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주제 다른소설(1)낙엽에 스민얼굴

가을의 기억

by 이 범


페이브먼트 위로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늦가을 오후, 노신사 이준영은 천천히 걷고 있었다. 회색빛 코트 자락이 바람에 흔들릴 때, 그의 시선은 바닥에 떨어진 단풍잎 하나에 머물렀다. 허리를 굽혀 그것을 집어 들자, 낙엽의 결 사이로 윤미예의 얼굴이 떠올랐다. 1970년대, 대학 문학 동아리에서 처음 만났던 그녀. 맑은 눈매와 수줍은 미소, 그리고 시를 읊던 그 목소리.


그녀는 시간이 흘러 유명한 대학병원의 설립자이자 화가로 이름을 떨쳤지만, 이준영에게는 언제나 그 시절의 미예였다. 그는 그녀에게 고백하지 못한 사랑을, 수많은 단편소설 속에 조용히 묻어두었다. 결혼도 하지 않고, 가족도 없이, 오직 글과 기억만을 벗삼아 살아온 세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