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99)

조병수와 백정치

by seungbum lee

조병수의 집 사랑방. 해가 저물어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백정치가 조심스럽게 뒷문으로 들어왔다. 주변을 살피며 사람들의 눈을 피한 흔적이 역력했다.

"왔나?"


조병수가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백정치를 맞았다.


"예... 조 선생님."


백정치는 고개를 숙인 채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얼굴에는 죄책감과 함께 묘한 결의가 섞여 있었다.

"앉게. 차라도 한잔 하지."


조병수는 여유로운 태도로 차를 따랐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차갑고 계산적이었다.


"그래서, 준비는 다 됐나?"


"예, 조 선생님. 제가 말씀드린 유언비어 작전... 성공으로 이끌겠습니다."


백정치가 품에서 작은 메모지를 꺼냈다.


"먼저 시장 통에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이산갑이 일본에 반대하는 비밀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는 소문을 퍼뜨리는 겁니다."


"음... 계속 말해보게."


"그리고 '학당 재건은 겉으로는 아이들을 위한다지만, 실제로는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기 위한 것'이라는 소문도 함께 퍼뜨리겠습니다."


조병수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좋아, 좋아. 그런데 사람들이 믿겠나?"


"제가 직접 서영이 선생을 밀고했던 사람은 아닙니다만 사람들은 제가 일본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제가 흘리는 정보라면 사람들이 믿을 겁니다."


"하하하! 그렇군. 밀정이었던 자가 이산갑의 비밀을 폭로한다... 설득력이 있어."


조병수가 책상을 탁 치며 웃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백정치가 목소리를 낮췄다.


"이산갑이 자주 만나는 사람들의 명단도 만들었습니다. 한도회 회원으로 의심되는 자들입니다."


그는 메모지를 조병수에게 건넸다.


조병수가 메모를 훑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동규, 박재홍... 이 사람들 이름을 슬쩍슬쩍 소문에 섞어 넣으면 되겠군."


"예, 그렇게 하면 경찰도 움직일 것이고, 이산갑의 영향력도 약해질 겁니다."


"좋아! 아주 좋아!"


조병수는 흥분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으로 갔다.


"자네, 정말 영리하군. 김상 돌 그 자가 자네를 포섭하려 했다지? 하지만 자네는 더 현명한 선택을 했어."


서랍을 열어 두툼한 봉투를 꺼냈다. 안에는 상당한 액수의 돈이 들어있었다.


"이것은 자네에게 주는 선금이야. 일이 성공하면 더 줄 거네."


백정치는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조 선생님."


"하지만 명심하게."


조병수의 목소리가 차갑게 변했다.


"빈틈없이 잘해야 해. 만약 이 일이 실패하거나, 자네가 우리를 배신한다면..."


그는 백정치의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자네 가족이 어떻게 될지 모르네. 늙은 아버지 백길호, 그리고 자네 어머니까지 말이야."


백정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걱... 걱정 마십시오. 저는 반드시 성공시키겠습니다."


"좋아. 그리고 이산갑의 동생들... 세무서장 이산우, 읍사무소 서기 이산호, 그리고 수녀인 이은혜까지. 이들의 동향도 살펴야 해."


"알겠습니다."


"특히 이산호는 학당 재건 허가와 관련이 있으니 주의 깊게 봐야 해. 그 자가 무슨 서류를 만들고 있는지 알아내게."


"예, 명심하겠습니다."


조병수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이 일을 성공시키면, 이산갑은 끝장이야. 경찰에 잡혀가고, 그의 재산은 몰수되고, 학당 재건도 무산되지."


"그럼 학당 부지는..."


"물론 내 것이 되는 거야. 그리고 이산갑의 전답 중 일부도 헐값에 손에 넣을 수 있어."


조병수의 눈에 탐욕이 어렸다.


"시마다 겐죠도 이산갑이 없어지기를 바라고 있어. 그 자가 있는 한 일본인들이 이 지역에서 마음대로 할 수 없거든."


"이산갑은... 이 고장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백정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더욱 없애야 하는 거야! 조선인들이 그런 인물을 우러러보면 일본에 대한 충성심이 약해지지 않겠나?"


조병수는 주먹으로 책상을 쳤다.


"내선일체! 우리는 모두 대일본제국의 신민이야. 이산갑 같은 자들이 있으면 그게 방해가 돼."


"... 알겠습니다."


"그리고 자네, 김상 돌과는 계속 접촉하게. 그 자의 계획도 알아내야 해."


"하지만 김상 돌은 저를 의심하지 않을까요?"


"아니야. 자네가 서영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을 그 자도 알고 있어. 그래서 자네를 포섭하려는 거잖아. 계속 흔들리는 척하면서 정보를 빼내게."


"알겠습니다."


백정치가 일어서려 하자 조병수가 다시 말했다.


"참, 그리고 유언비어를 퍼뜨릴 때 교묘하게 해야 해. 직접적으로 말하지 말고, '내가 우연히 들었는데...', '누군가 그러던데...' 이런 식으로 말이야."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타이밍도 중요해. 한꺼번에 퍼뜨리지 말고 서서히,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스스로 믿게 만들어야 해."


"명심하겠습니다, 조 선생님."


백정치가 방을 나서려는 순간, 조병수가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백정치, 이번이 자네의 마지막 기회야. 서영을 밀고한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우리 편에 완전히 서야 해.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백정치는 품속의 돈봉투를 만지며 뒷문으로 나갔다. 그의 발걸음은 무거웠고, 얼굴에는 깊은 고뇌가 서려 있었다.


조병수는 홀로 남아 창밖을 바라보며 냉소를 지었다.


"이산갑, 네 시대는 끝났어. 이제 이 땅은 일본의 것이고, 나 같은 사람들이 살아남는 세상이야."


밤은 깊어가고 있었고, 영광 마을에는 어둠이 짙게 드리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