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마시는 나
아침 햇살이 창문 사이로 스며들 때, 나는 찻잔을 손에 든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의식처럼, 차를 우리는 행위는 나에게 있어 단순한 음료 섭취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처음 차와 만난 건 할머니의 작은 찻상에서였다. 할머니는 늘 오후 세시가 되면 정성스럽게 차를 우리셨다. 보이차의 진한 향이 방 안에 가득 퍼지면, 나는 어린 마음에도 그 시간이 특별하다는 것을 느꼈다. 할머니의 손은 찻주전자를 다룰 때 유독 부드러워 보였고, 그 모습에서 삶의 여유로움을 배웠다.
세월이 흘러 바쁜 일상에 쫓기며 살아가던 어느 날, 문득 차가 그리워졌다. 커피로는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래서 다시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처음엔 티백으로 간편하게 시작했지만, 점차 잎차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우린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맛의 변화, 찻잎이 펼쳐지는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얻는 마음의 평온함이 좋았다.
차를 마시는 시간은 나만의 명상이다. 찻물이 끓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차의 색깔 변화를 지켜보며, 첫 모금의 온기를 느끼는 순간들. 이 모든 과정에서 나는 현재에 집중하게 된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할 일 목록을 잠시 잊고, 오직 지금 이 순간에만 머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차의 힘이다.
계절마다 즐기는 차도 다르다. 봄에는 싱그러운 녹차로 새로운 시작의 기운을 느끼고, 여름에는 시원한 냉차로 더위를 달랜다. 가을에는 구수한 보이차로 깊어지는 계절감을 만끽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홍차로 추위를 녹인다. 차는 단순히 목을 축이는 음료가 아니라, 계절과 감정을 연결해주는 매개체가 되었다.
친구들과 함께 차를 마실 때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대화가 자연스럽게 깊어지고, 서로의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차가 만들어내는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나누는 이야기들은 커피숍의 그것과는 다른, 더욱 진솔하고 따뜻한 색깔을 갖는다.
때로는 혼자서 차를 마시며 독서를 하거나 일기를 쓰기도 한다. 차의 온기가 전해주는 위안 속에서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들. 이런 순간들이 쌓여 나의 일상에 깊이와 여유를 더해준다.
차를 마시는 나는 더욱 차분하고 사려 깊어진 것 같다. 성급함 대신 기다림을, 조급함 대신 인내를 배웠다. 차 한 잔이 주는 작은 행복을 알게 되면서, 삶의 소소한 즐거움들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오늘도 나는 차를 우린다. 찻잎이 물 속에서 춤추는 모습을 바라보며, 또 하나의 평범하지만 특별한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