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4 Epilogue. 자아의 파수꾼

by Ted 강상원

“청춘은 생각보다 빛나는 계절이 아니다.”


#인간이란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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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호주의 따뜻했던 햇살과는 사뭇 다른 쌀쌀한 공기가 나를 맞이했다. 한국에 돌아온 나는 낯선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떠날 때도 용기가 필요했지만, 돌아오는 데는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호주에서 돌아온 나는 사회에서 바라는 교과서적인 모습과는 너무 멀어져 있었다. 늦은 나이에 복학해 학교를 다녀야 했다. 학교에서 이미 졸업한 후배와 동기가 학교에 강연하는 것을 봤다. 동기 모임에서 다 같이 직장 이야기를 할 때 벙어리가 됐다. SNS에서 들려오는 친구들의 결혼 소식에 순수한 축하를 건네지 못했다. 여태 취업도 못하고, 학교나 다니냐는 조롱도 들었다. 취업 못한 친구들이 몇몇 있었지만 그들에겐 취업에 도움이 되는 경력이 있었다. 내 워홀 경험은 취업에 하등 도움이 안 됐다. 동생은 영주권을 취득하기 직전이었다. 부모님은 동생을 안쓰러워하면서 자랑스러워했다. 동생은 어느덧 집도 차도 마련했다. 동생은 여자친구도 있었다. 나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집의 유일한 아픈 손가락이었다.


그렇게 나의 워홀을 후회했다. 한국에 돌아온 뒤 한동안은 내 선택을 무척이나 미워했다. 청춘의 도전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말이 거짓임을 깨달았다. 청춘을 미화했던 것들이 전부 상처로 다가왔고, 청춘을 미화하고 있는 것들이 전부 싫었다. 청춘 마케팅은 내가 가장 혐오하는 대상이 됐다. 청춘 마케팅에 현혹된 그 시절이 미웠다. 마케터를 찾아가 따지고 싶었다. 도대체 나한테 왜 그랬냐고.


나의 혐오는 은밀하고, 수치스러운 것이었다. 이를 감추고 싶었다. 그래서 늘 거짓말을 했다. 누군가 물어보면 워홀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결코 내 치부를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내 삶의 큰 얼룩과 오점은 나만 볼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그렇게 엄습하는 후회와 자책이 버거울 때면 자전거 여행을 떠올렸다. 자전거 여행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지는 못했다. 다만 거대한 자연 앞에서 내 마음이 치유되었던 기억은 마을을 지키는 거대한 나무처럼 남아 있었다. 그 치유 덕분에 내 과거를 담담히 받아들이고, 내 경험을 자세히 들여다볼 용기를 얻었다. 그랬던 기억을 되살리면서 커지는 후회와 자책을 사그라들게 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더 흐르고 나서 노트에 내 호주 경험을 하나씩 적어 보았다. 그러고 나니 조금씩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였다. 후회로만 점철됐다 생각한 내 워홀 경험들이 어느새 나를 조금씩 지키고 있었다.


우리는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자기 식대로 인생을 살아가다 일이 잘못돼 고통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설령 그런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게 되면 다른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는 길로 억지로 끌려가는 것보다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 인간은 바로 그런 존재이다.

-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



#자아의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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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워홀 경험은 분명 스펙이나 취업에 도움 되는 경력은 아니었다. 호주에서 보낸 2년은 회사 인사 담당자들이 이해해 주는 경력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워홀은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

호주에서 한 대 처맞아 본 경험 덕분이었다. 그 덕에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나만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나만의 균형이란 것을 알기 위해선 한 번은 다쳐보는 경험이 필요했다. 스스로가 비범하다는 이상을 품고 초라한 모습을 겪어 보는 것 또한 삶의 큰 자양분이 되더라. 이카루스처럼 태양에 불타면 안 되겠지만 적어도 태양의 열기를 경험함으로써 나의 비행이 더 성숙해질 수 있다. 상실이 우리를 단단하게 만든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호주에서 만난 친구 덕분에 의연함의 가치를 배울 수 있었다. 삶은 불안정 하다. 이를 받아들이기 위해선 삶이 던지는 불확실성에 의한 좌절을 겪어봐야 한다. 불확실성이 전혀 없는 삶은 결코 고귀한 삶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왜 도전이란 것을 하겠는가. 실패할 가능성이 존재하고, 실패 이후 받을 비난, 조롱, 손가락질 등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최고의 선택 아닌가. 불확실성 따위는 화끈하게 줄여 버리고, 확실성만 가득 높이는 삶만 선택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안다. 우리는 이렇게 살 수 없다는 것을. 사람들마다 성향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는 기꺼이 불확실성이 가득한 선택을 내딛고자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흥미를 느끼고, 무언가를 배우고, 성장하며, 나라는 인간을 완성해 간다. 그 과정에서 닥쳐오는 상실을 받아들이며 의연함을 갖춘다.


호주에서 내 꿈을 한껏 의심해 본 덕분에 꿈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배울 수 있었다. 나는 영화감독이 내 유일한 진로라고 믿으며 타협을 거부했다. 영화감독을 반드시 이뤄야 할 것이라고 규정한 목표를 절대적인 것으로 설정했다. 그로 인해 목표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인생이 실패로 귀결된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두려웠다.

