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實數)와 실수(失手)1

#어느 수학자의 미론(美論)

by Ted 강상원

#어느 수학자의 미론(美論)


과거 그리스에서 한 무역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이가 있었다. 상인은 당시 아들에게 최고의 교육을 받게 해주려 했다. 상인은 아이를 줄곧 데리고 다녔고, 아이는 어려서부터 세상을 다양하게 인지하며 자랐다. 어느덧 청년이 된 그는 더 큰 도시인 밀레토스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그는 당대 최고의 철학자이자 수학자라 불렸던 탈레스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그는 탈레스로부터 천문학, 기하학, 수학 등을 배웠다.


당시 그리스에서는 세상의 본질을 탐구하는 사상이 유행이었다. 즉, 모든 물질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그 근본이 존재하고, 이것이 세상을 이루는 본질이라고 생각하였다. 탈레스 또한 이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에 몰두했고, 세상 만물은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탈레스의 믿음과는 별개로 그 청년은 세상의 본질은 다른 무엇이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였다.


이후 청년은 스승인 탈레스의 주선을 받아 이집트로 유학을 떠났다. 피라미드를 보며 큰 영감을 받은 그는 바닥에 직각삼각형을 그리며 자신이 바닥에 그린 삼각형과 그 거대한 구조물이 본질적으로 같은 것임을 직감했다. 이후 이집트의 기하학과 수학에 더 매료된 그는 더 큰 배움을 얻고자 했지만 이집트 특유의 종교적이고, 폐쇄적 성격 때문에 이것이 쉽지는 않았다. 이집트의 사제들은 자신들의 이야기가 외부로 새 나가는 것을 꺼려해 그에게 몇 번의 다짐을 받아 낸 뒤 그들의 지식을 전수해 주었다. 그는 이집트에서 직각 삼각형이 이루는 특수한 숫자의 비에 흥미를 느꼈고, 이를 더 깊이 파 해치려 했다. 수학, 천문학, 기하학에 더욱 빠져들며 조금씩 신비 사상에 물들어 갔다. 그는 이집트에서 수학과 철학이 물리적 세계와 실제적 세계 사이에서 어떤 연결 고리 역할을 하는지 목격했다. 이집트인들이 지식을 어떻게 권력에 사용하는지를 보며 정치의 이치 혹은 세속의 이치를 깨닫기도 했다.


세상은 그를 한 곳에 머무르게 할 생각이 없었는지 그는 강제로 이집트를 떠나야만 했다. 페르시아 제국이 이집트를 침공했고, 그는 이집트의 다른 학자들과 함께 납치되었다. 다행히 부유한 상인이었던 아버지 덕에 곧 풀려 났지만 그는 그곳에 남기를 원했다. 당시 바빌로니아는 페르시아 제국의 행정 중심지였다. 페르시아 제국의 과학, 수학, 천문학 등 교육의 성지로 고대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였다. 세상을 알고자 하는 열망이 강했던 그에게 바빌로니아는 또 다른 이상향이자 낙원 같은 곳이었다. 그는 그곳에 남아 더욱 학문에 매진하였다. 그의 지식은 바빌로니아에서 더욱 발전했고, 바빌로니아의 점성술사들로부터 동방 지식을 전수받았다. 그는 동쪽의 여러 도시(오늘날의 인도에 해당하는 지역까지)들을 탐험하며 세상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자 했다.


“이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졌을까?”

“세상 만물의 근본인 ‘아르케(Arche)’는 과연 어떤 것일까?”


그의 순수한 지적 호기심은 그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쳤고, 어느덧 그는 60세의 나이에 이르러 꾀나 식견이 뛰어난 수학자가 돼 있었다. 수학자로서의 지식이 점점 쌓여갈수록 그는 그의 지식을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열망 또한 커져갔다. 수학자는 이내 고향인 사모스 섬으로 돌아온 뒤 얼마 안 있어 이탈리아 남부에 있는 크로토네라는 도시로 향했다. 그곳에서 수학자는 자신의 이름을 딴 학교(학파)를 설립하고, 그간 자신이 배우고 깨우친 지식을 전수하기 시작했다.

