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로 세금을 면하다 (2026년판)
고금소총(古今笑叢) 제삼화(第三話) 현대소설판
원전(原典): 유몽인(柳夢寅) 『어우야담(於于野談)』
재화(再話): 홍만종(洪萬宗) 『고금소총(古今笑叢)』
현대 세태 풍자판 재창작 (2026년)
유리지갑과 철갑금고
2026년 5월, 종합소득세(綜合所得稅) 신고 기간이 끝난 직후였다.
서울 마포구(麻浦區) 망원동(望遠洞) 골목 안, 작은 국숫집이 있었다. 간판은 '할머니국수'였다.
오십 대 초반의 주인 오봉순(吳鳳順)이 혼자 운영하는 스물두 평짜리 가게였다. 테이블 여섯 개, 메뉴 세 가지— 멸치국수, 비빔국수, 수육 한 접시. 가게를 연 지 열두 해째였다.
오봉순은 오늘도 세금 고지서(告知書)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국세청(國稅廳) 홈택스(Hometax)에서 출력한 것이었다. 종합소득세 고지 금액이 지난해보다 삼십만 원이 올라 있었다.
"왜 올랐어?"
그녀가 옆에 앉은 조카 오창혁(吳昌赫)에게 물었다. 오창혁은 스물여덟 살이었다. 이름뿐인 세무사(稅務士) 시험을 준비하다 포기하고 지금은 아르바이트로 고모 가게를 도우며 유튜브 알고리즘을 연구 중이었다.
"고모, 지난해 수육 값 올렸잖아요. 매출이 올라가니까 소득세도 올라가죠."
"매출은 올라갔는데 재료값도 오르고 가스값도 오르고 내 손에 남은 건 지난해랑 비슷해. 그런데 세금만 올라?"
"그게… 시스템이 그렇게 되어 있어요."
오봉순은 고지서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저 강 건너 상암동(上岩洞) 방송국 건물 있잖아. 거기 어느 유명한 방송인이 法人(법인) 만들어서 출연료를 경비(經費)로 처리하고 실효세율(實效稅率)이 나보다 낮다는 거 알아?"
오창혁이 조용히 노트북을 들여다봤다.
"그거 불법은 아니에요."
"불법이 아닌데 불공평하다는 게 더 이상한 거지."
오봉순은 에이프런 주머니에서 계산기를 꺼냈다. 두드렸다. 올해 낸 세금, 4대 보험(四大保險) 사업주 부담분, 각종 공과금(公課金), 임차료(賃借料). 그것들을 합산하면 연간 순이익의 사십이 퍼센트(%)였다. 그녀는 계산기를 내려놓았다.
"나는 그냥 국수 삶는 사람인데."
그날 저녁 오창혁은 유튜브를 보다가 한 영상을 발견했다.
제목은 「유리지갑(琉璃-)에서 철갑(鐵甲)으로— 합법적 절세의 모든 것」이었다. 조회수 180만 회. 채널명은 《세금해방일지(稅金解放日誌)》였다. 운영자는 자신을 '前(전) 세무조사관 출신 절세 전문가'라고 소개했다.
오창혁은 이어폰을 꽂고 영상을 처음부터 봤다.
"직장인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봉입니다. 원천징수(源泉徵收)로 월급에서 칼같이 떼어가는 반면, 소득이 노출되지 않는 사람들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알려드릴 것은 불법이 아닙니다. 모두 합법입니다. 다만 아는 사람만 씁니다."
영상은 여든일곱 분짜리였다. 오창혁은 끝까지 봤다.
다음 날 아침 그는 고모에게 말했다.
"고모, 제가 방법을 찾은 것 같아요."
백 가지 꾀의 해부
오창혁이 펼쳐 보인 것은 노트북 화면이었다. 그는 밤새 정리한 것들을 보여줬다.
