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그리움의 밥상

by 이 범

한가위, 그리움의 밥상

한가위 명절이 다가오고, 두터운 가을 햇살이 뜨겁지 않게 내리쬐며, 나는 오랜만에 고향을 떠올린다. 젊은 시절에는 지나치기 쉬웠던 이 계절의 의미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깊이 와닿는다.

가을바람이 살며시 불어오고, 주변의 나무들이 붉은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자연스레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어렸을 적, 명절이 다가오면 집안은 늘 북적거렸다. 부모님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음식의 향기가 온 집안을 가득 메우고, 친척들이 모여드는 소음 속에서 나는 행복한 혼란에 빠졌다.

송편이 익어가는 소리와, 신나는 전통놀이 소리가 어우러지며 그 시절의 기쁨과 사랑이 나를 감싸준 느낌이 뚜렷하다. 그때의 내가 제일 좋아했던 것은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따끈한 송편이었다. 찹쌀가루와 고소한 참깨소의 조화가 이루어진 그 한입은 나에게 무한한 위안을 주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명절마다 오랜 친구와 가족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세월이 흐르고, 우리 가족의 구성원들도 많이 달라졌다. 나 또한 이제는 그 자리에서 가장 연장자가 되었고, 과거의 기억들이 더욱 선명해지면서 한결같이 느껴지는 그리움이 가슴을 찌른다.

나의 소중한 사람들은 이제 이 세상에서 사라졌고, 그들의 목소리도 함께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사랑의 기억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


한가위 명절에 내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는 그리움은 가끔씩 내 일상에 흔들림을 준다. 누군가와 함께 나눴던 정겨운 맛의 음식들, 웃음꽃을 피웠던 자리들이 그리워져 눈물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그리움 속에서도 새로운 방식으로 만나는 순간들이 있다. 자녀들이나 손자손녀들이 나에게 찾아와서는 전통의 의미를 이야기해 주고, 함께 송편을 만들며 소중한 시간을 보낸다.

그들은 나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과거를 공유하며 나에게 또 다른 기쁨을 안겨준다.


한가위가 다가오면, 나는 조용히 조상들에게 기도를 올린다. 그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마음이 들어서, 그 곁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전통을 지켜가는 것은 단순히 지난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움이 있기에 지금의 나는 더욱 소중함을 느끼고 있다.

한가위, 그리움의 밥상에 앉아 생각에 잠기며 송편을 바라본다. 그 속에 있었던 시간들과 사랑이 다시 한번 내 마음에 되살아나고, 나는 행복한 미소를 지어본다. 명절의 따스함과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들, 그 모든 것들이 함께하는 기적을 느꼈다. 미래에도 어쩌면 나는 이 자리에 있을 것이고, 사랑하는 이들도 함께할 것이다. 한가위는 바로 그런 이유로 내 마음속에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