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와 텐트 하나로 호주 대자연 가로지르기
“내면에 집중하기는커녕 외부의 고난을 헤쳐 나가기 바쁘잖아.”
#vs 앤트맨
한도르프 마을을 빠져나왔다. 내리막길의 연속이어서 훨씬 수월했다. 짐도 줄인 덕분에 속도도 더 붙었다. 자전거를 타면서 마주하는 바람은 상쾌했다. 가슴을 뻥 뚫어주는 느낌이었다. 양 옆으로 적당히 누런색과 초록색이 어우러진 평야가 펼쳐졌다. 평야 위를 스치는 바람과 그에 따라 색의 온도가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은 평화로웠다. 그 편안한 풍경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달릴 때 면 가슴이 벅차올랐다. 자전거 여행만이 줄 수 있는 기쁨이었다. 근육통은 있었지만 오르막길이 나오지 않아 크게 힘들지 않았다. 다만 뜨거운 태양볕 때문에 금세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내 수레에는 물이 한가득했다. 2L짜리 페트병 여러 개에 물을 가득 채워 아이스박스에 담아 두었다. 하지만 더위 탓에 물은 금세 줄어들었다.
자전거를 타던 도중 알파카로 보이는 동물들이 보였다. 알파카를 구경하기 위해 자전거를 잠시 멈춰 세웠다. 알파카들은 작은 울타리 안에 있었다. 내가 점점 가까이 다가가자 경계하는 눈빛을 보였다. 떨어져 알파카 구경도 하고, 잠시 쉬어 갈 겸 근처 나무 그늘 아래에서 휴식을 취했다. 칼로리 섭취를 위해 라면을 꺼내 먹었다. 생라면째로 먹었다. 알파카들도 어느새 경계를 거두고 풀을 뜯고 있었다. 라면을 다 먹고, 조금만 더 휴식을 취하려 했다. 자전거 여행의 흥분과는 달리 몸은 피로가 조금 누적된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잠들었다. 거대한 나무 그늘이 주는 안식이 생각보다 편안했다. 그늘은 무척 시원했고, 나무는 특유의 편안한 향을 내뿜었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어느 순간 피부 구석구석이 따끔거림을 느꼈다. 처음에는 땀 때문에 가려운 것은 아닐까 했다. 하지만 따끔함이 제법 아프기 시작했다. 눈을 떠 보니 무언가 시커먼 것들로 가득했다. 무척추동물의 정점인 존재가 내 종아리 위로 잔뜩 기어 다녔다. 개미떼였다. 개미떼가 라면 냄새를 맡았는지 잔뜩 몰려들었다. 상당히 큰 종이 었다.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일반 병정개미는 상대도 안될 것 같았다. 개미들이 물때마다 제법 따끔했다. 나는 재빨리 일어나 수건으로 개미들을 털어냈다. 그리고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났다. 마치 뒤에서 발 빠른 맹수가 쫓아오는 것처럼 페달을 있는 힘껏 밟았다. 충분히 도망쳐 왔는데도 내 손과 종아리 부근이 따끔거렸다. 자전거에도 개미가 많이 들러붙어 있었다. 얼른 자전거를 세우고, 개미를 털어냈다. 개미를 털어내고 난 후 문득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것이 독사나 독거미였다면?’ 마음을 쓸어내리며 다행이라 생각했다. 앞으로는 길가에서 휴식을 취할 때 긴장을 놓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밤의 왈츠
조금씩 자전거에 익숙해졌다. 더 많은 거리를 이동해도 피로가 가중되지 않았다. 어느새 몸이 적응한 듯싶었다. 그렇게 자전거 여행을 만끽하며 이름 모를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내가 일했던 진진이라는 지역보다 작은 마을 같았다. 마을에는 어김없이 캐러번 파크가 하나 있었다. 하늘이 어둑어둑 해 지기 시작해 그곳에서 숙박하기로 했다. 캐러번 파크에는 캐러번을 위한 장소와 텐트 치는 장소가 분리 돼 있었다. 캐러번 사이트에는 캠핑카 외에도 캐러번 파크에서 제공하는 캐빈들이 있었다. 이 캐빈들이 인디언 텐트 같은 모양으로 설계 돼 있어서 흥미를 끌었다. 캐러번 파크의 관리실에 들려 텐트 설치 할 수 있는 곳을 물어봤다. 관리자는 눈앞에 보이는 작은 언덕을 가리키며 안내해 줬다. 뱀이 있을 수 있으니 밤에 꼭 텐트를 단단히 잠그고 자라고 했다. 언덕을 넘자마자 멀리 연못이 보였다. 연못 앞에는 짙푸른 잔디가 있었다. 그리고 그곳이 텐트를 설치할 수 있는 곳임을 알려주는 팻말이 있었다.
샤워장을 다녀온 뒤 텐트에 앉아 연못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강이었다. 강위로 저녁노을이 지고 있었다. 강물에 비친 해가 가로로 잘게 쪼개지며 물결에 따라 흔들렸다. 주변에는 반짝이는 윤슬이 가득했다. 경치와 지친 몸에 넋이 나갔다. 텐트장에는 나 말곤 아무도 없었다. 혼자서 이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한다는 사실에 황홀했다. 마치 장소를 통째로 빌린 것 같았다. 천천히 흐르는 물결 위의 빛을 온전히 감상했다. 어느새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나는 텐트를 단단히 잠근 뒤 잠에 들었다.