의학 강국이자 유럽 교역에 있어 중요한 유통 지였던 크로토네에서 그의 지식과 경험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의 철학과 사상에 매료되었고, 그의 가르침을 받고자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수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을 가르치면서 세상 만물의 근본은 수로 이루어져 있다는 믿음을 전파했다. 그의 지식과 사상은 날이 갈수록 영향력을 발휘했다. 영향력이 점점 커짐에 따라 그를 비롯한 해당 학파 사람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더욱더 전파하려 하였고, 점점 종교적 집단에 더 가까워졌다. 이 종교 집단의 힘이 커지면서 그들은 단순히 자신들의 사상을 전파하는데 그치지 않고, 어느덧 정치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 집단 출신들이 지역유지를 맡기 시작했고, 인근 도시의 주요 직책까지 진출했다. 오늘 날로 치면 종교적 색깔이 짙은 특정 학교/학파 출신의 사람들이 마을 이장부터 각 행정 부처의 장차관을 맡고, 당을 설립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꼴이었다.

지역사회에 미치는 힘이 강해진 수학자와 학파 회원들은 어느덧 자신들의 믿음을 전파하기보다는 강요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의 믿음은 어느 정도 가치가 있어 보이는 것들도 있었겠지만 오늘날 우리의 시선에서는 이상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많았다. 그들은 ‘흰 수탉을 만지지 말 것’, ‘콩을 멀리 할 것’, ‘육식을 하지 말 것’ 등의 생활 수칙을 강요했다. 사람들의 거부감은 더욱 커져갔지만 이 수학자를 비롯한 그의 제자들은 점점 승승장구하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기세가 정점을 찍는 듯 해 보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는 도시국가 간의 전쟁이 잦은 시기였다. 이 시대의 폭풍을 피해 갈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크로토네 시민들 또한 이 폭풍의 한가운데 놓이게 됐다. 크로토네 인근에 시바리스라는 도시가 있었다. 두 도시 모두 이오니아에서 물품을 수입해 이탈리아를 비롯한 각지 유럽으로 재 수출을 하는 거대 무역 도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시바리스는 크로토네를 공격했다. 크로토네는 위기에 처하는 듯싶었지만, 수학자의 학파 출신 장군이 오히려 기지를 발휘해 방어에 성공했다. 이 장군은 방어에 그치지 않고, 시바리스까지 진군하여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좋은 꿈은 오래가지 않는 법이었나 보다.


그 쯤 수학자의 학교는 영향력이 커질 대로 커져 입학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절차가 제법 까다로웠다. 그 절차 때문이었는지 어쩌면 폐쇄적인 성격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해당 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학생 중 누군가가 앙심을 품고 수학자의 학파에 대한 거짓 소문을 퍼트렸다. 시바리스 군대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 학파 사람들이 전리품 및 노획품을 독점하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이에 분개한 크로토네 시민들은 학교에 불을 지르고 그를 추종했던 학생들을 죽이기에 이르렀다. 일설에 따르면 수학자의 제자 38명이 학살당했다고 한다. 수학자는 크로토네를 도망쳐 인근의 메타폰툼으로 피했으나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수학자의 죽음에 대한 직접적 원인은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크로토네 사람들이 끝까지 쫓아가 죽였다는 기록. 수학자가 숨어 들어간 집에 사람들이 불을 질렀는데 그 주변이 전부 콩밭이어서 나오지 못했다는 기록. 도망치기 위해서 콩밭을 가로질러가야 했는데 콩을 멀리해야 하는 믿음을 버리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에게 잡혔다는 기록. 그의 죽음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그의 말로가 허무하고 비참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수학자의 이름은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고, 전 세계 모든 수학책에 등장한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학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그의 이름은 피타고라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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