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62)

한호건

by 이 범

새벽 일찍, 이산갑은 지팡이를 짚고 집을 나섰다. 오늘도 산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산감님, 오늘도 산에 오르십니까?"
산돌이 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래, 산림을 점검해야지."
이산갑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예전의 온화한 미소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학당 화재 이후로 그의 입가에서 웃음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마을 어귀를 지나는데 백정치가 멀리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백정치는 이산갑을 발견하자 황급히 고개를 돌려 샛길로 빠졌다.
이산갑도 그를 못 본 척 그냥 지나쳤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서영의 죽음 앞에서 모든 말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산길에 접어들자 이산갑의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소나무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오로지 산이 나를 받아주는구나.'



그는 천천히 산을 올랐다. 낙엽을 밟는 소리, 새들의 지저귐,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들... 이 모든 것이 그의 마음을 조금씩 진정시켰다.

큰 바위에 앉아 계곡을 내려다보며 이산갑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 이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을사늑약, 한일합방, 그리고 지금의 민족 말살 정책... 조선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우리의 말, 우리의 글, 우리의 이름까지도 빼앗기고 있었다.

'서영아... 자네가 지키려 했던 것들이 하나씩 무너지고 있구나.'

가슴속에 쌓인 국치의 한이 목까지 차올랐다. 분노, 슬픔, 무력감... 온갖 감정들이 뒤엉켜 있었다.

"산감 어르신!"

한호건이 산길을 올라오고 있었다.


"호건이가 왔구나."

"어르신, 오늘은 저쪽 계곡에 희귀한 난초가 피었다고 해서 확인하러 가는 길입니다."

"그래? 함께 가보세."

두 사람은 나란히 산길을 걸었다. 한호건은 이산갑의 어두운 표정을 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어르신, 요즘 많이 힘드시죠?"

"... 그렇네."

"저도 서영이 선생님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학당에서 아이들 가르치시던 모습이 자꾸 떠오릅니다."

이산갑은 대답 대신 먼 산을 바라보았다.
호건아, 산이 없었다면 나는 이 나날들을 어떻게 견뎠을까..."

"어르신..."

"산에 오르면 조금이나마 마음이 안정되네. 이 소나무들, 이 바위들, 이 흙... 이것들만은 변하지 않고 여기 있으니까."

이산갑은 큰 소나무에 손을 얹었다.

"일본 놈들이 우리의 이름을 바꾸라 하고, 우리말을 쓰지 말라 하고, 심지어 우리 조상을 부정하라 하지만... 이 산만은 여전히 조선의 산이야."
"그렇습니다, 어르신."

"이 땅의 식물들, 나무들, 바위들... 이것들은 수천 년 동안 여기 있었고, 앞으로도 여기 있을 거야. 일본 통치가 50년이 가든, 100년이 가든, 결국 이 땅은 우리 것이 될 거네."

한호건은 이산갑의 말에서 깊은 의지를 느꼈다.

"그래서 내가 산감의 직분을 소중히 여기는 거야. 이 산을 지키는 것이 곧 조선을 지키는 일이니까."

두 사람은 계곡으로 내려갔다. 바위틈에서 정말로 아름다운 난초가 피어 있었다.




"어르신, 저 난초를 보십시오. 저렇게 좁고 척박한 바위틈에서도 꽃을 피웠습니다."

"그렇구나... 우리도 저 난초처럼 살아야 하네.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꽃을 피워야지."

이산갑은 무릎을 꿇고 난초를 자세히 살폈다. 그의 손이 부드럽게 꽃잎을 어루만졌다.



"서영아... 자네도 이 난초 같았어. 일본의 탄압이라는 척박한 바위틈에서도 아이들을 가르치며 아름다운 꽃을 피웠지."이산갑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한호건은 조용히 물러나 이산갑에게 시간을 주었다. 계곡물소리만이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한참 후, 이산갑이 일어섰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슬픔이 있었지만, 눈빛만은 조금 더 단단해져 있었다.

"호건아, 이 난초의 위치를 식물도감에 정확히 기록해 두게. 후세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어르신."

"우리가 하는 이 일들, 산을 지키고 식물을 기록하는 일들이 언젠가는 의미 있는 일이 될 거야. 조선이 다시 일어섰을 때, 우리가 지켜낸 것들이 증거가 될 테니까."

두 사람은 해 질 녘까지 산을 걸었다. 이산갑은 하나하나 나무를 살피고, 산길을 점검했다.


산에서 내려오는 이산갑의 발걸음은 올라갈 때보다 조금 더 안정되어 있었다. 산이 그에게 위로를 주었고, 계속 나아갈 힘을 주었다.

'산이 아니었다면... 이 고통을 어떻게 견뎠을까.'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했다. 일본의 억압, 서영의 부재, 끝없는 감시와 탄압...

하지만 이산갑은 알고 있었다. 내일도, 모레도, 그는 다시 산에 오를 것이다. 그리고 그 산이 그에게 힘을 줄 것이다.

"어르신, 내일도 산에 오르십니까?"

산돌이 가 물었다.

"그럼, 당연하지. 산감의 일은 쉴 수 없으니까."



이산갑은 그렇게 대답했지만, 사실 그는 알고 있었다. 산에 오르는 것이 단순한 일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숨결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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