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2 Ep1 계(鷄) 판 오 분 전

치킨 나라의 Ted

by Ted 강상원

“단테가 닭농장에서 일해본 적은 있었을까?”


#파리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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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출근 날이었다. 이른 새벽 농장으로 향했다. 그동안 일자리를 간절히 원했던 만큼, 꽤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마음만은 양복을 차려입고, 사원증을 목에 걸고, 넥타이를 꽉 맨 체 큰 건물로 향하는 신입사원의 자세였다. 무엇보다 호주에서 스스로 구한 첫 일자리라는 점과, '무슨 일이 있어도 한인 잡(job)은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지켜냈다는 성취감에 뿌듯함이 더했다.


농장에 도착하니 나와 비슷한 키에 덩치 큰 백인 여성 호주인이 나를 맞이했다. (이하 커스티, 가명) 커스티는 그 농장의 관리자(Supervisor, 한국인들은 편하게 '슈바'라고 부른다)였다. 일을 시작하기 전 안전 교육과 농장의 시스템에 대한 영상을 보았다. 영상을 다 보고 나니 이곳은 단순히 이름만 닭농장일 뿐이었다. 닭고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곳이었다. 오직 계란 생산만 하는 곳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생소하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독사와 독거미에 대한 내용이었다. 영상을 본 후 커스티에게 영상에 나온 모든 독사와 독거미 종류를 다 구분할 줄 알아야 하는지 물어봤다. 커스티는 농장에 자주 출몰하는 독사 한두 종만 익혀두면 된다고 했다. 특히 독사 한 종은 산란기 때만 가끔 볼 수 있고, 그 외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다. 반면 레드백(Redback, 붉은 등거미)은 자주 발견된다고 하며, 독이 있긴 하지만 치명적이지 않으며 바로 치료하면 괜찮다고 했다. 커스티가 무심하게 설명하는 모습을 보고, 무섭다기보다는 이러한 상황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그녀가 더 신기했다. 호주는 역시 야생이 숨 쉬는 '와일드(Wild)'한 나라였다.


농장의 부지는 대략 축구장 10개 정도 크기로, 처음에는 상당히 커 보였지만 사실 호주 기준으로는 매우 작은 편이었다. (호주에서 가장 큰 농장은 경상도 전체와 비슷한 크기라고 한다.) 농장에는 대략 10~15개의 큰 하우스가 있었고, 각 하우스마다 번호가 있었다. 나는 커스티의 설명을 들으며 하우스 중 하나로 들어갔다.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조금 전 들었던 독사와 독거미는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거대한 미닫이문을 열자마자 케이지 속 수만 마리의 닭들이 동시에 울어대며 날갯짓을 시작했다. 천장에 달린 대형 환풍기도 굉음을 내고 있었다. 닭털, 모이, 먼지 등이 가득 날려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였다. 무엇보다 파리가 시야를 방해할 정도로 많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날 본 파리들은 적은 편이었다.


몇몇 하우스는 문을 열자마자 파리 떼가 쏟아져 나왔다. 마치 검은 연기로 가득 찬 집의 창문을 열자마자 발생하는 백드래프트(Backdraft) 현상 같았다. 한 번은 멀리서 다른 동료가 문을 여는 모습을 봤다. 문이 열리자마자 파리 떼가 난폭하게 튀어나왔다. 폭발하듯 쏟아져 나오는 모습은 어떤 의미로는 장관이었다. 판타지 영화에서 괴물이 입을 벌려 검은 벌레들을 토해내는 장면 같았다.


