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4 Ep2 자전거로 호주 횡단

우리의 여행이 더욱 특별 해 질 때

by Ted 강상원

“웃는 돌고래에게 나도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Da-da-da-da, 또 물보라를 일으켜


여행 전 아들레이드에서 즐길 수 있는 투어 상품을 알아봤다. 글레넬그(Glenelg) 지역에서 돌고래와 함께 수영할 수 있는 투어가 있었다.(아들레이드 외에 다른 지역에서도 체험할 수 있다) 돌고래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말에 꽂혀 바로 예약했다.


늦은 밤 아들레이드(Adelaide)에 도착했다. 공항을 나와 예약해 둔 백패커로 갔다. 피곤한 마음에 침대에 쓰러졌지만 몇 시간 뒤 일어나야 했다. 돌고래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제법 이른 시각까지 글레넬그 비치(Glenelg Beach)에 도착해야 했다. 하지만 호주는 새벽부터 운행하는 대중교통 따위는 없었다. 이곳은 대중의 서비스보다 개개인의 삶이 중요한 나라다. 하는 수 없이 내가 머물던 백패커에서 글레넬그 해변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아직 새벽 어스름도 하늘을 물들이지 못한 시각이었다. 여전히 어둠 속에서 가로등 불빛이 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한국이라면 이 시간에도 문 연 곳이 많고, 사람들도 드문드문 보였겠지만 역시 호주는 조용했다. 그 조용하고 어두운 도시를 혼자 걸으니 그 또한 생소하고 재밌는 경험이었다. 마치 거대한 테마 마크를 통째로 빌린 듯했다. 고요함이 잠식한 이국적인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나 홀로 도시의 매력을 고스란히 누렸다. 날씨는 제법 쌀쌀했지만 텅 빈 거리에서 누리는 충만한 자유로움이 추위를 막아 주었다. 그 순간만큼은 아침도 여명도 영영 찾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이런 내 마음을 도시가 알아챈 듯했다. 점점 밝아오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는 못 했지만 나 외에 누구도 그 거리를 허락해 주지 않았다. 글레넬그 해변까지 가는 내내 홀로 거리를 누볐다.


예상한 것보다 글레넬그 해변에 일찍 도착했다. 가로등 불빛이 꺼지고, 조금씩 푸른 어스름이 해변과 그 마을을 뒤덮었다. 문제는 조금 쌀쌀했던 날씨가 급격히 추워졌다. 해뜨기 전 바닷가는 날씨는 정말 추웠다. 투어가 시작하려면 1시간은 더 기다려야 했다. 여전히 문 연 가게는 단 하나도 없었다. ‘한국이었다면 편의점에 들어가 뭐라도 먹으면서 쉬었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콧물이 나기 시작했고,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머리도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다. 몸살기운임을 직감했다. 이대로라면 몇 백 불씩 지불한 투어 참여는 불가능해 보였다. 일단 투어 시작 전까지 어떻게든 버텨보기로 했다. 그 후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숙소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해가 밝아오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호주는 일교차가 크다. 세계에서 가장 큰 바다(태평양, 인도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평지를 있는 그대로 질주한다. 이런 칼바람은 아침저녁에 더 날카로워진다. 반대로 해가 뜨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온화해진다. 이 때문에 체감상 일교차가 더 크게 다가온다. 지난 2년간의 호주 생활로 이를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글레넬그 비치가 밝아지며 서서히 주변과 내 몸이 따뜻해지는 경험은 신비로웠다. 어느새 글레넬그 비치는 쨍쨍하고 화사한 햇빛이 구석구석 스며들어 있었다. 내 몸에도 치유의 빛이 내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추위, 콧물, 두통이 싹 가셨다. 몸살 기운 같던 오한과 그로 인한 불안감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신기한 당혹스러움과 함께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투어 비용이 헛되이 날아갈 뻔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선착장에 여행 바우처에서 확인한 배가 보였다. 요트 앞에 투어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명단을 확인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차례차례 승선했다. 나도 사람들을 따라 배 위로 올라섰다. 그 순간 지난해 인도양에서 랍스터를 잡던 일이 잠시 스쳐갔다.