얼굴 위로 뭔가 차가운 게 툭 떨어졌다. 본능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얼굴 위에 있는 것을 쳐내려 했다. 하지만 상상했던 그 동물은 아니었다. 눈을 비비며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이 엉망진창이었다. 거센 바람으로 텐트가 뒤집힌 상태였다. 텐트가 뒤집어지면서 텐트의 한쪽 면이 내 몸과 얼굴을 감싼 것이었다. 내 몸과 가방에 있는 짐들 덕에 텐트가 날아가지 않았다. 마치 강풍으로 인해 날아갈 뻔한 천 쪼가리를 무거운 물체로 누르고 있는 형국이었다. 내 몸을 덮친 텐트는 바람에 따라 나를 계속 문질러 댔다. 텐트 밖에서는 무서운 바람 소리가 났다. 나는 아이스박스, 가방 등 갖가지 짐을 직사각형의 가장자리에 적절히 분배하여 배치했다. 그럼에도 무게를 분산시킬 물건이 부족했다. 내 몸뚱이를 사용해야 했다. 그렇게 물건과 함께 텐트의 무게추 역할을 했다. 다행히 나와 가방은 텐트를 지키기에 충분히 무거웠다.
무서웠다. 공포심에 바로 잠들 수 없었다. 거친 바람은 수풀을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그 소리가 무척이나 으스스했다. 유치한 공포 영화에서나 쓸법한 평범한 연출이 현실에서는 엄청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텐트가 날아갈 것 같아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바람은 거셌지만 내 기초 공사는 튼튼했다. 다만 가만히 누워 바라본 텐트 천장은 한없이 흔들렸다. 캠핑장의 은은한 조명에 따라 텐트 천장에 나무 형상의 그림자기 드리웠다. 그 그림자는 난폭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흔들림 속에서 작은 착시들이 보였다. 얼핏 귀신 따위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그 귀신 비슷한 것이 내 텐트를 찢고 들어올 것 같았다.
공포심은 무지에서 오는 것이 맞았다. 밖의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하니 나의 상상력은 공포심을 부풀렸다. 무서움을 애써 참고 밖을 살피려 했다. 혹시 뱀이 있을지 몰라 텐트 지퍼를 위쪽으로 옮긴 뒤 살짝 열었다. 열자마자 강풍이 내는 굉음이 소리를 높였다. 눈앞의 강은 사정없이 요동 쳤다. 바람이 풀을 스치며 만들어내는 소리를 눈으로 확인하니 으스스함은 배가 됐다. 그리고 그제야 비가 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얼른 문을 잠그고 다시 누웠다. 여전히 텐트는 좌우로 사정없이 흔들렸다. 바람이 텐트를 스치는 소리가 유독 소름 끼쳤다. 마치 수백 마리 뱀이 텐트 위로 빠르게 지나가면 저런 소리가 날까 싶었다. 이제는 텐트 위로 후드득 떨어지는 빗소리도 잘 들렸다.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그 소리가 그때는 귀신을 부르는 곡소리 같았다. 물속에서 나온 귀신이 내 텐트에 노크를 하면 저런 소리일까 싶었다. 기분 탓이었을까 멀리서 하울링도 울리는 것 같았다. 짙은 새벽을 괴롭히는 거센 풍랑이 만든 소리는 일종의 장송곡이었다.
공포심은 서러움도 몰고 왔다.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도대체 무슨 영광을 누리겠다고 너는 자전거 여행을 하는 거야’
‘무슨 철학적 깨달음을 얻겠다고 이 고행을 택했을까’
‘이건 사서 고생하는 정도가 아니라 스스로 불행을 찾아다니는 것은 아닐까?’
‘내면에 집중하기는커녕 외부의 고난을 헤쳐나가기 바쁘잖아’
시간이 지나 울컥한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하지만 걱정이 불안의 공백을 곧바로 채웠다. 다음날이 걱정 됐다. 저렇게 비바람이 거세면 자전거 여행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마을에서 하루 더 묵으며 비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도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이 공포스러운 상황을 하루 더 견딜 바에 차라리 비바람을 뚫고, 자전거를 타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당장은 방법이 없으니 억지로 잠을 청했다.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서였을까? 다행히 피곤한 몸이 금세 잠을 가져다주었다.
으슬으슬 추운 느낌에 잠이 깼다. 물가 앞은 확실히 추운 곳이었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정신을 차렸다. 지난 새벽과 달리 고요한 분위기였다. 나는 텐트 주변에 혹시 뱀이 있을지 몰라 안에서 텐트를 두드리며 입으로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러곤 조심스럽게 텐트를 열었다. 텐트를 열어보니 주변엔 잔잔한 적막이 가득했다. 폐부 깊숙이 차갑고 깨끗한 공기가 들어왔다. 들숨만으로 몸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강은 평온하게 흐르고 있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지옥 같은 곳이 천국의 풍경을 하고 있었다. 아득한 공포를 몰고 왔던 곳은 어느새 아늑한 아침을 담고 있었다. 조금 전만 해도 공포와 걱정에 떨었던 일이 허무했다. 그래도 다행이란 마음으로 텐트와 짐을 정리하고, 다시 자전거를 밟아 나갔다.
#키위
간 밤의 일이 충격이었는지 에너지가 떨어진 느낌이었다. 몸도 힘들었지만 심리적으로 아늑함을 강렬히 원했다. 그러던 도중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 오늘 하루만 히치 하이킹을 하자!’