그 검은 벌레 떼보다 더 기분 나쁜 것은 그들의 새끼, 즉 유충들이었다. 파리가 유독 많았던 몇몇 하우스는 유충 또한 가득했다. 하우스 바닥 전체에 깔려 있었다. 하우스 바닥은 닭 모이와 각종 먼지가 쌓여 있어 회색 시멘트색과 누런색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파리가 점령한 하우스는 바닥이 묘한 하얀색을 띠었다. 바닥을 덮은 구더기 무리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일종의 착시 현상이 일었다. 바닥을 가득 채운 벌레들이 조금씩 꿈틀거리니, 마치 바닥 자체가 움직이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시각적인 혐오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벌레들 때문에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벌레를 밟지 않고 하우스 안을 이동할 수 없었다. 평소 바닥 청소를 하지만, 수십억 마리의 파리 떼 앞에서는 소용없었다. 바닥을 아무리 깨끗이 쓸어도 하루나 이틀 뒤면 다시 구더기가 들끓었다. 매일 구더기를 밟아가며 일해야 했다. 벌레들이 터지는 느낌은 두터운 안전화를 뚫고 내 발바닥까지 전달되었다. 그때마다 ‘오도독오도독’하는 환청이 들렸다. 파리와 구더기가 가득한 하우스는 파리대왕 벨제부브가 머무는 지옥이었다.


케이지 안에는 닭들이 5~6마리씩 들어 있었고, 그 케이지들이 일렬로 쭉 이어져 있었다. 대략 30~40미터 정도 길이를 이루며 4~5층 구조로 되어 있었다. 그런 거대한 규모의 닭장이 하우스마다 4~5개씩 있었다. 케이지 앞에는 닭 모이통이 배수로 같은 형상으로 길게 달려 있었고, 닭 모이 기계가 시간에 맞춰 자동으로 왔다 갔다 하며 모이통을 채웠다. 케이지 바닥은 살짝 앞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닭들이 알을 낳으면 자동으로 모이통 밑에 달린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계란이 굴러오게끔 설계돼 있었다. 케이지 층 사이에는 또 다른 컨베이어 벨트가 있었고, 닭의 배설물이 그 위로 떨어지면 하우스 반대편 입구에 있는 거대한 구덩이로 흘러갔다. 그 구덩이는 수영장 레일 하나 크기 정도였고, 직사각형 모양으로 땅 아래 움푹 파여 있었다. 구덩이는 무거운 철문으로 덮여 있어서 다행히 냄새가 올라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미 하우스 내부는 날짐승들이 뿜어내는 온갖 구린내와 역한 냄새로 가득했다.


하우스의 구조를 전반적으로 익히면서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첫째는 '여기가 정말 농장이 맞나?' 하는 생각이었다. 거대한 규모의 닭장을 보니 농장이라기보다는 달걀을 만드는 공장 같았다. 표면적으로는 농장이지만 실제로는 'Planting'보다는 'Manufacturing'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특히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이동하는 달걀을 보면 공장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해 보였다. 각각의 하우스에서 모인 달걀들은 농장 한쪽에 따로 마련된 포장 창고로 이어졌다.

또 한 가지 의문은 바퀴벌레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 커다란 대변 구덩이는 바퀴벌레에게 유토피아 같은 곳일 텐데 말이다. 그곳은 축축하고, 어두웠으며 먹이가 무한히 제공됐다. 천적도 거의 없었다. 블루텅 도마뱀이 가끔 나타나기는 했지만, 겨우 한두 마리뿐이었다. 생각할수록 바퀴벌레가 없다는 사실이 이상하면서도 다행이라고 느꼈다.

환풍기가 여러 대 달려 있긴 했지만, 수만 마리 닭들이 만들어내는 먼지는 이를 상회했다. 그래서 농장에서 처음 맡은 일은 청소였다. 첫 한 달 동안은 크고 작은 송풍기를 사용해 바닥의 먼지와 구더기들을 주로 없앴다. 송풍기 바람이 너무 강력해서 바닥의 작은 돌들이 튀었고, 그 돌들은 케이지 곳곳에 부딪혔으며 가끔은 내 얼굴이나 몸에도 튀었다. 처음엔 따갑고 불쾌했지만, 금세 적응했다. 구더기들도 가끔은 날려 내쪽으로 튀었다. 이는 도저히 적응이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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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鷄) 릴라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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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들이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알을 낳지 못하거나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알을 낳을 때면 폐사 작업을 했다. 커다란 플라스틱 통과 질소통을 가지고 하우스로 들어갔다. 플라스틱 통에는 뚜껑이 있었고, 질소통에는 얇은 호스가 연결돼 있었다. 케이지를 하나하나 열어가며 닭들을 플라스틱 통에 담았다. 닭들을 통에 담기 위해 통의 뚜껑을 열고 닫았고, 통으로는 질소가 계속 투입됐다. 닭들은 금세 기절했다. 기절한 닭 위로 닭들이 계속 쏟아졌다. 무자비한 살상처럼 느낄 틈도 없었다. 커스티는 "Hurry!", "Hurry!"를 쉴 새 없이 외쳤고, 나는 정신없이 닭의 발목을 잡아챈 뒤 상자에 던지기 바빴다.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통에는 닭 수 백 마리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아래에 놓인 닭들은 이미 뇌사 내지는 압사를 당한 상태였다.


