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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 강상원 Nov 22. 2024

Ted와 헤어질 결심

 마지막 출근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을 때, 복권 판매점에 들렀다. 그날도 판매점 할아버지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당첨을 확인했다. 운이 좋게도 "Congratulation" 문구가 떴다. 두 번째 당첨이었다. 이번에는 흥분하지 않았다. Jack Pot이 아님을 여실이 알고 있었다. 당첨 금액은 지난번과 동일했다. 할아버지는 지난번처럼 내게 당첨금으로 새 복권을 살지 현찰로 바꿔줄지 물어봤다. 이번에는 현찰로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렸다. 곧 이곳을 떠나 더는 복권 살 일이 없을 거라 했다. 할아버지는 잘 지내라는 인사와 여행 잘하라는 안녕을 건네주었다. 당첨금으로 샌드위치를 하나 사 먹었다. 호주의 서브웨이 샌드위치는 야채의 신선함 덕분에 매우 맛있다. 호주에서 서브웨이를 자주 사 먹었는데 그날이 제일 맛있었다.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지난날이 떠올랐다. 복권 당첨에 환상을 품고, 그 환상에 내 미래를 걸었던 시기.


 ‘만원으로 이런 맛있는 행복을 누릴 수 있었는데 왜 굳이 저런 도박에 집착했을까?’


 농장에 마지막으로 출근하는 날이었다. 단순히 감자, 당근 농장의 마지막 출근이 아닌, 호주에서의 마지막 출근이었다. 농장 직원들과 차례차례 인사를 나눴다. 토마스도 그날은 내게 잘 지내라고 인사해 주었다. 테드 아저씨, 올리버와는 유쾌하게 인사를 나눴다. 스퍼드의 배도 평소보다 더 많이 쓰다듬어 주었다. 농장 휴게실 밑에 사는 고양이 가족과도 작별 인사를 했다. 가끔 보이던 오리 가족과도 인사할 수 있었다.


 농장을 돌아보며 마지막으로 실컷 달렸다. 사륜 바이크로 낼 수 있는 속도를 최대한으로 내며 신나게 질주했다. 그렇게 농장 전체를 돌며 그동안 일했던 곳과 인사를 했다. 중간중간 발견한 뱀들은 여전히 반갑지 않았지만, 귀여운 왈라비들이 드문드문 보여서 다행이었다.


 집에 오니 Ted 아저씨한테 문자가 와 있었다. 


 You are so cool man. It was great to spend the time with you. I hope you enjoy your trip.

(너 정말 멋지다! 함께 시간을 보내서 정말 좋았어. 여행 즐겁게 보내길 바랄게)



 내 방과도 작별 인사를 했다. 호주에 있는 동안 늘 룸메이트 또는 하우스 메이트가 있는 삶을 살았다. 그 점이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가끔은 나만의 공간을 누리고 싶었다. 물론 워홀러가 자기 집을 갖는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게다가 하우스 메이트가 고작 한 두 명인 집에 머무는 행위는 사치스럽다고 생각했다.


 번버리에 있는 동안 운 좋게 그 사치를 누릴 수 있었다. 집주인과 거의 마주치질 않았다. 집주인은 완전 집순이였다. 아니, 방순이였다. 자기 방을 거의 나오지 않았다. 거실과 부엌에서 마주칠 법도 했지만, 그것마저도 드물었다. 내가 집에 들어왔을 때 옆방에서 살던 독일-대만 커플은 얼마 안 되어 나갔다. 그리고 내가 그 집을 나갈 때까지(일본인 친구 한 명이 중간에 일주일 머물렀던 것을 제외하면) 세입자는 더 없었다. 심지어 집주인이 길게 여행을 다녀온 적도 있었다. 내게 청소 및 집 관리를 부탁하며 그 기간만큼의 집세도 공제해 줬다. 그 집에 머무는 동안 집을 통째로 혼자 사용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내 집 같은 마음에 자발적으로 청소를 하곤 했다. 그래서인지 호주에서 머물렀던 다른 어떤 곳보다 더 편한 마음으로 공간을 누렸다. 그리고 이 점이 내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집을 나설 때쯤 알 수 있었다.


 내 온전한 공간이 있었기에 감정의 폭풍을 허락할 수 있었다. 술, 외로움, 고립감 등의 감정이 휘몰아치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서사를 거칠 수 있었다. 그 과정이 괴로웠지만 필요한 서사였다. 한 껏 쏟아낸 덕분에 마음에 정화(淨化)가 이루어졌다. 그 카타르시스 끝에서 새로운 꿈이 떠올랐다. 만약 룸메이트가 있었다면 그 공간을 오로지 나만의 감정으로 채울 수 없었을 터였다. 내 공간이었기에 베개를 부여잡고 울 수도 있었고, 마음껏 술에 취할 수도 있었다. 내 방에서 혼자 KFC 목요일 스페셜과 맥주를 즐기는 날은 늘 최고였다.


 먼 이국의 한 시골 마을. 그곳의 허름한 집 작은 방에서 궁상떨고 있는 내가 한심해 보였다. 낡은 매트리스만 덩그러니 놓인 그 공간이 나처럼 초라하게 다가왔다. 그때는 차가운 바람에 살갗이 애리는 것만 느껴졌다. 그렇게 내 고립감을 고조시키는 줄 알았던 그 공간이 사실은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내 부정적인 감정의 발산을 고스란히 받아주고 있었다. 나를 안아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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