"일단 고모가 지금 사업소득자(事業所得者)잖아요. 법인을 만들면 달라집니다. 법인세율 최고가 이십사 퍼센트인데, 고모 현재 소득 구간 소득세율은 이십사에서 삼십오 퍼센트예요. 같은 돈을 벌어도 더 많이 내고 있어요."
"법인을 만들면?"
"일인 법인(一人法人)을 만들고, 고모가 법인에 월급을 받는 형식으로 바꿔요. 그 월급을 최저 구간으로 설정하면 소득세가 줄어요. 나머지는 법인 유보이익(留保利益)으로 남겨두거나 경비로 처리하면 되고요."
오봉순이 찡그렸다.
"그거 복잡하지 않아?"
"복잡해요. 그런데 저 강 건너 방송인은 다 그렇게 해요. 부동산 임대업자도 다 그렇게 해요. 우리만 모르는 거예요."
오봉순은 잠시 침묵했다.
"또 있어요. 고모 가게 인테리어비(interior費), 지난해 새로 냈잖아요. 그거 固定資産(고정자산)으로 안 잡고 경비로 바로 처리할 수 있었어요. 그냥 넘어갔는데, 수정신고(修正申告)하면 지난해 세금 일부 환급받을 수 있어요."
"수정신고를 내가 할 수 있어?"
"홈택스에서 해요. 근데 고모 혼자 하기 힘드니까 제가 도와드릴게요."
"세무사한테 맡기면 안 돼?"
오창혁이 머뭇거렸다.
"세무사 수임료(受任料)가 연간 백이십만 원이에요. 절세 금액이 그보다 더 나와야 이익이 되는데, 고모 규모에서는 그게 애매해요. 그래서 세무사들이 영세 자영업자(零細自營業者)는 그냥 쉽게 신고하게 두는 경향이 있어요. 절세는 돈 있는 사람한테 집중적으로 해주고요."
오봉순은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가난한 사람이 더 많이 내는 거야."
"… 그게 의도된 건지, 아니면 시스템이 그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어요. 어쨌든 결과는 그래요."
오봉순이 일어섰다. 냄비 뚜껑을 열고 육수를 저었다. 향이 퍼졌다. 잠시 그 향을 맡다가 그녀가 말했다.
"창혁아, 근데 나 한 가지 물어볼게."
"뭐요?"
"그거 다 합법이야?"
"네, 합법이에요."
"그럼 왜 나는 지금껏 그걸 몰랐어? 합법인데."
오창혁이 대답하지 못했다.
"합법인데 아는 사람만 쓰는 제도— 그게 과연 공정한 제도냐는 거지."
詐技(사기)와 合法(합법) 사이
오창혁이 유튜브 채널 《세금해방일지》를 다시 찾은 것은 그날 오후였다. 그는 댓글을 훑어봤다. 댓글이 이천 개가 넘었다. 대부분이 같은 내용이었다.
"저도 해봤는데 효과 있었어요."
"직장인은 이런 거 못 쓰죠. 결국 회사 다니는 사람만 손해."
"법인 만드는 비용이 더 들어서 포기했어요."
"강남 세무사는 이런 거 기본으로 다 해준다던데."
그리고 하나의 댓글이 눈에 띄었다.
"저는 전직 국세청 직원인데요. 댓글로 말하면 안 되는 내용이지만, 실제 고액 세금 조사는 평범한 자영업자한테는 거의 안 나가요. 행정 비용 대비 추징액이 맞지 않아서요. 반면 수십억 탈루 혐의가 있어도 큰 기업이나 유력 인사는 정치적으로 민감해서 조사가 쉽지 않아요. 세금은 결국 힘없는 사람이 제대로 내는 구조입니다."
오창혁은 그 댓글을 캡처했다.
그리고 고모에게 보여줬다.
오봉순은 그것을 읽고 나서 웃었다. 우습다는 웃음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것을 드디어 활자로 확인하는 사람의 웃음이었다.
"창혁아."
"네."
"고모가 지금부터 하나 해볼게."
"뭘요?"