케이지를 열 때마다 닭들은 난리를 쳤다. 케이지 안의 닭발을 한 번에 낚아챘다면 큰 문제가 없었겠지만, 죽음을 직감한 닭들은 민첩했다. 노계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오히려 숱한 전투를 치른 노병 같았다. 닭을 꺼내기 위해 손을 넣으면 닭들이 날카롭게 쪼아댔다. 가끔은 닭을 놓치거나, 케이지를 열자마자 닭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닭들과 사투를 벌이다 보면 상처가 생기기도 했다. 닭의 발톱이 주로 팔 위로 거칠게 할퀴고 지나갔다. 처음 경험했을 때는 그 느낌이 소름 끼쳤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처가 늘어갔다. 그에 따라 소름 끼침은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 특유의 느낌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발톱에 할퀴면 마치 무딘 칼날이 살갗 위로 지나가는 것 같았다. 노계의 칼날은 무뎌졌을지라도 불규칙한 요철이 톱처럼 거친 자상을 남겼다. 팔에 얇고 굵은 검붉은 생채기가 새겨졌다. 팔 토시를 꼈지만, 가끔은 소용이 없었다. 그나마 대부분의 상처가 팔이어서 다행이었다. 가끔은 닭이 얼굴로 달려들었다. 도망치기 위한 몸부림인지 죽기 전 발악인지 모를 맹렬한 기세였다. 내 얼굴 정면으로 날아오는 닭의 눈을 보면 가끔은 소름 끼쳤다. 다행히 닭이 얼굴을 할퀸 적은 없었다. 닭이 내 얼굴 쪽으로 사나운 기세로 날아들 때마다 두 팔로 얼굴을 감싸며 도망쳤다. 부득이한 경우 얼굴을 최대한 돌렸다. 한 번은 그 맹렬한 폭격을 피하지 못했다. 다행히 폭격은 얼굴을 비껴갔다. 하지만 목 부근에 길고 붉은 상처를 남겼다.


커스티는 특히나 눈을 잘 보호하라고 경고했다. 커스티는 예전에 닭이 얼굴을 할퀸 적이 있었다고 했다. 이마에서부터 눈꺼풀을 지나 볼까지 긴 상처가 났다고 말하며 흉터를 보여줬다. 잘 보이지 않았지만 미세한 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커스티는 그나마 눈이 다치지 않아 다행이었다고 했다. 자칫하면 실명했을 수도 있었다며, 나를 비롯한 다른 신규 직원들에게 주의를 줬다.


닭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늘 몇 마리씩 놓쳤다. 놓친 닭을 잡기 위해 하우스 문을 닫고 닭들을 몰아가며 잡았다. 늙은 닭들이 뒤뚱뒤뚱 뛰는 모습을 보면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닭들이 달리는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하지만 잡으려 하면 날아올라 잡기 어려웠다. 가끔은 죽음을 직감한 닭이 이판사판으로 내게 달려들었다. 처음에는 무서웠고, 나중에는 측은했고, 어느덧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하루 일과에 불과했다.


