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시작점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by 까밀

2월은 퍽 고달팠다. 집에 크고 작은 일이 있었고, 내 상태는 점점 안 좋아졌다. 입원까지 고려해 봤으나... 입원한다고 그렇게 나아질 것 같지도 않아서 하지 않았다. 당장 3월부터 학교에 가야 하는데, 이러다가 열심히 해온 모든 것들이 무너질 것 같아서 두려웠다. 죽으려고 무던히 애쓴 것 같은데 결국 그러진 못했다. 완벽하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죽는다는 건 참 어려운 문제다. 모두에게서 자유롭고 완전한 죽음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까, 그런 이상한 생각도 들었다. 삶이 왜 점점 엉망이지? 완벽하게 누군가를 탓할 수 없는 성정이라 수도 없이 울었다. 나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흘러갈 수 있을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질문들만 스스로에게 던진 채로 끙끙 앓았다.


나에게 있어서 무언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마음이든, 환경이든 간에 일단 터닝 포인트 같은 걸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흘 전 즈음 큰 일을 겪고 나서 한동안은 혼자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누군가 챙겨주지 않고, 오로지 나 스스로 헤쳐나가는 법을 배우고 싶기도 했다. 난 아프니까, 아예 도움을 받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나름의 '이대로 살 수 없다'는 발악을 해보고 싶었다.


뒤늦게 학교 근처에 방을 알아보게 됐다. 남들은 이미 몇 달 전에 집들을 다 구했을 거다. 여러 군데를 찾아본 결과 세 군데가 나왔다. 비싸고 좋은 방도 있었고, 여기서 과연 살 수 있을까 싶었던 방도 있었다. 세 곳을 연달아 돌아보고 나서 아빠와 상의한 뒤 두 번째로 본 방을 계약했다. 완전히 좋은 방이라곤 못하겠다. 하지만 외창이 나있어서 약간의 햇빛을 볼 수 있다. 몸뚱이 하나 겨우 들어가지만 혼자 쓸 수 있는 화장실도 있었다. 가격도 이 지역 방들 중에선 나름 합리적인 편이었다. 그렇게 나는 1.5평 남짓 되어 보이는 방의 계약서에 막힘 없이 내 이름 석 자를 적었다.


오늘이 첫 입주 날이지만 생각보다 방이 마음에 든다. 튼튼하지 않은 싸구려 매트에 몸을 맡겼는데도 생각보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협소하지만 어쨌든 여기는 나만의 공간이다.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진짜 나만의 공간! 아빠는 내가 며칠 못 견딜지도 모른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했지만, 나는 생각보다 꽤 여기 오래 머물 수 있을 것 같다는 묘한 자신감이 든다.


이번학기에는 근로장학생이 되어서 학교 편의점에서 일하게 됐다. 아직 정확히 어느 곳인지 전달받진 못했지만, 걱정보다는 반드시 잘해야겠다는, 그런 마음이 든다. 겨우 석 달에서 넉 달 정도 일했지만 난 편순이 출신이고...! 예전에 몹시 스트레스받았던 그 편의점보다는 훨씬 환경이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내가 일해서 돈을 번다는 것은 당연하면서도 특별한 일이다. 아무것도 못했던 과거의 나보다는 훨씬 발전했다는 반증이기에. 반드시 올해엔 내가 삶을 좀 더 사랑하고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내 인생은 늘 굽이치지만... 그래도 내가 그 거친 물살을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길 바라며! 썩 괜찮은 3월의 시작을 알린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에게도 축복 같은 한 달이 되기를 소원한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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