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남자 착각하는 여자

내눈에 콩깍지

by 인생서점 북씨

푸르스름하게 날이 밝아오는 이른 새벽, 닭장같은 아파트안 에

갇혀 하릴없이 티비 시청만 하는 부지런한 남편에게 서울생활은

그야말로 고역이었을것이다

나는 부지런한 남편의 재능을 썩이고 있는것 같아 그 시간들을 아까워

했었다. 지인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는 남편의 부지럼함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당신은 시골가면 정말 잘살수 있을 것 같아” 라고 얘기하자 하자

남편은 “왜? 라고 물었다. ”부지런해서“ ”시골은 새벽부터 일어나면 할 일이 많잖아“

마당도 쓸고 텃밭도 가꾸고,그럼 난 그냥 놀고 먹는거 아니여”

그럴때마다 남편은 “뭔소리야” 하는 표정으로 침묵했다.

티비만 보던 남편과 달리, 집안일은 성질 급한 내가 후딱 해치우면

그만이라서 남편의 게으름을 마주할 틈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점점 더 바빠지고 남편은 언제나 느긋했다

아파트에 살면서도 유기 강아지 네 마리를 키운적이 있었는데,

아침저녁으로의 산책 또한 나의 몫 이었다.

부지런한 남편이 빗자루 한번 들면 역설적이게도

그날은 해가 서쪽에서 뜨는날 이기도 했지만. 남편이 시골로 이사가면

크게 달라질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동생이 텃밭용도로 사용할 땅을 함께 사자고 했을 때

인생2막은 시골에서 사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텃밭으로 미리 간을 본 우리는 책방도 집도 전부 정리하고,

양주로 이사를 했다. 시골에 이사 와서도 아침 일찍 일어난

남편은 티비 시청만 하고 있었다.“마당 좀 쓸어줘” 라고

하며 마지못해 “이것 다 보고” 라는 말만 돌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한 사람이라는 콩깍지는 안벗겨지고 있었다.

강아지 산책 시키러 가자고 하면 “너무 피곤해” 라며 거절했다.

얼마나 피곤하면 강아지 산책도 못시키나?

그냥 나 혼자 두 번 왔다 갔다 하면 됱터였다.

봄이 되면 마당의 잔디가 풀에 잠식당해 있어도 오며 가며

풀을 뽑고 있는 나와 달리 남편은 손가락 한번 까닥거리지 않았다.

결국 우리집 마당은 풀밭인지 잔디인지 분간을 못할정도가 되고 말았다.

“여보 옆집 강사장님은 5시만 되면 일하러 나가고

틈만 나면 잔듸 풀 뽑느라고 허리 펼날이 없데”

보통은 이정도 지적이면 움직일 만 하건만 남편은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러들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쯤에 있는 창문앞에 서면 옆집마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넓고 푸른잔디가 펼쳐져 있는 마당을 보고 당시 초등생이었던

손녀 아린이가 “할머니 이제 저기 가서 놀아도 돼?

넓은 마당에, 잔디를 보고 어린 손녀 눈에도 좋아 보였었나 보다.

우리집은 손바닥만한 마당에 온갖 잡풀로 잔디는 눈씻고 찾아봐도 찾을수가 없었다.

옆집의 적당한 길이의 푸르고도 탐스러운 잔디, “아 부럽다“

남편이 규칙적으로 일찍 일어나는 그 한가지만 보고

부지런한 사람일것이라는 착각이 깨진건 시골로 이사온 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마 비교 대상이 없었다면 끝까지 깨달지 못했을 것 같다.

나는 날마다 옆집 강사장님으로 시작해 강사장님으로 끝나는

잔소리가 늘어가고 있었다. 할일이 많은 시골로 이사가면 남편의 부지런함은

빛을 발할것이라는 내 생각은 착각이었다,

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학생이 있는 집에 안방과, 거실에, 티비를 설치하자고

했을 때 알아봐었야 했다, 아침을 일찍 시작 하는건 부지럼함이 아닌

순전히 티비 때문이었다는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상대의 게으름의 속도를 오랫동안 보지 못한채 폭삭 속아온 세월이었다.

”뼈빠지게 수고를 감당하는 나의 삶도 남이 보면 풍경이다” 라는 말이 있다.

치열하게 살아내는 나의 현실도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배경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뒤늦은 깨달음 덕분인지 남편의 깨달음탓인지 요즘은 마당도 쓸고 집안일도

도와주는 남편에게 고마움도 느낀다

잠자는쿠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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