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물
맑은 하늘에 봄볕이 이불처럼 따스하게 퍼진다.
부드럽고 포근한 햇살아래, 겨우내 움츠렸던 땅이
깊게 숨을 들이 쉰다.
들판에서 흔히 볼수 있는 냉이, 달래, 쑥 같은 봄나들이
땅속에서 부터 기지개를 켜고 고개를 내민다
봄이 오면, 주말마다 우리집 앞 공터에는 나물을 캐려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알록달록 등산복 차림에 빈 배낭을 멘 그들은 삼삼오오 모였다가
어느새 썰물처럼 산과 들로 흩어진다.
한낮이 지나고 나면 불룩해진 배낭을 메고, 양손에는 무엇인지 가득 담겨있는
비닐봉지를 양손에 하나씩 쥐고 마을을 내려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지천에 깔린 냉이나 달래는 자연이 내어준 것이라 쳐도, 정성을 들여 가꾼
두릅까지 아무렇지 않게 따가는 걸 보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외지인들이 지나간 다음날, 나의집 데크에서 자고 있는 쿠키를 앞세우고 밭으로 향했다.
집에서 텃밭까지 거리는 고작 150미터 남짓, 촐랑대는 쿠키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밭둑을 따라 걷는다, 밭 가장자리에는 아스파라거스가 봄기운을 머금고 삐죽삐죽 올라오고,
그 옆에는 가시없는 두릅나무 순들이 쑥쑥 자라고 있다
길고양이들이 조심스레 지나가는 길섶에는 가시가 촘촘한 엄나무 네그루가 서 있다.
"저놈의 가시나무 베어버리고 말겠어" 볼때마다 나도 모르게 투덜거리게 하는
나무였다, 하지만 엄나무가 '개두릅'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봄나물 중
으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후 로는 마음이 달라졌다
상황에 따라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쉽게 변할수 있다니,
나의 간사함에 스스로 놀랍다.
비온 다음날 일찍 퇴근한 나는 목장갑을 끼고 엄나무 순을 따러 밭으로 갔다
"아뿔싸" 손닿는곳에는 순들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나마 높은곳에는 순들이 남아 있었다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세상을 헛살았군!"
다시 집으로 돌아와 귀찮아 하는 남편과 함께 사다리를 챙겨 밭으로 갔다
조심스레 나무에 사다리를 걸쳐놓고 남편은 윗순들을 따기 시작했다
서너끼는 먹고도 남을 충분한 양이다.
끓는 물에 대략 2~30초 가량을 데친뒤, 된장과 참기름, 깨소금을 넣어
조물 조물 무쳐 밥상에 올리고 가족들과 맛 평가를 했다
개두릅은 참두릅에 비해 향이 더 강하고 식감은 쌉싸름하며 다소 질겼다
참두릅은 부드럽고 연하며 은은한 향이 감돈다
딸은 향이 강한 개두릅에 남편과 나는 참두릅에 손을 들었다
사월이 저물 무렵,숙을 뜯는 사람들로 동네는 다시 들썩인다.
단군신화에서 곰이 쑥을 먹고 인간이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지듯
쑥은 오랜 세월 우리와 함께 한 밀접한 관계가 있다
폐허가 된 땅에서도 살아남는 강인한 생명력 덕데"쑤대밭"이라는
말이 생겼고, 된장국에도 뜸 치료에도, 떡에도 쓰인다.
나 역시 매년 집 뒤뜰에서 자란 쑥을 뜯어 쑥설기를 만들어 이웃에 나누곤 한다
흔한 쑥으로 만든 떡은 그동안 소원했던 이웃과의 정을 다시 이어주는
좋은 매개체가 된다
올봄에는 엄나무 순에서 가시오가피 순까지 지나치게 많은 봄나물 섭취로
인해 설사로 고생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밭둑 어디서나 쉽게 접할수 있는 봄나물 나눔에는
"우리도 있어:" 라며 거절하기 일쑤다
딱 먹을 만큼으로 경험에서 배운 이웃은 욕심부리는 법이 업다
자연이 가르쳐주는 미학은 넘치는것보다 적당함을 풍요속에서
욕심을 덜어내는 법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