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와 커피 향 사이에서

by 이 범

빗소리와 커피 향 사이에서

발코니 난간에 기대어 서 있다. 차가운 쇠붙이의 감촉이 손끝으로 전해지고, 빗방울은 쉼 없이 테이블 위를 두드린다. 커피 잔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김이 안개 낀 거리와 하나가 되어 사라진다. 저 아래 흐릿한 가로등 불빛들이 물감처럼 번지고, 차들은 소리 없는 물고기처럼 빗길을 헤엄쳐 간다.

혼자다. 이 낯선 도시의 작은 발코니 위에 나는 혼자 서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외롭지 않다. 분홍빛 꽃들이 비를 맞으며 고개를 숙이고, 화분 속 초록 잎새들이 빗물을 머금어 더욱 짙어진다. 이 모든 것이 나를 위로하는 것만 같다.

*혼자라는 것과 외롭다는 것은 다르구나.*

문득 깨닫는다. 지금 이 순간, 멀리 떨어진 누군가도 같은 빗소리를 듣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같은 하늘 아래, 다른 창가에서, 나처럼 커피를 마시며 빗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을 그 사람을. 보이지 않아도, 닿지 않아도, 우리는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 빗소리라는 보이지 않는 실로, 그리움이라는 이름의 다리로.

커피 잔을 들어 올린다. 따뜻함이 손바닥에 번진다. 이 온기가 마치 누군가의 손길처럼 느껴진다. 옆에 없어도 함께인 사람,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마음, 그런 것들이 사랑이 아닐까.

*사랑은 함께 있음이 아니라 함께 느낌이다.*

빗줄기 너머로 펼쳐진 거리를 바라본다. 저기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 각자의 창가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같은 비를 맞으며. 우리는 모두 다르지만 결국 같은 감정으로 이어져 있다.

분홍 꽃잎 하나가 바람에 떨어져 빗물 웅덩이 위를 떠다닌다. 작고 연약하지만, 아름답다. 그 꽃잎처럼 우리의 사랑도, 우리의 그리움도, 작고 여리지만 빗속에서도 떠 있다. 사라지지 않고, 지워지지 않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쓰면서도 따뜻하다. 삶도 그렇다. 쓸쓸하지만 아름답고, 외로우면서도 충만하다. 혼자 있지만 함께이고, 멀리 떨어져 있지만 가까이 있다.

*비는 계속 내리고, 나는 여전히 혼자지만, 당신을 생각하는 이 순간만큼은 우리가 함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