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전, 생일을 기념하여 인스타그램에 이것저것 올리던 중. 덧글이 달렸다는 알림이 뜨자마자 확인해 보니 오래전 연락이 끊긴 친했던 언니가 등장해 있었다. 생일 축하한다는 그 덧글이 어찌나 반가웠는지! (연락은 오래 주고받지 못했지만 sns 팔로우는 되어 있었다.) 반가워서 답글을 달았다가 결국엔 약속을 잡게 되었다. 처음에는 신나게 약속을 잡았다가 어느 순간 아차, 싶었다. 나... 언니 만날 수 있을까?
그 언니가 n 년 전 봤던 나는 나름 밝고 말도 쫑알쫑알 잘하던 애였는데, 지금의 나는 뭐랄까... 우울증에 찌들어있는 거무튀튀한 인간...인데. 게다가 그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살이 쪘고, 일단 요즘 내 상태가 거의 누가 봐도 '못난 인간'이었다. 맙소사! 나가서 언니가 내 근황을 묻는다면, 난 무슨 말로 답해줘야 할까? 만나지도 않았는데 걱정만 한가득 쌓였다. 1. 아팠어 2. 아~ 휴학 4년이나 하다가 복학해서 학교... 3. 정신이 나갔어. 아이고 참~ 지금 생각하면 뭘 그렇게 싸매고 있었나 싶었는데, 암튼 난 디~게 복잡했다. 휴.
결국 시간이 흘러 만남의 시간이 도래했고! 언니와 그렇게 몇 년 만에 마주하게 되었다. 언니는 엄청난 미녀가 되어 있었고... 언니는 즐겁게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본인의 길도 열심히 준비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있다고. 초등학교 때 오케스트라에서 만났던 우리가 다 커서 현실 취업 얘기를 나누게 될 줄 누가 알았겠냐고. 나는 예상외로 그다지 떨리지도 않은 채로, 너무 즐겁게 얘기를 나눴다. 우리는 나온 음식이 다 굳어버릴 정도로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 옛날 얘기가 나왔다. 누구 때문에 힘들었고, 우리가 어떤 과정을 겪었으며, 어떤 일엔 화도 났고~ 그런 얘기들. 나는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싸대기 한 대 치고 싶다고 말했다. 하하, 그래? 언니는 웃다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는 다 용서했어.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좋아할 수는 없잖아? 그 말에 나는 제법 놀랐다. 왜냐면, 용서했다고 말할 때 표정에선 정말 한 톨의 미련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아직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이라고 말해주긴 했다. 난 그래도 뭐랄까... 저렇게 깔끔하게? 미련 없다는 듯이 말할 수 있다는 점이 무언가 신기하기도 했다.
언니는 온갖 좋은 말을 해주며 내게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내가 가는 방향 지하철이 도착하고, 문이 닫힐 때까지 손을 흔들어줬다. 너무 좋은 만남이었어서, 집에 가는 내내 따뜻하고 행복했다. 그러다가, 언니가 말한 '용서'에 대해서 조금 생각했다.
용서란 무엇일까. 네이버 어학사전에서는 용서의 정의를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 줌'이라고 되어있다. 덮어 준다,라는 말이 조금 끌렸다. 어쩌면 덮어준다는 건, 그로 인해 속상한 내 마음에 따뜻한 이불 하나 덮어주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용서를 한 언니는 꽤 자유롭고 좋아 보여서, 마음에 이불 하나 잘~ 덮어줘서. 그래서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그랬다. 그러다 생각하는 건 결국, 용서는 잘못한 사람을 위해 하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결국 미워하고 아픈 마음을 가진 건 누구도 아닌 나니까. 그런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기 위해 그러는 것 아닌가?
나는 덮고 살기에는.. 그 기억들로 인해 병까지 얻은 상태라 많이 힘들다. 한 달 전에, 나를 힘들게 했던 애를 우연히 보았을 때 그때의 아팠던 감정들이 떠올라서 집에 가는 내내 너무 힘들었다. 나는 여전히 힘든데, 너는 웃고 떠들고 잘 살고 있구나, 그런 생각에 괴로웠다. 어쩌면 이런 나를 위해 용서가 필요한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결국엔 나를 위해서. 내가 덮어두고 살 수 있을까?
그리고 내 용서의 대상은 타인이 아니기도 하다. 나 자신이기도 해.
오늘 친구의 결혼식이 끝나고, 택시를 잡고 돌아가는 길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뭔가 정리가 필요할 것 같다고. 당장 더러워진 방 정리도 포함이겠지만, 일단은 마음 정리를. 정리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아무것도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떠오른 건, 죽지 않을 거면 잘 살아야지...라는 생각? 잘 사는 게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간에. 번듯하게 살아야겠다. 멋지진 않더라도 그럴듯하게 살아야겠어… 창 밖 꽉 막힌 도로를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