히치하이킹을 하기 적합한 곳까지 자전거를 밟았다. 저 멀리 운전자들이 잠시 정차할 수 있는 곳이 보였다. 일종의 간이 휴게소였다.(그래봤자 화장실도 식당도 없다. 그저 널찍한 공터일 뿐이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대형 트럭 몇 대가 정차하고 있었다. 운전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면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들은 전부 덩치가 컸고, 수염이 가득했다. 문신을 한 사람도 더러 보였다. 한국이었다면 그들이 얼핏 조폭으로 보였을 것 같았다.
나는 한쪽에 자전거를 세워 두고,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차가 지나갈 때마다 손을 들었지만 다들 바쁘게 지나갔다. 기분상 내 앞에서 더 속도를 내는 것 같았다. 몇 분 뒤 트럭 운전수 한 명이 내게 말을 걸었다. 그는 자신이 태워주겠다며 트레일러에 내 자전거를 실으라고 했다. 그는 나와 함께 자전거를 실은 뒤 고정끈으로 단단히 고정시켰다. 그 밖의 짐들은 조수석에 실었다.
그는 뉴질랜드 사람이었다. 호주에서 처음 만난 뉴질랜드 사람이어서 반갑고, 생소했다. 무엇보다 그는 철저히 뉴질랜드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큰 덩치와 까무잡잡한 피부에 수염이 얼굴 전체를 덮고 있었다.
그는 내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억양과 발음으로 말을 빠르고 거칠게 내뱉었다. 뉴질랜드 마오리족 영어가 독특한 억양과 발음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떠올라 물어봤다. 그는 백인과 마오리족의 혼혈이었다. 나는 그에게 조만간 시드니에 있는 동생과 뉴질랜드 여행을 갈거라 했다. 아주 거친 억양으로 말을 하던 그는 금세 환한 표정으로 화답했다. 유명하지 않은 관광지 중에 추천해 줄 곳이 있는지 물어봤다. 그는 신나게 몇몇 곳을 추천해 주었다. 그의 억양에 적응이 안 돼 거의 못 알아들었다. 운전 중에 자세히 물어보면 위험할 것 같아 대충 알아들은 척하고 넘겼다.
뉴질랜드를 상징하는 동물 중에 “키위(Kiwi)가 있다. 스펠링이 우리가 아는 과일 키위와 같다. 날지 못하는 새로 오로지 뉴질랜드에만 볼 수 있다. 호주 사람들은 뉴질랜드 사람을 키위라고 부른다. 장난 섞인 의도로 부르기도 하지만 인종 차별적 의미도 있다.
신나게 이야기를 하던 그는 어느새 인종차별 주제로 넘어갔다. 호주인들이 자신들을 키위라고 부르는 것에 굉장히 불만이 있는 듯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호주 사람들을 비하할 때 쓰는 말도 내게 알려줬다. 호주 사람들을 비하하는 의도로 사용하는 호칭이 있는 줄 그때 처음 알았다.
대충 그의 말을 추측하며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어느새 한 마을에 도착했다. 그와는 가는 방향이 달라 그곳에서 헤어졌다. 그는 내게 여행 잘하라는 인사를 건넸고, 나는 고맙다는 말을 했다. 알려준 뉴질랜드 명소는 꼭 가보겠다 하니 환하게 웃어줬다.
자전거로는 최소 2 ~ 3일을 걸렸을 거리를 2시간 만에 왔다. 무척 편했지만 앞으로는 히치하이킹을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자전거 여행의 의미가 무색해질 거라 생각했다.
도착한 마을은 “나라쿠트(Naracoorte)라는 곳이었다. 마을 근처에는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된 나라쿠트 동굴이 있다. 캥거루나 웜뱃 같은 동물들의 화석이 발견되는 곳이다. 그리고 이곳은 내 자전거 여행에서 꼭 방문할 목록 중 하나였다.
방문객 센터에 가니 곧 투어가 시작될 참이었다. 나라쿠트 동굴은 지질학적으로도 연구 가치가 높다. 그래서 가이드 없이는 동굴을 구경할 수 없다.
나라쿠트 동굴에 발을 들이며 깊은 고요함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을 느꼈다. 입구를 지나면 공기가 한결 차가워졌고, 빛은 희미해졌다. 그 어둠 속에서 수백, 수천 년의 세월을 견뎌낸 종유석과 석순들이 나를 맞이해 주었다. 동굴 벽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종유석이 흐르며 생긴 독특한 패턴들이 보였다. 물이 흐르며 남긴 흔적들이 동굴 벽을 따라 쌓여 다양한 모양과 질감을 만들었다. 종유석들은 저마다 독특한 형태로 자라 있었다. 흰색과 밝은 황색이 섞인 석회암 구조물들이 빛을 받자, 동굴 내부는 은은하게 반짝이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쉬운 점은 동굴의 신비함을 느끼기엔 코스가 짧았다. 몇몇 코스는 연구 목적을 위한 곳이어서 막아 두었다. 막아놓은 장소에서 나라쿠트 동굴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Free for Korean
그날따라 숙박시설에서 묵고 싶었다. 간 밤의 경험이 너무 충격 적이었다. 마을에 있는 숙소는 대부분 1박에 100불이 넘었다. 백패커는 없었다. 모두 3성 이상급의 호텔이었다. 결국 캠핑장에 텐트를 치고 자야 할 것 같았다. 캠핑장마다 가격이 다르지만 싼 곳은 10불, 비싼 곳도 20불 남짓이었다. 아무리 침대가 고파도 5배, 10배 달하는 금액을 쓰기엔 망설여졌다. 그럼에도 지난밤의 사건 때문에 그 날 만큼은 침대가 있는 실내에서 밤을 지내고 싶었다.