그렇게 하우스의 닭들을 모두 처리한 후에는 물청소를 했다. 강력한 수압을 지닌 물총을 이용했는데, 물청소는 그나마 업무 강도가 낮았다. 일이 익숙해졌을 때는 음악을 흥얼거리며 일하기도 했다. 케이지, 대변 컨베이어 벨트, 모이통 등 묵은 때를 물총으로 씻겨냈다. 구석구석 수 만 마리의 달과 벌레가 만들어낸 오물이 묻어있었다. 그 오물엔 닭의 깃털 뭉치가 장식처럼 꽂혀 있었다. 물총으로 오물을 씻어 낼 때마다 내게 다시 튀기곤 했다. 케이제에 몇 달간 묵혀있던 각종 오염물을 맞아가며 일해야 했다. 마스크와 방수복을 입었지만 일부는 얼굴로 튀었다. 그렇게 케이지 구석구석을 물총으로 청소하고 나면 바닥엔 온갖 오물이 쌓여 있었다. 이를 기다란 끌개로 밀어 하우스 끝의 대변 구덩이로 밀어 넣었다.


처음 물청소를 해본 날이었다. 대변 구덩이를 열었을 때 조금 겁이 났다. 대변 구덩이를 열자마자 바퀴벌레 수만 마리가 뛰쳐나올까 걱정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대변 구덩이 안은 벌레가 없었다. 고작 거미 몇 마리가 전부였다.


대변 구덩이에 있는 오물은 배수 시설로 흘러갔다. 가끔 배수 시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는 펌프를 이용해 오물을 다른 곳으로 빼냈다. 한 번은 펌프가 막혀 내가 직접 고쳤다. 스패너로 볼트를 하나하나 풀어 호스를 펌프와 분리시켰다. 그러자마자 펌프와 호스의 연결부가 터지듯 분리됐다. 그와 함께 오물로 가득한 폭탄이 터져버렸다. 그날 나는 그 폭탄의 위력을 온전히 경험했다. 똥물을 얼굴 정면으로 맞았다.


‘그래 까짓 거 힘들면 어때. 내가 원했던 거야’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난 벌면서 하잖아’

‘이런 경험이 날 성장하게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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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좋아한 짐바브웨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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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바브웨 출신인 존은 농장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했다. 당시 커스티를 비롯해 농장에서 일하던 모든 호주인들이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존 또한 별로 어울리고 싶은 눈치도 아니었다. 존은 늘 입에 욕을 달고 살았다. 영어 욕은 한국어만큼 욕이 풍부하지 않음을 존을 통해 더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존의 주 업무가 정확히 뭐였는지 모르지만 존은 내가 일했던 농장과 달걀 패키징 하는 곳을 오가면 일했다. 아무래도 달걀 출하와 관련된 업무를 맡은 듯했다. 그 때문에 내가 존과 부딪힐 일을 없었다. 간혹 가다 존과 업무상 몇몇 대화를 나눴던 적은 있었지만 이해하기 힘들었다. 말 중간에 F로 시작하는 말들이 자주 등장해 그 단어만 들리곤 했다. 욕을 제외하더라도 존 특유의 억양을 알아듣기 어려웠다. 존이 내가 만난 첫 짐바브웨 사람인지라 그것이 짐바웨 특유의 억양인지 존 특유의 억양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농장에 성격 거친 아저씨가 하나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이상한 아저씨가 커스티에게 와서 무엇을 요청했다. 직원 한 명이 필요하다는 요구였다. 존은 나를 데려갔다.


농장 전역에 있는 하우스에는 컨베이어 벨트로 연결 돼 있다. 작은 상자 규모의 컨베이어 벨트가 모이고 모여 기다란 컨베이어 벨트르 따라 패키징 공장으로 흘러갔다. 각각의 하우스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모인 달걀이 패키징 공장으로 옮겨질 때면 유독 특정 구간에서 달걀들이 벨트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생산되는 달걀양이 많아서인지 그 부분을 굳이 보수하지 않고 농장을 운영했다. 그 구간에 오히려 배수로를 설치해 오히려 처분했다. 문제는 그 배수로 앞이 깨진 달걀로 항상 가득 차 있었다. 썩은 계란냄새가 진동을 했고, 주변에 날벌레가 들끓었다. 농장에서 일하는 동안 그 근처를 지나갈 때면 역한 냄새가 남에도 묘한 호기심에 계속 처다 봤다. 그러던 어느 날 농장의 한 이상한 아저씨가 나를 그 그곳으로 끌고 갔다.


