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實數)와 실수(失手)2

#실수(實數)

by Ted 강상원

#실수(實數)


“다시 환생한다면 부디 그 헛소리는 하지 말게. 자네는 질서를 무너뜨렸어. 이 모든 것이 질서를 위해서 하는 일이니 원망 말게나.”


한 남자가 밧줄에 묶인 채로 해변에 무릎 꿇고 있었다. 사람들은 묶여 있는 남자를 경멸과 조롱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그 남자 또한 자신의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왔음을 받아들이는 듯했다.


“아니, 나는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았어.”

“빨리 죽어!”

“얼른 물에 던져버려!”


사람들은 광기 어린 목소리로 그 남자의 죽음을 외치고 있었다. 남자는 그들의 외침, 표정, 눈빛에서 처음에는 공포를 느꼈지만 어느덧 죽음을 체념한 듯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무리수는 존재하네. 자네들도 알고 있겠지. 지금 자네들은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거야. 나를 죽인다고 해서 무리수의 존재는 사라지지 않아. 오히려 얼마 전까지 같이 동고동락한 나를 죽이면서 까지 그 사실을 덮으려 하는 자네들의 태도야 말로 무리수가 존재함을 증명하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 학파는 얼마 가지 않아 한 줌 흙으로 사라질 걸세. 우리는 처음부터 잘 못 됐었어. 거대한 우주의 법칙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꼈던 우리가 어느새 우주의 법칙, 세상의 이치, 모든 만물의 근본을 깨달았다고 생각한 것이 오만이었지. 결국 자멸하고 있었어. 나는 그 누구보다 이 집단이 좋았네.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틀렸음을 인정했어야 했어. 그리고 우리는 밝혀냈지. 하지만 그 누구도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어. 나는 세상에 진실이 묻히는 것도 두려웠지만 그보다 우리가 무너지는 모습을 더욱 견딜 수 없었어. 언제부터 우리가 세상을 다 이해했다고 착각하기 시작했지? 정치에 관여했을 때부터인가? 사람들에게 콩을 먹지 말라고 강요했을 때부터인가? 육식을 하지 않았을 때부터였나? 아니 어쩌면 처음부 터였을지 모르겠군."

"나는…"


사내는 메이는 목을 애써 붙잡으며 말을 이어 갔다.


"나는 정말 자네들을 사랑했어. 하루하루 진리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세상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해 밤새 토론했던 나날이 모두 소중했네. 그런 우리가 좋았고, 내가 살아가는 이유였네. 내게 주어진 삶이 감사했어. 혹시나 우리가 잘 못 이해했다 여긴 것이 있으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면 되는 것이었어. 자명한 진리를 바탕으로 추론을 하며 이 추론의 끝에서 우리는 진리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더 이상 우리 학파는 크로토네 청년들이 꿈을 투영하는 곳이 아니었어. 세상의 본질을 탐구하려는 목적으로 저마다의 생각을 나누기 위한 곳은 더더욱 아니었지. 지역 유지가 되기 위한 등용문이었을 뿐이야. 청년들은 더 이상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 학파에 들어오려 하는 것이 아니라네. 우주를 탐구하기 위한 통로가 아니었어. 세속에 묻혀 야망을 펼치고,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지.”

‘수 또한 목적이 아니라 그저 수단이었어. 규칙도 없이 뻗어나가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무한의 수가 존재하고 있다면…!’


남자는 말 끝을 흐리더니 이내 무언가를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편안하게 웃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죽음이 다가오니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이 다시 보이는군. 먼저 가 있겠네.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진리를 지키려 하지 말고, 진리 자체에 다가가는 과정을 즐겨보세. 틀림을 받아들이는 일이 혼돈의 가중이 아님을 자네들이 언젠가 깨닫길 바라겠네. 뚜렷해 보였던 무언가가 사실은 안개에 감춰져 있을 수 있다네. 자네들 중 누군가는 언젠가 그 흐릿한 안개를 헤쳐내고 진실에 더 다가갈 거야. 잘들 있게나. 선생님께 안부 전해주고.”


이를 마지막으로 그는 물가에 몸을 던졌다. 그의 동료들은 모두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누군가는 응당 해야 할 일을 해냈다는 듯이 사명감 띤 얼굴을. 누군가는 담담하게. 누군가는 의심과 혼돈으로 가득 찬 표정을. 누군가는 그의 죽음에 기도를 올리고 있었고, 누군가는 통쾌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선 광기와 씁쓸함이 그가 몸을 던진 수면 위의 파장처럼 흩어져 갔다.