꽤 긴 시간 동안 고민을 했다. 100불을 지불하고, 숙박 업소를 이용할지. 아니면 그냥 캠핑장을 이용할지. 그러던 와중 구글맵에서 가격 표시가 안된 숙박 업소를 발견했다. 이곳도 다른 곳과 가격이 차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혹시라는 마음에 직접 가서 가격을 물어보기로 했다.
숙소의 위치가 조금 이상 했다.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지만 엄연히 상권이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숙박 업소는 그 근처에 있었다. 하지만 가격을 알 수 없던 숙박업소는 마을 외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주변에 집도 얼마 없었다. 어제는 공포영화 체험이고, 오늘은 스릴러 영화를 체험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 앞에 도착하자 궁금증은 더 커졌다. 분명히 구글 맵에서 가리키는 곳은 눈앞의 집이 분명했다. 하지만 내 눈앞에 있던 것은 큰 대문과 대문 너머로 보이는 일반 가정집이었다. 절대 호텔이나 모텔 같은 숙박 업소로 안 보였다. 잠시 망설인 뒤에 초인종을 눌렀다. 이내 문을 열고 한 할아버지가 나왔다.
할아버지는 배우 클린트 이스트 우드를 무척 닮아있었다. 큰 키에 마른 체형이었다. 특히나 미간에 잡힌 주름과 서양인 특유의 깊은 눈이 할아버지의 인상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할아버지는 꽤 매서운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지나가는 여행객에게 친절을 베풀어 안심시킨 뒤, 밤에 수면제를 탄 음식을 먹여 살인을 즐기는 사이코 살인마 영화의 주인공이라면 찰떡일 터였다. 이내 눈앞의 살인범일지 모르는 할아버지가 말을 건넸다.
“Can I help you?”
문맥상 “무슨 일이죠?”라는 의역이 더 적절함을 안다. 하지만 당시 쓸데없이 지나치게 부풀려진 나의 상상 때문에 그 말이 조금은 무섭게 들렸다. 스릴러 영화의 범인이 “무엇을 도와줄까요?”라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특히 help라는 단어가 이렇게 무서울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상상일 거라 생각하며 대답했다. 할아버지한테 이곳이 혹시 숙박 업소가 맞는지 물어봤다. 맞다면 하룻밤에 가격은 얼마인지 알고 싶다 했다. 할아버지는 나를 한 번 훑어보더니 질문을 던졌다.
“Where are you from?”
숙박 업소에서 여권을 복사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당연히 그런 행정 절차 같은 질문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한국사람이라고 말하자 할아버지는 그냥 공짜로 머물고 가라 했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얼마인지 다시 알려 달라고 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나에게 유리한(?) 인종 차별적 발언을 하며 그냥 묵으라고 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중동 사람들을 욕하며 “너는 그들과 다르니 편히 머물다 가도 좋다”라는 식의 말이었다. 거기에 덧붙여 한국과 일본 사람들은 예의가 바르고, 매너가 좋다는 둥의 칭찬을 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됐다. 뜬금없이 중동 사람들 욕은 왜 하며 그것이 또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한국 사람을 좋게 생각한 점이 좋았지만 그것이 공짜 숙박을 제공할 정도는 아닐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할아버지가 진짜 사이코 패스 살인자가 맞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할아버지는 천천히 집을 안내해 줬다. 내가 오늘 밤 머물 방의 키를 주면서 주방과 화장실 위치 등을 알려줬다. 혹시 숙소 내 다른 사람들이 숙박비로 얼마를 줬냐고 물어보면 30~40불 정도를 말하라고 일러줬다.
방에 들어가니 2층 침대와 함께 고장 난 티브이가 있었다. 집을 개조해 숙소로 활용하고 있었다. 진진에서 지내던 방과 비슷한 구조였다. 우선 오랜만에 보는 침대가 반가웠다. 씻고 저녁을 먹은 뒤 침대의 푹신함을 느끼며 잠들었다. 물론 잠들기 전 문단속은 확실히 해 두었다. 상상하던 스릴러 영화 같은 사태가 일어난다면 무용할 터였다. 다만 심신의 안정을 위한 행동이었다.
다행히 간밤엔 아무 일도 없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침대에서 잠을 자고 나니 온몸이 개운했다. 마음 같아선 자전거로 쌩쌩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상쾌한 컨디션으로 주방에 가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주방에는 지난밤에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보였다. 모두 중동 출신 사람들이었다. 서아시아 사람들에게 나는 무척 신기한 존재였다. 호주의 시골 마을에선 동아시아 사람을 보기 힘들었을 거다. 그들은 순식간에 내 주변을 에워쌌다. 같이 아침을 먹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그들과의 대화로부터 왜 할아버지가 중동사람들을 욕했고, 그로 인해 내가 왜 반사 이익을 봤는지 알 수 있었다.
당시 호주 정부는 난민을 받았고, 그들에게 일자리 등을 알선해 주었다. 그리고 내가 머물렀던 곳은 정식 숙박 업소가 아니었다. 그곳은 난민 비자로 들어온 사람들이 머무는 일종의 기숙사였다. 그제야 방 구조가 진진에서 머물던 방과 비슷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기숙사 내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 일종의 계파가 존재하는 것 같았다. 중동의 분쟁이 오래된 만큼 그들 간의 갈등도 골이 깊어 보였다. 묘하게 두 무리가 서로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한국에 관해 궁금한 것을 물어봤다. 곧이어 자신들이 어쩌다 이 나라에까지 오게 됐는지 등을 이야기했다. 인간이란 구구절절 자신의 사연을 들려주고 싶은 동물이다. 그런 와중에 이곳 집주인이 자신들을 엄청 싫어한다는 말을 했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었지만 눈앞의 중동인들과 할아버지의 관계가 안 좋은 것은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할아버지는 이들에 대한 싫증으로 일종의 차별 행위를 한 것 같았다. 이들에게 직접적 차별을 할 수 없으니 이들 몰래 다른 인종에게 혜택을 주면서 스스로 만족감을 얻은 듯했다.
