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을푸던 시절
만수 할아버지의 하루: 똥을 메고 산 길
1950년대 초, 전쟁의 상처가 채 가시지 않은 경상도 시골 마을. 만수(45세)는 새벽 3시, 아직 별이 총총한 어둠 속에서 눈을 뜬다. 집은 마을 변두리, 흙벽으로 지은 초가에 가족 다섯이 웅크리고 산다.
아내와 세 아이, 그리고 노모. 만수는 어제저녁에 "오늘은 좀 일찍 끝낼게"라고 속삭였지만, 그 말은 늘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그는 낡은 멜싸리 모자를 쓰고, 어깨에 멍에를 짊어진다. 멍에는 대나무로 엮은 간단한 기구, 양 끝에 커다란 통(항아리 모양의 나무 통)이 매달려 있다.
무게는 비면 50킬로 넘는다. "이게 밥줄이야"라고 중얼거리며 집을 나선다. 마을 화장실로 향하는 길은 고요하지만, 곧 그 고요를 깨는 냄새가 그를 따라다닌다.
인분(人糞) – 밤새 쌓인 사람의 배설물.
첫 번째 화장실은 양반집. 만수는 문을 두드리지 않고 조용히 들어간다. "허락 없이 들면 쫓겨나"라는 규칙이 머릿속에 새겨져 있다. 통을 채우며 그는 생각한다.
이 집 주인, 부잣집 아저씨는 매일 아침 따뜻한 죽을 먹고, 만수는 이 통을 메고 산을 넘는다. 통이 가득 차면, 그는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에 신음한다. 한 걸음, 한 걸음, 등줄기가 타들어가는 고통. 겨울이면 얼어붙은 땅이 발바닥을 베고, 여름이면 파리 떼가 얼굴을 문다. "똥개"라는 별명이 따라다니는 이유다.
아이들은 만수를 볼 때마다 코를 막고 도망친다. 마을 사람들은 "저리 가만있어라, 냄새 나!"라고 소리치며 피한다.
통 두 개를 채우는 데 두 시간. 이제 마을을 벗어나 밭으로 간다. 농부들이 기다린다. "오늘 물건 좋네, 만수야. 5홉(약 1리터)짜리 두 통에 200원 줄게." 만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 돈으로 오늘 저녁 쌀 한 되를 사야 한다. 하지만 거래는 언제나 불공평하다.
농부는 인분을 싸게 사들이고, 만수는 그 돈으로 겨우 하루를 버틴다. 인분은 쌀 생산의 생명줄 – 조선 시대부터 농민들은 인분을 삭혀 비료로 썼고, 20세기 들어서도 전쟁 빈곤 속에서 필수품이었다.c40915 그런데 그 '생명줄'을 나르는 사람은 늘 '더러운 자'로 낙인찍힌다.
점심은 마을 외곽 개울에서. 만수는 통을 씻고, 가져온 김치 한 점과 밥알 몇 톨을 입에 넣는다. "아프면 어떻게 해? 가족이 먹고살아야지." 그는 아들의 병을 떠올린다. 어제 학교에서 아이가 "아빠 똥 냄새 나"라고 놀림받아 울고 왔다.
만수는 그 아이를 안고 "아빠가 영웅이야, 땅을 살리는 사람이야"라고 달랬지만, 속으로는 분통이 터진다. 사회적 지위는 최저 – 양반도, 상민도 아닌, 그냥 '인분꾼'. 결혼조차 어려워, 만수처럼 늦게 결혼한 이들이 많았다. 질병 위험도 컸다. 장티푸스, 이질 – 인분 속 병균이 피부를 통해 스며들어 가족 전체를 위협했다.
해가 지기 전, 세 번째 통을 채운 만수는 집으로 돌아온다. 아내가 문을 열고 나오며 "오늘 얼마나?"라고 묻는다. "200원." 그는 한숨 쉬며 통을 내려놓는다. 저녁은 보리밥 한 그릇. 아이들은 만수를 보며 웃지만, 눈빛엔 미안함이 스민다. 밤이 되면 만수는 창밖 별을 보며 꿈을 꾼다. "언젠가 이 멍에를 벗고, 아이들이 당당한 머리 들고 살게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