요트는 곧 시원한 속도로 바다를 가로질렀다. 여행객들은 사진을 찍고, 바다를 관찰하며 투어를 즐기기 바빴다. 대부분이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유독 독일 사람이 많았다. 요트 직원들은 여행객들의 사진을 찍어주거나 바다를 관찰하며 돌고래 무리를 찾았다. 그러던 중 어느 한 직원이 먼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돌고래 무리였다. 먼 곳에서 돌고래 무리가 수면 위로 점프하며 즐겁게 헤엄치고 있었다. 그 귀엽고 매끄러운 곡선의 자태가 수시로 수면 위로 둥글게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생의 율동이 주는 감동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모두 즐거워했다. 어느새 돌고래 무리들과 가까워졌다. 직원들은 요트 주변에 돌고래 먹이를 뿌렸다. 돌고래들은 그 먹이를 따라 요트 양옆으로 함께 헤엄쳤다.


항해를 잠시 멈추고 직원들의 안내가 있었다. 승객들은 구명조끼와 스노클 마스크를 착용하고, 선미로 향했다. 선미에는 밧줄 몇 개가 꼬리처럼 길게 달려 있었다. 각각의 꼬리들은 일정 간 간격을 유지하며 바다 위에 둥둥 떠 있었다. 여행객들은 바다로 뛰어내렸다. 이어서 차례차례 밧줄에 매달렸다. 밧줄에는 사람들이 잡기 쉽게 중간중간 매듭이 있었다. 어느새 사람들이 출렁이는 물결에 따라 위아래로 움직였다. 사람들이 밧줄을 꽉 잡은 것을 확인하자 배는 다시 출발했다. 나를 비롯해 투어객들은 배 뒤에 굴비처럼 주렁주렁 매달려갔다. 배는 위험하지 않게 적당한 속도로 나아갔다.


몇 분여의 시간이 흘렀을까 배 주변으로 다시 돌고래들이 나타났다. 직원들이 돌고래 무리 근처로 가 바다에 먹이를 뿌리며 유인했다. 돌고래들은 어느새 사람들 바로 옆까지 와서 헤엄을 치고 있었다. 나는 놀란 마음에 밧줄을 쥔 손에 더 힘이 들어갔다. 바로 눈앞에서 돌고래가 수면 위로 무지개 같은 반원을 그리며 헤엄치고 있었다. 이내 고개를 숙여 얼굴을 바다 밑으로 담갔다. 바다 밑은 새파라면서도 투명했다. 푸른빛이 온 세상을 감싸면서 동시에 구석구석을 비췄다. 그 푸른 세상에서 돌고래들이 부드럽게 유영하고 있었다. 몇몇 돌고래들은 튀어 오르기 바빴고, 몇몇 돌고래들은 유영하기 바빴다. 그중 한 돌고래가 위로 튀어 오르지 않고, 내 옆에서 속도를 맞춰 헤엄쳤다. 손이 닿을 정도의 거리는 아니었지만 제법 가까웠다. 흥분된 마음이 착시를 일으킨 듯했다. 마치 돌고래가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웃는 돌고래에게 나도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쉽게도 그 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날 따라 돌고래가 많이 안 나타난 날이었다. 그 순간을 제외하곤 이동하기 바빴다. 돌고래 무리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투어 직원들도 오늘 유독 돌고래들이 안나타는 날이라며 “Unlucky Day”라고 했다. 운이 좋다면 수백 마 리 돌고래가 무리 지어 이동하는 것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고 했다. 찰나의 경험에 아쉬워하며 그날의 투어를 마무리했다.