할아버지의 진의를 알 수는 없었지만 내가 고마움을 표시해야 하는 사실은 분명했다. 이유야 무엇이든 나는 안락한 하룻밤을 무료로 보냈으니. 집을 나서기 전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려 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대신 감사하다는 메모를 방에 남겨두었다. 그 마을을 벗어나면서 여려 모로 이상한 경험을 했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개 풀 스치는 소리
달리고, 달렸다. 그날은 컨디션이 정말 좋았다. 며칠 동안 스파르타 자전거 훈련을 하고, 꿀 맛 같은 휴식을 취하니 몸 상태가 최고였다. 매일 자전거로 몇 시간씩 이동함에 몸도 적응을 한 듯했다. 근육통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여행 첫날 같은 불편함은 없었다. 역시 한번 몸이 적응하면 수월한 법이었다.
그날따라 코스도 평지가 이어졌다. 정확히는 살짝 경사진 내리막이었다. 페달을 밟지 않아도 자전거는 조금씩 굴러갔다. 페달을 밟으면 속도가 더 잘 붙었다. 그렇게 신나게 달리다 보니 어느새 또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또다시 이름 모를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의 캠핑장으로 향했다. 캠핑장 앞에서 시간을 확인했다. 하늘은 조금씩 노을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완전한 일몰까지 약 한 시간은 더 필요해 보였다. 그리고 다음 마을인 “마운트 갬비어(Mount Gambier)”까지는 고작 20km 정도였다. 빠르면 한 시간 반 늦어도 두 시간이면 도착할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마운트 갬비어는 한도르프, 나라쿠트등을 비롯한 내 자전거 여행의 관광 목록 중 하나였다. 단순히 잠만 자고 지나치는 마을이 아니었다. 나는 다시 자전거를 밟았다.
아무도 없는 도로 위에서 자전거를 타며 바라보는 노을은 늘 황홀했다. 붉은 해는 볼 수 없었지만 해가 뿌려대는 붉은빛이 초원에 스며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다 위 빛깔처럼 반짝였다.
그러한 황홀경도 잠시 주변은 급격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선홍빛은 점차 사라져 가고, 점점 짙은 어둠으로 변하고 있었다. 주변이 점점 어두워질수록 더 속도를 냈다. 나를 둘러싼 세상의 명도가 낮아질수록 나의 조급함은 높아갔다.
패착이었다. 날은 어느새 캄캄해진 상태였다. 가로등하나 없는 시골길은 어둡다는 말도 부족했다. 그날따라 조금 흐렸던 날씨는 밤에도 달빛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핸드폰 조명을 켜고, 달렸다. 다시 되돌아갈 생각도 했지만 이미 중간 지점쯤에 와 있었다. 남은 거리를 생각했을 때 약 1시간 정도면 도착할 것 같았다. 핸드폰 플래시 외에는 어떤 빛도 보이지 않아 조금 무서웠다. 무서운 마음에 목적지에 더 빨리 도착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급하게 자전거를 몰면 위험할 것 같았다. 결국 상황을 받아들이고, 천천히 페달을 밟아 나갔다. 그러던 때 주변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내 자전거와 수레가 내는 소리를 잘 못 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맞았다. 잡초가 무성한 시골길이었으니 자연스러운 소리였다. 그리고 내 경험상 호주는 해가 떨어지고 나면 유독 바람이 더 거셌다.(워낙 큰 땅덩어리라 지역마다 다르지만) 그래서 밤이면 삭각사각대는 소리는 더 커졌다. 나도 처음에는 그런 종류의 소리인 줄 알았다. 하지만 무언가 달랐다. 분명 풀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였다. 쉴 새 없이 자전거를 몰았음에도 그 소리는 나를 계속 따라왔다. 처음에는 내 불안감이 만들어낸 환청으로 치부했다. 무서울수록 페달을 더 세게 밟았다. 하지만 소리의 원인을 모른 채로 계속 달리기엔 긴장감이 너무 커졌다. 결국 핸드폰을 돌려 주변 풀숲을 비췄다. 물론 자전거는 멈추지 않았다.
