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한 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이는 말을 하는 것도 어려웠고, 의사 표현뿐만 아니라 과잉행동 장애도 있어 보호자의 손을 놓치게 되면 어디로든 뛰쳐나가기 일쑤였다.
엄마가 화장실을 잠깐 간 사이에 베란다 창문을 열고 에어컨 위로 올라간 적도, 열린 남의 집으로 신발을 신은 채로 뛰어가 소파 위에서 신발을 신은 채 점프를 한 적도, 하지만 그런 경험 속엔 화내며 짜증 내는 분들보다는 괜찮다며 아이를 잃을까 더 염려해준 이웃 분들이 더 많았다.
날도 좋고 평화롭게 느껴지던 어느 날, 엄마는 아름다운 계절의 풍경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4.19공원 나들이를 갔던 날은 더욱이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그 넓은 공원에서 아차 하는 순간 아이의 손을 놓치고 보니 위험한 연못도 있었고 그 위험을 알길 없는 아이가 혹시라도 크게 다치게 될까 엄마는 그 두려움에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게다가 그렇게 잘 뛰는 아이를 앞설 수 있는 그런 힘을 평범한 어른이 내기는 힘들었다.
결국은 이리저리 울며불며 뛰어다니는 엄마를 보다 못해 누군가가 공원 관계자분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공원에 있던 몇몇 분들이 엄마와 함께 아이를 찾기 시작했다. 그때 공원 젤 높은 곳으로 직원분이 올라갔다.
그분이 아이가 어느 방향에 있는지 몸짓과 소리로 알려주면 그 방향으로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가길 몇 번, 이쪽 인가 싶다가도 어느새 저쪽이라는 걸 알게 되고 그렇게 놓치기를 몇 번, 끝이 없을 것처럼 몇 번을 반복했고 어느새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고 일몰이 내릴 때쯤 엄마는 공원 안을 함께 쫓아다녀준 누군가의 도움과 노력으로 아이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아이를 안고 손을 잡은 엄마는 하염없이 울기 시작했다. 그런 엄마를 보며 다른 누구도 힘들었네 왜 그랬냐고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우는 모습만 바라보며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라며 삥 둘러 아이와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의 마음은 다시는 이렇게 넓은 공원에 오면 안 되겠다는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손을 더 꼭 잡아야겠다는 다짐을 한 번 더 했다. 다시는 손을 놓치지 말자고 스프링처럼 튕겨나가지 않게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걸 알고 더 자유롭고 싶어서 그랬던 것일까?
두려움 때문에 먼저 조심하고 막았던 것들이 있지 않았던가?
주변의 누군가 중에서 내게 먼저 손을 내밀고 다가왔던 이들도 있었던 것 같았다. 단지 그들의 시선이 다르고 마음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하고 내가 그들을 외면한 것 일수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진심을 가지고 다가온 그들조차 내가 애써 모른 척한 것도 많았던 듯싶었다. 어쩜 나도 힘들어요 옆에서 조금만 도와주세요 라는 표현을 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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