배가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동안 예쁜 바다를 관찰했다. 유독 독일 관광객이 많아서 독일어가 자주 들렸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지만 자국민들끼리 인사를 나누는 것 같았다. 해외에서 한국 사람들끼리 만나면 서로 으레 하는 인사 비슷한 행동이었으리라 생각했다. “어디서 왔어요?”, “아드(따)님이 예요?”, “두 분은 만난 지 얼마나 됐어요?” 등을 주고받는 것처럼 보였다. 호주에 살면서 가장 많이 느낀 점 중 하나는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그들도 그런 이야기를 나눌 거라 생각했다.


그중 한 독일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그녀는 나처럼 워홀러가 아닌 평범한 관광객이었다. 그녀 또한 혼자 여행하는 중이었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배가 육지에 다다를 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어느덧 배는 글레넬그 해변에 도착했다. 나는 그녀에게 여행 잘하라는 인사를 하고 글레넬그 해변을 둘러보려 했다. 그때 그녀가 잠시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그녀는 조금 전 배에서 이야기를 나눴던 다른 독일인 관광객들에 갔다. 몇 마디를 하곤 다시 내게 다시 왔다.


“Would you like to grab a coffe?”(커피 한 잔 할래요?)


글레넬그 해변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한 카페로 갔다. 서양인을 만나면 재밌는 점이 있다. 누구도 내 나이를 맞추지 못했다. 그리고 다들 나를 어리게 봤다. 절대 동안이 아닌 나는 그들에게는 늘 어려 보였다. 그녀는 나보다 나이가 어렸다(대략 7~8살쯤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나를 자기 또래라고 생각했다. 호주에 여행하러 온 그녀는 내 워킹홀리데이 경험을 재밌어했다. 지난 2년간 겪은 에피소드를 흥미롭게 듣고는 내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나도 그녀의 고향에 관해 이것저것 물어봤다. 어느덧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이야기가 즐거웠지만 더 오래 있을 수 없었다. 둘 다 머리와 몸에 소금기가 가득해 빨리 씻어야 했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숙소 근처까지 바래다주었다. 짧은 포옹과 함께 서로의 여행을 응원하며 헤어졌다.


그녀는 내 경험에 박수를 보내주었다.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 내 과거에 모험이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말하기 부끄러운 지난 발자취에 호기심을 가졌고, 본인에게 좋은 이야기를 들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수치스러운 삶의 흔적인 줄만 알았는데 누군가에겐 영감이 되었다. 내 경험을 미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자전거 여행 준비 갈 완료

그녀와 헤어지고 글레넬그 해변에서 자전거 하나를 발견했다. “Sale for 50$(불에 판매합니다)”라고 적힌 종이가 자전거에 붙어 있었다. 나는 종이에 적힌 번호로 연락을 했다. 10분 뒤 연세가 지긋하신 할아버지 한 분이 나타났다. 자전거 상태가 좋아 보였는지 옆에서 거래를 지켜보던 한 아저씨가 “Nice deal(좋은 거래)”라는 말을 건넸다.


글레넬그에서 자전거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자전거는 튼튼했고, 기어도 부드럽게 돌아갔다. 페달을 밟을 때마다 가속이 시원하게 됐다. 이 자전거로 본격적인 로드 트립을 할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신나는 마음으로 자전거를 타는데 갑자기 페달이 헛돌았다. 정확히는 페달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 길에 떨어진 페달을 주워와 다시 연결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다시 분리되었다. 때 마침 자전거 샾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가게에 가서 고장 난 부분을 보여주니 크랭크 암과 페달의 연결부가 약해진 상태였다. 수리비가 50불이 나왔다. 결국 100불이나 주고 자전거를 산 셈이었다. 다시 가게를 나와 힘차게 자전거를 밟았다. 아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다른 느낌이 또 얼마 못 갔다. 문제의 페달이 또 떨어져 나갔다. 나는 잔뜩 화가 난 상태로 자전거 샾에 다시 갔다. 가게 주인은 다시 고쳐 주면서 내게 말했다. 수리해도 얼마 못 가 또 같은 말썽을 일으킬 거라고 했다. 판매한 할아버지와 “좋은 거래”라며 바람잠은 아저씨 둘이 사기꾼 듀오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쓰린 속을 안은채 자전거를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아들레이드 차이나 타운으로 향했다. 호주의 유명 중고 거래 프랜차이즈인 캐시 컨버터스(Cash Converteers)가 차이나 타운에 있었다(호주 워홀을 간다면 이 중고 상점을 한 번쯤은 들리게 된다. 각종 중고 물품을 사고, 파는 곳이다. 보통 중고 거래는 한인 커뮤니티를 이용하지만 캐시 컨버터스 같은 곳을 이용하기도 한다.). 자전거를 처분하는 김에 차이나 타운도 둘러볼 요량이었다.