오봉순은 앞치마를 고쳐 묶었다.
"법인 만드는 거. 근데 법인 이름을 '할머니국수 주식회사(株式會社)'로 하고 싶어. 되냐?"
오창혁이 웃었다.
"돼요."
"그리고 하나 더. 고모가 그동안 소득세 낸 것, 지난 오 년치 다 다시 들여다보고 싶어. 너랑 같이. 내가 빠뜨린 경비가 얼마나 되나 보고 싶어."
"그거 수정신고 기간이 지나면 환급 못 받는 게 있어요."
"알아. 그래도 알고 싶어. 내가 얼마나 더 냈는지."
오창혁이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날 저녁 내내 오봉순의 지난 오 년치 세금 신고서를 뒤지기 시작했다. 육수가 넘치는 걸 두 번이나 놓쳤다.
그날 밤 오창혁은 유튜브 영상을 하나 찍었다. 장비는 스마트폰 하나였다. 배경은 할머니국수 주방이었다.
제목은 이랬다: 「국숫집 고모와 함께 홈택스 파헤치기— 유리지갑 자영업자 절세 실전 1편」
영상 안에서 오봉순이 직접 나왔다.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저는 그냥 국수 삶는 사람인데요. 오늘 제 세금 신고서를 처음으로 제대로 들여다봤습니다. 창피한 얘기지만, 모르는 게 많았어요. 아는 사람은 합법적으로 덜 내고, 모르는 사람은 알아서 다 낸다는 게— 세금이 원래 이래도 되는 건가 싶기도 했고요."
영상은 이십 분이었다. 다음 날 오후까지 조회수 삼만 이천 회를 기록했다.
詐技(사기)가 아니라 知識(지식)이다
한 달 뒤, 오봉순의 가게에 손님이 한 명 왔다. 아무것도 이상한 점이 없는 사십 대 남자였다. 멸치국수를 먹으며 혼자 앉아 있다가, 계산할 때 말을 걸었다.
"혹시 저번에 유튜브 나오신 분 아닌가요. 세금 영상."
"맞아요."
남자가 지갑에서 명함을 꺼냈다.
한국납세자연맹(韓國納稅者聯盟) 정책실장 김태영(金泰永)
"저희 단체에서 자영업자 세금 불평등 관련 캠페인을 준비 중입니다. 혹시 사례 제보나 인터뷰에 응해주실 수 있을까요?"
오봉순은 명함을 받아 들고 잠시 봤다.
"저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냥 국숫집 아줌마예요."
"그래서 오셨습니다. 특별한 사람 이야기는 아무도 안 믿어요."
오봉순이 웃었다.
"창혁아!"
주방에서 오창혁이 고개를 내밀었다.
"이분이랑 얘기 좀 해봐. 고모는 국수 삶아야 해서."
그녀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냄비 뚜껑을 열었다. 육수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딱 알맞은 온도였다.
홍만종(洪萬宗)은 고금소총(古今笑叢)에 이 이야기를 실으며 이렇게 썼다.
詐技(사기)란 속임수이다. 그러나 세금을 피하기 위한 속임수 중에 어떤 것은 권력자만 아는 합법(合法)이었고, 어떤 것은 백성들의 절박한 생존이었다. 그 둘을 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과연 옳은가— 이것이 이 이야기가 웃음 뒤에 남기는 물음이다.
2026년의 오봉순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詐技를 부리지 않았다. 다만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가 세금(稅金)의 차이가 되는 나라에서, 知識(지식)을 얻는 것이 곧 免稅(면세)였다.
詐技免稅— 꾀로 세금을 면한다.
2026년의 꾀는 법전(法典)을 읽는 것이다. 그리고 읽은 것을 나누는 것이다. 그것이 국숫집 아줌마가 가진 가장 큰 무기였다.
"법이 모두에게 열려 있다는 것과, 법을 모두가 쓸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말이다."
(사기면세 발문(跋文) 정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