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의 추억

by seungbum lee

이발소의 추억

어린 시절, 아버지의 손을 잡고 처음 들어선 동네 이발소의 문턱은 나에게 하나의 경계선이었다. 그곳은 단순히 머리를 자르는 곳이 아니라, 남자들만의 은밀한 sanctuary이자 시간이 멈춘 듯한 작은 우주였다.


이발소 안은 언제나 특유의 향기로 가득했다. 포마드와 애프터셰이브 로션이 뒤섞인 그 냄새는 지금도 코끝에 선명하다. 벽에 걸린 커다란 거울 앞에는 낡은 가죽 의자가 놓여 있었고, 그 옆으로는 각종 도구들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가위, 면도칼, 빗, 그리고 신비로운 파란 액체가 담긴 유리병들까지.


이발소 사장님은 언제나 하얀 가운을 입고 계셨다. 손놀림은 마치 숙련된 예술가 같았다. 가위질 소리가 리듬을 타며 울려 퍼지고, 이따금 분무기로 머리를 적시는 소리가 배경음악처럼 들렸다. 사장님과 손님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마치 하나의 의식 같았다. 날씨 이야기, 동네 소식, 정치 얘기까지 모든 것이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면도의 순간이었다. 뜨거운 수건으로 얼굴을 감싸는 순간의 따뜻함, 면도크림의 부드러운 질감, 그리고 날카로운 면도칼이 피부를 스치는 아슬아슬한 긴장감. 그 모든 것이 어린 나에게는 어른이 되는 통과의례처럼 느껴졌다.


이발소는 또한 기다림의 공간이기도 했다. 앞 순서를 기다리며 벽에 걸린 오래된 잡지들을 뒤적이거나, 다른 손님들의 이발 과정을 구경하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그 시간들은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쉬어가는 안식처 같았다.


세월이 흘러 헤어샵이 유행하고 스타일링이 중요해지면서, 그 오래된 이발소들은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곳에서의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그곳에서 배운 것은 단순히 헤어스타일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따뜻함이었고, 전통의 가치였으며, 느림의 미학이었다.


지금도 가끔 옛 동네를 지날 때면 그 이발소 자리를 찾아본다. 비록 간판은 바뀌었지만, 그곳에서 보낸 시간들은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소중한 기억의 조각들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8월의 찜통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