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도의 씨앗

by seungbum lee

단편: 선도의 씨앗

조선의 마지막 여름, 금단의 과원 담장 안에는 서쪽에서 옮겨온 한 그루의 선도(仙桃)나무가 서 있었다. 삼천 년마다 꽃이 세 번 피고, 세 번째 저녁에 하나의 열매가 영혼의 숨을 붙잡는다는 전설이 그 나무를 감쌌다. 과원의 자물쇠를 지키는 자는 무사도, 대신도 아닌 젊은 관리 이민호였다. 그는 밤마다 담장 너머를 바라보았다. 저 편 초가에 누운 어머니의 숨은 얇고, 약방 문은 더디게 열렸다.


“그 열매는 하늘과 임금의 몫이다.” 상관의 말은 칼처럼 분명했다. 그러나 민호는 알았다. 나라를 지키는 일과 집을 지키는 일이, 그 밤 만큼은 같은 자리에 놓인다는 것을.


세 번째 꽃이 진 밤, 달빛이 유약처럼 흘렀다. 민호는 자물쇠를 풀었다. 손끝에 닿은 복숭아는 따뜻했다. 꼭지에서 미세한 울음 같은 떨림이 전해졌다. 그 순간, 잎사귀 사이로 흰 학 한 마리의 그림자가 내려앉더니, 바람이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훔친 달을 어디에 두려 하느냐.”


민호는 숨을 고르고 답했다. “어머니의 베개 곁에요. 오래 살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밤을 달게 하려 합니다.”


그림자는 잠시 머물렀다. “두 길이 있다. 하나, 지금 이 과실을 드리면 모친의 숨이 열흘 더 머물 것이나, 왕조의 달력이 열흘 비게 된다. 다른 하나, 씨를 심고 기다리면 모친은 오늘 떠나시되, 너의 마을부터 온 나라에 달콤한 숨이 번지리라. 먹지 않아도 복숭아 향만으로 아이들의 열이 가라앉고, 떠난 이들의 말이 여름밤에 돌아올 것이다. 어느 편이 너의 반란이냐.”


민호는 복숭아를 가슴에 안았다. 달콤한 향기가 눈을 시렸다. 그는 나무 아래를 파고, 과실을 반으로 가른 뒤 씨를 묻었다. 남은 반쪽은 베보자기에 감싸 들고 집으로 달렸다. 어머니는 일어나지 못했으나, 베보자기에서 흘러나온 향을 맡고 아주 오랜만의 표정으로 웃었다.


“네가 돌아왔구나.”


그날 새벽, 어머니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민호는 과원으로 돌아가 다시 자물쇠를 채웠다. 그 뒤로 이상한 일이 시작되었다. 비가 오면 담장 밖 밭에도 분홍빛 기운이 번졌고, 장마 뒤 마을마다 복숭아가 잘 익었다. 과원은 잠긴 채였지만 향은 닫히지 않았다. 사람들은 어느새 알게 되었다. 복숭아를 깎아 나누면, 오래 사는 비법이 아니라 오래 사랑하던 숨이 돌고 돈다는 것을. 이웃 상가에서 난리였던 아이의 열이 과즙 한 모금에 누그러지고, 전장에서 돌아오지 못한 이를 밤마다 그 향으로 잠깐씩 불러냈다.


세월이 흘러 민호의 머리가 희어졌을 때, 선도나무 아래에서 다시 꽃이 셋 피었다. 그는 담장 키를 넘는 가지 하나를 베어 고향의 언덕에 심었다. 법은 그를 막았지만, 바람은 그를 밀었다. 그날 밤, 학의 그림자가 다시 내려와 말했다.


“네가 택한 것은 훔침이 아니라 나눔이로다.”


전설은 그렇게 남았다. 복숭아의 보송한 털에는 떠난 이들의 숨이 깃들어 있고, 씨앗에는 남겨진 이들의 맹세가 들어 있다고. 그리고 나라가 흔들릴 때마다 누군가 담장을 넘어 한 그루의 가지를 들고 돌아온다고. 그들은 오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래 사랑하기 위해서라 했다.


그 뒤로 복숭아는 달다. 오래 사는 맛이 아니라, 오래 사랑하는 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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