“Clean everything up here(여기 다 치워)”

“What do you mean everything?(무슨 말이야 다 치우라니?)”


그 너저분한 곳을 다 치우라는 것이 이해하 안 갔다. 처음에는 그곳을 치우기 위한 청소 도구가 따루 있을 줄 알았다. 그렇지 않고 서야 그 난잡하고 더러운 곳이 그나마 관리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존은 내게 기본적인 도구만 쥐어줬다. 그리고는 깨끗이 치우라는 말만 하고 가버렸다.


나는 어느정도 청소를 마치고, 존을 불렀다. 그만하면 벨트 위에서 떨어지는 계란들이 배수로로 잘 흘러갈 것 같았다.


“It is still F****** a mess!(여전이 졸라 드럽잖아!)"


‘아니 어떻게 치우라고 제대로 설명도 안 해주고, 어느 부분을 특히 깨끗하게 치우라고 알려주지도 않았으면서 어쩌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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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치우기 시작했다. 방금 깨진 신선한 계란부터 더 이상 계란인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색이 변질된 액체가 뒤섞인 곳으로 발을 옮겼다. 싱싱한 달걀과 썩은 달걀의 냄새가 아주 묘하게 섞여 있었다. 파리를 비롯한 날벌레는 여전히 주변을 거칠게 맴돌았다. 우선 빗자루와 삽으로 계란 껍데기를 모두 쓸어 담았다. 바닥에 들러붙은 것들은 호스를 이용해 배수로로 다 밀어 넣었다. 묵은 때는 솔로 박박 문질렀다. 존이 처리해야 할 일인데 나한테 떠넘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괜히 만만해 보이는 아시아인한테 짬처리 한 거 아니야!? 좋아. 차라리 이렇게 된 거 내가 대한민국 육군 병장파워를 제대로 보여준다. 인종차별자야 덤벼봐라.”


조금 화가 났지만 오히려 그 화를 열정으로 전환시켰다. 군 시절 작업하던 때를 떠올리며 작업 혼을 불태웠다. 다시는 지저분하다는 말이 안 나오도록 바닥을 벅벅 문질렀다. 배수로 주변까지 청소를 싹 마쳤다. 마스크를 벗어보니 조금 전보다 냄새가 훨씬 줄어 있었다. 주변의 흙들이 찝찝한 냄새를 여전히 조금 머금고 있기는 했지만 크게 비위 상할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다시 존을 불렀다. 마치 학창 시절 학생주임 선생님께 화장실 청소 검사를 받는 느낌이었다.


“Wow, it’s beautiful.(와우, 아주 좋아!)”


존은 정말 마음에 들어 했다. 그 모습을 보니 존이 이렇게 웃을 줄도 아는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내 작업 결과물을 보며 제법 뿌듯함을 느꼈다.


‘병장 파워 아직 살아 있네.’


아무튼 그날은 그렇게 잘 넘어갔다. 문제는 그 일로 인해 존이 나를 마음에 들어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존은 다시 나를 불렀다. 이번에는 자신이 주로 일하는 패키징 공장이었다. 그곳에서 주로 여자들은 살균된 달걀을 포장해 상자에 담았다. 남자들은 그 상자들을 옮기는 일을 했다. 쉽게 말해 택배 상하차와 비슷한 작업이었다. 패키징 공장의 남자 노동자 한 명이 자리를 비우게 됐고,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존은 나를 데려갔다.

패키징 공장 닭 농장보다 조금 더 일찍 출근해 더 늦게 퇴근했다. 대신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격일 출근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노동 시간이 길어서 그런 줄 알았다. 그 이유도 맞았지만 도저히 매일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달걀 한 상자의 무게는 대략 8kg이었다. 이를 하루종일 날라야 했다. 택배 상하차처럼 허리를 굽힐일은 다행히 별로 없었다. 하지만 내 이두근에 경련을 일으키기엔 충분했다.


