僧侶之詐 (승려지사)

중의 속임수 ( 2026년판 )

by 이 범


고금소총(古今笑叢) 제오화(第五話) 현대소설판
원전(原典): 유몽인(柳夢寅) 『어우야담(於于野談)』
재화(再話): 홍만종(洪萬宗) 『고금소총(古今笑叢)』
현대 세태 풍자판 재창작 (2026년)



강남에 내려온 도솔천(兜率天)
2026년 봄, 서울 강남구(江南區) 논현동(論峴洞) 이면도로 안쪽에 '도솔천복지선원(兜率天福祉禪院)'이라는 간판이 걸렸다. 간판은 금박 글씨였다. 건물은 지상 사 층 상가 건물 전층을 임대한 것이었다. 삼 층에는 법당(法堂), 사 층에는 원장실(院長室)이었다. 일 층은 '웰니스(wellness) 숍'이었다. 황토 향(香) 한 개에 이만 원, 티베트산 염주(念珠) 한 줄에 팔만 원, '기도 받은 부적(符籍)' 한 장에 오만 원이었다.


원장의 법명(法名)은 '혜광대사(慧光大師)'였다. 본명은 노기태(盧基泰), 나이 오십일. 이십 대에 지방 사찰에서 삼 년을 살다 환속(還俗)한 뒤, 부동산 컨설팅, 건강기능식품 판매, 심리상담 자격증 과정을 거쳐 마침내 '통합심신치유(統合心身治癒) 선원'이라는 사업 모델을 개발했다. 혜광대사는 조계종(曹溪宗) 소속이 아니었다. 그가 속한 단체는 '한국불교통합수행회'였는데, 이 단체는 그가 직접 설립한 것으로 종교단체 신고 절차를 밟았을 뿐 어떤 인가(認可) 기관도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아는 신도는 없었다.
혜광대사는 두 가지에서 탁월했다. 첫째는 말솜씨였다. 그의 법문(法門)은 불교 용어와 심리치료 언어와 양자역학(量子力學) 비유가 절묘하게 섞였다. "마음의 진동수를 높이면 우주의 풍요로운 기운이 당신에게로 흐릅니다"— 이 문장 하나로 강남 중년 여성들의 마음을 뚫었다. 둘째는 SNS였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십이만, 유튜브 구독자 팔만. 영상에서 그는 항상 白衣(백의)를 입고, 뒤에는 연꽃 그림을 배치하고, 목소리를 절반 볼륨으로 낮춰 말했다. 그 낮은 목소리가 신뢰를 만들었다.


도솔천복지선원의 주요 프로그램은 세 가지였다.
첫째, '기도권(祈禱券)'이었다. 월정 기도 회원이 되면 매달 오만 원에 개인 기도를 올려준다고 했다. 연간 육십만 원이었다.
둘째, '사찰 수련 패키지'였다. 제주 협재에 혜광대사 소유의 농가 건물이 있었다. 거기서 삼박 사일 머무르며 '내면 아이 치유 프로그램'을 받는 데 일인당 오십오만 원이었다.


셋째, '공덕 불사(功德佛事) 헌금'이었다. 사찰 증축(增築) 비용을 신도들의 보시(布施)로 모은다는 것이었다. '이번 생의 공덕이 다음 생의 복(福)이 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계좌번호가 법당에 붙어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종교단체 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세금계산서 없이 운영되었다.


그 봄에 박수진(朴秀眞)이 도솔천복지선원을 처음 찾았다.
박수진, 마흔여섯. 논현동에서 네일아트 샵을 운영한 지 팔 년째였다. 남편과는 사 년 전에 이혼했다. 중학교 이 학년 아들이 있었다. 그녀는 요즘 들어 특별한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몸이 아픈 것이 아니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種類(종류)의 피곤함이었다. 이게 갱년기인지, 번아웃인지, 아니면 그냥 외로운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친구 정미선의 소개였다.
"수진아, 거기 진짜 좋더라. 대사님이 나한테 딱 맞는 말만 해. 무슨 심리 상담보다 낫더라고."
박수진은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정미선이 세 번을 권하자 한번 가봤다.
법당에 들어서자 향 냄새가 짙었다. 의자가 절반쯤 차 있었다. 대부분 사오십 대 여성들이었다. 혜광대사가 들어서자 낮은 웅성임이 잦아들었다.


"오늘은 '놓아버림(放下)'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우리가 왜 힘든지 아십니까. 집착(執着) 때문입니다.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업(業)이 쌓이는 것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정말로 낮았다. 박수진은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기울어졌다.


공덕의 가격표
박수진이 세 번째 법당을 찾았을 때, 혜광대사가 그녀를 따로 불렀다.
원장실은 법당보다 조용하고 훨씬 넓었다. 불상(佛像) 하나가 모셔져 있었고, 티베트 탕카(thangka) 그림이 걸려 있었다. 창문으로 강남의 봄 하늘이 보였다. 혜광대사는 박수진 맞은편에 앉았다.


