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의 장난질
서영의 장례를 치른 지 한 달이 지났다. 이산갑은 서영의 뜻을 이어받아 학당을 다시 세우기로 결심했다.
"산돌아, 목수와 미장이를 불러오너라. 학당을 다시 지어야겠다."
"어르신, 하지만 지금 시국이 어려운데..."
"그래서 더욱 해야 하네. 서영이가 목숨을 바쳐 지키려 했던 것을 우리가 포기할 수는 없어."
이산갑은 자신의 전답 일부를 팔아 학당 재건 자금을 마련했다. 그리고 마을 유지들을 찾아다니며 협조를 구했다.
하지만 곧 예상치 못한 장애물이 나타났다.
"이산갑 어르신, 학당 부지에 대한 소유권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군청 서기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유권 문제라니? 그 땅은 분명히 서영이 명의로 되어있는데?"
"그게... 조병수씨가 서영씨에게 돈을 빌려주었는데 갚지 못했다며 저당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이산갑의 얼굴이 굳어졌다.
며칠 후, 조병수가 직접 이산갑을 찾아왔다.
"이 어르신, 오래간만입니다."
조병수는 비굴하게 웃으며 인사했지만, 그의 눈빛은 교활했다.
"조병수, 자네 무슨 짓을 하는 건가?"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뿐입니다."
"서영이에게 돈을 빌려준 적이 없다고 들었네."
"증서가 있습니다. 여기 보십시오."
조병수가 서류를 내밀었다. 서영의 서명이 있는 차용증이었다.
"이건... 위조된 것이 틀림없어!"
"위조라니요? 서영씨의 도장까지 찍혀있는데요. 어르신도 아시다시피 저는 총독부와도 가까운 사이입니다.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조병수의 태도는 점점 오만해졌다.
"그 땅은 이제 제 것입니다. 학당 따위를 다시 짓지 마시고, 제가 좋은 값에 사주겠습니다."
"절대 안 되네! 그곳은 서영이가 아이들을 위해..."
"아이들을 위해서? 하하! 이 어르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셨군요. 이제는 조선어 교육이 금지된 시대입니다. 학당 따위 지어봤자 무슨 소용입니까?"
이산갑은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참았다.
"더 이상 쓸데없는 짓 하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서영처럼 되고 싶으십니까?"
조병수의 위협에 이산갑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나가게."
"뭐라고요?"
"내 집에서 당장 나가라고 했네!"
이산갑의 호통에 조병수는 비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습니다. 하지만 후회하실 겁니다. 저는 군청과 경찰서에도 영향력이 있습니다. 함부로 학당을 짓다가는..."
조병수가 나간 후, 산돌이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어르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조사를 더 철저히 해야겠어. 조병수의 저 차용증이 위조라는 증거를 찾아야 해."
이산갑은 박재홍을 급히 불렀다.
"재홍이, 조병수가 서영이의 서명을 위조했을 가능성이 크네. 서영이가 실제로 어디서 도장을 찍었는지, 언제 돈을 빌렸다는 것인지 알아봐야 해."
"알겠습니다, 어르신."
그날 밤, 이산갑은 한도회 회원들을 다시 모았다.
"여러분, 이제 조병수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학당 재건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서영이의 유산까지 빼앗으려 하고 있습니다."
"비열한 놈입니다!"
"그렇다면 조병수가 학당 화재와도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더 커진 것 아닙니까?"
최동규가 물었다.
"그럴 수도 있네. 학당을 불태우고, 서영이를 범인으로 몰고, 이제 그 땅까지 차지하려는 치밀한 계획이었을 수도..."
이산갑의 말에 회원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더욱 조심스럽게, 하지만 더욱 철저하게 조사해야 하네. 조병수의 모든 행적을 파헤쳐야 해."
한도회의 조사망이 조병수에게 집중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산갑은 학당 재건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강한 의지로 준비를 계속했다.
"서영아, 자네의 꿈을 반드시 이루겠네. 그리고 자네를 괴롭힌 자들을 반드시 밝혀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