아들레이드 차이나 타운은 퍼스의 차이나 타운과 달랐다. 훨씬 볼거리가 많았다. 퍼스의 차이나 타운은 허름한 골목에 각종 아시아 식당이 들어선 형태였다. 하지만 아들레이드 차이나 타운은 영화에서 보던 화려한 색감을 자랑했다. 나는 화려한 거리를 구경하며 중고 상점으로 향했다. 10불에 거래했다. 보자마자 10불을 외치길래 황당했다. 최소 30불은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는 거래의 프로였다. 사기당한 자전거에 염증이 가득해 그냥 거래했다. 오히려 속 시원했다. 그리고 자전거는 중고가 아닌 새것으로 구입하기로 다짐했다.


거래를 마친 뒤 허기가 몰려왔다. 생각해 보니 새벽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커피 한잔이 전부였다. 나는 차이나 타운에 온 만큼 중식을 먹기로 했다. 너무 화려한 식당은 왠지 비쌀 것 같아 피하기로 했다. 적당히 평범해 보이는 곳을 찾아 들어갔다. 메뉴판에 영어 해설이 있었지만 어떤 맛일지 짐작이 안 갔다. 그래서 사진을 바탕으로 맛있어 보이는 면 요리를 시켰다. 꼬불거리는 납작한 면, 각종 야채, 빨간 양념이 적당히 버무려진 요리였다. 중식 특유의 매콤함과 함께 이색적인 맛이었다. 허기가 최고의 찬이라지만 그 말이 무색했다. 그만큼 내가 먹은 면요리는 그 자체로 훌륭했다. 순식간에 해치웠다.


호주를 여행하는 젊은 사람들은 주로 백패커를 이용한다. 가격도 저렴하고, 외국인 친구들을 많이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몇몇 백패커는 매주 파티를 열거나 투숙객들을 대상으로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아들레이드에 있는 백패커에서 신기한 인연을 만났다. 그는 일본에서 온 친구(이하 료타)였다. 나와 같은 도미토리 룸을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며 말을 텄다. 료타는 호주에 온 지 얼마 안 된 워홀러였다. 하루는 료타와 백패커의 공용공간으로 내려가 맥주잔을 부딪히며 이야기를 나눴다. 호주에 온 지 얼마 안 된 료타에게 나는 워홀 대선배였다. 료타는 각종 궁금한 점을 내게 물어봤고, 나도 신나게 내 썰을 풀었다. 그러던 와중 료타가 필리핀의 한 어학원에서 영어공부를 한 뒤 호주로 넘어온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료타가 다닌 필리핀 어학원이 내가 다녔던 곳과 같았다. 나와 료타 모두 세상 좁다고 말하며 웃었다. 작은 우연이 이야기의 재미를 더해주었다.


자전거는 비싸고 좋은 것을 사기로 했다. 그리고 짐이 많은 만큼 자전거 후미와 연결할 수 있는 수레도 필요했다. 위험하고, 먼 길을 떠나는 만큼 장비에 돈을 아끼면 안 될 것 같았다. 시내의 한 자전거 가게로 향했다(사기당한 자전거를 수리해 준 점으로는 가지 않았다). 그곳에서 마음에 쏙 들어온 디자인이 있었다. 1000불 조금 넘는 금액을 지불했다. 이어서 수레도 구매했다. 수레는 특별할 것 없는 그냥 수레였다. 그럼에도 200불이 넘었다. 자전거에 투자한 돈은 아깝지 않았다. 수레에 쓴 돈은 너무 아까웠다. 그나마 아주 튼튼한 수레여서 다행이었다. 가게 사장은 내게 자전거와 수레를 연결 및 분리하는 방법을 보여줬다. 간단했다.