차가운 바닷물이 그를 감쌀 대로 감싸며 깊은 수심으로 빨아들였다. 불규칙한 무한으로 그는 끝없이 침전해 가며 숨을 거두었다.


위의 편지체로 쓴 내용은 피타고라스 학파의 한 명이었던 히파소스의 죽음과 그 배경이 된 일화를 바탕으로 상상해 쓴 창작 글이다.


피타고라스와 그의 제자들은 세상 만물은 모두 수로 존재하며, 그 수는 아름다운 정수의 비로만 표현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이 충격에 빠지는 일이 발생했다. 정수의 비로 표현이 불가능한 수를 찾아낸 것이었다. 그들은 가로, 세로가 1인 정사각형에서 대각선의 길이를 자연수, 혹은 정수의 비로 나타낼 수가 없음을 발견했다. 직각삼각형에서 짧은 두 변을 제곱한 뒤 더한 것이 가장 긴 변(빗변)의 제곱과 같다는 ‘피타고라스 정리’가 도리어 무리수의 존재를 증명해 주었다. 루트 2의 발견이었다. 당시에는 루트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를 표현할 방법 또한 없었고,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의 신념에 반하는 이 사실을 감추기로 했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는지 학파 무리 중 한 명이 이를 외부에 누설했다. 히파소스라는 수학자였다.


“세상 만물은 유리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무리수가 존재한다.”

“이 세상은 정수와 정수의 비로만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거짓이다.”

“두 변의 길이가 1인 정사각형의 대각선은 유리수가 될 수 없다.”


정사각형 한 변과 그 대각선 길이의 비
정사각형 한 변과 그 대각선의 길이 비: 1.4142…


무리수의 존재를 히파소스가 발견했는지 아니면 학파 내에서 밝혀 냈고, 비밀에 부치기로 했지만 히파소스가 이를 외부에 누설했는지. 이에 대한 자료는 정확히 남아있지 않다. 다만 히파소스가 피타고라스 학파의 신념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히파소스로 인해 결국 세상은 무리수의 존재를 알게 됐다. 이 세상을 수로 이해함에 있어서 한 걸음 더 진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진실은 그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시대의 상식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생명력을 잃는 법이다. 때로는 합리성보다는 당위성이 더 중요한 법이다. 인간은 때론 숫자가 보여주는 진실보다 보이지 않는 명예를 더 추구하기 마련이다. 피타고라스 학파에게 그 명예라는 것은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했다. 그들은 수학자였지만 그들의 당위성에 객관성은 결여돼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비겁해지는 길을 선택했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무리수의 존재를 누설한 히파소스를 지중해 바다에 던져 죽였다. 이 밖에 우물에 빠뜨려 죽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히파소스를 살해한 방법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여러 사료들에 물이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익사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스승의 이름을 딴 공식으로부터 무리수를 발견했지만 결국 스승의 손에 의해 생을 마감했다. 히파소스는 한 때 그들의 동문이자 친구이자 제자였다.


피타고라스는 세상 만물이 수로 이루어졌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수는 정수 혹은 정수의 비(분수)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오늘날 우리가 유리수(有理數, rational number)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에게 있어서 합리적인(rational) 생각이었다. 이 세상에 비합리적인 수(irrational number), 이치에 맞지 않는 수(무리수, 無理數)는 있을 수 없다고 믿었다.


실체가 없다 생각한 음악에도 3:2라는 유리수의 비가 아름다운 화음을 만든다는 사실을 밝혀낸 피타고라스는 그의 신념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됐다. 이는 그에게 있어 음악이라는 추상적 세계에서 찾아낸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속성이었다. 그저 우연의 일치가 빚어낸 아름다움으로 여겼던 대상에도 그 속에는 조화를 품은 선율이 있었고, 그 조화는 유리수였던 것이다. 이는 훗날 서양 음악이론에 큰 영향을 주었다. 피타고라스는 이를 우주 속 행성 운동원리에까지 확장했다.


