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의 뿌리
당시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은 그 친구와의 관계뿐만이 아니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날 나는 2년 만에 뵐 부모님 생각에 상기돼 있었다. 내가 해외에 있는 동안 부모님은 새로운 가게를 차리셨다. 나는 주소와 상호만 알고 있는 상태에서 택시를 타고 부모님의 가게로 향했다. 부모님을 놀라게 해 드리고 싶은 마음에 귀국 날짜를 정확히 알려드리지 않았다. 가게에 도착했고, 그새 조금 더 늙으신 어머니 아버지가 계셨다. 우리는 반가움과 기쁨이 섞인 포옹을 나누었다. 그리고 면세점에서 사 온 양주와 함께 회포를 풀었다. 술자리가 익어가면서 부모님은 그간의 힘듦을 이야기하셨다. 가게 장사가 잘 되지 않아 부모님이 조금의 생활고를 겪고 계셨다. 어머니는 장사를 지속하기 힘들 만큼 건강이 안 좋아지셨고, 아버지는 매일 술을 찾으셨다. 힘든 가게 사정 때문인지 부모님 관계는 더욱 안 좋아진 것 같았다. 가족의 재회는 기쁜 건배로 시작해 아버지의 고성과 어머니의 눈물로 끝났다.
어머니 아버지는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가게에 딸려있는 다락방에서 지내셨다. 그 다락방으로 향하는 계단이 없어 매일 사다리를 놓고 거둠을 반복하시며 살아오셨다. 무척이나 위험해 보였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아들이 반가우면서도 그런 모습을 보여야 했음이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며칠간은 나도 가게 한쪽에 있는 방에 문을 설치해 지냈다. 얼마 안 되어 우리 가족은 1.5룸인 월세집으로 들어갔다. 부모님은 가게를 접으셨고, 아버지는 인력사무소로 새벽마다 출근하셨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불편했다. 당시 나는 29살이었다. 친구들 중 몇몇은 벌써 취직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아직 취업준비 중인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처럼 대학교 졸업도 마치지 못한 친구는 없었다. 열등감에 친구들과의 만남을 피했다. 그리고 열등감은 비단 취업이나 돈벌이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었다. 가장 가깝게 지내온 친구 두 명 다 당시에 연애를 하고 있었다. 그 둘이 각자의 연애를 하는 모습을 부러워했다. 그 부러움과 동시에 나의 콤플렉스는 커져 갔다. 나만 뒤처지고, 나만 못났다는 생각에 외로움은 커져갔다. 더욱이 그녀에게 매달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거절당했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열등감과 외로움을 느꼈다. 친구들은 나의 사랑을 부정했다. 몇몇은 내 경험을 비웃었다. 가뜩이나 힘든 사정에 아직 대학 졸업도 못한 아들놈이 부모님은 얼마나 못마땅하셨을까. 가끔은 가족도 친구도 사랑하는 사람도 전부 나를 미워하는 듯했다. 그들이 나를 위로해줄 때면 반대로 내가 나를 미워하고 괴롭혔다. 모든 것이 내 선택의 결과였으므로 누구를 원망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를 원망했다. 더 이상의 실수와 실패는 나에게 용납될 수 없을 것 같았다. 지난 20대를 돌아보니 실패와 후회만으로 점철돼 있었다. 과거를 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앞만 보고 달려 나가야 했다. 나를 향한 원망을 동력 삼아 살았다. 자기혐오는 나를 금방 지치게 했다. 지칠 때면 술, 담배, 폭식을 일삼았다. 순간적인 쾌락으로 나의 외로움을 달랬다. 외로움을 달래며 괴로움을 외면했지만 결국 나를 더 지치게 했다.
그때는 몰랐다. 후회를 온전히 마주해야 그 후회로 인한 괴로움을 벗어날 수 있음을. 후회가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이 아님을. 나중에야 승무원 준비를 하며 어떻게든 버텨야만 했던 그 시절의 나를 마주하니 상쾌한 후회를 할 수 있었다. 후회라는 감정에서 미움과 원망을 걷어내고, 집착에서 조금씩 벗어날 때 나의 자아를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었음을 나중에야 알 수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미움이 멈추고 사랑이 시작할 줄은. 그때는 몰랐다. 세상의 기준 앞에 휘둘리지 않고, 단단해질 수 있음을. 그때는 몰랐다. 후회가 다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누구나 특히 자존감이 낮아지는 시기를 겪는다. 나에겐 그 친구를 사랑했던 시기가 특히 그랬다.
힘들어도 된다. 울어도 된다. 아파해도 된다. 다만 자신을 너무 괴롭히지 말았으면 한다. 세상이 가혹의 칼날을 들이미는 상황만이 우리의 자아가 무너지고, 자존감이 낮아지는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자신을 돌보기를 멈추기 때문이다. 나를 향한 나의 태도를 미움과 원망으로만 채우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다.
괴롭고 힘든 순간에도 자신을 돌보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보살핌을 받아 마땅한 자격을 스스로 박탈해서는 안된다. 운동을 하는 것, 산책을 하는 것, 책을 읽는 것, 영어 공부를 하는 것, 스펙을 쌓는 것,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 혼자 여행을 가는 것,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영화를 보는 것, 전시회를 관람하는 것 아무 생각 없이 침대 위에 누워있는 것 등 이 모든 것이 나를 돌보는 행위 일 수 있다.
내가 사랑하는 대상(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이든, 목표나 꿈이든)에 철저히 박살 나고, 철저히 실패를 맞이 했다 하더라도 절대 자신을 돌보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자신을 사랑해야 하고,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뿐이다. 진부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 진부함이 선사하는 진중함과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는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가 나를 응원하지 않을지라도. 세상이 당신에게 재능이 없다고 말할 지라도. 시대의 흐름에 당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 역행일지라도. 세상이 정한 기준 앞에 움츠려 들지라도. 아픔과 슬픔을 있는 그대로 느끼되 스스로를 먼저 괴롭히지 말자. 우리에게 날개는 없지만 추락하는 것을 받아줄 손이 있다. 따뜻한 말을 거네 줄 입이 있다. 함께 걸을 수 있는 두 다리가 있다. 추락하는 자존감일지언정 다치지 않게 보듬어 주길 바란다. 나를 가장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최후의 최후까지 나를 아껴주고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세상 모든 이가 실패를 통해 더욱 행복하길 소원(所願)한다. 아픔이 성숙과 성장을 만든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실패를 겪는 우리 모두가 더 멋진 사람이 될 거라 생각한다. 현재 겪고 있는 아픔이 자존감을 깎아 먹을지라도. 그 경험이 종래에는 여러분의 자존감이 높아질 자양분이 되길 진심으로 응원하겠다. 추락을 경험한 자존감이 단단한 자존감의 뿌리가 된다.
후회는 반드시 다짐이 된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 『돈키호테』,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Saavedra ) -