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혁진과한호건
영광 시내 한적한 골목의 작은 찻집. 정혁진은 구석 자리에 앉아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곧 한호건이 낡은 보자기에 식물 표본을 싸들고 들어왔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산림보호인이 식물 조사 결과를 보고하러 온 것처럼 보였다.
"수사관님, 이번에 채집한 식물들입니다."
한호건이 보자기를 풀며 자연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식물 표본과 함께 두루마리 형태로 말린 서류가 숨겨져 있었다.
정혁진은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며 주변을 다시 살폈다. 다른 손님들은 모두 자기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고생이 많았네. 자세히 보고해주게."
한호건은 식물 표본을 살피는 척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수사관님, 김상돌의 행적을 계속 추적했습니다. 그런데 매우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어떤 것인가?"
"지난 사흘 동안 김상돌의 움직임을 기록했습니다. 이 두루마리에 모두 적어두었습니다."
한호건이 두루마리를 살짝 펼쳐 보이며 계속 말했다.
"첫째 날, 김상돌은 평소처럼 장사를 하는 척하다가 해질녘 영광 외곽의 폐가로 갔습니다."
"폐가?"
"예, 3년 전 주인이 죽고 난 후 비어있는 집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한호건이 목소리를 더욱 낮췄다.
"시마다 겐죠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정혁진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시마다와 김상돌이?"
"예, 두 사람은 약 한 시간 정도 그 폐가에 머물렀습니다. 제가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었지만, 멀리서 관찰한 결과 매우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습니다."
정혁진은 찻잔을 내려놓고 두루마리를 조심스럽게 펼쳤다. 한호건의 세밀한 기록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둘째 날에는 어땠나?"
"둘째 날, 김상돌은 백정치를 찾아갔습니다. 마을 어귀 포고문 앞에서 만나 함께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산으로?"
"예, 사람들 눈을 피하려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멀찍이 떨어져서 따라갔습니다."
한호건은 보자기 안에서 작은 지도를 꺼냈다.
"이 위치입니다. 산중턱의 큰 바위 뒤편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약 두 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들을 수 있었나?"
"거리가 너무 멀어서 전부는 듣지 못했습니다만... 몇 마디는 들렸습니다."
한호건이 긴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김상돌이 백정치에게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과거의 죄를 씻을 기회'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이라는 말도 했습니다."
"사회주의 조직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이군."
"그렇게 보입니다. 백정치는 매우 고민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정혁진은 턱을 쓸어내리며 생각에 잠겼다.
"셋째 날은?"
"셋째 날이 가장 중요합니다."
한호건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김상돌이 다시 그 폐가로 갔는데, 이번에는 시마다 겐죠와 백정치가 함께 있었습니다."
"세 사람이 함께?"
"예, 제가 직접 목격했습니다. 해가 완전히 진 후였습니다. 저는 폐가 뒤편 덤불에 숨어서 지켜봤습니다."
정혁진은 몸을 앞으로 숙였다.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눴나?"
"창문이 조금 열려 있어서 일부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한호건은 두루마리의 마지막 부분을 가리켰다.
"시마다가 '학당 일은 잘 처리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김상돌이 '조병수도 입을 다물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정혁진의 눈이 커졌다.
"그럼 학당 화재가..."
"예, 그들이 연관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시마다가 '돈은 이미 조병수에게 전달했다'고 했습니다."
"그럼 조병수가 돈을 받고 학당에 불을 지른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한호건이 주변을 다시 한번 살피고 말을 이었다.
"백정치가 '서영이 선생이 죽은 것은 내 잘못'이라며 괴로워했습니다. 그러자 김상돌이 '그래서 더욱 우리와 함께해야 한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속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상돌이 백정치의 죄책감을 이용하고 있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시마다는 '이산갑을 조심해야 한다, 그 자가 한도회의 핵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정혁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산갑 형님이 위험하다는 뜻이군."
"예, 그래서 급히 보고드립니다. 그들이 이산갑 어르신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정혁진은 두루마리를 다시 말아 품에 넣었다.
"호건 씨, 정말 훌륭한 일을 했네. 이 정보는 매우 중요해."
"수사관님, 그런데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뭔가?"
"그들이 헤어지기 전에 시마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다음 모임 때 큰 계획을 발표하겠다'고."
"다음 모임? 언제인가?"
"보름 후라고 했습니다. 장소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정혁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호건 씨는 계속 김상돌을 감시하게. 그리고 요미우리에게는 적당히 거짓 정보를 흘려주고."
"알겠습니다, 수사관님."
"하지만 절대 무리하지 말게. 자네가 발각되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네."
"명심하겠습니다."
한호건이 식물 표본을 다시 보자기에 싸며 자연스럽게 말했다.
"그럼 이번 조사 결과는 이 정도입니다. 다음에 또 보고드리겠습니다."
"고맙네. 조심해서 가게."
한호건이 찻집을 나간 후, 정혁진은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김상돌, 시마다, 조병수... 그리고 백정치까지. 복잡하게 얽혀있군.'
그는 품속의 두루마리를 만지며 다음 행동을 계획했다.
'이산갑 형님께 즉시 알려드려야 한다. 그리고 조병수를 더 깊이 조사해야 해.'
정혁진은 찻값을 지불하고 조용히 찻집을 나섰다. 저녁 하늘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서영 선생님,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진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이산갑을 만나러 향했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