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인과 바다
다음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일자리를 알아봤다. 신기하게 바로 일을 구했다. 구직 사이트에서 주급 2,000불이 눈에 띄어 당장 클릭했다. 배 타고 랍스터를 잡는 일이어서 위험하겠다 싶었지만 바로 연락했다. 한 호주인이 지금 바로 만나볼 수 있냐는 전화를 했고, 그는 내가 있는 도서관 앞으로 왔다. 그는 일이 정말 힘든데 체력적으로 자신 있는지를 물어봤다. 부실한 식단으로 근육이 많이 줄었지만 자신 있다고 말했다. 나는 군대도 다녀왔다면서 체력적으로 완벽히 준비된 것 마냥 약간의 허세를 섞었다. 짧은 대화를 나눈 뒤 그는 이따가 새벽 3시에 다시 데리러 온다고 얘기했다. 3개월간의 굶주림 끝에 현지 일자리를 구했다. 뱃일이 얼마나 고되고, 위험할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드디어 현지 생활을 본격적으로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일주일에 2,000불씩 벌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축적된 무력감으로부터 한순간에 벗어나는 듯했다.
숙소로 돌아가 이른 잠을 청하고 새벽 2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했다. 오랜만에 일을 한다는 사실이 설렜다. 돈 버는 일이 이렇게 기쁘고 설레는 일인가 싶었다. 3시에 맞춰 그(이하 선장님이라 하겠다)는 내 숙소 앞에 도착했고, 우리는 마을 어귀의 항구로 향했다. 선장을 제외한 다른 선원 두 명은 이미 배 앞에 도착해 있었고, 나는 그들과 인사를 나눴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한 명은 선장과 비슷한 연배(40대)의 호주인이었고, 다른 한 명은 네덜란드에서 온 어린 친구였다. 출항 준비를 마치고 선장을 포함한 우리 넷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를 향해 나갔다. 두 선원은 익숙한 듯 갑판을 정리하며 생전 처음 보는 기계들을 세팅했다. 나는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기 위해 최대한 주변을 살피며 그들을 도왔다. 모든 세팅이 끝나고, 우리는 선실로 들어왔다. 그들 말로는 1시간 정도 나가야 하니 선실에서 몸을 녹이며 쉬라 했다. 돈벌이했다는 기쁨과 이 일자리에서 잘릴 수 없다는 간절함에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내 긴장감을 눈치챘는지 선원들은 농담 섞인 인사를 건네며 편히 쉬라 했다.
새벽 바다는 무척이나 깜깜했다. 배는 계속 흔들렸지만 출렁이는 물결은 보이지 않았다. 파도가 보이지 않으니 내가 배에 탄 것인지 그저 배 모형을 한 놀이기구에 탄 것인지 헷갈렸다. 그때마다 배에 달린 조명등에 비친 바다는 내가 망망대해로 나가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금세 1시간이 지났고, 배는 캐빈( cabin)을 수거하는 지점에 도착했다. 선원 2명은 익숙한 동작으로 기계와 캐빈이 달린 선을 연결했고, 톱니바퀴 같은 것이 돌아가면서 캐빈이 줄에 딸려 올라왔다. 캐빈은 가로, 세로, 높이 1m 정도 크기의 나무상자다.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것이 피라미드 모양이었다. 피라미드의 윗부분이 가로로 절단된 것 마냥 옆면이 사다리꼴 모양을 하고 있었다(정확히는 사각 뿔대 모양을 하고 있었다.). 나를 제외한 선원들은 익숙한 듯 캐빈을 하나씩 건져 올리며 허리춤에 얹었다. 보는 것만으로 허리와 허벅지가 부서질 것 같은 자세를 취했다. 그렇게 엉거주춤한 채로 캐빈을 하나하나 옮겼다. 불안정한 자세로 캐빈을 날랐지만, 안정적인 움직임이었다.
