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59)

서영생각

by 이 범

밤이 깊어갈수록 이산갑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서영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학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서영의 환한 미소, 한글을 또박또박 쓰며 정성스럽게 가르치던 모습, 아이들이 글을 깨우칠 때마다 기뻐하던 그녀의 맑은 눈빛...

"산감님, 오늘 아이들이 '우리나라'라는 글자를 다 썼어요!"
서영이 기뻐하며 달려오던 그날이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이산갑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갔다. 달빛이 마당을 비추고 있었다.

'서영아... 내가 너를 지켜주지 못했구나.'

그의 가슴속에는 사랑과 후회, 그리고 분노가 뒤엉켜 있었다. 서영은 단순히 동지가 아니었다. 이산갑에게 서영은 너무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안채에서는 이충헌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영감, 아직도 안 주무십니까?"

부인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잠이 오지 않소. 서영이 생각만 나는구려."

이충헌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서영이를 우리 며느리로 생각했었소. 산갑이와 서영이가 함께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지."

"저도 그랬습니다. 서영이는 참 훌륭한 아이였어요. 학식도 있고, 마음씨도 곱고..."

"그런데 내가... 우리가 그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소."

이충헌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아이가 우리 집 사랑채에서 숨을 거두었는데... 내가 무엇을 해줬단 말이오."

"영감..."

"산갑이도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소. 저 아이도 서영이를 무척 아꼈는데..."

이충헌은 아들 걱정에 가슴이 먹먹했다.

다음 날 아침, 이충헌은 사랑채로 이산갑을 찾아갔다.

"산갑아."

"예, 아버님."

"어젯밤에도 잠을 못 잤구나. 얼굴이 많이 상했다."

이산갑은 대답 대신 쓴웃음만 지었다.

"아버지도 서영이를 많이 생각하시나 봅니다."

"그럼... 나는 그 아이를 네 아내로 맞이하고 싶었단다."

이산갑은 아버지의 말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아버님..."

"서영이는 참 좋은 아이였어. 학식도 있고, 의지도 강하고, 무엇보다 우리 조선을 사랑하는 마음이 진실했지."

이충헌은 아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너도 그 아이를 많이 아꼈지?"

"예... 서영이는 제게...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산갑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저는 그 사람을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제가 더 조심했더라면, 제가 더 빨리 움직였더라면..."

"산갑아, 네 잘못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은 왜놈들 때문이야."

"하지만 아버님... 저는 서영이에게 제 마음을 한 번도 제대로 전하지 못했습니다."

이산갑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제는... 영원히 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충헌도 아들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두 사람은 한참을 말없이 슬픔을 나누었다.

"산갑아,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예, 아버님."

"서영이가 꿈꾸던 세상을 만드는 것, 그리고 그 아이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서영이를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란다."

"명심하겠습니다, 아버님."

이산갑은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이산갑은 서랍에서 작은 반지를 꺼냈다. 서영에게 주려고 준비했던, 하지만 끝내 전하지 못한 반지였다.

"서영아...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했다."

달빛 아래서 반지가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이산갑은 그 반지를 가슴에 품었다. 서영과의 추억, 그리고 이루지 못한 사랑을 가슴속 깊이 간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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