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기억
페이브먼트 위로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늦가을 오후, 노신사 이준영은 천천히 걷고 있었다. 회색빛 코트 자락이 바람에 흔들릴 때, 그의 시선은 바닥에 떨어진 단풍잎 하나에 머물렀다. 허리를 굽혀 그것을 집어 들자, 낙엽의 결 사이로 윤미예의 얼굴이 떠올랐다. 1970년대, 대학 문학 동아리에서 처음 만났던 그녀. 맑은 눈매와 수줍은 미소, 그리고 시를 읊던 그 목소리.
그녀는 시간이 흘러 유명한 대학병원의 설립자이자 화가로 이름을 떨쳤지만, 이준영에게는 언제나 그 시절의 미예였다. 그는 그녀에게 고백하지 못한 사랑을, 수많은 단편소설 속에 조용히 묻어두었다. 결혼도 하지 않고, 가족도 없이, 오직 글과 기억만을 벗삼아 살아온 세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