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67)

기차여행

by 이 범

경성역, 1933년 여름 방학
플랫폼에 증기기관차의 기적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얀 증기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양장 차림의 두 여인이 객차 앞에 서 있었다.



이은주는 작은 보따리를 들고 있었고, 강지윤은 서양식 가방과 악보집을 손에 들고 있었다.
이은주: "언니, 영광까지 꽤 먼 길인데... 송정리역에서 내려 버스로 가야 해요 괜찮으시겠어요?"
강지윤: (미소 지으며) "괜찮아. 오히려 기대돼. 서해 바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든."
차장이 호각을 불며 승객들에게 승차를 재촉했다.



두 사람은 2등 객차에 올라탔다. 창가 자리에 앉은 강지윤은 가방에서 조그만 수첩과 만년필을 꺼냈다
이은주: (웃으며) "언니는 어디를 가든 연구를 하시네요."
강지윤: "아, 이건 연구가 아니라..." (수첩을 펼쳐 보이며) "영광 지역의 식재료에 대한 메모야. 서해안 지역의 해산물과 곡물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서."
이은주: (감탄하며) "역시... 우리 학과 최고의 영재답네요. 강항 선생님의 학문 정신이 언니께 이어진 게 분명해요."
강지윤은 겸연쩍게 웃으며 수첩을 덮었다.



강지윤: "증조할아버님께서는 일본에서도 학문을 전하셨다고 들었어. 나는... 그분의 발끝에도 못 미치지만, 적어도 배움에 대한 열정만큼은 닮고 싶어."
기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성의 거리가 창밖으로 흘러갔다. 강지윤은 창밖을 바라보며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했다.



이은주: "언니... 혹시 긴장되세요?"
강지윤: (고개를 돌리며) "... 조금. 사실은... 많이."
이은주: "걱정 마세요. 우리 오빠는... 무서운 사람이 아니에요. 오히려 너무 다정해서 문제죠."
강지윤: (작게 웃으며) "은주야, 내가 고백할 게 있어."
이은주: "뭔데요?"
강지윤: "사실... 이산갑 선생님에 대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 동경 유학 시절에."
이은주: (놀라며) "정말요? 오빠가 일본에서도 알려져 있나요?"
강지윤: "응. 조선인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했어. '영광의 계몽가', '민중의 스승'이라고... 젊은 나이에 고향으로 돌아가 학당을 세운 분이라고."




이은주: "그런 이야기들이..."
강지윤: "그리고..." (목소리를 낮추며) "윤서영 선생님 이야기도 들었어. 그분이 일제에 희생당했을 때... 조선 유학생들이 추도식을 열었거든. 나도... 참석했었어."
이은주는 깜짝 놀라 강지윤을 바라보았다.
이은주: "그럼... 언니는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거예요?"
강지윤: (고개를 끄덕이며) "응. 그래서... 네가 처음 오빠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내가 망설이지 않았던 거야. 이산갑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이은주: "그런데도... 오빠를 만나겠다고 하신 거예요?"
강지윤은 창밖으로 펼쳐지는 들판을 바라보았다. 여름 햇살 아래 초록빛으로 물든 논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강지윤: "나는... 사랑받기 위해 결혼하는 게 아니야, 은주야. 존경할 수 있는 분과 함께 뜻을 이루며 살고 싶을 뿐이야. 이산갑 선생님은... 그런 분이시잖아."
이은주: (눈시울이 붉어지며) "언니... 고마워요. 오빠는... 언니 같은 분을 만나야 해요."




기차는 남쪽으로 달렸다. 객차 안에서는 다른 승객들의 대화 소리, 어린아이의 웃음소리, 차장의 호각 소리가 뒤섞였다. 강지윤은 가방에서 작은 악보집을 꺼냈다.



이은주: "그건 뭐예요?"
강지윤: (살짝 부끄러워하며) "슈베르트의 세레나데. 요즘... 이 곡을 연습하고 있어."
이은주: "피아노를?"
강지윤: "응. 학교에 연습실이 있거든. 가끔... 스트레스받을 때 치면 마음이 편해져."



이은주: (장난스럽게) "그럼 영광에 내려가서 우리 집 풍금으로 한 곡 들려주셔야겠네요. 오빠도 음악을 좋아하시거든요."
강지윤: (당황하며) "아, 그건..."
이은주: "걱정 마세요. 오빠 앞에서 피아노 치는 게 선을 보는 건 아니니까요." (웃으며) "그냥... 우리 집 손님으로 오시는 거예요."
강지윤은 안도한 듯 웃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끝은 여전히 악보집을 꼭 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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