안 가고 싶으면 안 가는 거고. 강요받지 않는 게 중요해.
그 말이 헌법이었다. 거주·이전의 자유. 짧은 한 문장. 그러나 그 안에 어머니의 말이 있었다. 아버지의 선택이 있었다. 지현의 눈물이 있었다. 제주 할머니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리고 은서가 모래사장을 뛰어가던 뒷모습이 있었다.
자유는 길이었다. 열려 있어야 했다. 어디로든 갈 수 있어야 했다. 어디서든 머물 수 있어야 했다.
그 길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나라. 그것이 소진이 꿈꾸는 나라였다.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
— 대한민국 헌법 제14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