핸드폰 플래시가 비친 곳엔 네발 달린 짐승이 있었다. 정확히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갯과 동물의 형상이 얼핏 보였다. 뾰족한 귀, 기다란 주둥이, 네 발로 달리는 형태. 더욱이 한 마리가 아니었다. 여러 마리였다. 나는 놀란 마음에 자전거의 속도를 더 올렸다. 핸드폰의 조명은 내 앞과 옆의 수풀을 번갈아가며 비췄다. 여전히 그 짐승들은 나를 쫓아오고 있었다. 호주에 있는 동안 호주에만 서식하는 동물들에 대해 알아본 적이 있다. 농장에서 일하면서 독사, 독거미에 대한 안전 교육을 받다 보니 다른 동물들한테도 호기심이 생겼다. (어렸을 때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 광팬이었다) 캥거루, 코알라, 이뮤, 쿼카 등 흥미로운 동물들이 많았다. 그중에는 딩고라는 갯과 동물도 있었다. 갯과 동물인 만큼 그 습성이 늑대와 비슷했다. 똑똑하고, 무리 사냥을 할 줄 알고, 단거리와 장거리 둘 다 잘 달릴 수 있는 동물. 나는 그 딩고에게 쫓기고 있었다. 숨이 가빴지만 속도를 줄일 수 없었다. 자전거를 계속 밟아 가며 제 빨리 핸드폰으로 차량을 검색했다. 아무리 시골이어도 최소 하루에 1~2대 이상은 오가는 버스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밤에는 절대 일을 안 하는 호주인들이라 불안감도 있었다. 제발 마운트 갬비어로 향하는 버스가 있기를 바랐다. 다행히 한 대가 있었다. 사이트엔 버스가 각 마을에 정차하는 시각이 나와 있었다. 호주의 행정 처리가 한국에 비해 엉망임을 감안하면 그 사이트의 정보는 100% 신뢰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던 나는 일단 그 정보를 믿기로 했다. 그리고 그 정보에 의하면 그 버스는 현재 수 km 뒤에서 나와 같은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때부터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마운트 갬비어에 버스가 도착하는 시각. 현재 내 위치. 내 속도를 시속 15km로 놓고, 버스의 속도를 시속 60km로 가정했다. 대략 10분에서 15분 후면 버스가 뒤에서 보이기 시작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때부터 오로지 앞만 보고 질주했다. 핸드폰도 주머니에 넣고, 양손으로 핸들을 세게 움켜 잡았다. 이미 구글 맵으로 도로가 굽어지는 곳이 없음을 확인한 후였다. 오로지 직진을 위한 에너지만 쏟아내면 됐다. 그리고 생존의 본능 덕분이었을까 눈이 어둠에 적응된 듯싶었다. 그렇게 최소 15분 내로 안전하게 버스를 탑승할 거란 확신을 가지고 자전거를 힘껏 밟았다. 여전히 딩고 무리가 나를 쫓아오는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었다. 자전거를 세게 밟으면서 수레는 더 크게 덜컹거리며 더 큰 소리를 냈다. 그 때문에 딩고 무리가 움직이는 바스락거리는 소리 같은 것은 들리지 않았다. 한 편으론 그 들짐승이 더 이상 좇아오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일단 버스가 나를 따라잡을 때까지는 전력질주의 끈을 놓지 말아야 했다.
어느새 대략 15분 정도가 지나 있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불 빛이 보였다. 다행히 버스가 운행하고 있었다. 그 웹사이트의 정보는 신뢰할 만했다. 버스가 점점 다가오면서 나는 속도를 줄였다. 그리고 자전거를 도로 한가운데 멈춘 채 팔을 높이 치켜들어 흔들었다. 버스기사는 하이빔을 쏘며 나를 발견했다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자전거를 다시 도로 옆으로 가져가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버스가 점점 내게 가까워지면서 혹시 그냥 지나칠까 두려웠다. 다행히 버스는 내 앞에서 멈췄다. 일반 버스가 아닌 대형 시외버스였다. 짐을 싣고 버스에 올라탔다. 긴장감이 풀리며 안도의 한숨과 미소가 터져 나왔다. 버스 기사는 내게 이곳은 야생 들개와 여우가 출몰하는 곳이라며 위험할 뻔했다고 말했다. 약 10분 뒤 마을에 도착했다. 나는 버스 요금을 지불하며 기사에게 내 목숨을 구해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밤이 내려앉은 마운트 갬비어에서 천천히 자전거를 몰았다. 조금 전과 달리 여유로웠다. 미리 봐두었던 캠핑장으로 향했다. 이미 캠핑장 오피스는 문을 닫은 뒤였다. 나는 다음 날 요금을 지불할 생각으로 일단 텐트를 설치하고, 짐을 풀었다. 샤워 도구를 들고 샤워장으로 향했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 그 캠핑장은 제법 규모가 커서 나름의 시스템이 있었다. 모든 방문객은 오피스에서 화장실 키를 받아야 했다. 버스로 이동한 거리를 제외하더라도 약 100km를 자전거로 이동한 하루였다. 샤워가 절실했다. 하는 수 없이 다른 방문객에게 도움을 청해야 했다. 주변을 보니 한 캐러번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조심스럽게 캐러번에 노크를 두드렸다. 한 할아버지 한 분이 문을 열고 나왔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안에서 화장실 키를 들고 나왔다. 할아버지 본인도 마침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면서 나와 같이 갔다. 할아버지는 상당히 취한 상태였다. 기분도 꽤 좋아 보였다. 할아버지는 볼일을 마치고 내게 키를 건네며 천천히 씻고 갔다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같이 술 한잔 하면서 포커하고 싶으면 얘기하라고 했다. 나는 일단 씻고 생각해 본다고 말씀드렸다. 그 짧은 순간에도 자연스럽게 스몰토크를 하는 할아버지를 보고, 역시 호주인이다 싶었다.
매번 힘든 자전거 여행을 마치고 나서 하는 샤워는 최고였다. 뜨거운 물이 온몸의 피로를 녹이는 순간은 그 보다 바랄 것이 없었다. 하지만 호주 자전거 여행 전부를 통틀어서 그날이 “Best Shower Ever!”였다. 나는 할아버지 말대로 아주 천천히 샤워를 하며 나의 노곤함을 달랬다.
