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시절,
나는 집보다 친구들이 더 편했다.
집에 언제 들어가든,
어머니의 전화에 답하지 않든
그건 나에게 ‘자유’였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어머니의 사랑을 외면한 미숙한 반항이었다.
어머니는 늘 조용히 나를 기다렸다.
화도 내지 않았고, 이유도 묻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무심함으로 여겼지만,
그건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말하지 못한
속상함과 실망을 삼킨 어른의 방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책상 위에서 낡은 이면지를 발견했다.
거기엔 어머니의 작은 글씨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내 새끼만 잘되면 그걸로 됐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어머니의 사랑이란,
말없이 감당해낸 고독과
인내 위에 놓인 선물이었다는 걸.
그 시절,
나는 어머니를 단순히
‘집에 있는 사람’이라 여겼다.
당연한 존재.
챙겨주는 사람. 참는 사람.
존재에 익숙해질수록 감사를 잊어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깨달았다.
어머니는 나를 있는 그대로 믿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내가 다시 공부를 시작했을 때,
어머니는 어떤 의심도 하지 않았다.
“네가 선택한 길이니까 잘될 거다”라고 말해주셨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어머니는 내가 잘나서 믿은 게 아니라,
존재 자체를 믿어주셨던 거라는 걸.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도 부모가 되었다.
아이를 안아본 순간,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의 존재만으로도 벅찬 감동이 밀려왔고,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였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래서 지금,
그 시절 어머니에게 상처를 줬던
내가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엄마, 이제는 알아요. 당신이 얼마나 큰 사람인지.
그 사랑에 늦게나마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당신이 웃는 날이 더 많을 수 있도록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책임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