그들은 피라미드 모양의 캐빈을 피라미드 모양으로 배 한쪽에 선적해 나갔다. 과정과 결과물의 모순적인 간극을 살피며 그들의 움직임을 자세히 살피려 노력했다. 일의 노하우와 요령 등을 하나라도 더 빨리 익히기 위해 집중해야 했다. 바다는 신입 뱃사공으로서의 자세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거대하고 거친 파도 앞에서는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아직 뱃사람이 덜된 나는 그조차도 힘들었다. 배가 한 번 출렁일 때마다 몸은 좌우로 흔들렸고, 배 위로 넘쳐 흘러오는 바닷물은 어느새 내 장화를 가득 채웠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균형을 잡아갈 때쯤이면 장화를 비워 내야 했다. 장화를 비우고 나면 다시 또 캐빈을 옮겨야 했다. 캐빈을 옮기고 다시 허리춤에 얹히러 가는 도중에도 넘어지지 않아야 했다. 풍랑과 폭우가 내 뺨을 계속 때리고, 시야를 가렸다. 눈이 따가웠다. 한쪽 눈만 뜬 채로 일하다 보면 다른 한쪽 눈의 소금기가 가셨다.
배에는 쓰임새를 알 수 없는 이런저런 물건이 많았다. 자칫 넘어져서 부딪히면 가벼운 타박상에서 뇌진탕까지 일으킬 수 있을 만한 물건들이 널려 있었다. 개중 날카로운 물건도 보였다. 물론 선원들의 안전을 위해 잘 정리해 놓인 상태였다. 하지만 사고는 종종 우리의 준비성 따위는 무시하고 발생하니 여전히 조심해야 했다. 그렇게 2시간을 균형 잡기, 무거운 물건 옮기기, 바닷바람과 파도에 부닥치기 등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떠올랐다. 밝아지는 해변이 주는 경관에 잠시 넋을 잃기도 했지만 이내 ‘Get back to work’라는 고함이 들려왔다. 망망대해 동네 놀이터의 반도 안 되는 크기의 배에서 벗어날 수도 없겠겄만, 일터에서 벗어날 수 없는 환경에서 다시 일터로 돌아가라는 말이 모순 같았다(물론 저 말이 순전히 그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시 일터로 복귀해 아까와 같은 행동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배는 캐빈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곧 한 선원으로부터 “last one”이라는 말이 들렸다. 그 마지막 캐빈을 끝으로 우리는 점심시간을 맞이했다. 우리는 선실 내부로 들어가 각자 미트 파이 한두 개 씩 나눠 먹었다. 전자레인지에 데우기만 하면 되는 흔한 냉동 파이였다. 다만 며칠 동안 식빵만 먹었던 내게 무척이나 반가운 음식이었다. 매번 마트에 장 보러 갈 때마다 - 장이라고 볼 것은 식빵 또는 감자튀김이 전부였지만 - 눈길을 잡았던 음식 중 하나가 눈앞에 놓이니 무척이나 반가웠다. 나는 파이를 해치우고, 선실 밖으로 나왔다. 바다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했다. 푸르다는 표현밖에 할 수 없는 푸른 바다와 푸른 하늘이 각자의 푸름을 적절하게 조화시키며 풍경을 완성했다. 내리쬐는 햇볕이 제법 따가웠지만, 그 따가움을 만끽하고 싶었다. 불과 1시간 전까지 치열하게 사투를 했다는 사실이 거짓말 같았다. 거칠게 뛰놀던 파도는 온데간데없이 조용하면서 부드러운 아리랑 선율이 바다 위로 놓여있었다. 문득 내가 있는 곳이 인도양 한복판인지 궁금해 핸드폰 구글맵을 켜 봤다. 핸드폰 화면 위로 파란색이 가득했고, 가운데 빨간 점이 혼자 떠 있는 듯했다. 파란색 위에 Indian Pacific이라 쓰여있는 것을 보며 내가 바다 한가운데 있음을 실감했다. 바다 위로 불어오는 짠 내임 가득한 바람을 맛보며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머리가 뻑뻑한 느낌이 들어 만져보니 손에 알갱이 같은 것이 제법 쥐어졌다. 소금이었다. 영광의 상처인 것 마냥 약간의 뿌듯함을 느끼며 오후 일과를 시작했다.
