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과 세상을 논하다 (2026년판)
고금소총(古今笑叢) 제사화(第四話) 현대소설판
원전(原典): 유몽인(柳夢寅) 『어우야담(於于野談)』
재화(再話): 홍만종(洪萬宗) 『고금소총(古今笑叢)』
현대 세태 풍자판 재창작 (2026년)
새벽 두 시, 지하철 막차 안
2026년 5월의 새벽 두 시.
서울 지하철 2호선 막차가 신도림(新道林) 역을 출발했다. 차창 밖으로 선로변 가로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스쳐 지나갔다.
객차 안에는 승객이 여섯 명이었다. 두 명은 잠들어 있었고, 두 명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한 명은 편의점 봉지를 들고 명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이현수(李玄秀)였다.
이현수, 서른아홉. 전직 인문학 강사. 現(현) 백수. 정확히는 '긱워커(Gig Worker) 지망생'이라는 것이 최근 스스로 붙인 직함이었지만, 현실은 그냥 백수였다. 대학에서 철학(哲學)을 가르쳤으나 비정규직 계약이 종료되었고, 이후 유튜브 채널 《이현수의 논어(論語) 읽기》를 개설했으나 구독자가 300명을 넘지 못해 수익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는 오늘도 강남 어딘가의 독서 모임에서 2시간 강의를 하고 교통비와 밥값을 합산했을 때 적자인 금액을 받아 돌아오는 길이었다.
이현수는 피곤했다. 아니, 피곤이라는 단어가 맞지 않았다. 疲弊(피폐)— 그 쪽이 더 정확했다. 몸이 아닌 무언가, 자신을 이 세상에 붙잡아두는 어떤 실이 서서히 닳고 있다는 감각이었다.
그가 가방에서 낡은 책 한 권을 꺼냈다.
고금소총(古今笑叢)이었다. 강의 자료로 쓰다가 가방에 넣고 다닌 지 석 달째였다. 그는 이 책의 귀신 이야기 편을 펼쳐 읽으려다 그만 눈이 감겼다.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뜨니 객차 안이 변해 있었다. 나머지 다섯 명이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아니,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앉았던 자리에 사람의 형태만 남아 있었다.
형태는 있으나 내용이 없었다. 윤곽선만 있고 그 안이 비어 있는, 마치 종이를 오려낸 것처럼.
그리고 이현수 맞은편 자리에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늙어 보이기도 했고 젊어 보이기도 했다. 흰 모시 계열의 무언가를 걸치고 있었는데, 그것이 옷인지 아니면 그냥 흰빛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얼굴은 있었다. 인상착의가 뚜렷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얼굴이었다. 눈이 있었고, 입이 있었다. 그리고 그 눈이 이현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현수는 놀라지 않았다. 철학 전공자라서가 아니었다. 너무 피곤해서 놀랄 에너지가 없었다.
"귀신입니까?"
그가 물었다.
맞은편의 존재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언제 죽었소?"
"죽은 때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죽은 지 오래되어서요."
목소리는 있었다. 성별을 알기 어려운 소리였다. 잔잔하고 평탄했다.
"이 시간에 지하철을 타는 귀신이 있습니까."
"산 사람이 타는 곳이면 귀신도 탑니다. 산 사람이 몰리는 곳에 귀신이 따르는 법이니까요. 요즘 가장 귀신이 많은 곳이 어딘 줄 아십니까?"
이현수가 대답하지 않자 귀신이 스스로 말했다.
"국회(國會)입니다."
귀신의 세태 진단
이현수는 피로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아니, 더 정확히는, 피로 위에 흥미가 덮이는 것을 느꼈다. 이런 대화는 오랜만이었다.
"국회에 귀신이 많다고요."
"산 사람의 탈을 쓰고 다니는 이들이 많아서요. 제가 보기엔 그것이 저보다 더 무섭습니다."
이현수가 작게 웃었다.
"귀신도 정치 이야기를 합니까."
"저는 정치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선생은 오늘 강의를 하고 오셨지요?"
"어떻게 알았소."
"가방에서 책 냄새와 패배한 자의 냄새가 함께 납니다. 두 냄새가 섞이면 대개 선생님이나 예술가입니다."
이현수는 그 말이 기분 나빠야 하는지 아닌지 잠시 생각했다. 결론이 나지 않아서 그냥 넘어갔다.
"그래서 세상이 어떻다고 생각하오, 귀신 양반은."
귀신이 잠시 창밖을 바라봤다. 어둠 속 선로가 빠르게 지나갔다.
"제가 살았을 때와 비교하면 세 가지가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세 가지가 똑같습니다."
"달라진 것부터 말해보시오."
"첫째, 배고픔의 이유가 달라졌습니다. 제 시절에는 흉년(凶年)과 수탈(收奪) 때문에 굶었습니다.
지금은 먹을 것이 넘치는데 배고픕니다. 불평등(不平等)이 굶주림을 만들어냅니다. 곳간은 가득 찼는데 특정 사람들의 곳간만 계속 가득 차고, 나머지 곳간은 계속 빕니다."