영화감독의 꿈은 오히려 나의 시각과 세계를 좁히고 있었다. 인생을 다각도로 탐구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었다. 영화감독 이외의 것들을 고려하지 않으며, 목표 외에 삶에서 얻을 수 있는 다양성을 놓치게 했다. 내 꿈은 희망보다 저주로서 작용했다.


청춘의 꿈은 나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이었다. 비록 목표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를 깨닫게 된다. 청춘의 꿈은 끝을 향한 직선이 아니라, 자신을 발견하고 성장하는 굽이진 길과 같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실패와 좌절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고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호주를 다녀온 덕분에 내 진정한 꿈을 찾을 수 있었다. 꿈은 발명의 대상이 아닌 발견의 대상이다. 우리는 꿈을 만들라고 말하지 않는다. 꿈을 찾으라고 말한다. 즉, 꿈은 우리가 다양한 경험을 하고, 이를 통해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며 찾아야 하는 대상이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대상이 아니다. 삶을 통해 느낀 생각과 감정이 조금씩 쌓이다 보면 우리가 바라는 삶이 조금씩 구체화된다. 나는 그러한 삶의 모습이 우리 저마다의 꿈이라고 생각한다. 행복한 경험이든 괴로운 경험이든 우리는 성취와 상실을 겪으며 그 꿈이라는 씨앗을 점점 키워나간다. 그렇게 우리 내면에서 꿈은 어느덧 싹을 틔운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문득 훌쩍 자라 있는 내 꿈을 발견하는 날이 온다. ‘아! 내가 이럴 때 행복하구나’, ‘내가 이런 일을 할 때 재미를 느끼고, 설레는구나’, ‘이것이 내 꿈이고, 내가 살고 싶은 삶이구나’. 말 그대로 꿈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그 서사를 통해 우리의 꿈은 직업적 형태에서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의 형태 진화한다.


호주에서 돌아온 날은 내 꿈이 끝나는 날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하나의 탐험이 끝났을 뿐이었다. 이런 경험들 덕분에 오히려 내가 꿈꾸는 삶의 형태는 그 구체성이 더해져 있었다. 새로운 모험 혹은 꿈의 시작점이었다.


청춘이란 것을 참으로 미화하고 싶지 않다. 청춘의 도전은 그 자체로 빛난다는 말은 여전히 거짓이라고 생각한다. 청춘은 생각보다 빛나는 계절이 아니다. 청춘은 찌질하고, 부족하고, 서툴고, 미숙하고, 실수하고, 실패하고, 상실을 겪고, 방황하는 계절이다. 하지만 이런 계절들이 모여 우리의 자아를 단단하게, 우아하게, 우직하게, 유연하게 만든다. 견고한 삶의 뿌리가 된다. 빛나는 나를 만든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청춘을(그리고 그 후의 삶까지) 빛나게 한다.


워홀을 비롯한 여러 도전을 앞둔 젊은 친구들이 단순이 빛나는 청춘이란 말에 현혹되지 않았으면 한다. 인생에 중요한 선택을 앞둔 시점에서 신중하게 객관적으로 숙고하길 바란다. 아마 어떤 선택을 내리든 결국 작은 아쉬움이나 큰 후회는 따를 것이다. 하지만 그 후회는 반드시 새로운 다짐을 불로 온다고 장담한다. 그러니 자신의 도전 앞에서 신중하되, 망설이지 말아라. 하고 싶은 도전이 있으면 반드시 해보길 바란다. 약간의 방종은 청춘에게 부여된 특권이다. 청춘의 방황은 괜찮고, 다양한 경험은 훗날 나를 지키는 철학이 된다. 자아의 파수꾼이 된다.



#Great My Life on Great Ocean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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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오션 로드는 내가 꿈꿨던 모습보다 더 드 넓었고, 웅장했고, 아름다웠고, 경이로웠다. 내 왼편으론 초록의 바다가 한없이 펼쳐져 있었다. 오른편에는 가파는 절벽과 함께 파란 초원이 넘실대고 있었다. 하늘의 구름도 그 풍경을 감상하듯 천천히 흘러갔다. 중간중간 맞이한 다른 절경들 또한 강렬했다. 백사장은 달빛을 부셔서 만든 가루를 뿌려놓은 듯했다. 백사장과 유려하게 곡선을 맞닿은 바다는 잔잔하게 윤슬을 흔들고 있었다. 자연이 만든 아이보리색과 파란색의 조화는 눈부셨다. 눈앞의 수평선 너머에 남극이 있다고 생각하니 오묘한 감각이 나를 감쌌다. 12 사도 바위는 남극으로 탐험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축복을 내리는 거대한 여신상 같았다. 우뚝 솟은 채 억겁의 세월을 버텨온 흔적이 느껴졌다. 웅장한 아름다움을 맞이할 때면 내면의 평화가 찾아왔다.


자전거 여행에서 느낀 평화가 내게 완전한 회복을 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내면을 차분히 마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며 심리를 안정시킬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내면을 들여다볼 용기를 얻었다. 여전히 현실과 마주하는 일은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어떤 감정을 마주하든 담담히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한국에 돌아갔을 때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호주에서의 경험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고 믿어보기로 했다. 눈앞의 파도는 잔잔히 기분 좋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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