샤워를 마친 후 할아버지가 있는 캐러번으로 다시 향했다. 조심스럽게 노크를 한 뒤 열쇠를 건네드렸다. 할아버지는 같이 포커 칠 생각 없는지 다시 물어봤다. 현지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에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너무 피곤해 자야겠다고 말하며 거절했다. 할아버지는 잠시만 내게 기다리라고 했다. 짧은 시간이 지나고 할아버지가 다시 나왔다. 손에는 맥주와 각종 주전부리가 들려 있었다. 나는 괜찮다며 거절했지만 할아버지는 지금 먹을 게 너무 많으니 가져가라 했다. 나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포커게임에서 돈 많이 따시라는 응원을 건넸다.
다음날 오피스에 가서 지난 늦은 밤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금액을 지불하고, 키를 건네받았다. 그러면서 직원이 내 텐트가 있는 곳을 알려 달라했다. 나는 손가락으로 내 텐트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직원은 텐트 옆에 있는 내 자전거를 보곤 혹시 자전거를 타고 왔는지 물어봤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직원은 이 주변에 야생 들개와 여우가 출몰한다며 큰일 날 뻔했다고 말해줬다. 다시는 그런 위험한 짓을 하지 말라고 했다. 알고 보니 내가 지난밤에 본 동물은 딩고가 아닐 확률이 높았다. 검색해 보니 그곳은 딩고의 서식지가 아니었다. 그리고 버스 기사님과 캠핑장 직원의 말에 의하면 내가 본 동물은 야생 들개였을 확률이 높을 거라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급격히 어두워진 탓에 겁을 먹고, 상황을 과장해서 인지했던 것 같다. 오로지 생존에만 집중하도록 나의 뇌가 반응했던 것 같다. 아마 그 순간 나의 뇌는 눈앞의 작은 생물도 판타지 속 거대한 괴물로 만들려고 했을 것이다.)
#용이사는 호수, 요정이사는 동굴
마운트 갬비어는 칼데라 호수와 싱크홀이 있는 마을로 유명하다. 규모도 제법 크다.(내 기준에서 호주의 대표 식료품 마트인 Woolworth, Coles가 있다면 큰 마을이다) 그곳엔 화산이 하나 있는데 분화구에 형성된 호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이튿날 그 호수를 보러 가는 길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사진으로 본 호수야 아름다웠지만 그래봤자 호수라고 생각했다. 더욱이 그 호수 이름이 ‘블루 레이크(Blue Lake)’인 것이 내 기대치를 더 낮추었다. 너무 담백한 이름 때문에 왠지 푸른 호수가 주는 아름다움, 경이로움 등이 평범할 것 같았다.
몇몇 관광객들과 함께 투어가 시작 됐다. 블루 레이크 관리 직원이 동행해야만 갈 수 있는 코스가 있었다. 나와 함께 관광한 사람들은 전부 호주 사람들이었다. 마운트 갬비어는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관광지다 보니 외국인이 찾는 경우는 드물었다. 투어에 함께한 호주 사람들은 아시아인인 내게 호기심이 생겼는지 말을 자주 건넸다. 대화가 이어지면서 내가 현재 자전거로 멜버른으로 향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호주 아저씨, 아줌마들은 한국 사람 못지않게 오지랖이 진짜 넓다. 투어 무리 사이에서 단숨에 내 여행이 알려졌다. 많은 어르신들이 박수와 응원을 보내줬다. 얼떨결 했다. 그럼에도 기분은 좋았다. 보잘것없고, 쓸데없는 짓일지 모를 내 여행에 어른들이 보내준 격려는 큰 위안이 됐다.
호수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에 올라섰다. 그 순간 블루 레이크란 이름이 이 호수를 얼마나 적확하게 표현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호수를 바라보게 된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블루가 나를 덮쳤다.(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까지도 그 보다 아름다운 파랑을 본 적이 없다) 에메랄드 빛의 투명한 푸름이 아닌 너무나 짙은 강렬한 파랑이었다. 마치 거대한 푸른 보석이 통째로 분화구를 매운 듯했다. 물결은 잔잔했고, 얼핏 고급 융단결 같았다. 잔잔한 물결은 얼핏 평온해 보였지만 호수가 내뿜는 빛은 역동적인 생명력을 뿜어냈다. 호수 안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푸른 빛깔의 용이 잠들어 있다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푸른빛이 내 모든 감각을 일깨워 전율케 했다. 그렇게 한참을 서서 압도적인 파랑의 감격을 느꼈다.
이후 ‘엄포 슨 싱크홀(Umpherston Sinkhole)’로 향했다. 싱크홀 일부는 잘 정돈된 작은 정원과 계단이 있었다. 그 정원을 통해 싱크홀로 점점 더 깊이 내려갔다. 깊이가 깊어질수록 인간의 손길이 닿은 깔끔한 정원의 느낌은 사라졌다. 어느덧 마치 요정 혹은 정령이 살고 있을 것 같은 신비감이 느껴졌다. 공기도 사뭇 달랐다. 상쾌하고 은은한 공기가 주변을 맴돌았다. 거친 지층을 담쟁이 식물이 덮고 있었다. 거대한 구멍은 이미 싱그러운 초목들이 가득했다. 그 틈새에서 작은 동물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특히 ‘포섬(Possum)’이라 불리는 주머니 쥐가 자주 나타난다. 낮에는 보기 힘든데 운이 좋아 볼 수 있었다. 다행히 이 신비로운 곳에 잘 어울리는 귀여움을 갖추고 있었다.