자전거는 제법 큼직했다. 그럼에도 매우 가벼웠다. 직접 손으로 들었을 때도 가벼웠고, 직접 몰아보니 그 가벼움이 더 잘 전달 됐다. 자전거에 매달린 수레도 부드럽게 뒤따랐다.


#Barossa Valley

호주는 와인으로 유명한 나라다. 호주 전역에 아름다운 와이너리가 있다. 포도밭이 넓게 펼쳐진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내면도 평화로 물든다. 특히 하늘이 점점 노을의 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면 포도나무 위로 노을 빛깔이 아름답게 굴러 떨어진다. 호주를 간다면 와이너리 관광은 놓칠 수 없는 코스다.


아들레이드에는 호주에서 가장 큰 와이너리 지대가 있다. 아들레이드에서 북동쪽으로 약 60km 지점에 있는 “바로사 벨리(Barossa Valley)”라는 곳이다. 호주 전역에서 쉬라즈(포도 품종이자 이 포도 품종으로 만든 와인)를 만들지만 바로사 밸리 생산품을 더 알아준다. 바로사 벨리는 아들레이드 지역 최고의 관광 상품이자 자랑이다.


와인을 잘 모르는 나는 바로사 밸리에서 가장 유명한 와이너리로 향했다. “제이콥스 크릭(Jacob’s Creek)”이라는 와이너리였다. 가장 가까운 곳까지 트램을 탄 뒤 그곳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갔다. 수레는 백패커에 잘 모셔놨다. 새로 산 자전거는 탄성이 뛰어났고, 메커니즘이 부드러웠다. 내 허벅지가 만들어 낸 에너지를 낭비 없이 바퀴로 전달해 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자전거 성능과는 별개로 바로사 밸리로 향하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Valley라는 이름답게 오르막길의 연속이었다. 땀이 비 오듯이 쏟아지고, 숨이 찼다. 하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무엇보다 중간중간 끝없이 펼쳐지는 와이너리 풍경이 환상적이었다. 잠시 멈춰 서서 풍경을 감상하면 힘든 느낌은 금세 사라졌다.


호주 와이너리 관광의 하이라이트는 무료 시음이다. 어느 와이너리를 가든 몇몇 와인을 무한히 맛볼 수 있다. 관광객들은 방문한 와이너리에서 제공하는 음식과 함께 무료로 와인을 즐기곤 한다. 그리고 그중 마음에 드는 와인 몇 병을 사가지고 온다. 유통을 거치지 않으니 와인 가격 또한 무척 저렴하다.


제이콥스 크릭에 도착하니 방문객 센터(셀러 도어(Cellar Door)라고도 한다)가 바로 보였다. 나는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며 센터로 들어갔다.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훑어봤다. 제이콥스 크릭은 무료로 시음할 수 있는 와인이 30종이 넘었다. 메뉴판에는 와인별로 한, 두 줄의 설명이 적혀 있었다. 나는 그 설명을 바탕으로 호기심 가는 와인부터 차례차례 부탁했다. 당시 나는 모든 여행을 하나하나 기록하고 있었다. 작은 노트에 정말 사소한 것까지 적었다. 이 기록은 제이콥스 크릭에서도 성실하게 수행 됐다. 그저 와인을 천천히 맛보면서 와인의 이름과 내 느낌을 적당히 적었다. 이것만 보면 꾀나 고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사실 무슨 차이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당시 내 기록은 ‘시큼함, 쌉싸름함, 덜 쌉싸름함, 포도 맛 잘 느껴짐, 포도 맛 이상함’ 등 초등학생 수준(어쩌면 초등학생보다 못한)의 진단이었다. 기록 자체에 의의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와인의 묘사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유치하고 단순한 맛 평가가 재밌었다. 사소한 기록들이 여행에 깊이를 더해 주었다. 얼핏 스쳐 지나갈 경험을 내면에 더 깊이 새기며 내 여행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과정을 즐겼다.


