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위의말들
명희네 가족은 오래간만에 모두 모였다. 아버지는 명희가 좋아하는 생선구이를 일부러 사 와 구웠고, 어머니는 평소보다 반찬을 두세 가지 더 준비했다. 분위기는 평화로웠다. 그러나 마음속에 한 조각의 불편함을 품고 있던 명희는 작은 말실수로 시작된 대화에서 점점 긴장해갔다. 아버지가 “요즘 회사는 어때?”라고 묻자, 명희는 아무렇지 않게 “그럭저럭요”라고 말했지만, 아버지는 “그럭저럭이 뭐냐, 네 나이에 더 적극적으로 해야지”라고 덧붙였다. 명희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말은 마치 오래된 상처를 건드리는 듯했다. 명희는 무심코 “아빠는 늘 그렇게 말해… 내가 뭘 해도 부족하다고 느껴”라고 내뱉었다. 식탁 위의 공기는 단숨에 차가워졌다. 어머니는 조심스레 젓가락을 내려놓았고, 동생은 물잔을 들었다 놓으며 눈치를 봤다. 아버지는 처음엔 놀란 얼굴을 했지만 이내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너도 참 이상하게 받아들이는구나. 그냥 걱정돼서 하는 말인데.”
그러나 명희의 가슴은 이미 뜨거워지고 있었다.
“걱정이라면 그렇게 들리게 말해줘야지! 늘 결과만 보고 판단하잖아!”
목소리가 높아지자 아버지의 얼굴에도 서운함이 비쳤다.
“아빠가 언제 널 무시했어?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었어.”
저녁이 끝나자 명희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녀는 침대 끝에 걸터앉아 손으로 눈가를 훔쳤다. 감정이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지만 동시에 생각이 차분히 드러났다.
‘왜 이렇게까지 아픈 걸까… 아버지 말이 틀린 것도 아닌데.’
그녀는 오래전 기억을 떠올렸다. 고등학교 시절, 시험에서 2등을 했을 때 아버지는 “열심히 했겠지. 그래도 1등 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말했다. 당시 명희는 그 말이 칭찬보다 비판으로 들려 마음이 많이 상했지만, 표현하지 못한 채 삼켰다.
“그때부터였구나… 내가 노력해도 아빠가 만족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가진 게.”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눈물이 조용히 내려왔다.
한참을 울고 난 뒤 문밖에서 조심스레 노크 소리가 들렸다.
“명희야… 들어가도 될까?”
아버지는 머뭇거리며 들어왔다. 그는 눈가가 젖어 있는 딸을 보고 잠시 말없이 앉았다.
“아빠가… 좀 서툴렀다.”
그 한마디에 명희는 울컥했다. 아버지는 어색한 듯 손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나는 네가 뭐든 잘해낼 거라고 믿어. 그래서… 너무 기대했나 봐.”
명희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바라던 말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아빠… 가끔은 내가 노력한 것만 인정해줘도 돼. 결과보다… 내가 얼마나 애썼는지만이라도.”
둘 사이에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그 침묵은 싸늘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다음부턴 더 조심할게. 네 마음을 더 들어보려고 할게.”
명희는 눈물을 닦으며 미소 지었다.
그날 밤, 식탁 위의 미묘한 균열은 조금씩 메워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