관광을 마치고 마운트 갬비어 지역에서 하루 더 묵었다. 그날은 내 생일이어서 마트에서 통닭과 맥주를 사 자축했다. 텐트에서 이를 즐기면서 캠핑의 매력을 느꼈다.
#위대한 항로 입구
다음날 다시 지온과 함께 힘차게 출발했다. 하루 정도 푹 쉬니 컨디션이 무척 좋았다. 대략 두 시간 정도 지났을까? 남호주 경계를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 멜버른이 있는 빅토라이 주에 진입했다. 신기하게도 핸드폰이 시차에 맞게 변경 돼 있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가장 고대했던 그레이트 오션로드를 만날 수 있었다. 기쁜 마음으로 자전거를 밟다 보니 어느새 거대한 숲길에 들어섰다. 그동안 자전거를 타면서 주로 탁 트인 초원이 주로 보였다. 양 옆으로 큰 나무와 숲이 빼곡한 길은 처음이었다. 덕분에 더 상쾌하게 자전거를 밟았다. 처음으로 뜨거운 뙤약볕이 아닌 시원한 그늘 아래서 달렸다. 신선한 숲내음은 보너스였다.
그렇게 숲길을 달리던 와중에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중간에 공터가 보였다. 공터에는 인상 좋은 노부부가 있었다. 작은 캠핑카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여행 중인 듯싶었다. 멀리서 그 노부부를 관찰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부부는 마치 첫눈에 반한 듯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지긋하고, 인자하며, 설레고, 따뜻한 미소가 보였다. 그리고 두 부부의 미소와 표정이 무척이나 닮아 보였다. 영화 ‘업(Up)’에서 칼 할아버지와 그의 아내 엘리가 여행하고 있는 듯했다. 애니메이션 내용과 달리 엘리가 건강했다면 마치 저런 모습으로 여행할 것 같았다. 인생, 행복, 사랑이 무엇인지 눈앞의 장면이 알려주고 있었다. 사랑에 관한 수많은 이론, 영화, 책 따위는 필요 없었다. 내가 두 분의 모습에 감명받고 있음을 눈치챘는지 할아버지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나는 가볍게 목례를 했다. 할아버지는 온화한 미소로 화답했다. 나도 저런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되어 돈과 명예를 거머쥔 성공한 삶보다 눈앞의 삶이 더 눈부셔 보였다. 내 안의 욕구를 다시 살펴봐야겠다는 마음이 떠올랐다.
평생 잊지 못할 짧은 단편영화를 보고, 다시 길을 나섰다. 숲길은 여전히 평화로웠다. 그 평화로움을 만끽하며 한창을 달리던 와중 큰 경적이 울렸다. 뒤에서 거대한 덤프트럭이 달려오고 있었다. 한국에선 절대 볼 수 없는 크기의 큰 차량이 달려오고 있었다. 차량 뒤에는 엄청난 양의 통나무가 가득 실려 있었다. 그 때문에 운전수가 헨들을 조금만 꺾어도 뒤에서 크게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나는 자전거를 멈추고 차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도로 옆에 공간이 없어 경계 부근에 걸쳐 있었다. 차는 잔뜩 성이 난듯한 기세로 내게 달려왔다. 그리고 음주운전인 양 흔들렸다.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차가 없었고, 직선주로여서 시야도 확보 됐다. 충분히 나를 비껴갈 공간과 여유가 다분했다. 하지만 그 트럭은 마치 나를 사냥이라도 하려는 거대한 짐승처럼 내쪽으로 달려왔다. 내 키의 절반은 돼 보이는 타이어가 도로 끝의 경계선을 삼키며 달려왔다. 그제야 나는 ‘혹시 운전자가 나를 못 본 것은 아닐까?’하는 불안감이 일었다. 하지만 경적을 저렇게 울리는 것을 봐선 나를 봤음이 분명했다. 그래도 속도와 기세를 죽이지 않는 차량을 향해 나는 힘껏 손짓을 했다. 여기 사람이 있으니 조금 빗겨 가락은 뜻으로. 거리가 어느새 많이 가까워졌을 때는 섬뜩함에 몸이 얼어붙었다. 저 기새라면 나는 순식간에 튕겨져 나가 즉사할 것 같았다. 차량은 빵빵 거리며 내게 거리를 좁혀오더니 나를 아주 살짝 빗겨 지나쳤다. 추측해 보건대 운전사가 내게 괜한 위협을 가한 것 같았다. 다행이란 안도감에 화 같은 것은 나지 않았다. 나는 다시 자전거를 밟았다.
해가 질 무렵 ‘포틀랜드(Portland)’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포틀랜드는 작은 항구 도시로 제법 볼거리가 있는 마을이다. 포틀랜드가 어느 정도 매력 있는 마을임은 알았지만 나는 그레이트 오션로드를 빨리 보고 싶었다. 하룻밤을 보낸 뒤 아침 일찍 마을을 떠났다. 그리고 워남불(Warnambool)에 도착했다. 워남불에서 또 하룻밤을 묵고 또 달렸다. 워남불에서 30분 정도를 달리니 보고 싶었던 문구가 나타났다. ‘Great Ocean end point’. 즉 나는 그레이트 오션로드의 꼬리 지점에 도착했다. 나에겐 시작점이었다.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가장 통과하고 싶었던 코스인 그레이트 오션로드에 진입했다. 어쩌면 내 자전거 여행의 궁극적인 목표였던 것 같다. 흥분된 마음에 더 힘껏 달렸다. 지온(Zion)도 나와 함께 신나 하며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