"보살님."
그가 박수진을 그렇게 불렀다. 처음이었다.
"네."
"제가 법당에서 보살님을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습니다. 보살님은 업이 깊습니다. 전생(前生)에서 이어온 원결(冤結)이 있어요."


박수진의 심장이 조금 빨라졌다. 이혼, 혼자 사는 것, 아들 걱정, 가게 걱정— 그 모든 것이 '깊은 업'이라는 말 한마디에 설명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게…어떻게 하면 되나요?"
혜광대사가 잠시 눈을 감았다. 무언가를 느끼는 것처럼.


"보통은 삼 년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보살님은 마음이 본래 선(善)하기 때문에, 제가 집중 기도를 드리면 반년으로 단축될 수 있습니다."
"반년 기도가 얼마예요?"
"월 십오만 원입니다. 삼 개월 선납(先納)하시면 조금 할인해드리겠습니다."


박수진은 그 자리에서 사십만 원을 계좌로 이체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두 달 뒤, 혜광대사는 다시 그녀를 불렀다.
"보살님의 아드님 기운이 걱정됩니다. 제가 법당 기도를 드리는데 자꾸 아드님 이름이 걸립니다."
박수진의 눈이 커졌다.


"아이가요? 무슨 일이 생기나요?"
"지금 당장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방 기도가 필요합니다. 가족 기도권은 한 달 이십오만 원이에요."
박수진은 다시 이체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이번에는 공덕 불사 이야기가 나왔다.


"이번에 선원 사 층에 새로 기도실을 만들려고 합니다. 법당이 좁아서 많은 신도분들이 못 들어오시거든요. 이 불사에 동참하시면 보살님 가족의 공덕이 삼 대에 걸쳐 이어집니다."
"얼마예요?"
"마음껏 내시면 됩니다. 다만 불사 기도표에 오르려면 최소 오십만 원이어야 합니다."
박수진은 그날 오십만 원을 더 넣었다.


그리고 그다음 달이 되었다.
박수진이 가게로 돌아와 장부를 펼쳤다. 그녀는 오늘 혜광대사에게 이번 달 기도비를 내야 했다. 가족 기도권 이십오만 원. 그런데 장부를 보니 그달 수입에서 임대료와 재료비를 빼면 남은 것이 삼십만 원이 채 안 되었다. 가게가 요즘 들어 조용했다.

경기(景氣)가 안 좋았다.
그녀는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가 스마트폰을 꺼냈다. 정미선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선아, 너는 거기 한 달에 얼마 내?"
정미선이 잠깐 침묵했다.


"나는 기도권에 삼십만 원이랑 이번에 불사 백만 원."
"백만 원?"
"응. 대사님이 내 사주(四柱)를 보더니 올해가 중요한 해래. 이 불사에 참여하면 사업이 풀린다고."
박수진은 전화를 끊고 계산을 시작했다. 자신이 지난 넉 달 동안 도솔천복지선원에 낸 금액의 합계는 이백칠십만 원이었다.


속임수의 해부
그날 저녁 박수진은 아들 민준(旻俊)에게 도솔천복지선원 이야기를 했다. 민준은 중학교 이 학년이었다. 요즘 학교에서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수업을 받고 있었다.
민준이 스마트폰으로 바로 검색했다.


"엄마, 도솔천복지선원 검색해봐."
박수진이 화면을 들여다봤다. 카페 블로그 후기들이 나왔다. 긍정적인 것들이 먼저 보였다. 그러나 스크롤을 더 내리자 다른 것들이 나왔다.
"한국사이비종교피해자연대 고발 목록에 올라와 있어요, 엄마."
박수진이 굳었다.


민준이 계속 읽었다.
"혜광대사 본명 노기태, 조계종 소속 아님, 종교단체 신고만 된 비법인 단체. 법인 아니어서 회계 감사(監査) 없음. 헌금 내역 신도한테 공개 안 됨. 경기도 부천에서 같은 방식으로 다른 선원 운영하다 민사 소송 제기된 전력 있음."
박수진은 스마트폰을 손에서 내려놓았다.


"이백칠십만 원."
그녀가 작게 말했다.
민준이 조용히 엄마를 바라봤다.
"환불 요청해봐, 엄마. 법적으로 불법 아니어도 사기죄로 고소 가능할 수 있대. 조건부 불법은 아니더라도 소비자기본법상 환급 요청은 할 수 있어."
"중학생이 그걸 어떻게 알아?"
"수업 시간에 배웠어. 사이비 종교 피해 단원에서."
박수진은 멍하니 아들을 바라봤다. 어느 틈에 이렇게 컸는지 싶었다.


