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적이 청렴함에 혼쭐 나다
고금소총(古今笑叢) 제이화(第二話) 현대소설판
원전(原典): 유몽인(柳夢寅) 『어우야담(於于野談)』
재화(再話): 홍만종(洪萬宗) 『고금소총(古今笑叢)』
한양 최고의 도적, 칼손잡이 막동
숙종(肅宗) 중엽, 한양(漢陽) 도성 안팎에 소문이 파다한 도적이 있었다. 이름은 없었다. 세상이 붙여준 이름은 刀把幕同(도파막동)— 칼자루 막동이었다. 본명은 아무도 몰랐고, 막동 자신도 이미 오래전에 잊어버렸다.
막동은 열다섯에 아비를 잃었다. 흉년(凶年) 세 해가 겹치던 해였다. 어머니는 그보다 두 해 앞서 먼저 떠났다. 남은 것은 갓난아기 여동생과, 비어버린 뒤주와, 짚을 섞어 엮은 허름한 초가 한 채뿐이었다.
막동은 사흘을 굶은 끝에 처음으로 남의 집 뒤란에 들어가 달무리 아래 도마 위에 놓인 꿩 한 마리를 훔쳤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막동은 이미 도성 안에서 손꼽히는 夜行者(야행자)가 되어 있었다. 담을 타는 솜씨는 고양이보다 날랬고, 자물쇠를 여는 기술은 장인(匠人)보다 정교했다. 그는 원칙이 있었다. 이른바 세 가지 도적의 법도(法度)였다.
첫째, 어린아이 있는 집은 건드리지 않는다.
둘째, 홀어미 사는 집은 건드리지 않는다.
셋째, 나라의 녹봉(祿俸)만으로 사는 청관(淸官)의 집은—
이 셋째 원칙만큼은 지금껏 한 번도 지켜야 할 일이 없었다.
청관이라는 것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막동이 한평생 뒤지고 다닌 집들은 한결같이 넘치거나 또는 넘쳐흘렀다. 낮에는 청렴하다 이름 날리는 자들도 밤에는 어김없이 장롱 깊숙한 곳에 황금을 숨겨두었다. 막동은 그것을 잘 알았다.
그러다 그해 겨울, 막동은 처음으로 셋째 원칙이 시험받는 상황을 만났다.
조사 대상은 吏曹(이조) 소속 六品(육품) 郞廳(낭청) 윤형진(尹亨進)이었다. 나이 마흔셋. 관직에 든 지 십오 년째. 이름이 도성에 자자하되 그 이름의 내용이 남달랐다.
"尹郞廳(윤낭청)은 하루 세 끼 보리밥에 반찬이 두 가지를 넘은 적이 없다 하더라."
"윤낭청은 관아(官衙)에서 받은 땔감도 집에 가져가지 않고 고스란히 돌려보낸다더라."
"그 댁 마님이 생일이 되어도 고기 한 근 사지 못한다 하더라."
저잣거리 술집에서도, 반촌(泮村) 선비들 사이에서도, 심지어 의금부(義禁府) 나졸들 사이에서도 윤형진의 이름은 두 가지 상반된 감정으로 불렸다. 어떤 이는 존경했고, 어떤 이는 비웃었다. 세상에 저리 어리석게 사는 것도 재주라고.
막동은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 코웃음을 쳤다.
청렴한 척하는 것들이 가장 교묘하게 숨기는 법이다.
그는 윤낭청의 집을 며칠 동안 멀리서 관찰했다. 훈련방(訓練坊) 뒷골목 끝에 있는 기와집이었다. 기와는 맞으나 작았다. 솟을대문은커녕 나무로 엮은 사립문이 전부였다. 담도 낮았다. 관직 십오 년 된 낭청의 집이 이 정도라니.
겉만 저리 꾸며놓은 것이다. 안은 다를 터.
막동은 첫날 밤은 그냥 돌아왔다.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선뜻 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틀째 밤, 그는 마침내 낮은 담을 뛰어넘었다.
넘어선 담 안에서 마주한 것
동짓달 초사흘 밤이었다. 달은 없었다. 먹구름이 하늘 전체를 덮어 별빛도 드물었다. 그야말로 야행(夜行)에 최적인 밤이었다.
막동은 소리 없이 내려섰다. 발이 땅에 닿는 순간, 발밑의 감촉이 이상했다. 흙이 말라 있었다. 서울 안의 집들은 사랑채 둘레에 모래를 깔거나 돌을 박는다. 그런데 이 집 뒷마당은 그냥 맨흙이었다. 굳고 단단했다. 가난한 집의 땅이었다.
사랑채(舍廊-)로 먼저 갔다. 창문 틈새로 안을 살폈다. 안에 사람이 없었다. 촛불 한 자루가 낮게 타고 있었고, 책상 위에 문서(文書)들이 쌓여 있었다. 막동은 방문을 밀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자물쇠도 없었다.