‘존은 왜 날 이런대로 끌고 와서. 그때 배수로 청소 대충 할걸 그랬나? 아니야, 이것도 경험이지. 호주에 와서 별의별 체험을 해보는 것이 목표였잖아. 차라리 잘 됐어.’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호주에 온 이유를 되새기며 마음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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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ralton Again feat. 라쿠카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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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농장에서 일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였다. 커스티는 나를 비롯한 몇몇 직원에게 제랄튼(Geralton)으로 출장을 가야 한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내가 일하던 회사가 제랄튼 지역에도 또 다른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알고 있는 그 제랄튼이 맞는지 의아했다. 얼마 전까지 그곳에서 일을 구하지 못해 궁핍한 생활을 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곳으로 다시 일하러 간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했다.


출장 당일, 오전 내내 어린 닭들을 이동형 케이지에 옮겨 담았다. 닭이 가득 담긴 케이지는 트럭에 차곡차곡 실렸다. 한 하우스를 가득 채울 만큼 많은 양이었다. 트럭 뒤에는 물청소용 수압탱크가 매달렸다. 그렇게 수만 마리의 닭과 함께 제랄튼으로 향했다.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트럭 뒤의 닭들이 꼬꼬댁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약 4시간을 달려 제랄튼의 닭농장에 도착했다. 며칠 전 그곳에서 힘들었던 시간을 생각할 새도 없었다. 빈 하우스에 닭들을 서둘러 옮겨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날은 평소보다 늦게 하루가 끝났다. 오랜 노동을 마치고 농장 내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컨테이너를 개조한 형태였다. 샤워를 마치자 피곤함이 몰려왔고, 나는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그제야 며칠 전 제랄튼 시내 백패커에서 무기력하게 누워있던 모습이 연기처럼 떠올랐다.


'정말 사람 인생 한 치 앞도 모른다더니... 여기서 일을 못 구해 그렇게 힘들어했는데, 결국 일 때문에 다시 이곳에 오게 되다니. 인생이 참 아이러니하다.'


다음 날 빈 하우스 물청소를 시작했다.


물청소를 하기 전 대변통의 철판 덮개를 열어야 했다. 대변통은 직육면체 형태로 땅 밑에 파인 구덩이였다. 구조가 마치 작은 수영장 같았다. 대변통을 덮은 철판이 무거워 혼자 들기 어려웠다. 먼저 일자 드라이버나 끌개 같은 도구를 이용해 틈을 만든 후 두 사람이 철판을 들어 올려야 했다.


여느 때처럼 청소 준비를 하고 있었다. 환풍기를 끄고 양쪽 문을 활짝 연 후, 대변통 덮개만 옮기면 됐다. 평소처럼 덮개에 끌개를 넣어 틈을 만들었는데,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검은 물체들이 마구 튀어나왔다. 바로 바퀴벌레들이었다. 호주의 바퀴벌레는 한국보다 훨씬 크고, 큰 것은 성인 남성 손바닥만 하다. 그런 것들이 수십 마리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놀라긴 했지만 철판을 놓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같이 철판을 들고 있는 동료가 다칠 수 있다. 찝찝함과 함께 눈을 질끈 감으며 철판을 완전히 들어 올렸다.


철판 이면에는 수백 마리의 바퀴벌레가 붙어 있었다. 몇 마리는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일부는 바닥에서부터 기어와 내 몸에 달라붙었다. 나는 철판을 벽에 세운 후 내 몸 위를 기어 다니는 벌레들을 털어냈다. 방수복을 입고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그 방수복이 마치 전쟁터에서의 갑옷처럼 나를 보호해 주었다.


대변통을 들여다보니 상황은 아비규환이었다. 가로 1.5미터, 세로 10미터, 깊이 1.5미터의 직육면체 구덩이는 바퀴벌레로 가득 차 있었다. 구더기가 들끓던 하우스 바닥은 평범한 곳이었다. 눈앞의 여기가 진짜 지옥이었다. 단테는 ‘신곡’이란 작품에서 지옥을 생생하게 묘사했다던데, 과연 단테가 닭농장에서 일해본 적은 있었을까? 좀비가 들끓는 도시를 바라보는 영화 속 주인공의 심정이 이랬을까? 이곳이 포스트 아포칼립스 인가? 모세가 이집트에 내린 10가지 재앙과 비슷한 수준으로 보였다. 눈앞의 벌레들이 만약 인간을 잡아먹을 수 있다면 나는 순식간에 뼈만 남을 것이 분명했다.