천동설이 우주가 작동하는 기본 원리라고 생각했던 시절. 피타고라스는 우주의 별들과 행성들이 투명한 천구(天球)에 박혀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 생각했다. 그리고 지구로부터의 거리, 행성과 별 사이의 거리 등 이 모든 것이 적절한 수의 비를 이룬다고 믿었다. 별과 행성들은 그 거리에 따라 서로 다른 음을 내고, 이것은 마치 적절하게 조율된 악기인 양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고 믿었다. 피타고라스에게 원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기하학적 도형이었다. 각각의 행성이 내는 음과 행성들의 운동 궤도는 우주가 가지고 있는 신비이자 장엄한 오케스트라 연주 그 자체였다. 그것이 피타고라스에게 있어서 ‘조화(Harmony)’였다. 그는 우주를 아름다운 조화가 있는 천체(천구, 天球)로 생각했다.


로버트 플러드의 『두 세계의 역사』


완벽하게 조율된 악기. 기하학적으로 무결한 형상의 공간. 수의 비율이 조화를 이루며 만들어 내는 하모니. 질서 정연하게 흘러가는 세상. 피타고라스는 그런 우주에게 ‘코스모스(Cosmos, 질서)’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피타고라스가 거짓 소문을 접했을 때 억울하고, 화가 났을 것이다. 자신의 학교에 불을 지르고 제자들을 살해하며 자신의 목숨까지 위협을 당하는 상황이 못마땅했을 것이다. 메탄폰툼으로 도망치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그런 상황이 분통스러웠을 것이다.


“소문은 진실은 아니지만 적어도 대중들이 그 대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진실을 담고 있다.”
- ‘알쓸신잡(TV 프로그램)’ 中, 소설가 김영하 -


그가 적어도 대중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되돌아봤다면 어땠을까? 피타고라스가 타인의 마음을 조금만 더 헤아려 봤다면 역사가 바뀌었을까?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적어도 그가 자신이 믿는 진리가 틀릴 수 있음을 인정했다면. 무리수의 존재를 누설한 제자를 품었다면. 피타고라스학파의 사상을 대중들에게 강요하듯 전파하지 않았다면. 그저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도구로서 하나의 학문으로서 수를 알려주었다면. 자신이 이집트와 바빌로니아를 떠돌면서 느꼈던 수의 위대함을 설파와 강요가 아닌 대화와 공감으로 전달하려 했다면. 자신의 학교를 나온 졸업생들이 사회 영향력을 발휘하는 와중 대중들의 마음을 더 돌보려 했다면. 강력해진 영향력이 자신의 오만으로 번지지 않기 위해 조금 더 성찰과 반성을 했다면.


플라톤, 유클리드, 코페르니쿠스가 존경한 수학자이자 과학자. 음악의 화음을 수로 표현한 사람. 전 세계 모든 수학책에 등장하는 그의 이름을 딴 공식. 수를 사랑한 철학자.


위대한 업적을 낳음과 동시에 그는 수많은 오만과 실수를 저질렀다. 그는 그가 아폴론의 자식이며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할 수 있고, 그의 넓적 다리는 황금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이미 몇 천 년 전에 밝혀진 기하학의 원리를 마치 자신의 독창적인 이론 인양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 흔히 독재자들이 하는 자기 신격화를 한 것이다. 그는 그가 저지른 실수를 외면했다. 몇몇 실수는 실수라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옳음을 지키기 위해 제자를 죽였다. 그러한 실수와 진실의 외면이 누적됐고, 그의 삶에 비극적 결말을 가져왔다. 수학자로서 성공한 삶이었지만 그의 마지막은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증오의 대상으로 낙인 된 도망자 신세였다. 마치 실패한 삶을 산 인간의 말로 같았다.


실수(實數)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한 그의 실수(失手). 아니, 파악하고도 외면하려 했던 그의 실수.


“너와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이 웃을 수 있도록 그들의 짐을 나누어 들어주어라”
- 피타고라스 -



참고 자료:

1. 조수남, '數와 수의 比, 모든 존재의 근원적 원리이자 실체', '[수학이 뭐길래] 피타고라스의 수리 철학

<상>, 중앙 선데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1528009

2. 조수남, '數의 比에 관한 연구, 우주의 조화 탐구로 연결', [수학이 뭐길래] 피타고라스의 수리 철학 <하>

중앙 선데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1613811#home


3. EBS 다큐 프라임, '피타고라스 정리의 비밀', 2009.05.31 ~ 2009.06.02

4. EBS 다큐 프라임, '문명과 수학', 2020.07.27 ~ 2020.08.04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실수(實數)와 실수(失手)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