방 안에 들어선 막동은 천천히 주위를 살폈다.
책. 책. 또 책. 사방 벽이 온통 책이었다. 낡은 것들이었다. 새 책은 보이지 않았다. 표지가 닳고 닳아 글자를 알아보기 힘든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책상 위에는 벼루 하나, 붓 몇 자루, 그리고 관아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공문서 초안들이 흩어져 있었다. 구석에 오래된 나무 궤가 하나 있었다. 막동은 조용히 그것을 열었다.
비었다.
정확히는, 두루마리 한 뭉치와 편지 몇 장이 전부였다. 막동은 두루마리를 펼쳤다. 관직 임명장이었다. 十五年(십오년) 동안 받은 고신(告身)들— 하나같이 육품 이하의 낮은 벼슬들이었다. 뇌물을 쓰지 않으면 올라가기 힘든 판에, 이 사람은 십오 년 내내 자리 하나도 올리지 못했구나.
막동은 궤를 닫고 안채(內-)로 향했다.
안채 부엌 앞에서 발을 멈췄다. 장독대(醬甕臺) 앞에 도자기 독들이 서너 개 있었다. 크지 않았다. 막동은 뚜껑을 하나씩 열어봤다. 된장. 간장. 그리고 김치. 겨우내 버틸 양식이 이것이 전부였다. 고기 한 점 없었다. 생선 한 마리 없었다. 부엌 선반 위에는 자루가 하나 있었다. 쌀자루였다. 막동은 그것을 들어올렸다.
가벼웠다.
너무 가벼웠다.
막동은 자루 입을 열었다. 보리쌀이었다. 그것도 한 말이 채 안 되었다. 관직 십오 년의 가장이 한양 도성 안에서 겨울을 나는 살림이 이것이었다.
막동은 잠시 그 자루를 든 채 서 있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뭔가 잘못된 것이다. 내가 잘못 짚은 것이다.
그는 안방으로 갔다. 부부가 자고 있었다. 남자는 코를 골았다. 여자는 등을 돌리고 누워 있었다. 이불이 얇았다. 동짓달인데 솜이 적게 든 이불 한 채로 두 사람이 덮고 있었다. 막동은 그 이불을 내려다봤다.
구석에 반닫이(半-)가 있었다. 막동은 열었다. 옷가지 몇 벌이 있었다. 관복(官服) 한 벌, 남자 평복 두 벌, 여자 치마저고리 서너 벌. 낡아서 군데군데 기운 흔적이 있었다. 기운 솜씨가 정성스러웠다. 안주인이 직접 기운 것임을 막동은 한눈에 알았다. 반닫이 맨 아래에는 작은 천 주머니 하나가 있었다.
막동은 그것을 꺼냈다.
열자 엽전(葉錢)이 쏟아졌다. 셌다. 삼십 닢이었다. 이조 육품 낭청이 장롱 밑에 숨겨둔 비상금의 전부가 삼십 닢이었다. 막동은 그 동전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한참을 바라봤다.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도적이 부끄러움을 알다
막동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가 한양 도성 안에서 뒤진 집들 가운데 이런 집은 없었다. 아니, 이런 집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벼슬아치는 탐한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였다. 막동이 알아온 세상은 그런 세상이었다. 청렴하다
소문난 자도 열어보면 장롱 속에 비단과 은자(銀子)가 나왔다. 목민관(牧民官)이 청렴하다 칭송받으면 그것은 남보다 조금 덜 훔친다는 뜻이었지, 진짜로 없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집은 없었다. 진짜로 없었다.
막동의 눈에 이상한 것이 고였다. 그는 손등으로 눈가를 훔쳤다. 이것이 무엇인지 스스로도 잘 알지 못했다. 분노인지, 수치인지, 아니면 무언가 오래 잠들어 있던 감정이 불쑥 깨어난 것인지.
그는 손바닥 위의 엽전 삼십 닢을 다시 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반닫이 맨 아래에 도로 집어넣었다. 뚜껑을 닫았다.
부엌으로 돌아갔다. 자신의 전대(纏帶)를 열었다. 그 안에는 오늘 밤 여기 오기 전에 전날 다른 집에서 빼낸 은자 열 냥이 들어 있었다. 막동은 그것을 꺼내 장독대 위에 올려놓았다.
잠시 생각하다 다시 전대를 열었다. 이번에는 오늘 밤 이 집에 들어오면서 갖고 들어온 자신의 쌈짓돈 다섯 냥도 꺼냈다. 합하여 열다섯 냥을 된장독 뚜껑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뒷마당을 가로질러 담을 뛰어넘어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새벽 두 시도 채 안 된 시각이었다.