다음 날, 박수진은 도솔천복지선원을 찾았다. 혼자였다. 일 층 웰니스 숍 직원에게 말했다.
"원장 스님 뵈러 왔어요."
원장실에서 혜광대사가 맞이했다. 그는 언제나처럼 흰 옷이었고 목소리는 낮았다.
"보살님, 오늘은 안색이 좋지 않으시네요. 혹시 가정에 무슨—"
"대사님."
박수진이 그의 말을 잘랐다. 처음으로 잘랐다.
"저 지난 넉 달 동안 이백칠십만 원을 냈어요."
"네, 보살님의 지극한 정성이 하늘에—"
"환불해주실 수 있어요?"
혜광대사의 표정이 처음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는 빠르게 원상 복구했다.


"보살님, 기도 공덕은 이미 하늘에 올라갔습니다. 환불이라는 개념이—"
"영수증 없이 받은 돈이에요. 세금계산서도 없고요. 소비자기본법 위반 아닌가요?"
침묵이 흘렀다.
혜광대사가 잠시 창밖을 봤다. 그리고 다시 박수진을 봤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약간 달라져 있었다. 낮되 다른 종류의 낮음이었다.


"…얼마 돌려드리면 되겠습니까."



웃음이 남긴 것
박수진은 그날 이백만 원을 돌려받았다. 이백칠십만 원 중 이백만 원이었다. 칠십만 원은 "기도 서비스가 실제로 이행된 부분"이라는 혜광대사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싸워서 더 받을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더 이상 그 공간에 오래 있고 싶지 않았다.


가게로 돌아오는 길에 박수진은 정미선에게 전화했다.
"미선아, 나 오늘 환불받았어."
"뭐? 어떻게?"
"그냥 달라고 했어."
"그게 돼?"
"응. 됐어."
전화 너머로 정미선이 한동안 조용했다.


"나도…좀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박수진이 웃었다. 길을 걸으면서 웃는 것이 오랜만이었다.
집에 돌아오자 민준이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박수진이 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민준아."
"응."
"고마워."
민준이 뒤를 돌아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뭘."
"미디어 리터러시 가르쳐줘서."
민준이 다시 라면 냄비로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학교 수업 처음으로 쓸모 있었네."
그날 저녁 두 사람은 라면 하나에 계란 두 개를 넣어 나눠 먹었다. 이백만 원은 일단 비상금으로 통장에 넣었다. 칠십만 원은 없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없어진 것의 내용이 달라졌다. 돈을 잃은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배운 것이었다.


박수진은 그날 밤 혜광대사의 인스타그램을 들어가 봤다. 팔로워가 아직 십이만이었다. 댓글들이 여전히 '감사합니다 대사님', '법문이 힘이 됩니다', '이번 기도 덕에 취직이 됐어요'로 가득했다.



그녀는 댓글을 달려다 잠깐 멈췄다. 뭐라고 써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씁쓸했다. 자신처럼 혼자이고 피곤하고 힘들어서 찾아온 사람들이 저 댓글 뒤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대신 '한국사이비종교피해자연대'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가 '피해 사례 신고' 버튼을 눌렀다.
칸을 채우기 시작했다. 선원 이름, 원장 법명, 피해 내용, 금액.


마지막 칸에 '기타 의견'이 있었다. 그녀는 잠깐 생각하다가 썼다.
"속은 것이 창피해서 신고 안 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저도 그랬어요. 그런데 신고 안 하면 다음 사람이 속습니다."
전송 버튼을 눌렀다.
화면에 '접수 완료' 문구가 떴다.


박수진은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천장을 봤다. 향 냄새도 없었고, 낮은 목소리도 없었고, 공덕 이야기도 없었다. 그냥 집이었다. 민준이 방에서 무언가를 타자 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홍만종(洪萬宗)은 고금소총(古今笑叢)에 이 이야기를 실으며 이렇게 썼다.


僧侶之詐(승려지사)— 중의 속임수는 비단 가사(袈裟)를 걸친 자에게만 있지 않다. 공덕이라는 이름으로, 기도라는 이름으로, 治癒(치유)라는 이름으로— 사람의 약한 자리를 찾아드는 속임수는 형태를 바꿔가며 세상에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웃음으로 끝나는 것은, 속은 사람이 끝내 눈을 뜨기 때문이다.


2026년의 박수진은 이백칠십만 원 중 이백만 원을 돌려받았다. 칠십만 원은 수업료였다. 그리고 그 수업은, 강남 어느 법당이 아니라 중학교 이 학년짜리 아들에게서 온 것이었다.

"속임수는 화려한 법당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외롭고 지친 마음 앞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벽사(辟邪)는 주문이 아니라 질문(質問)이다— 이게 정말인가?"
(승려지사 발문(跋文) 정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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