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돌
백정치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김상돌을 바라보았다. 낯선 사람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다는 것이 망설여졌지만, 김상돌의 묘한 온기가 담긴 목소리가 그의 닫힌 마음을 조금씩 열고 있었다.
"서영이 선생이... 제게는 누이 같았습니다." 백정치는 목이 메어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저희 집안에 큰 은혜를 베푸셨는데, 저는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고... 그저 이렇게 포고문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무력감과 죄책감이 뒤섞여 온몸을 짓누르는 듯했다.
김상돌은 조용히 백정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의 손은 투박했지만 따뜻했다.
"나도 서영이 선생에게 빚이 좀 있다네. 예전에 장사를 크게 망쳤을 때, 선생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지." 김상돌은 한숨을 쉬며 먼 산을 바라보았다. "마을 사람들도 모두 선생을 아끼고 존경했어. 자네만 힘든 게 아닐세."그의 말에 백정치는 비로소 혼자가 아님을 느꼈다. 눈가에 뜨거운 물기가 차올랐다.
"하지만... 다들 쉬쉬하고 있습니다. 관가의 일이라며 함부로 입을 열지 못하고요..." 백정치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습니다."
김상돌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내 그의 눈빛에 무언가 결심한 듯한 기운이 돌았다.
"백정치, 자네 마음 내가 알겠네. 서영이 선생의 일을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지." 김상돌은 주변을 다시 한번 살피더니, 백정치에게 몸을 가까이 숙였다. 그의 목소리는 더욱 낮아졌다.
"자네... 혹시 선생의 일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들은 것이 있나? 포고문에 적힌 것 말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