"그건 조선시대도 마찬가지 아니었소."
"양반(兩班)과 상민(常民) 사이의 곳간 차이는 모두가 알았습니다. 지금은 곳간이 같은 시작점에서 달라지는 것처럼 보이게 꾸며놓으니 더 교묘합니다. '기회는 평등하고 결과는 다를 수 있다'는 말이 있던데, 그 말이 가장 잘 쓰이는 곳이 不平等을 정당화하는 자리였습니다."
이현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말이 이상하리만치 정확하게 자신의 어느 부분을 건드렸다.
"둘째로 달라진 것은?"
"말의 속도입니다. 제 시절에는 거짓말이 퍼지는 데 최소 사흘이 걸렸습니다. 장터를 거치고 주막을 거쳐야 했으니까요.
지금은 거짓말이 3초 안에 전국으로 퍼집니다. 그런데 정정(訂正)은 여전히 사흘이 걸립니다. 아니, 더 걸립니다. 거짓말의 속도가 진실의 속도를 앞지른 세상은 제가 살았을 때도 두려움의 대상이었는데, 지금은 그게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이야기군요."
"그 이름은 모르지만, 사람들이 손바닥만 한 것을 들고 끊임없이 들여다보는 그것 말입니까.
그 안에서 누군가가 매일 죽고 매일 살아납니다. 실제로 죽고 사는 것이 아니라 평판(評判)이 죽고 삽니다. 平判이 실제 삶보다 중요해진 세상— 귀신인 저로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죽고 나서 평판이 남은 경우인데, 살아있는 동안 미리 평판만 관리하다 실제 삶을 놓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이현수가 창밖을 봤다. 지하철이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어둠이 창유리에 그의 얼굴을 비추었다.
"셋째 달라진 것은?"
귀신이 처음으로 잠깐 침묵했다.
"외로움의 형태입니다. 제 시절에도 외로운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외로움에는 이웃이 있었습니다. 옆집 사람이 들어와서 밥이라도 같이 먹었습니다. 지금의 외로움은 혼자지만 혼자인 것처럼 보이지 않게 포장되어 있습니다. 수백 명과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실제로 자신의 이름을 불러줄 사람이 없는 것— 그것이 가장 낯선 外로움입니다. 저는 귀신이어서 외롭다고 생각했는데, 산 사람들의 외로움이 제 것보다 깊더군요."
이현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이현수가 물었다.
"그럼 달라지지 않은 것은 무엇이오."
귀신이 이번에는 주저하지 않았다.
"첫째, 힘있는 자는 법(法) 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제 시절에는 그것이 공공연했습니다. 지금은 그것이 공공연하지 않게 작동합니다. 절차(節次)가 정교해졌을 뿐, 힘있는 자가 빠져나가는 구멍의 크기는 같습니다."
"둘째는?"
"아첨(阿諂)이 出世(출세)의 지름길이라는 것입니다. 제 시절에는 아첨하는 자를 부끄러워했습니다. 지금은 그것을 '처세술(處世術)'이라 부르며 책으로 팝니다. 서점(書店)에서 제가 가장 많이 보이는 책이 '어떻게 하면 윗사람에게 잘 보이는가'에 관한 것들이었습니다."
이현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셋째는?"
귀신의 눈이 이현수를 직접 바라봤다.
"선생처럼 진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여전히 배가 고프다는 것입니다."
이현수는 그 말에 뭔가 답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그가 입을 열었을 때 나온 것은 이것이었다.
"귀신도 유튜브 채널 있소?"
귀신이 잠깐 멈추더니 말했다.
"없습니다. 하지만 있었다면 구독자가 선생보다는 많았을 것 같습니다."
이현수는 크게 웃었다. 오랜만의 웃음이었다.
이현수의 반격
웃음이 가신 자리에 이현수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귀신 양반, 이번에는 내가 물어보겠소. 당신들— 귀신들— 도 문제가 있지 않소?"
귀신이 약간 눈을 가늘게 했다. 그것이 흥미롭다는 표현인지 경계한다는 표현인지 알 수 없었다.
"말씀하시지요."
"귀신들이 세상을 관찰한다고 했는데, 그럼 왜 뭔가를 하지 않소? 관찰만 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유튜브 알고리즘이 흘려보내는 콘텐츠와 다를 게 없지 않소? 본다는 것은 책임을 전제하는 것이오. 아는 자가 말하지 않으면 그것도 공모(共謀)가 아니겠소?"
귀신이 잠시 침묵했다. 처음으로 표정에 변화가 왔다.
"그 말은 선생 자신에게도 해당하는 것 같군요."
이현수가 멈칫했다.
"선생은 철학(哲學)을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철학자는 세상을 관찰하는 사람입니까, 세상을 바꾸는 사람입니까? 마르크스(Marx)는 그 차이를 날카롭게 지적했지요.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해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變革)하는 것이다.'"
"마르크스를 아시오?"