그러던 와중 재밌는 일이 발생했다. 무언가를 열심히 적는 내 모습을 본 직원들이 나를 소믈리에 비슷한 것으로 착각했다. 한글로 적었으니 직원들은 내 볼품없는 와인 평가를 알아 채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 입장에선 외국어가 마구 적혀 있으니 뭔가 있어 보였나 보다. 내가 와인과 관련된 일을 한다고 착각한 한 직원이 메뉴에 없는 와인을 들고 다가왔다. 병에는 라벨도 안 붙어 있었다. 현재 농장에서 새롭게 만들고 있는 레드 와인이라면서 맛 평가를 부탁했다. 나는 의도치 않은 행운을 즐겁게 누렸다. 와인의 맛은 그저 그랬다. 앞서 맛본 몇몇 와인들이 내 입맛에 더 맞았다. 잔을 내려놓고 나니 직원들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 전문적인 조언을 갈구하는 눈빛이 쏟아졌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혜택을 누린다면 그만큼의 책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었다. 나는 앞선 와인들이 더 훌륭한 것 같다는 적당한 핑계를 둘러댔다. 이내 라벨이 붙지 않은 또 다른 와인을 가져다 주었다. 이번에는 화이트 와인이었다. 레드 와인만 계속 마셔서 인지 입이 개운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 화이트 와인은 아주 훌륭하다고 했다. 그때부터 조금 양심의 가책이 느껴져 메뉴에 있는 와인만 시음하고 싶다고 말했다.


처음 메뉴판을 받았을 때 약 30종은 돼 보이는 와인 목록을 보고 신이 났다. 여기 있는 와인 전부 맛볼겠다고 속으로 외쳤다. 처음에는 메뉴판에 적힌 설명을 바탕으로 시음을 부탁했다. 얼마 안 가 전략을 수정했다. 가격을 기준으로 요청했다. 비싼 순으로 와인을 한 잔 한 잔 즐겼다. 한 모금이지만 적당한 안주도 없이 여러 와인이 들이키니 금세 술기운이 돌았다. 첫 기새와는 달리 금방 취했다. 이 이상 마시면 돌아가는 길이 위험할 것 같았다. 자전거를 타야 했으므로 시음을 멈추었다. 이내 밖으로 나와 와이너리를 둘러봤다.


와이너리에는 야외에서 음식과 와인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있었다. 몇몇 관광객이 평화로운 풍경을 안주 삼아 와인을 즐기고 있었다. 맛있는 음식들이 그들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피크닉이었다. 약 2시간 동안 자전거를 타고, 빈 속에 와인을 연거푸 집어넣으니 배가 고팠다. 관광객들이 먹는 피자가 너무 맛있어 보였다. 이곳 제이콥스 크릭에서 직접 만든 화덕 피자였다. 사실 겉모습은 냉동 피자처럼 허접해 보였다. 하지만 아름다운 포도밭을 바라보며 즐기는 와인과 피자라면 무조건 맛있을 것 같았다. 나도 그들처럼 피자와 와인을 즐기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정해놓은 하루 예산을 초과해선 안 됐다.


이내 배고픔을 뒤로하고, 전시관으로 향했다. 바로사 밸리의 역사, 제이콥스 크릭의 역사, 와인 제조 과정, 포도 품종 등을 천천히 구경했다. 관람을 마친 후 와이너리 풍경을 한 번 더 눈에 담았다. 이후 와인 한 병을 산 후 숙소로 향했다. 돌아가는 길은 조금 돌아가는 경로를 택했다. 바로사 밸리를 더 둘러보기 위함이었다.


