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헌과민지영
지영은 남편의 깊은 내심을 헤아리며,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충헌의 걱정이 단순한 신분적 편견이 아니라 격변하는 시대에 대한 우려와 아들에 대한 깊은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섣불리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영감님..." 지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산갑이가 정치와 어울리는 것이 꼭 나쁘기만 할까요?"충헌은 아내의 말에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정치 그 아이가 비록 머슴의 아들이지만, 산갑이에게는 좋은 벗이 되어주고 있지 않나요? 산을 오르며 자연을 배우고, 때로는 어려운 일을 함께 헤쳐나가면서..." 지영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스며있었다.
"부인은 모르시오." 충헌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 혼란한 세상에서 반상의 구별이 흐려지면, 결국 더 큰 혼돈만 올 뿐이오. 산갑이는 언젠가 이 고장을 이끌어야 할 사람이 될 텐데...""하지만 영감님께서 늘 말씀하시지 않으셨나요? 진정한 선비는 백성을 알아야 한다고요." 지영이 부드럽게 반박했다.
"산갑이가 정치와 함께 산을 오르며 배우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요?"충헌은 잠시 말을 잃었다. 아내의 말이 자신의 평소 신념과 맞닿아 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그리고..." 지영이 더 낮은 목소리로 이어갔다.
"정치 그 아이도 영감님을 무척 존경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지 않나요? 산갑이를 통해 들은 이야기지만, 그 아이는 늘 '나리님 같은 분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더군요."이 말을 듣고 충헌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는 창밖 멀리 보이는 산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그렇다면... 조건을 걸어보시오." 충헌이 천천히 말했다. "산갑이가 돌아오면 반드시 무엇을 배웠는지 이야기하게 하고, 정치 그 아이도 한 번 이 집에 와서 저녁을 함께 하게 하시오.
그 아이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지 직접 보겠소."지영의 눈에 기쁨의 빛이 스며들었다. "정말... 허락해 주시는 건가요?""다만," 충헌이 엄숙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만약 그 아이가 산갑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것이 확실해지면, 그때는 더 이상 만나지 못하게 하겠소."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남편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고맙습니다, 영감님. 분명 영감님도 정치 그 아이를 좋아하게 되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