오후 일과는 거둔 캐빈을 다시 바다에 던져놓는 일이었다. 그전에 캐빈에 있는 랍스터를 배 안에 있는 수조로 옮겼다. 랍스터를 옮기는 와중 커다란 문어가 드문드문 나왔다. 문어는 옆에 있는 작은 통으로 직행했다. 퇴근 시 문어 한 마리 얻어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밥 한 끼조차 해결하기 힘든 궁핍한 시기를 위로하듯 문어 요리로 호사를 누릴 생각에 힘이 났다.
새벽에 랍스터가 가득 찬 상태로 바다에서 올라오던 캐빈은 어느새 빈 상자가 됐다. 토막 낸 생선을 캐빈에 달린 조그만 공간에 집어넣고 부표가 달린 선에 매달아 바다로 던졌다. 커다란 캐빈이 바다 위로 던져지면서 ‘풍덩’, ‘찰싹’ 거리는 소리가 좋았다. 일련의 과정을 선원들과 돌아가며 반복했다. 오후 일과가 마무리돼가며 배는 다시 항구로 향했다. 출항한 항구가 아닌 랍스터 공장 옆의 하역장에 잠시 정박했다. 컨베이어 벨트 위로 랍스터가 작은 상자에 조금씩 담겨 옮겨졌다. 선장은 공장 직원과 인사를 나누며 그날의 물량을 거래했다. 얼마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제법 큰돈이 현찰로 오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그 모습을 보니 직원 한 명당 주급으로 2,000불씩 주는 것이 납득됐다.
우리는 출항했던 항구로 되돌아와 주유를 한 뒤 다음 날 바다로 나갈 준비를 하며 일과를 마무리했다. 조금 어지러웠다. 몇 달 동안 배를 타는 사람이 육지에 내리면 육지 멀미를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모든 정리가 끝났고, 나는 문어 한 마리를 숙소에 가져갈 생각에 상기된 상태였다. 조미료도 없고, 요리도 할 줄 모르니 그저 살짝 데쳐 먹을 생각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문어는 충분히 훌륭한 음식이다. 하지만 내 기대와 설렘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선원 중 한 명이 문어를 그냥 바다에 풀어 주었다. 나는 간곡히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그럴 기운조차 없었다. 다리를 오므렸다 피며 유유히 멀어져 가는 문어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러고는 선원들과 조금 후에 보자며 인사를 나눴다. 나는 그 인사가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몰랐다. 아마 그들은 알았을 것이다.
선장은 나를 다시 숙소까지 데려다주며 내일부터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나도 내가 하루 만에 잘린 것을 직감했다. 충분히 수긍할만한 일이었다. 억울하지는 않았다.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지만 내가 그 선장의 입장이었어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 같았다. 배에서 제대로 균형도 잡지 못하고, 100킬로에 가까운 나무통을 하루에 100개 이상 옮기기에 나는 빈약했다. 정확히는 내가 가진 육체적인 힘과 체력이 부족하기보다 내 능력과 비교해 업무 난이도가 몇 배는 높았다. 그 일을 주 6일 동안 해내는 그들이 대단한 것이다. 선장은 지갑에서 50불 지폐 두 장을 꺼내며 오늘치 일당을 내게 주었다. 일주일에 2,000불 급여면은 하루 일당이 300불 비슷하게는 나와야 하지만, 내가 그날 제대로 한 일이 거의 없어서 불만은 없었다. 사실 100불이라도 받은 것에 감사했다. 선장은 숙소 앞에서 나를 내려주고 Good Luck이라는 말과 함께 떠났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피로가 한 번에 몰려왔다. 종일 고생한 하체가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한국이었다면 뜨거운 탕에 몸을 던졌을 것이다. 그렇게 그들에게는 84번째였을지 모르는 항해가, 나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항해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