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로 첫만남
김상돌은 잠시 망설이다가 품 안에서 낡은 편지 한 통을 꺼냈다.
"백정치, 사실 한오가 중국으로 떠나기 전에 이런 편지를 남겼네."
편지 봉투는 여러 번 접어진 흔적이 있었고, 김상돌의 손때가 묻어 있었다.
"이걸 언젠가 자네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전해달라고 했어. 그때는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백정치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받았다.
"저에게요? 하지만 한오씨는 저를 모르는데..."
"아니야. 한오는 자네를 알고 있었어. 마을 사람들이 모두 아는 일이니까."
김상돌이 편지를 펼쳐보라고 손짓했다.
백정치는 조심스럽게 편지를 열었다. 정성스러운 글씨로 쓰인 한오의 편지였다.
"이 편지를 읽는 분께,
저는 김한오입니다. 아마 제 아버지를 통해 이 편지를 받게 되셨을 것입니다.
저처럼, 또는 제 형 상구처럼 잘못된 선택으로 괴로워하는 분이 계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후회와 죄책감에 시달리고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과거는 바꿀 수 없어도 미래는 우리 손에 있습니다. 진정한 속죄는 자책하는 것이 아니라, 옳은 일을 위해 행동하는 것입니다.
서영 선생님 같은 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말과 글, 우리의 혼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저는 중국 땅에서라도 조선의 해방을 위해 싸우겠습니다. 고향에 남은 분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며, 정의는 반드시 실현될 것입니다.
김한오 올림"
백정치는 편지를 읽으며 눈물이 흘러내렸다.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을 누군가 이해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 같았다.
"한오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군요."
"그래. 그 아이는 항상 앞을 보는 아이였어. 과거에 매여있지 않고."
김상돌이 백정치를 바라보았다.
"자네도 이제 선택해야 할 때가 왔네. 계속 자책만 할 것인가, 아니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