군대에서 당직 근무를 설 때였다. 새벽 무렵 우연히 자연 다큐멘터리를 봤다. 그 다큐멘터리에서는 박쥐 수만 마리가 사는 동굴을 소개하고 있었다. 박쥐들이 천장에 매달려 배설을 해 동굴은 박쥐 배설물로 가득했다. 그 장면만으로도 충격적이었지만, 그 뒤에 나온 장면은 더 경악스러웠다. 박쥐 배설물을 먹이로 삼는 수억 마리의 바퀴벌레들이 동굴 바닥을 덮고 있었다. 벌레들은 물결처럼 요동쳤다. 큰 죄를 지은 사람이 죽고 나서 저 벌레의 바다에 빠지는 형벌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티브이에선 "이곳은 바퀴벌레에게 천국이나 다름없습니다"라는 내레이션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 장면이 너무 혐오스러워 바로 채널을 돌렸다. 찰나였지만 징그러움은 강렬했다. 그리고 눈앞에 TV에서 봤던 충해(蟲海)가 펼쳐져 있었다. 펼쳐진 광경은 그와 유사했다. 마치 내가 그 동굴에 들어온 것 같았다. 아포칼립스에 사는 인간이 느끼는 절망을 직관적으로 느꼈다. 대변통은 인간에겐 디스토피아, 바퀴벌레에게는 유토피아였다.


대변통의 배수로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대변통 안에 들어가야 했다. 다행히 내가 아닌 함께 출장 온 호주인 그레이엄과 현장 농장 관리자가 그 일을 맡았다. 나는 바퀴벌레 소굴을 처다 보는 것만으로도 질색이었는데, 두 호주인은 아무렇지 않게 그곳에서 대화를 나누며 일을 했다. 그런 그들의 태도가 믿기지 않았다. 바퀴벌레 몇 마리가 그들의 몸을 타고 기어오르는데 누구 하나 소름 끼쳐하지 않았다. 그저 무심하게 맨손으로 툭툭 쳐낼 뿐이었다. 세상의 종말로부터 우리를, 아니 나를 구원해 준 영웅이었다.


바퀴벌레가 하우스 구석구석으로 퍼져 있었다. 벽과 바닥 곳곳에 무리 지어 새카맣고 커다란 점을 만들었다. 언뜻 작은 괴물들이 서로 뭉쳐 커다란 괴물이 된 것 같았다. 몸집을 키운 괴물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물총을 발사해 처리했다. 마치 영화 '고스트 헌터'의 주인공처럼 괴물들을 물리쳐 나갔다. 내 물총은 케이지에 낀 묵은 때뿐만 아니라 하우스의 검은 반점까지 지웠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출장 온 동료들과 서로의 몸에 물총을 쏘아 줬다. 혹시 바퀴벌레가 달라붙어 있을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찝찝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숙소는 철저하게 문단속을 했다. 현관문뿐만 아니라 창문 틈새, 그리고 그 밖의 모든 틈을 확인했다. 바퀴벌레가 절대 숙소로 들어오지 못하게끔 철저하게 검사했다. 바퀴벌레는 어떻게든 작은 틈을 찾아 들어온다고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요새를 구축했다.


출장을 하루라도 빨리 마치고 돌아가고 싶었다. 차라리 독사나 독거미를 마주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닭농장 업무는 육체적 강도가 높은 편은 아니었다. 그보다 혐오, 소름 끼침, 징그러움, 더러움과의 싸움이었다. 쉽지는 않았지만 일련의 뿌듯함을 느꼈다. 영화감독 혹은 미국 유학이라는 목표를 향해 스스로의 힘으로 분투하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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