"제가 살았을 때는 없었지만, 죽고 나서 충분히 읽었습니다. 죽은 뒤의 시간은 많으니까요."
이현수는 할 말이 없었다.
귀신이 계속했다.
"선생은 진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배고프다고 제가 말하자 웃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웃을 일입니까? 배고픈 게 맞다면 바꾸어야 하고, 바꿀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고, 방법이 없다면 그 불가능 속에서도 계속 말해야 합니다. 관찰과 발언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것— 그것이 선생의 진짜 피로(疲勞)가 아닙니까?"
이현수는 창밖을 바라봤다. 지하철이 어느 역에 멈춰 있었다. 역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당신은 어떻게 죽었소."
그가 물었다.
"바른말을 했습니다."
귀신이 짧게 대답했다.
"바른말을 해서 죽었소?"
"그 시절에는 그랬습니다. 지금은 바른말을 해도 죽지 않습니다. 다만 배가 고프지요. 어떻게 보면 죽는 것보다 오래 배고픈 쪽이 더 힘든 일일 수도 있습니다."
이현수는 그 말이 위로인지 공격인지 잠시 따져봤다. 역시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귀신 양반은, 내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귀신이 대답했다.
"저는 처방(處方)을 드리러 온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것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살았던 시절에도, 세상이 썩었다 탄식하는 사람은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탄식을 일기장에만 쓴 사람과, 밖에서 말한 사람의 남긴 것이 달랐습니다. 선생이 가르치는 것이 철학이라면, 그 철학의 첫 번째 덕목(德目)이 용기(勇氣)였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을지로(乙支路) 역, 새벽 세 시
지하철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현수가 눈을 비볐다. 맞은편 자리가 비어 있었다. 다섯 명의 윤곽선도 사라져 있었다. 원래 있던 승객들이 다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두 명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고, 두 명은 여전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꿈이었다.
당연히 꿈이었다.
이현수는 무릎 위의 고금소총을 내려다봤다. 책이 펼쳐진 채였다. '귀신 편' 어딘가였다. 그는 그 페이지를 읽으려다, 천천히 책을 덮었다.
을지로입구(乙支路入口) 역이었다. 그는 그 역에서 내리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내렸다.
새벽 두 시 반의 을지로 거리에 사람이 드물었다. 가로등이 황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공사 중인 건물이 있었다. 포장마차 한 대가 영업 중이었다. 이현수는 포장마차 앞에 섰다.
"뭐 드릴까요."
"소주 한 잔이요."
"안주는요?"
이현수가 잠깐 생각했다.
"황태(黃太) 국물 있으면요."
주인 아주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갔다.
이현수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낡은 가방을 내려놓으며 스마트폰을 꺼냈다. 유튜브 앱을 열었다. 《이현수의 논어 읽기》 채널이었다. 구독자 307명. 어제보다 7명이 늘어 있었다.
그는 잠시 그 숫자를 바라보다가, 앱을 닫고 메모장을 열었다. 그리고 쓰기 시작했다.
오늘 밤 꿈에서 귀신을 만났다. 귀신이 세상 이야기를 했다. 나는 철학자답지 않게 웃기만 했다. 귀신이 말했다— 바른말을 해서 죽었다고. 나는 바른말을 해서 배가 고프다. 어느 쪽이 더 낫냐고 귀신에게 묻지 않은 것이 지금 생각하면 아쉽다. 내일 영상을 찍어야겠다. 제목은 이렇게 하자:
「2026년, 공자라면 무엇을 탄식했을까」
소주 한 잔이 탁자 위에 놓였다.
이현수는 잔을 들었다. 을지로의 가로등을 향해 잔을 가볍게 올렸다. 누군가에게 건배하는 것처럼.
"바른말을 해서 죽은 당신에게."
혼잣말이었다. 포장마차 아주머니는 듣지 못했다.
소주가 넘어갔다. 차가웠다. 오래간만에 차가운 것이 좋았다.
그날 밤 이현수가 새벽 내내 찍은 영상은 다음 날 오후에 올라왔다. 영상 제목은 예정대로였다. 조회수는 처음 24시간 동안 4,200회를 기록했다. 평소의 열네 배였다.
댓글 중 하나가 있었다.
"선생님, 오늘따라 뭔가 달라진 것 같아요. 무서운데 재밌어요."
이현수는 그 댓글에 답글을 달았다.
"귀신한테 혼쭐 나서 그렇습니다."
그 답글에 '좋아요'가 스물두 개 달렸다.
세상에는 귀신이 있어야 말해지는 말들이 있다.
귀신문답(鬼神問答)— 귀신과 세상을 논했다는 것은, 어쩌면 지하철 막차 안에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비로소 자기 자신과 마주앉은 시간을 가리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시간을 가진 사람은, 다음 날 조금 달라져 있었다.
"鬼가 말하고 人이 듣는다. 산 자가 하지 못하는 말을 죽은 자가 대신 하는 것— 그것이 고금소총(古今笑叢)의 정신이다."
(귀신문답 발문(跋文) 정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