시내로 가는 길은 편했다. 오는 길이 오르막길의 연속이어서 가는 길은 내리막의 연속이었다. 편하게 체중을 실은 채 풍경과 바람을 즐겼다. 바람에서 상쾌한 향이 났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이슬을 머금은 포 나무가 내 뿜 듯한 싱그러운 향이었다. 바로사 밸리 전역에 맑은 공기가 해무(海霧)처럼 퍼져 있었다. 그렇게 바로사 밸리가 선사하는 자연의 축복을 만끽하던 중 온몸에 전율이 이는 장면을 마주 했다. 멀리 서부터 따스한 빛깔을 품은 밭이 보였다. 처음에는 갈대인 줄 알았다. 가까이 가서 보니 밀밭이었다. 몇몇 소설에서 황금빛 밀 맡을 아름답게 묘사한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가을철 고개를 잔뜩 숙인 벼를 떠올렸다. 직접 마주한 밀밭은 고개 숙인 벼이삭과는 다른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독특하고, 부드러웠다. 햇살을 붙잡아 절구에 넣고, 이를 곱게 빻아 만든 가루를 비료 삼아 들녘에 뿌리면 이러할까 싶었다. 햇살이 구석구석 머물다 이내 따스함을 촘촘히 새겨 놓은 듯했다. 그 따스함이 마음 깊숙이 포근함으로 다가왔다. 불어오는 산들바람은 밀밭 위 잔잔히 내려앉은 햇살에 숨을 불어넣었다. 부드러운 바람이 스치자 밀 하나하나가 손을 잡고 대열을 이뤄 춤을 췄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을 따라 출렁이는 모습은 밀 밭 전체가 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 밀밭 위로 햇살의 금빛 파장이 번져 나갔다. 눈앞의 키 큰 강아지 풀은 완벽한 그림을 위한 마지막 붓터치 같았다. 이 풍경을 노을이 질 때 보지 못함이 아쉬웠다. 마음 같아서는 노을이 지는 시각까지 마냥 기다리고 싶었다. 화창한 대 낮에도 따스한 빛을 머금은 밀밭은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그 안온한 생의 율동에서 나는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애들레이드 여행 오길 잘했다’


#우리의 여행이 더욱 특별 해 질 때

우리 여행을 정말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순간은 우연한 만남들이다. 나의 아들레이드 여행도 그랬다. 아직은 어둠이 짙은 아무도 없는 길거리, 배 위에서 만난 독일 친구, 돌고래의 웃음, 개눈 감추든 먹은 중국 면요리, 숙소에서 만난 어학원 동문, 특별한 와인을 맛보게 해 준 행운의 오해. 그리고 지나가는 여행객을 한 동안 머물게 한 따스한 빛의 속삭임. 그렇게 아들레이드에서 마주한 우연의 편린들이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 주었다. 각각의 세렌디피티에 감화를 입었다. 곧 떠날 본격적인 자전거 로드트립이 기대 됐다. 이 선택이 또 다른 특별한 만남을 가져다 줄거라 믿었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주는 재미와 행복을 기대했다.


한 달 후면 한국으로 가야 했다. 한국에서 마주해야 할 현실은 여전히 부담이었다. 하지만 그 무게에 당장 짓눌리지 않기로 했다. 비록 지난 2년이 처음 계획했던 것과는 다르게 흘러갔지만 이를 원망만 하며 보낼 이유는 없었다. 남은 시간만큼은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야 했다. 적어도 호주에서 보내는 마지막 한 달은 내 방식대로 살기로 했다. 타인의 시선도, 세상의 평가도, 사회가 정한 기준도, 내 열정이자 족쇄였던 꿈도. 모두 털어버리기로 했다. Ted 워홀 서사를 향한 집착은 잠시 내려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 속에서 얻은 생각, 감정, 정서, 상처, 교훈 등에 더 집중하기로 했다.


그렇게 자전거 여행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흩어진 내 삶의 조각들을 다시 모아 붙이 작업이었다. 무너져 가던 나 자신을 재건하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위한 도전이었다. 이제는 삶의 핸들을 내가 쥐고, 내 내면의 소리에만 길을 묻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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