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색 선을 따라가세요!

너는 좌회전 나는 우회전

by 인생서점 북씨

남편은 좌회전과 우회전을 헷갈려 하고,

나는 평면으로 된 지도를 읽지 못해

운전할때마다 우리는 길을 놓치기가 일쑤였다.

어느날 네비에서 흘러나온

“분홍색선 을 따라 가세요” 라는

소리는 신의 음성처럼 들렸다

세상이 좋아져 네비게이션이 길 안내를 해주고 있지만

평면으로 된 네비를 이해 못해 복잡한 시내에서는

길을 잃는 일이 다반사였다. 남편 또한 여전히

좌회전과 우회전이라고 하는 음성안내 를 어려워 해

네비게이션을 켜고 다니는 것보다 한번 다녀온 길은 외우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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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시아버님을 모시고 외출을 하기 위해

골목을 빠져나가자 갈림길이 나타났다

시아버지는 손가락은 오른쪽을 가르키며 좌회전,

좌회전 을 외쳤고 남편은 무심히 우회전 길로 들어섰다.

”아 좌회전과 우회전을 헷갈려 하는것도 유전이구나!“

평소에는 그냥 말실수 였거니 했겠지만 남편의 비밀을 알고 난 후 라서인지

뒷자석에 앉은 나는 웃음을 참을수가 없었다.

긴 세월을 함께 다니면서 남편은 좌회전과 우회전을, 나는 지도를 읽지 못해

서로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던가.


90년대 초반, 우리 가족은 휴가철 마다 어린아이 둘을 태우고

지도 한 장 들고 서로 운전을 교대 해가며 며칠씩이나

길에서 보냈다. 트렁크에는 텐트와 이불과 옷가지,

그리고 아이스박스에는 일주일 분량을 먹거리로 채웠다.

한계령을 넘어 주문진 해수욕장에서 3박을 하고,

강릉에서 7번 국도를 타고 남쪽 방향으로 내려 가다 보면,

해안가 여기저기 우뚝 서있는 기암괴석과 하얀 포물을 그리며 파도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탄성과 환호가 끊이지 않았다.

자연이 만들어낸 풍경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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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지만,

그 당시는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7번 국도 뿐이었다.

서울로 목적지를 정하고 울진에서 내륙으로 들어가는

불영계곡에서 2박을 하고, 중간중간 에 있는 여행지를 찾아 들면서 부터

그 동안의 즐거움은 사라진다. 말도 안되는 일로 남편은 우회전과 좌회전으로,

나는 지도를 읽지 못한채 늘 옥신각신 다투며 다녔다.

뒷자석에 앉아가는 어린 양들은 눈치만 보고 있었다.

대부분 싸움의 발단은 이랬다.

내가 운전할 땐 남편은 지도를 보고 미리 길을 알려준다,

”이번에 좌회전 해!” 라는 소리에 좌측으로 차를 틀려는 순간,

”아니 좌회전을 하라고!“ 남편은 얼굴이 시뻘게지면서 소리를 질러댄다.

손가락은 오른쪽을 가리키고 좌회전이라고 외치는 남편에게

”대체 어느쪽이냐고“ 이쪽이 좌회전이잖아!“


남편이 운전 할 때는 지도 담당은 내가 한다.

지도를 거꾸로 들고 보는 내게 빨리 길을 찾지못한다며

또 소리를 질러댄다. ”아 나도 힘들어, 지도를 어떻게 봐야 될지 모르겠어,

결국에 갈림길 에서 차를 세우고 남편은 내게서 지도를 뺏어 길을 찾는다.

지도를 읽지 못하는 나와 달리, 남편이 좌회전과 우회전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채, 차를 타고 다니면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는 듯이 다투면서 다녔다.

차라리 그때 좌측 우측이 헷갈린다고, 고백이라도 했다면

우리는 덜 싸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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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우회전 좌회전이 헷갈린다는 것을

30년이 지난 후에야 내게 이실직고 했다.

”뭐“ 그말을 왜 이제야 하는데, 진짜 어이가 없네”

예전에 우리 얘들 데리고 놀러 다니면서 엄청 싸웠잖아!“

너무 황당하고 기가막힐 노릇이었다.

얼마전 남편이 의기양양해 하며, 티비에서 어느 연예인의 고백인 즉슨

자신은 좌회전과 우회전을 구분할줄 모른다고 했다며 내게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런 모양이라며 우쭐해 하기도 했다.

그동안 우리는 공감과 배려를 무시한 채 각자의 좌표로

세상을 살아내고 있었다.

그로 인해 생기는 불화나 갈등을, 조금 일찍 알았다면 싸우지 않고

그 귀한 시간들을 거리의 풍경으로 채웠으리라,

이제는 길로 인해 서로를 이해하지 않아도 되는

분홍의 실크로드를 따라 집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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