다음날 아침, 안주인 李氏(이씨)가 부엌에 들어섰다가 장독대 위의 은자를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다. 윤형진이 달려왔다. 두 사람은 그 돈을 오랫동안 말없이 내려다봤다.
"도적이 든 것 같소."
이씨가 말했다.
"아무것도 없어진 것은 없소?"
"없어요. 아무것도."
윤형진은 은자 열다섯 냥을 들어 빛에 비춰봤다. 도성 안에서 유통되는 은자였다. 어떤 경로로 들어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씨에게 말했다.
"이것을 쓸 수는 없소."
"왜요?"
"이것이 어디서 온 돈인지 모르오. 남의 것을 훔쳐온 것일 수도 있소. 그것을 우리가 쓰면 남의 죄에 내가 가담하는 것이오."
이씨는 잠시 남편을 바라봤다.
그녀는 이 사람과 십오 년을 살았다. 그 십오 년 동안 이 사람 때문에 추운 겨울을 났고, 생일에 고기 한 점 먹지 못했고, 해마다 바라던 새 치마를 끝내 사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이 사람의 말이 당연하게 들렸다.
"그럼 어찌하시렵니까?"
"관아(官衙)에 신고하고, 인근 저잣거리 방(榜)을 붙여 잃어버린 임자를 찾겠소. 아무도 찾지 않으면 의금부(義禁府)에 넘기거나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겠소."
그날 윤형진은 아침을 마치고 관아로 출근하여 간밤에 있었던 일을 상관에게 보고했다. 한양 장안에 다시 이 이야기가 퍼지는 데는 사흘도 걸리지 않았다.
도적의 마지막 편지
보름 뒤, 윤형진의 사립문 앞에 접힌 쪽지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나졸이 발견하여 윤형진에게 전했다. 거친 손으로 쓴 글씨였다. 배운 것이 없는 이가 억지로 배워 쓴 것처럼, 획이 삐뚤고 힘이 넘쳤다.
"열다섯 냥은 도로 가져가지 않겠습니다. 가져가면 나으리 마님께서 파출소에 신고하실 줄 알면서도 내버리고 왔습니다. 이 돈의 임자를 찾아 돌려드리는 것이 마땅하나, 저는 그 임자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나으리처럼 마음 깨끗한 분께서 올바로 쓰시는 것이 그 돈이 갈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이라 믿기에 그리하였습니다. 저는 더 이상 이 도성 안에 있지 않겠습니다. 나으리 댁만큼은 다시는 기웃거리지 않겠습니다. 그것이 제 법도(法度)입니다."
낙관(落款)도 이름도 없었다. 다만 종이 끝에 작은 칼손잡이 모양이 하나 그려져 있었다.
윤형진은 그 쪽지를 읽고 또 읽었다. 그러다 조용히 접어 품 안에 넣었다.
그가 이씨에게 이 쪽지를 보여준 것은 저녁 식사가 끝난 뒤였다. 이씨가 쪽지를 읽으면서 눈가에 무언가 번졌다. 한참 있다가 이씨가 말했다.
"이 사람, 배운 사람은 아니지만 남편보다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소."
윤형진이 웃었다.
"그 말은 내가 나쁜 사람이라는 뜻이오?"
"아니, 당신도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뜻이오."
부부가 오래간만에 함께 웃었다. 그날 저녁 밥상에는 어디서 났는지 국물이 있는 뼛국 한 그릇이 추가되어 있었다.
이씨는 그것에 대해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고, 윤형진도 묻지 않았다.
칼손잡이 막동은 그 겨울이 끝나기 전에 한양을 떠났다. 간 곳은 아무도 몰랐다. 다만 그해 이후로 막동이라는 이름이 한양 도성 안에서 들리지 않았다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훗날 어떤 이는 전했다. 막동이 도성 남쪽 경기도 어느 고을에 자리 잡고 성실한 머슴으로 살았다고. 해마다 봄이 되면 그 고을 원님(員-)이 누군지 먼저 살폈고, 청렴하다 소문난 원님이 부임하면 그 원님이 이임(離任)하는 날 관아 앞에 은자 몇 냥이 익명으로 놓였다고. 사람들은 그것을 두고 막동의 짓이라 했지만, 아무도 확인하지는 못했다.
세상에는 본래 確認(확인)되지 않아야 더 오래 남는 이야기들이 있다.
강도징청(强盜懲淸)— 도적이 청렴함에 혼쭐 났다는 것은, 어쩌면 그 도적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주기적으로 받아야 할 혼쭐인지도 모른다.
"强者가 淸者 앞에 무릎 꿇는 것— 그것이 법(法)도 아니고 힘(力)도 아니고 오직 부끄러움(恥)이었다."
(고금소총 강도징청 발문(跋文) 정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